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조건 없이 기증합니다. 작고하신 아버님께서 40여 년간 영화현장을 누비시며 카메라에 담아낸 영화 현장의 역사가 평생 보존된다면요.” 3월 어느 봄날 오전 사무실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의 주인공은 고(故) 전창준 작가의 아들 전승열 씨였다. 전화의 목적은 아버지가 남겨놓은 사진자료를 영상자료원에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고 전창준 작가는 1960년대 왕성하게 활동하며 수많은 영화 현장을 카메라에 담은 사진작가다. 특히 이만희, 임권택, 김수용 등 당시 대표적인 감독들의 영화 촬영 현장을 누빈 분이기에 어떤 귀한 자료가 나올지 내심 궁금했다. 기증 과정에서 아들에게 전해 들은 고 전창준 감독의 인생부터 자료들이 영상자료원으로 들어오는 순간까지, 그 과정을 전한다.
고 전창준 작가의 사진 인생
전창준 작가는 청년 시절 이북에서 살았다. 그는 생계를 위해 동네 사진관에서 일을 도왔고, 틈틈이 사진 촬영 기술을 배우던 중 6・25 전쟁이 일어나 1・4 후퇴 때 서울로 피란와 종로3가에 정착한다. 그리고 그동안 배운 촬영기술로 사진관을 개업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서울에서조차 사진관은 흔히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사업은 꽤 잘된 편이었다. 하지만 전창준 작가는 종로 사진관을 정리하고 육군사관학교에서 사진 촬영을 하다 1960년 영화스틸 촬영기사로 전업한다. 전승열 씨에 따르면 당시 영화스틸 기사는 여러 촬영장을 돌아다녀야 했기 때문에 오랜 시간 집을 비우는 경우가 많았고, 가끔 집에 와도 암실에서 필름 현상과 인화작업을 하며 밤을 새웠다고 한다. 그렇게 30여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집 안에는 그가 작업한 사진박스가 하나 둘 쌓여갔고, 전창준 작가는 150여 편의 한국영화 현장을 담은 스틸필름을 남겨둔 채 향년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아들 전승열 씨 역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전주에서 예식장 사진 촬영업을 시작했다. 이후 1990년 영화스틸협회에 회원으로 등록했고 영화 촬영 현장을 다니며 6편의 영화스틸 촬영을 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전승열 씨는 어느 날 집 안을 정리하다가 아버지의 사진박스를 다락방에 쌓아두기만 하는 것이 아쉬워 안전한 곳에 기증하기로 결정한다. 그는 과거 영화 현장에서 일했던 기억을 되살려 영화진흥공사, 필름보관소 등 기억나는 영화기관들을 인터넷으로 검색하다가 한국영상자료원을 발견했고, 영상자료원이 영화 관련 사진을 국가적 차원에서 영구 보존한다는 사실을 알고 필자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자료 인수하는 날
2012년 3월 8일, 고 전창준 작가의 자료를 인수하기 위해 구로구 온수동으로 갔다. 집 앞에 도착하자 가지런히 쌓여 있는 빛바랜 박스더미와 함께 한 중년의 남자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소중한 자료를 기증해주는 것만으로도 무척 고마운 일인데, 전승열 씨는 이른 새벽부터 혼자 자료박스들을 정리해 우리가 차에 쉽게 실을 수 있도록 밖으로 옮겨두는 정성을 보여줬다. 자료를 다 싣고 출발하려는데 전승열 씨는 이 자료들이 어떻게 보존되고 관리되는지 직접 보고 싶다며 비좁은 자료박스 사이에 몸을 실었다. 수십 년을 간직했던 아버지의 유산을 떠나보내는 아들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영상자료원의 보존시설과 관리를 담당하는 직원들과 일일이 인사한 후 전승열 씨는 비로소 안심하는 눈치였다. “이제야 아버지께 조금이나마 효도하는 것 같네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어둠 속에서 서서히 자태를 드러내는 귀중한 자료들
이렇게 해서 영상자료원은 20년 넘게 빛을 보지 못한 150여 편의 한국영화 스틸 사진 원판필름(120mm)들과 만났다. 이 글을 쓰는 현재(2012. 4)까지 112편의 자료를 확인했으며, 나머지 필름들은 명기된 제목과 데이터베이스를 대조하며 확인 중에 있다. 기증받은 자료 중 주요 작품으로는 <모상>(박상호, 1960), <연애전선> (김수용, 1960), <지옥문>(이용민, 1962), <십년세도>(임권택, 1963), <열두냥짜리 인생>(이만희, 1963), <처녀도시>(이형표, 1965), <7인의 여포로>(이만희, 1965) <떠날 때는 말없이>(김기덕, 1964) <월급봉투> (김수용, 1964) <저하늘에도 슬픔이>(김수용, 1965), <적자인생> (김수용, 1965), <말띠신부>(김기덕, 1966), <안개> <만선> <빙점> (김수용, 1967), <팔도사나이>(김효천, 1969), <5인의 건달들>(고영남, 1971), <인생 유학생>(박호태, 1971), <갈매기의 꿈>(최하원, 1974), <빵간에 산다>(이원새, 1974), <청춘의 덫>(김기, 1979), <최후의 증인>, <피막>(이두용, 1980), <들개>(박철수, 1982), <여곡성>(이혁수, 1986), <청송으로 가는 길>(이두용, 1990), <걸어서 하늘까지>(장현수, 1992) 등이 있다. 이 밖에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이 많은, 주옥같은 한국영화 스틸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사실 한국고전영화 스틸 사진이 현재 많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영화학계와 연구자들은 이런 자료가 필요할 때면 영화 상영 화면을 촬영해 활용하는 일이 빈번했다. 이제 적어도 150여 편의 고전영화는 고 전창준 작가의 생생한 촬영 기록과 그가 촬영한 현장 사진을 통해 되짚어볼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