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관은 도시의 모습이며 우리 삶을 둘러싼 환경이다. 눈에 보이는 경관은 물리적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 안에는 문화가 담겨있다. 그리고 영화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그 시대, 그 지역의 경관을 필름에 담는다.
우리는 장 뤽 고다르와 프랑스와 트뤼포를 비롯한 누벨바그 감독들의 영화를 통해 파리를 보고,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로 로마를 느낀다. 그리고 우리 앨런의 영화로 뉴욕의 일상을,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로 뉴욕의 역사를 바라본다.
한양군, 양주, 남경, 한양, 경성.. 서울은 그 이름만큼이나 많은 발전과 변화를 거듭해왔다. 영화 속 서울은 욕망의 대상이자 낭만의 거리고, 부르주아의 공간인 동시에 좌절과 빈민의 공간이다. 서울. 그 다이나믹한 공간을 통해 한국영화를 돌아본다.
스크린 속에 남은, 사라진 서울
1. 서울의 마지막 전차
김수용 감독의 <혈맥>(1963)에는 전차가 지나간다. 이 전차가 바로 1968년 11월 29일 동대문까지 마지막 운행을 한 303호였다. 우연히 찍은 전차가 마지막 운행 전차라는 사실은 우연치고는 기가 막히다. 이만희 감독의 <휴일>(1968)을 보면서도 놀란 적이 있다. 마찬가지로 지금은 사라져버린 전차 장면 때문이다. 라스트 신에서 마지막 전차와 음울한 도시의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수술 도중 애인인 지연(전지연)이 죽는 바람에 절망에 빠진 허욱(신성일)은 달리는 것 외에는 답답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다. 그는 339호 전차를 탄다. 전차는 어느새 원효로 종점에 도착하지만 갈 곳이 없다. “어디까지 가세요?” 차장이 묻지만 허욱은 그냥 탔다고 대답할 뿐이다. 영화는 더 이상 전차가 달리지 못할 선로를 보여주며 끝을 맺는다.
1960년을 배경으로 한 왕자웨이 감독의 <아비정전>에서 평행선으로 이어지는 홍콩의 트램 길처럼, <휴일>의 끊겨버린 전차 선로는 죽음으로 끝나버린 허무한 사랑을 상징한다. 70년 동안 서울의 한 풍경이었던 전차는 연인의 죽음처럼 운행을 종료하고 말았다. 초겨울의 을씨년스러운 날씨와 함께 <휴일>의 ‘마지막 전차’는 트뤼포의 영화 <마지막 지하철>처럼 처연한 감정을 전달해준다. 이만희 감독은 더 이상 운행되지 않을 전차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주인공 허욱의 심경을 서울 하늘 아래 동시에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2. 욕망의 대상, 서울역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영화는 <청춘의 십자로>(1934)다. 한국영화가 오랜만에 개봉한 탓인지 동아일보 기사(1934년 9월 21일)는 새로운 작품에 대한 노력에 경의를 표하고 있다. <청춘의 십자로>는 조선극장에서 에른스트 루비치 감독의 <생활의 설계>와 동시에 개봉되었다. 연극과 영화를 같이 상연하던 조선극장은 2년 후 화재로 소실되고 말았다. 인사동 막바지 종로 2가 못미처에 극장 터가 남아 있다.
<청춘의 십자로>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공간은 서울역이다. 증기기관차가 경의선 철로를 따라 북에서 남으로 내려온다. 수하물이라는 한자가 쓰인 모자를 쓰고 제복을 입은 영복의 모습이 보인다. 행상 소년들은 자잘한 물건을 판다. 역전 주유소에는 가고일 모빌오일(Gargoyle Mobiloil)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두 명의 부르주아 난봉꾼은 서구식 바에 앉아서 맥주를 마신다. 이 영화에서 서울역은 중요한 공간이다. 농촌 사람들이 상경하고, 다양한 만남과 유혹이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역을 통해 대도시와 처음으로 조우하는 것이다.
서울역은 도시의 랜드마크였다. 박태원은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 이렇게 적고 있다. “그는 눈앞의 경성역을 본다. 그곳에는 마땅히 인생이 있을 게다.” 이상의 <날개>도 마찬가지다. “커피. 좋다. 그러나 경성역 홀에 한걸음을 들여놓았을 때 나는 내 주머니에는 돈이 한 푼도 없는 것을 그것을 깜박 잊었던 것을 깨달았다.” 당시 서울역은 그 자체로 욕망의 대상이었으며, 서울에서 벗어나고픈 꿈을 꾸는 공간이었다.
3. 서울은 빠르게 진화한다
신상옥 감독의 <어느 여대생의 고백>(1958)에서 서울역은 두 여자의 운명이 결정적으로 갈리는 공간이다. 역에서 빠져나온 소영(최은희)은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젊은 여인(황정순)은 남대문로를 따라 올라간다. 신상옥 감독은 역에서 나오는 두 여인을 의도적으로 동일한 앵글로 잡았다. 그러나 두 여자가 가는 방향처럼 운명도 다르게 펼쳐진다. 결국 소영과 젊은 여인은 법정에서 변호사와 피고의 입장이 되어 다시 만난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서울역은 도시화와 더불어 지속적인 상징물로 자리를 잡았다. 김기영 감독의 <육체의 약속>(1975)에는 서울역전 대우빌딩이 올라가고, 이장호 감독의 <어둠의 자식들>(1981)과 배창호 감독의 <고래사냥>(1984)에는 서울역 앞 사창가가 등장한다. 구 서울역은 전시공간인 문화역 서울 284로 탈바꿈했고, 대우빌딩은 서울 스퀘어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재개발과 함께 사창가는 사라졌다. 도시는 그렇게 변하고 진화한다.
서울역에서 예술가들은 도피를 꿈꾸었다. 1936년 이상이 서울역에서 도쿄를 향해 떠났듯이 <미몽>(1936)의 애순(문예봉)도 무용단과 함께 부산으로 가기 위해 전속력으로 택시를 달린다. 서울역에서 기차를 놓치자 애순은 택시기사를 다그치면서 용산역을 향해 달린다. 넓은 거리와 전차, 가로수, 간판들이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간다.
4. 서울의 상징물 숭례문
한양은 원래 정(丁) 자 모양의 도시였다. 서대문에서 동대문까지 종로가 이어지고, 종각에서 서울역으로 구부러진 대로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울역이 건설되면서 남대문로가 연장되었고, 3・1운동 이후 용산에 주둔한 일본군 부대가 효과적으로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태평로도 확장되었다. 남대문에서 광화문에 가려면 종각으로 돌아가야 했으나 태평로가 뚫림으로써 일직선상에 놓이게 된다. 대로와 함께 도시가 지닌 속도감은 더 빨라진다. <조선해협>(1943)에서 징집된 군인들은 늠름한 모습으로 태평로 일대를 행군한다. 선전영화 속에서 젊은이들의 표정은 밝지만 일제강점기를 통해 왜곡된 도시 경관처럼 허전할 뿐이다.
이태준은 <법은 그렇지만>에서 서울에 갓 상경한 시골 아가씨 서운의 눈에 비친 서울을 묘사한다. “택시는 우경이가 이르는 대로 남대문을 돌아 부청 앞을 지나 황금정 긴 길을 달아났다. 서운은 가슴이 뛰놀았다. “서울!” 자동차들, 전차들, 높은 집들, 높은 집이 몇 층인가 하고 헤어보려면 어느 틈에 다른 집이 가려버렸다.”
서울역에서 시내로 접어들면 가장 먼저 남대문이 나타난다. <바보들의 행진>(1975)에서 방황하던 영철(하재영)은 한밤중에 남대문에 가서 경례를 한다. 배창호 감독은 숭례문을 즐겨 찍었다. <꼬방동네 사람들>(1982), <안녕하세요 하나님> (1987), <천국의 계단>(1991) 등에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배창호 감독에게 숭례문은 서울에 있다는 것을 명료하게 제시해주는 도시의 상징물이다.
서울, 근대의 풍경
숭례문에서 직진하면 신세계백화점(미츠코시백화점, 동화백화점이라는 이름을 거쳐서 신세계백화점이 되었다.)과 명동이 나오고, 왼쪽으로 꺾어지면 서울광장이다. 명동과 백화점은 욕망의 대상이다. 발터 벤야민이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이야기하듯이 물신숭배적이다. <미몽>에서 애순은 남편의 질문에 백화점에 간다고 대답한다. 애순은 고급 양장을 구입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남자까지 만난다. 신여성 혹은 모던 걸의 이미지는 <자유부인>(1956)의 오선영(김정림)으로 이어진다. 그녀는 미도파백화점 앞에서 남자와 만나고, 신신백화점 아케이드의 다방을 드나든다.
1. 낭만의 거리, 명동
일제강점기의 혼마치, 즉 명동은 광복 이후에도 낭만의 거리였다.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다방이 즐비했으며 초창기 영화사들도 명동에 자리 잡았다. 명동에 영화사를 낸 한형모 감독은 <여사장>(1959)을 통해 자연스럽게 명동 거리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요안나와 용호가 처음으로 만나는 곳은 미도파 앞 공중전화다. 첫 신과 마지막 신에는 화폐금융박물관으로 바뀐 옛 한국은행 사거리가 보인다. 화사한 햇살이 쏟아지고 전차와 버스, 승용차들이 복잡하게 얽혀서 흘러간다. 요안나가 경영하는 잡지사 옥상에 올라가면 멀리 인왕산과 부민관 건물이 눈에 띈다.
<맨발의 청춘>(1964)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거리도 명동이다. 건달들이 요한나(엄앵란)에게 다가와 협박하자 두수(신성일)가 정의의 사자처럼 나타난다. 뒷골목에 한국시청각교육회관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현재의 명동역 9번 출구 근처다.
<초우>(1966)에서 레인코트를 선물 받은 영희(문희)는 비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비가 내리자마자 그녀는 멋지게 차려입고 명동으로 나간다. 감독은 번화한 명동 거리를 통제하지 않고 찍었다. 길을 걷던 행인들이 힐끔힐끔 쳐다본다. 그들 뒤로 명보와 베니스 같은 양장점, 중국집과 양복점 간판들이 눈에 띈다.
지금도 명동에는 오래된 가게들이 남아 있다. <접속>(1997)에서 동현(한석규)은 중고 LP 가게를 찾아간다. 음악은 아날로그적이다. 1960년대의 냄새가 눅눅하게 남아 있다. 지금은 쇼핑하러 온 외국 관광객들로 넘치지만 명동의 정취는 여전하다.
2. 부르주아의 일상과 서울광장
6・25전쟁이 끝난 후 도시는 재건되기 시작했다. 가난했지만 사람들은 희망을 품었다. 이용민 감독의 <서울의 휴일>(1956)은 의도적으로 ‘로마의 휴일’을 연상케 한다. 하루 동안 벌어지는 젊은 부르주아 계층 부부의 일상을 담고 있다. 산부인과 의사인 부인 남희원(양미희)과 조선일보 기자인 남편 송재관(노능걸)은 일요일을 보내기 위한 스케줄을 짠다. 신신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고, 아서원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이 두 공간은 <자유부인>과 똑같이 겹친다.) 조선호텔에서 맥주를 마시는 희원과 남편 친구들을 비출 때마다 옛 건물들이 보인다. 외관이 바뀐 시청은 과거 모습 그대로다. 약간 높은 곳에서 카메라 앵글을 잡아 건물 전체를 포착하고 있다. 롯데호텔 자리에 있던 반도호텔 외관도 특징적이다. 건물 동쪽과 서쪽에 외부 계단이 있고, 객실마다 두 개씩 세로로 긴 창문이 나 있다. 다른 방향에서 앵글을 잡으면 원구단이 보인다. 1950년대 서울광장에 대해 시각적으로 이처럼 완벽한 자료가 있을까.
<자유부인>(1956)에도 서울광장이 나온다. 적선동 집에서부터 오선영을 졸졸 쫓아온 신춘호는 시청 앞에서 광화문 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준다. 택시를 타고 지나가던 윤주가 선영을 발견하고 차에 태운다. 덕수궁 돌담길을 끼고 무단 유턴한 택시는 모임이 열리는 아서원으로 향한다. 이른바 1950년대 최고의 청요리집이다.
<초우>에서 철수(신성일)는 남대문 쪽에서 차를 몰고 와서 시청 앞에서 기다리는 영희와 만난다. 동쪽에 7, 8층짜리 빌딩들이 보이고 제비표 시멘트 같은 대형 간판도 걸려 있다. 카메라가 남쪽을 잠시 비추면 대한문과 숭례문이 보인다. 불에 타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었지만 숭례문도 영화 속에는 영원히 남아 있다.
3. 텅 빈 것 같은 세종로
서울광장에서 북쪽으로 걸어가면 세종로와 만난다. 1926년 동아일보는 서울 최초의 요릿집이라 할 수 있던 명월관 자리에 신축 사옥을 짓고 이전했다. <어느 여대생의 고백>에서 행인들이 신문사 앞에서 신문을 읽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길 건너 세종로를 가장 잘 기억하고 있는 영화는 <맨발의 청춘>(1964)일 것이다. 1968년 이순신 동상이 들어서기 전이며 교보빌딩 역시 건축되기 훨씬 전이다. 영화 속 세종로는 텅 빈 것 같다. 두수의 시선을 통해서 관객들은 현재의 세종문화회관 쪽에서 일대를 보게 된다. 광화문이 재건되기 전이라 중앙청이 그대로 보인다. 세월은 바뀌어 광화문은 복원되고 중앙청은 헐렸다. 공원 자리에는 경기도청이 보이고, KT사옥 자리는 공터로 남아 있다. 1961년 완공된 미국대사관 건물은 당시 시각으로 보면 엄청난 위용을 자랑한다. 지금보다 크기가 작은 버스들이 돌아다닌다. 신촌, 영천 등지로 향하는 버스들이다.
사대문 안 서울
1962년 새로운 도시계획법이 제정되었지만, 도시 공간 자체가 확장되지는 않았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이라는 도시는 대부분 사대문 안에 한정되어 있었다. 영화도 대부분 사대문 안에 카메라를 갖다 대었다. 궁궐과 신작로, 시청과 광장, 명동과 종로 일대에서 영화 촬영이 이루어졌다.
1. 고궁 풍경, 창경궁과 덕수궁
고궁 풍경이 가장 많이 잡힌 곳은 덕수궁과 창경궁이다. 오랫동안 창경원으로 불리다 1986년 원래의 이름을 되찾았다. 1958년 창경원에서 밤 벚꽃놀이가 시작되기 전부터 수정궁은 특혜를 받은 이들이 파티를 벌이던 공간이었다. 이미 댄스홀이 되어 있는 상황이 <자유부인>에 그려진다. <삼룡이라 불러라>(1977)에서 삼룡(이대근)은 어린 돌이와 함께 창경원에 놀러간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돌이는 사라져버리고 삼룡은 미아보호소로 찾아간다. 복잡한 동물원에서 아이를 곧잘 잃어버리던 일도 옛 풍경 중 하나다. <고래사냥>(1984)에서 병태는 민우를 찾아 창경원으로 간다. 추운 겨울, 아직 동물들이 남아 있다. <고래사냥>에 비친 것을 마지막으로 동물원은 서울대공원으로 이전했다. 그래도 우리는 영화를 통해서 동물원이던 시절의 창경궁을 기억해낼 수가 있다.
<서울의 휴일>에서 기자 친구들은 덕수궁 잔디밭에 앉아서 술을 마시며 여름 오후를 보낸다. 남희원이 등장하자 기자들은 분수대 남쪽에 서서 대화를 나눈다. 지금은 공사 중이라 장막이 쳐진 석조전의 웅장한 모습이 드러난다. <혈맥>에서 실업자인 원칠(최무룡)과 양공주인 옥희(김지미)는 덕수궁에서 대화를 나눈다. 생활고에 찌든 두 남녀의 모습은 거대한 석조전 앞에서 무척이나 왜소해 보인다.
2. 휴식처 혹은 황량한 공터, 남산 풍경
영화 속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공간은 남산이다. 돈이 있으면 명동으로 갔지만, 주머니가 비면 데이트 코스는 남산이었다. <맨발의 청춘>에서 요한나와 두수는 남산으로 올라간다. 건달인 두수는 부유한 집안의 여식 요한나와 도심을 내려다보며 시간을 보내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두수와 아가리(트위스트 김)가 걸어 내려오는 장면은 옛 남산 풍경을 잘 보여준다. 남대문으로 이어지는 남산 육교 길 뒤로 야외음악당이 보인다. 철거되어 백범광장으로 바뀐 곳이다. 지금도 버스를 타고 순환도로로 올라가다 보면 1960년대의 흔적이 남아 있는 육교가 보인다. 점집들이 있는 비좁고 가파른 골목길들.
남산은 서울 시민들의 진정한 휴식처였다. 소나무가 우거진 남산에서는 도심이 한눈에 들어왔다. 세월이 흐르면서 낮은 한옥들이 있던 자리에는 마천루가 들어섰다. <자유부인>에서 오선영의 남편 장 교수가 사무원인 미스 박과 대화를 나누면서 걷던 곳도 남산이다. 남산에서 바라보는 북쪽 도심 풍경은 아름답다. 그러나 <휴일>에서 허욱과 지연이 배회하는 남산은 황량하다. 찬바람이 몰아치고 흙먼지와 쓰레기가 날린다. 같은 공간이지만 감독의 시선에 따라 남산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모한다.
3. 남산 너머 해방촌
1960년대에는 경제발전과 더불어 빈부격차가 더욱 심화되어 갔다. 많은 젊은이가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 좌절하곤 했다. 영화는 사회상을 담아낸다. 남산 너머 공간을 비출 때 그 상황은 더욱 뚜렷해진다. 대표적인 공간이 해방촌이다.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1961)에서 해방촌은 막장 같은 공간이 된다. 그곳에 사는 이들은 빠져나갈 길이 없다. 이와 달리 김수용 감독의 <혈맥>에서 자식 세대는 부모들과 달리 해방촌에서 탈출한다.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등포에 있는 방직공장을 향해 떠난다. 멀리 보이는 만리동 고개 정상의 신전 같은 환일고등학교와 누추한 해방촌은 대비를 이룬다. 손일포의 <쌍무지개 뜨는 언덕>(1965)에서처럼 김내성의 원작에서는 성북동 일대의 움집이 배경이지만, 김수용 감독은 해방촌으로 무대를 옮김으로써 극적인 시각적 대비를 이루어낸다. 도시 공간의 근경과 원경은 상징성을 띠면서 이미지를 전달한다. 이처럼 도시화가 가속되면서 가난한 지역과 부유한 지역, 암울한 공간과 희망이 있는 공간으로 나누어진다.
강남, 서울의 지형도를 바꾸다
강남 개발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지형도를 완전히 바꾸어버렸다. 강남은 환락과 부의 상징이 된다. 이런 현상은 1970년대 중반부터 영화에서부터 두드러진다. <별들의 고향>(1974)에서 화가인 문오(신성일)는 구 반포주공아파트에 산다. 강남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부동산 투기에 불이 붙는다. 영화 속에는 갓 심은 나무들이 앙상하지만, 지금 반포에 가보면 심은 지 30년 된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1. 환락과 부의 상징, 강남
<영자의 전성시대>(1975)에는 공사 중인 아파트와 국회의사당이 보인다. 1975년 9월 국회의사당이 완공되었다. 웅장한 국회의사당과 영자가 사는 가난한 동네는 대비를 이룬다. 변화하는 도시에서 쫓겨나 변두리에 사는 서민들의 회한이 느껴진다. <바보선언>(1983)의 마지막 장면에서 똥칠(김명곤)과 육덕은 한때 5・16광장으로 불리기도 한 여의도광장에서 옷을 하나씩 벗으며 춤을 춘다. 그들 뒤로 국회의사당이 보인다. 이장호 감독은 국회의사당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면서 우스꽝스러운 정치 현실을 노골적으로 풍자한다.
1976년 현재의 정독도서관 자리에 있던 경기고등학교가 강남으로 이전한다. 사대문 안에 있던 학교들도 강남 이전 러시를 이룬다. <고교 얄개>는 이 시절에 지금은 학교 이름이 바뀌어버린 동대문상고에서 찍었다. 빵집을 드나들던 고교생들의 일상이 보인다. 없던 시절의 사치다. 엽차와 우유, 크림빵과 ‘도나쓰’. 벽에는 당시에 히트 쳤던 영화 <벤지> 포스터가 붙어 있다.
2. 1980년대 강남, 강 건너 영동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강남은 제법 틀이 갖춰지기 시작한다. 강남이 아니라 영등포의 동쪽이라는 의미인 영동으로 불리던 시기의 풍경은 <바람 불어 좋은 날>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방배동, 천호동, 선릉 일대의 풍경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역사에서 소실되어버린 기록사진을 보는 듯하다. 명희(유지인)가 사는 곳은 고급 주택가가 들어서기 시작하던 방배동이다. 개발이 한창이라 공터로 남아 있는 곳도 많다. 천호동 일대에는 부동산 중개업소가 우후죽순 들어서고 투기가 성행했다. 개발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불도저를 끌어다가 괜히 땅을 파기까지 할 정도였다. 불도저로 땅을 파다가 수도관이 터지는 장면이 나온다. 촬영 중 실수로 수도관이 터진 거지만 당시 영동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었을까. 선릉에만 올라가도 강남 일대가 발아래 놓이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선릉이 낮아서 보이지도 않지만 그때는 선릉이 무척이 높은 지대였다. 춘식(이영호)과 미스 유(김보연)는 응봉동 언덕에서 강 건너 영동을 바라본다. 그들이 살고 있지만 그들이 소유할 것은 아무것도 없는 곳. 이장호 감독은 서울의 변화와 슬픈 현실을 <바람 불어 좋은 날>에 처연하게 그려낸다.
3. 1990년대 강남과 강북
강남은 계속 진화한다. 사람들은 소외되기도 하고 적응하기도 한다. <칠수와 만수> (1988)의 무대는 강남 한복판이다. 고속터미널 옥상에서 페인트칠을 하던 칠수(박중훈)와 만수(안성기)가 자살 소동을 벌이는 것으로 오해받아 경찰들이 출동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거대해질수록 삭막해지고 커뮤니케이션이 부재하는 도시의 모습이다. 칠수와 만수는 <투캅스> (1993)의 조 형사(안성기)와 강 형사(박중훈)가 되어 환락의 네온사인이 번쩍이고 흥청거리는 강남의 밤거리를 누빈다.
반포대교 초입에 세워진 모던한 오피스텔은 <그 여자 그 남자>의 무대가 되고,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1993)는 소비구역으로서의 강남을 보여준다. <태양은 없다>에서는 오렌지족이 사라진 이후의 압구정동 골목길을 누비며, <정사>(1998)는 모던하고 럭셔리한 청담동의 모습을 세련된 외양으로 그려낸다. 청소년기의 갈등을 강남과 강북이라는 지형도로 파악한 김성수 감독의 <비트>(1997)는 거대 도시 서울이 이제 한강을 중심으로 완전히 다른 두 개의 도시처럼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유한 강남 8학군과 미래가 보이지 않는 강북 아이들의 대비는 도시를 슬프게 만든다. 도시의 얼굴은 팔색조처럼 다양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영화 속 옛 서울, 그리고 오늘의 서울
필름이 스크린에 영사될 때 마법의 순간이 열린다. 아름다운 옛 풍경들이 은막에 펼쳐진다. 서울은 청계천으로 흘러드는 크고 작은 물길들로 예쁜 도시였다. <자유부인>의 천변 풍경은 아름답다. 개천을 따라 늘어선 집집마다 자그마한 다리들이 놓여 있다. <초우>의 남산 풍경은 푸르다. 청계천에서 옮겨온 수표교는 장충단공원에 걸려 있고, 카메라가 부감으로 비추면 남산 자락의 녹음을 따라 서울 성곽이 하얀 곡선으로 이어진다.
<북촌방향>에서처럼 한옥 밀집 지역은 이제 북촌밖에 남아 있지 않다. 영화에서는 기와집들이 파도치듯 몰려 있는 풍경을 종종 보게 된다. <고교 얄개>에서는 명륜동과 혜화동의 한옥촌을, <과부춤>에서는 보문동 한옥 마을을 볼 수 있다.
혜화동 로터리도 인상적이다. <바보들의 행진>에서 병태는 아직까지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양서림에서 카뮈의 <이방인>을 산다. 그 옆에 있는 중국집 금문, 성진약국, 혜화문구도 그대로 있다. <고교 얄개>에는 혜화동 파출소 옆 주유소, 동성고등학교 담장, 우리은행으로 바뀐 옛 상업은행까지 보인다. 멀리 마로니에 길이 뻗어 있다. 혜화동 고가도로는 철거되었다. 혜화동 로터리 한복판에 카메라를 세워놓고 360도 패닝을 하면 장률 감독의 영화처럼 마법이 펼쳐진다. 옛 풍경과 2012년 오늘의 풍경이 오버랩된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풍경들이 있다.
현대인에게는 소설가 구보 씨처럼 고현학으로서,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이들에게는 그들이 걸었던 도시 공간으로서 되살아난다. 이처럼 사라진 풍경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영화 보기의 진정한 매력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