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 아카이브'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독립영화 수집 업무의 기쁨을 누린 지도 어언 6개월이 지나고 있다. 지나온 시간 동안 영상자료 수집에 관해 깨우친명확한 점은 이 업무가 생각했던 것보다 무척 감정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적어도 독립영화 수집은 그렇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업무를 통해서 감정의 풍요로움을 얻는 것은 특별하고 소중하다. 하지만 수집업무에 대해 이와 같은 나름의 정의를 내리게 된 것은 좋은 기억만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독립영화의 현실을 마주하며 이따금안타까운 마음과 답답함에 결국 한없이 침잠했던 몇 번의경험으로독립영화 수집에 대한 고민과 애정을 자각하고 난 이후였던 것 같다.그리고 더 이상 이러한 감정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는 나를 자각한 이후이기도 하다. 독립영화에 대한 마음씀을 시작한 것일까.
예측불허, 독립영화 아카이브 사업
한국영상자료원의 독립영화 아카이브 사업은 국내 유일의 아카이브로서 자체적인 독립영화아카이브 구축에 대한 필요성을 깨닫고 2003년‘한국독립영화 아카이브 구축사업 검토 보고’로 시작, 이듬해부터 본격적으로 실시된다. (여기서 잠깐. 영상자료원에 들어오는모든 영화가 법적인 납본 의무를 가지고 있는데 수집을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들이 있을것이다. 영상자료원의 의무납본 대상은 등급심의를 받은 작품, 다시 말해 극장 개봉을 하는 작품으로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독립영화의 경우 의무납본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자체적인 수집을 진행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2004년 58편,2005년 73편, 2006년 64편의 독립영화가 수집되었다. 그리고2007년부터 2010년까지 4년간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발전기금 지원에 힘입어 무려 1,713편의 독립영화를 수집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예산의 확충이 독립영화 수집 편수의 증가로 이어지는 것은, 수집되는 작품의 저작권자 또는 저작권자에 의해 저작물의 배급을 위탁받은 배급사에 보상금(장편 100만원, 중편 75만원, 단편 50만원)을지급하기 때문이다. 독립영화 아카이브 활용 보상금이란 창작한 작품에 대해 자료 보존 및 활용용 테이프(또는 프린트) 1벌에 대한 아카이브 사업용 사용 권리의 활용 보상비용을 지급하는 것인데, 여기서아카이브 사업용 사용 권리의 ‘활용’은 학술 및 연구, 시네마테크 KOFA의 독립영화 프로그램, 찾아가는 영화관 상영 등 영상자료원에서 비영리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일종의 저작권료와비슷한 성격이다. 하지만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고단한 운명의 궤를 함께했던 것일까. 우연적인 필연인지, 2011년부터 아쉽게도 영진위의 독립영화 아카이브 지원 사업이 폐지되었다. 이러한 외부 공적 지원 없이 영상자료원의 빠듯한 수집 예산만으로 지난 4년간 이룩했던 성과를 내기란쉽지 않다. 2012년 12월까지 독립영화 수집 예상 편수는 49편이다.
독립영화 아카이브의 다양성 보존을 위해
영상자료원의 독립영화 수집의 범위는 서울독립영화제 등 국내 주요영화제, 인디포럼, 인디다큐페스티벌 등 독립, 단편 영화제의 수상작과 상영작으로 한정되어 있다. 단순하게 비교해보자면 영화제에서소개되는 독립영화가 한해 500~600편임을 감안할 때 현재 영상자료원은 이의 10분의 1도 채 수집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수집작품 수의 감소는 아카이브의 다양성마저 위협한다. 다큐멘터리, 실험영화,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장르의 수집이 어려워졌고, 어떻게든수집 편수를 확대하려다 보니 장편 1편보다는 단편 2편을 수집하게된다. 러닝타임 25분 이상의 작품은 후대를 위한 보존의 권리마저 누리지 못하고 있다. 독립영화는 말 그대로 ‘독립’이라는 고유의 특성상민간에서 보존, 관리할 경우 상업영화보다 작품 유실의 위험성이 높다. 영상자료원이 수집한 독립영화 중 90% 이상이 2000년대 이후제작된 작품이라는 것도 이러한 사실을 방증한다. 1980~90년대 초창기 독립영화 수집이 무척 시급하지만 최근 영화라도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수집하고 있다고 자위할 뿐이다. 수집이란 작업은 ‘찾아가는’ 것이다. 유실된 작품의 경로를 추적해 위치를 파악하고, 작품을 찾기 위해 관계자를 찾아가는 것이 수집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수집 과정에서 영화제, 배급사, 연출자등 독립영화 관계자들을 만날 때면 늘 죄송한 마음이 앞선다. 당신들의 세상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들이 ‘만들어’ 보여준 각각의 세상은 적어도 내 안에 또렷이 각인되었다. 나에게 독립영화의 존재감과 현실에서의 존재감의 거리는 아직 멀지만 훗날, 수고와 노력 없이 독립영화를 극장에서 관람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독립영화를 찾아보는 것이 더 이상 신경 쓰이지 않는 날이 온다면, 많은 독립영화를 거두어 모을 수 있는 날도 올 것이다. 그들의 세상을 모두 안을 수 있게 한국영상자료원의 품이 넓어질 수 있도록 독립영화 수집을 기쁘게 해나가고 싶다. 마음을 다해서 말이다.
by.이한솔(한국영상자료원 수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