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읽다
‘영상자료원과 나’라고 하니 자동반사적으로 과거 영화기자였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물론 이후 기자라는 직함을 달고 여러 매체를 거치는 동안에도 영화는 언제나 1순위였고 그건 과거 멋모르던 학창 시절이나 지금까지도 여전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를 향한 무한한 동경과 순수한 사랑에 더해, 책임과 의무가 덧씌워진 ‘타의에 의한 사랑’까지 강요받던 그 시절만큼 가까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때 그 시절, 영화는 취미이자 일이고 꿈이었으며, 영상자료원은 취미와 일과 꿈을 ‘읽도록’ 도와준 공간으로 그 시절의 기억 한 켠을 소박하게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와 상암동 영상자료원과의 첫 만남은 취재를 통해 성사됐다. 영상자료원이 상암동으로 자리를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은 때, 나는 ‘영화를 읽는다’라는 주제의 특집기사 중 ‘영화와 책이 있는 공간’이라는 기사를 위해 영상자료원의 영상도서관을 찾았다. 꽤 궂은 날씨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스크린을 통해 영화를 마주하며 국내외 최신 잡지를 포함한 온갖 영화 관련 서적과 자료를 탐독하는 광경은 바로 이곳이 국내 제일선의 ‘영화도서관’임을 직관적으로 납득시켰다. 이후 고전영화부터 최신작에 이르는 VHS, DVD 그리고 이제는 블루레이까지 갖춘 자료실은 영화기자로서 생경한 미션을 마주할 때마다 좋은 보고가 되어주었다. 내가 다른 사람들처럼 영상자료원을 시네마테크로 기억하기보다는 영상자료실로 기억하는 이유는 철저히 이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얼마 전, 모 영화감독을 인터뷰하기 위해 찾은 영상자료원은, 여전했다.(물론 좋은 의미로) 시간이 흘러도 이렇듯 영화가 읽히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흥이 날 만큼 그 여전함이 감사하다.
by.강상준(대중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