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알기엔 아까운 영상자료원
내가 시네마테크를 처음 알게 된 건 영국에서 1년간 머물던 1990년대 초였다. 당시 난 대학생이었고, 축구팀으로 유명한 맨체스터에 석 달간 살았다. 어느 날 시내를 돌아다니다 ‘코너하우스(Corner House)’라는 곳을 발견했다. 알프레드 히치콕부터 브라이언 드 팔마, 오즈 야스지로까지 일일이 거명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감독의 걸작을 상영하는 곳이었다. 입장료가 비싸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전에 가면 할인도 해줬다. 그때까지 영화라면 <로보캅>(폴 버호벤, 1987)과 <영웅본색>(오우삼, 1986) 정도만 알던 난 그 깊은 세계에 금세 빠져들었다.
시네마테크와의 두 번째 만남은 2001년에 다시 이뤄졌다. 유학 중인 언니를 보러 런던에 갔을 때였다. 언니가 좋은 곳이 있다며 데려간 곳이 BFI(British Film Institute)였다. 이름만 들었던 빌리 와일더의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1960)를 그때 만났다. 영화도 좋았지만 가슴에 더 깊이 새겨졌던 건 BFI라는 공간이었다. 10년 전 일이지만 상영장 안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이렇게 오래된 영화를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보러 오다니.
영상자료원이 단독 건물을 마련해 ‘상암동 시대’를 열었을 때 반가웠던 건 이런 추억 때문이었던 것 같다. 쾌적한 시설은 물론이고 구로사와 아키라 회고전, <만추> 특별전 등 놓치기 아까운 기획전이 많이 열리는 곳. 고전영화와 예술영화를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소개하고 영상 자산의 가치를 일깨우는 시네마테크. 영상자료원을 좀 더 많은 사람이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아직까진 규모에 비해 좀 썰렁한 느낌이긴 하다. 영상자료원 프로그램이 훌륭한 걸 모르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난 굳게 믿는다. 언젠간 상암동 집값이 영상자료원 덕분에 오를 날이 오리라는 사실을.
by.기선민(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