[영화홍보]SNS, 새로운 영화 마케팅 문화를 상상하다
2000년대 초,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은 관객이 극장에서 영화를 소비하거나 영화에 대한 정보를 얻는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한국영화의 부흥기였던 1995년에는 <씨네21> <키노> <프리미어>가 창간될 정도로 영화잡지의 시대가 열렸으나, 인터넷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면서 10년 만에 몰락의 위기를 겪었다. 관객들은 평론가나 기자의 전문적 소견보다는 자신과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의 반응에 더 귀를 기울였다. 인터넷은 영화잡지의 지식 권력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데 일조했고, 곧 인터넷 검색 포털 1위인 네이버가 영화의 담론을 생산하는 장이 되었다. 2010년대에는 소셜미디어, 즉 SNS(소셜 네트워킹 서비스)로 불리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나오면서 영화 흥행의 최고 변수라는 ‘입소문’이 버벌 마케팅(verbal marketing)으로 적극 활용되고 있다. 최근 홍보컨설팅 회사 버슨-마스텔러가 <포춘>이 선정한 글로벌 100대 기업이 사용하는 소셜 플랫폼을 검토한 결과, 기업들이 가장 선호하는 플랫폼은 트위터로, “2010년 65%에서 2012년 82%로 사용량이 증가했다”(global social media check-up 2012)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미 영화뿐만 아니라 각종 문화산업 전반에 걸쳐 트위터는 새로운 바람을 불러오고 있다.
SNS, 정말로 마케팅에 도움이 될까?
2010년 하반기부터 국내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트위터 마케팅은 2년 만에 놀라운 성과를 낳았다. 빠른 시간에 많은 사람에게 메시지를 퍼뜨릴 수 있다는 점, 또 관객과의 관계를 친밀하게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트위터는 마케팅의 필수 도구로 자리 잡았다. “영화의 사이즈와 상관 없이 이미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마케팅의 기본이 되었다”고 영화 마케터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 영화의 특성을 반영한 홈페이지를 구축하고 관리했지만, 최근에는 그 기능을 블로그가 대신하고 있다. 게이트 페이지만 만들고 대부분 공식 카페나 블로그를 운영하는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홈페이지 유입률이 낮아져 더 이상 유지할 필요가 없어진 탓이다. 최근 트위터를 이용한 영화 마케팅 성공 사례가 줄줄이 나오자, 대다수의 언론은 사회적 이슈와 SNS의 결합이 폭발력을 발현한 것이라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SNS상에서 영화를 어떻게 소비하고, 어떤 사회현상을 일으키는지다. 현재 트위터가 일으킨 효과를 구체적으로 측정하기는 쉽지 않다. “트위터가 영화 마케팅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가?”라는 질문에 상당수의 영화 마케터는 “답하기 애매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효과를 검증하기는 어렵지만, 제작사나 배급사들이 모두 원하기 때문에 홍보사 대부분은 마케팅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실정이다. SNS 열풍에 동참하는 정도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영화계가 SNS의 효과와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 사실 지금까지의 성공 사례를 산술적으로 계산하는 것 또한 의미가 없다. 344만 명을 불러모으며 트위터의 위력을 알린 <부러진 화살>의 경우, 공식 팔로어 수가 겨우 1653명밖에 되지 않는다. 공식 팔로어들이 열심히 활동한 점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공식 팔로어들의 추천을 리트윗(RT)하며 일으킨 효과다. 입소문이 삽시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점에서 스노볼 효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트위터에서 퍼진 메시지는 영화 마케터에 의해 생산되는 것이 아니다. 마케터는 영화의 정보만을 제공할 뿐이다. 폭발력을 일으키는 방아쇠는 다른 곳에서 당겨진다. <부러진 화살>은 김용호 교수의 진실 규명 외에도 석궁 사건의 판사가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에게 유죄 판결을 선고했다는 이슈가 있었다. <나꼼수>의 지지자들이 이 영화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며 추가로 시너지 효과를 낳았다.
소규모 영화를 대중의 품으로
독립 다큐로는 이례적으로 7만 3000명을 모은 <두 개의 문>의 경우, 800명이 넘는 사람이 배급위원단이 될 정도로 개봉 전부터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정치인이나 지식인들이 <두 개의 문>을 관람한 후 응원의 메시지를 SNS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했다. 자신의 트친(트위터 친구)에게 <두 개의 문> 티켓을 선물하는 자체 초대 이벤트를 진행하거나, 대관 단체관람을 트위터를 통해 조직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더욱이 멀티플렉스 극장 트위터에 <두 개의 문>의 상영관을 확대해달라는 요구로 이어지면서, 배급력이 부족한 영화에 상영관을 늘려주는 효과를 낳았다. 메이저 배급사에 외면을 받아 청어람이 직접 배급한 <26년> 역시 <두 개의 문>처럼 붐을 일으킬 조건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었다. 원작 웹툰 <26년>이 2006년 다음에서 연재될 당시 일일 평균 200만 클릭, 매회 댓글 2000여 건 이상, 총 1억 페이지뷰 등의 숱한 기록을 남겼다. 게다가 크라우드 펀딩(SNS를 활용해 프로젝트 후원을 받는 플랫폼)을 이용해 시민들의 소액 후원을 받았다. 제작두레 방식을 통해 전국적으로 1만 5000명의 참여로 전체 순제작비 46억 원 가운데 7억 원을 모아 제작했다. 이렇듯 <26년>은 SNS를 홍보의 수단으로만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굿펀딩을 통해 새롭게 제작의 기회를 열었다. “<26년>의 경우 SNS를 단순히 홍보의 수단으로 한정 지어 보지 않고, 앞으로 영화산업이 변화하는 시대와 어떻게 보조를 맞춰나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한 방편으로 봤다”고 청어람의 심샛별 팀장은 말한다. 적극적인 형태의 관람 행위를 이끌어내는 SNS가 한정된 예산으로 마케팅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독립영화에 가장 중요한 홍보 수단이란 점은 누구도 이견이 없다. 극장에서 1만 4000명이 관람한 이 다음이나 네이버 N스토어의 다운로드 시장에서도 좋은 성과를 올린 것을 보면, SNS 마케팅이 부가판권 시장의 수익으로도 직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은 영화의 경우, 스크린 수(배급력)의 확보가 생존을 의미하는 약육강식의 극장에선 오랫동안 살아남기가 어렵다. 하지만 최근 IPTV나 인터넷 VOD(디지털온라인 시장)가 부가판권 시장에 다시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추세를 감안하면, 극장 외의 디지털 플랫폼에서 SNS가 일으키는 영향력 또한 고려돼야 한다.
여론을 움직이는 미디어, SNS 입소문의 힘
현재 문제는 메이저 영화에서의 SNS의 효과다. 작은 영화 시장처럼 500~600개의 스크린을 확보하는 와이드릴리즈 영화에도 큰 영향을 미칠까? 현재 영화 상영의 주기가 짧고, 개봉 첫 주의 스코어가 전체 상영 일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영화 시장에서 SNS의 신속성은 무엇보다 좋은 무기가 될 수 있다. <완득이> <광해, 왕이 된 남자>처럼 메이저 영화에서 트위터로 마케팅을 진행해본 투래빗의 김진희 실장은 “SNS는 이미 마케팅 툴이 아니라 여론을 움직이는 미디어와 같다. 단순히 팔로어 수를 늘리기에 급급했던 초기 단계에서 벗어나, 지금은 관객에서 입소문을 가장 빨리 낼 수 있는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고 효과를 설명한다. “좋은 영화라는 입소문 속도를 높이려면 SNS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 이미 증명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메이저 영화들은 전통적인 미디어부터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노출시킬 경로가 충분하다. 굳이 SNS가 아니라도 메이저 영화들은 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게 영화 마케터들의 입장이다. SNS의 현실적인 한계도 몇 가지 지적된다. 일단 서울, 수도권만 벗어나도 SNS에 의존하는 경향이 확실히 떨어진다는 점이다. 한국영화의 경우, 지방 관객을 주도적으로 공략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미디어에 의존해야 한다. 둘째, 이미 개봉작들이 전부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활용하고 있어 크게 변별력이 없다. 셋째, SNS로 폭발력을 일으킬 수 있는 영화는 ‘사회적 이슈를 건드리는 영화들로 한정된다’는 의견이 많다. SNS로 성공한 경우, 특별한 이벤트나 선물로 관객에게 접근하기보다는 영화의 문제의식을 전면에 내세우며 진지한 대화의 장을 만들었다. 즉 사회적 이슈를 갖고 있지 않다면 마케팅 입장에서는 접근에 한계가 있는 셈이다. 또 개봉하고 나면 얼마 후, 공식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 밀물처럼 빠져나가기 때문에 지속성을 유지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SNS 실험적인 마케팅이 필요한 때
영화 마케팅은 라캉이 이야기한 ‘1+1+a’ 공식과 유사한 모양새를 보인다. 기존의 마케팅 시각을 도입하면 영화와 사회적 이슈가 ‘1+1’ 상태로 존재하고, 여기에 욕망의 대상이자 원인인 a라는 보충물이 마케팅을 통해 덧붙여진다. 물론 이 보충적인 요소 a의 기능은 이중적이다. 따라서 무엇이 촉발될지는 알 수 없다. 그건 관객의 몫이다. 현재 트위터나 페이스북 마케팅은 기존의 마케팅 콘셉트나 관행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저 다양한 도구 중 하나로 자리를 잡았을 뿐이다. 기존의 마케팅은 영화와 사회적 이슈를 접목한 후, 관객의 ‘a’가 촉발되기를 기다리는 단계다. 하지만 제작의 변화(생산)를 가져온 <26년>이나 디지털 부가판권 시장(유통)의 틈새를 노린 의 사례를 본다면, 영화와 사회적 이슈라는 쌍이 아니라 ‘영화+SNS’ 식의 결합이라는 상상도 가능하다. SNS가 없었으면 생기지 않을 욕망이 현실에서 꿈틀거리며 구현되고 있다. 사회적 이슈를 SNS가 대변한다는 것은, SNS가 새로운 이슈를 만드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생산과 유통에서의 전방위적 변화를 의미한다. SNS라는 새로운 매체에 대한 실험적인 도전이 다양한 색깔을 지닌 영화에 탈출구를 열어줄 수 있다. SNS의 피라미드 식 정보 확산이 영화 마케팅 채널에만 한정된다는 고정된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앞으로의 영화 마케팅은 극장이란 플랫폼에만 얽매인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새로운 디지털 환경에 맞는 플랫폼으로 확장하는 마케팅을 상상하게 될 것이다. 겨우 2년이 흘렀을 뿐이다. 아직도 변화의 흐름은 계속되고 있다.
by.전종혁(영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