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망한 이야기가 주는 힘 - 켄 로치 감독의 <칼라송>
“공항철도 계양역 근처에서 인부 5명이 열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지난 12월 9일, 뉴스의 아나운서가 사건 사고를 보도하고 있었다. 순간 이 사건과 놀랍도록 닮은 <네비게이터>라는 영화가 생각났고, 켄 로치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그 기억의 잔상이 영상도서관에 새로 들어온 DVD <칼라송>을 소개하게 했노라고 고백한다.
켄 로치의 별일 없는 영화들
사실 켄 로치의 작품은 국내에서 크게 흥행한 적이 없거니와 소개도 제대로 되지 않는 편이어서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의 작품은 지금까지 DVD로도 출시된 적이 별로 없다. 게다가 그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대개의 경우 죽고 다치고 쫓겨나고 빈곤해지고 그나마 제일 잘되는 경우가 ‘별일 없이 살아갈 수 있게 되는’ 상태가 되는 일이 다반사. 따라서 극적이고 감동적인 결말로 치닫는 일도 드물고, 희망적인 결말도 드문, 그저 시시덕대며 그럭저럭 밥 먹고 견디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단한 이야기의 나열이다. 사실 극장에 가서 관람료를 지불하고 자신의 고단한 삶을 다른 누군가도 겪고 있다는 빤한 사실을 보고 싶어 하는 이는 드물다. 그의 영화는 그렇다. 인기가 없다.
당신만의 이야기가 아닌 <칼라송>
<칼라송>도 이런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오랜 기간 독재정권 치하에서 투쟁해 얻은 승리, 하지만 다시 좌절한다는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투쟁 이야기를 골격으로 삼으면서도 결국 정의는 이길 것이라는, 눈물콧물 짜내는 감동은 없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자위적인 합성첨가물 대신 오래 우려낸 사골 국물 맛을 낸다.
한눈에 반한 여인 때문에 충동적으로 니카라과로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오는 버스 운전기사의 황망한 이야기가 으리으리한 저택의 멋진 주인공들의 생기발랄한 연애스토리보다 우리에게 위안을 줄 수 있을까? 그 대답이 궁금하다면 <칼라송>을 시작으로 그의 영화들을 감상해보길 권한다. 아마도 영화가 끝나고 영화관 밖으로 다시 빠져나온 순간에야 그 답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의 곤궁함은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그리고 그것은 당신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슬며시 말해주는 이 할아버지 감독의 작품이 오랫동안 힘이 되길 바란다. 합성조미료는 맛도 있고 대량생산이 가능하지만 사골 국물 맛은 특별한 추억과 시간을 환기하는 힘이 있으니까 말이다. 3월에는 그의 논쟁작 중 하나인 <레이디버드 레이디버드>가 DVD로도 출시될 예정이라고 하니 무척 반가운 일이다. 그의 작품들이 좀 더 좋은 화질로 다양하게 출시되길 바란다.
by.황태원(수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