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후반]Keyword3: PC통신
1990년대, 그 이름도 고색창연하게 들리는 PC통신 대화방의 영화퀴즈방(이하 영퀴방)은 무척이나 환상적인 공간이었다.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컴퓨터에서 만나 대화하는 것이 신기한 경험으로 여겨지던 시절,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각각의 닉네임을 갖고 모여 영화에 관련된 퀴즈를 내고 맞힌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개봉작들은 물론 그 이름도 알쏭달쏭한 아트하우스 영화들까지 실로 모든 영화가 거론됐다. 당시 영화 ‘좀’ 본다는 사람들은 백이면 백 모두 이곳을 기웃거리며 뜨거운 불면의 밤을 보냈다. 단지 퀴즈를 풀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저마다 사람들이 새롭게 눈과 귀로 보고 들은 따끈따끈한 영화 지식들을 뽐내던 영퀴방은 영화에 ‘미친’ 사람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영화 정보의 보고(寶庫)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퀴즈는 핑계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영화 퀴즈는 영화에 관심 있는 자들을 하나로 모아주는 역할 그 이상은 아니었던 것도 같다. 장르 취향과 지식 등 뜻이 맞는 사람들은 이내 오프라인에서 영화 소모임을 만들어 나아갔다. 물꼬가 확 터진 것처럼 보였다. 호러, 홍콩 영화, 할리우드 등 영화 장르 모임과 개봉 영화 보기, 영화 상영회, 비디오 돌려 보기, 단편영화 제작 등 그 형식과 내용은 실로 다양했다.
영화마니아들의 온라인 아지트 ''영퀴방''
영화 개별 정보는 물론 몇 번의 인터넷 탐색으로 그 영화의 실체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요즘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턱없이 적은 편수의 개봉 영화와 동네 비디오 가게 진열장 전부를 터는 것에 만족할 수 없으면 신작들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청계천 세운상가를 돌며 어렵게 발견한 불법 복사 영화 테이프들에 감동했으며, 출장이나 여행차 해외에 가면 제일 먼저 순례하는 곳이 대형 중고 비디오 가게였다. 시네필들의 번역과 자막 작업을 거친 여러 ‘삐짜’ 영화 테이프들이 앞다퉈 탄생한 것도 이즈음의 일이다. 일본영화가 개방되기 훨씬 이전 <러브레터>로 이와이 지의 가능성을 확인하면서 어떻게든 그의 최신작 <스왈로테일 버터플라이>를 구해내 상영회를 열어야 직성이 풀렸다. 보는 것에 만족할 수 없으면 직접 캠코더를 들고 단편영화 제작에 뛰어들었다. 기존 매체들의 천편일률적인 영화 리뷰들이 불만스러웠던 글꾼들은 독특하고 참신한 시각의 영화평을 영화 게시판에 경쟁적으로 올리기도 했다. 빙고!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는 영화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들, 국내 유수 영화제의 프로그래머들 그리고 수많은 영화평론가와 영화기자들의 출발을 영퀴방이 목격하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니다.
by.태상준(영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