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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세다대학교 쓰보우치 기념 연극박물관을 가다
1990년대 이후 한국에서는 미디어박물관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각종 기념관, 박물관 및 전시관들이 속속들이 생겨나고 있다. 일본에서도 최근에 대중문화를 문화자원의 하나로 간주하면서 박물관이나 기념관에 소장하고 자료아카이브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예를 들면 필자가 살고 있는 교토에는 교토국제만화박물관이 있으며, 기획이 중지되긴 했지만 도쿄에 만들려고 했던 국립미디어예술센터도 이런 움직임을 반영한다. 대중문화는 그 수명이 짧고 즉흥적인 형태가 많아 아카이브화하기 어렵다고 여겨져왔다. 무엇을 어떻게 정리하고 수집하고 재현하며 보존할 것인가라는 아카이브의 본래 문제제기를 대중문화에 적용시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일련 움직임은 사라져가는 문화들, 그리고 보존하기 어렵다고 간주되어온 문화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지 아카이브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일본에서는 근대화 초기에 이런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곳이 연극박물관이다. 그리고 이 연극박물관에서는 연극뿐만 아니라 영화관련자료들도 볼 수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그렇다면 일본에서는 왜 연극관련박물관에서 영화관련 자료들을 열람할 수 있게 되었을까. 이를 보려면 연극과 영화의 상관관계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일본의 근대연극을 대표하는 오사나이 가오루(小山内薫)는 영화와 연극을 같이 발전시킨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1906년에 도쿄제국대학교문학부를 졸업한 후 서구의 연극평론이나 희곡을 소개하면서 일본의 연극을 근대화화려고 했고, 1912년에는 유럽여행을 하면서 특히 러시아의 연극에 심취했다고 전해진다. 그뿐만 아니라 쇼치쿠(松竹)가 1920년에 세운 키네마배우학교의 교장으로 취임하면서 영화와 관련을 맺었는데 1921년부터는 쇼치쿠의 이사 및 고문역을 맡기도 했다.
이처럼 일본에서는 근대화 이후 연극과 영화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으면서 발전했다. 초창기 일본영화계에서 제작된 영화들을 보면 연극적 요소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특히 가부키(歌舞伎)와 같은 전통연극처럼 초창기 영화들에서는 남자배우들이 여자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 서구의 영화이론을 받아들인 영화이론가들과 감독들은 이 부분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연극과 영화가 완전히 독립된 개체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쇼치쿠나 도호(東宝)와 같은 영화 제작으로 유명한 회사들이 실은 가부키, 문라쿠(文楽), 노(能)와 같은 전통적 극을 상연하는 대극장을 가지고 있어, 일본에서 연극과 영화의 공생관계는 그 출발부터 현재까지 형태를 달리하면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이다. 그런데, 이런 연기나 구성요소에서만 연극과 영화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게 아니라, 자료 아카이브도 연극관련 시설에서 영화관련 자료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시설은 와세다대학교 안에 있는 쓰보우치 박사 기념 연극 박물관이다.
‘전 세계는 극장이다(Totus Mundus Agit Historionem)’라는 유명한 어구를 박물관의 입구에 새겨놓았듯이, 1928년10월에 준공한 와세다대학교의 이 연극박물관은 세계에서 유일한 종합연극박물관이다. 정식명칭은 와세다대학교 쓰보우치박사 기념 연극박물관인데,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쓰보우치 쇼요(坪内逍遥, 1859~1935)의 고희와 셰익스피어전집의 완역을 기념해 건립되었다. 쓰보우치는 와세다대학교의 문학부를 설립하기도 했다. 와세다대학교의 전신인 도쿄전문학교가 오쿠마 시게노부(大隈重信)에 의해 설립된 것은 1882년이었고, 문학부가 만들어진 것은 1890년이었으며, 1902년에 지금의 와세다대학교라는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그런데 쓰보우치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자료들을 공개하기 위해 이 박물관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16세기 셰익스피어의 전성시대에 런던에서 이름을 떨치던 ‘포춘극장’을 모방해 당시 유명한 건축인이었던 이마이 겐지(今井兼次)가 설계를 맡았다. 쓰보우치는 현재적 의미에서의 자료아카이브, 즉 자료를 공공의 장소에 보관하고 누구나 열람할 수 있게 하여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게 한다는 의지는 항상 가지고 있었는데, 이처럼 박물관까지 건립하게 된 데에는 관동대지진의 영향이 컸다고 전해진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대중매체인 신문 박물관 건립에 대한 필요성이 사회적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한 것이 1986년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와세다대학교의 연극박물관의 설립은 매우 획기적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물론 3층으로 구성된 이 연극박물관 건물의 구성이 1층 열람실과 셰익스피어의 세계, 특별전시실, 2층이 쇼요기념실과 기획전시실1,2, 민속예능전시실, 3층이 일본의 연극의 역사를 시대별로 정리해놓은 전시실인데, 이 중에서 열람실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곳이 연극자료에 할애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연극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들은 한글 팸플릿에 의하면 ‘우키요에(浮世絵) 4만6000장, 무대사진 20만 장, 도서 15만 권, 그 외 의상, 인형 등의 연극자료 5만2000점 등 수십만 점에 달하는 방대한 컬렉션은(중략) 연극인과 영화인뿐만 아니라 문학, 역사, 복식, 건축을 시작으로 하는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의 연구에 공헌하고 있다’고 기술되어 있다.
이렇듯 박물관의 내부구조에서부터 자료에 이르기까지 연극에 많이 할애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이론이나 영화사를 공부하려는 이들에게 연극박물관은 여전히 매력적인 장소다. 이곳이 물론 필름을 보존하고 영화를 상영하는 아카이브는 아니지만 영화사나 영화이론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있어 연극박물관은 빼놓을 수 없는 성지인 것이다. 박물관의 자료실이 개가식이 아니어서 미리 검색을 하고 직원이 꺼내주는 자료를 봐야 한다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그래도 일본내에서 오래된 영화잡지들을 종류별로 보관하고 있다는 점에서 연극박물관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또한 1년에 몇 번씩 열리는 영화관련 전시회도 빼놓을 수 없는 재밋거리다. 예를 들어 2008년7월1일부터 8월3일까지 약 한 달동안 전시되었던 ‘일본의 영상(日本の映像)’은 초창기 일본의 영화산업과 내부구조에 대해 상세하게 알 수 있는 전시회였다. 그리고 서구에서 일본영화나 영화사를 연구하던 이들의 저서를 보면 참고문헌 출처에 와세다연극박물관에 있는 자료 중의 하나라는 설명이 자주 나오는데 이를 보더라도 연극박물관의 영화관련자료 아카이브의 현황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일본에서 영화관련 자료이외에 필름이나 영상을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필름관련 아카이브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 연재하기로 하겠다.
by.
양인실(오사카 시립대학교 닥터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