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후반]Keyword7: 목메어 부르는 그 이름이여, <엑스파일>
한국에서 ‘엑스파일’이란 단어는 더 이상 고유명사가 아니다. 드라마 <엑스파일>은 안 봤어도 ‘엑스파일’이라고 하면 다들 뭔가 정부가 쉬쉬할 만한 비밀스러운 문서라고 알아듣는다. 그만큼 1990년대 중후반 한국에서 <엑스파일>은 일종의 사회현상이었다(다만 시청률이 그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을 뿐이다). 멀더와 스컬리는 1990년대의 정부 불신의 아이콘이었다. 정부가 뭔가 이상한 짓 한 거 같으면 “멀더 스컬리 불러와!” 이런 식이었다. 정부는 뭘 하든 못 믿지만 막나가는 공무원은 믿을 수 있는 뭔가 핀트 나간 시대, 그것이 <엑스파일>의 시대사조였다. TV 드라마의 중독성은 이미 알려진 것이었다. 1950년대 미국 영화산업이 휘청거릴 정도였고, 1960년대 한국에서 <여로>를 보느라고 도심은 잠시 황량해졌다. 하지만 그뿐. 오락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1990년대, 한국에서 미국 TV 드라마의 혁명은 <엑스파일>과 < er >을 방송할 때 PC통신이라는 것이 생겼다는 우연에서 일어났다. 분명 TV 드라마가 맞는데, <엑스파일>이나 < er >을 보는 건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촬영도 뭔가 근사했고, 내용도 힘이 있었고 모여서 토론할 만하다는 확신을 주었다. 온라인 모임 만들려면 일일이 허락받아야 했던 PC통신 시절에 서태지를 비롯한 자생적 ‘팬질’이 싹텄고 <엑스파일>도 토양을 제공했다.
영화같은 미드의 등장
드라마를 보는 눈높이가 올라가고,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미국 TV 드라마 제작비와 함께 존재감도 올라갔다. 시청자는 매주 뭔가 해결하다가 마는 것 같은 <엑스파일>을 보며 TV 드라마가 영화에 비교해서 꿀릴 게 없다는 것을 몸으로 익혔다. 오밤중에 <엑스파일>을 보던 사람들이 영상업체에 진출해서 성우 이규화 서혜정을 비롯해, 그 흔적을 군데군데 남겼다. < er > 시청자는 정말 의사가 되었다. 이젠 무시하지 못하는 ‘미드’의 앞줄에 <엑스파일>에 울고 웃던 사람들이 있었다. 2010년대. 아직도 디씨인사이드 기타미국드라마 갤러리에는 ‘이거 볼만해?’ 하며 <엑스파일>이 종종 언급된다. 불의를 못 참는 열혈 기자는 정부의 비리를 폭로하는 책 제목으로 <엑스파일>이라는 이름을 썼다. 그만큼 1990년대에 시작한 이 미국드라마는 한국에 자리를 아직도 잡고 있다. 스컬리 이름을 스칼렛이라고 잘못 외는 사람이 태반이더라도, <엑스파일>이라는 이름은 아직 남아 주변에서 암약하고 있다.
by.남명희(드라마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