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십자로> 변사 공연 리뷰 (1)
30년대 중국 무성 영화의 대표작인 <신녀>를 처음 보았을 때 놀라움을 잊을 수 없다. 완령옥의 그 처연한 클로즈업뿐 만 아니라 세련된 몽타주만으로 감정을 증폭시키는 작품에 대한 놀라움은 곧 부러움으로 뒤바뀌었다. 미국은 원래 영화의 역사 속에서 아버지 같은 나라니까, 1937년 작 존 포드의 위대한 작품 <역마차>를 보고도 그렇게 부럽지는 않았지만, <신녀>가 주는 감흥은 그렇게 단순치 않았다. 영화를 비슷하게 접하고 (물론 그 수위는 상당히 달랐지만) 동일하게 일제 식민지를 경험한 동아시아의 두 나라 중국과 한국의 영화는 왜 이렇게 다를까. 아니, 왜 우리는 30년대 영화를 거의 볼 수 없을까. 작품이 남아있어야 비교라도 되지 않을까. <신녀>는 곧 한국 영화의 원초적 장면에 대한 목마름과 안타까움을 늘 불러 일으켰다.
그러던 가운데, <미몽>보다 더 일찍 만들어진 안종화 감독의 1934년 작인 <청춘의 십자로>가 발굴되었다는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거기다 변사 공연으로 그것을 볼 수 있다니! 말로만 듣던 변사 공연이라는 소식은 새로운 영화 체험이라는 기대를 불러 일으켰고,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 극장을 다니던 멋진 신녀성이 된 것 마냥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하지만 영화 자체 에 대한 기대는 사실 그다지 높지 않았다. <미몽>보다 더 앞서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데 의의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웬걸. <청춘의 십자로>는 현존하는 최고의 한국영화라는 수식어가 무색하리만큼 ''재미난 영화''였다. 변사의 맛깔스러운 입담과 애교스런 연기 역시 충분히 즐거웠지만 변사의 목소리가 없어도 이 무성영화는 이미지만으로 충만하게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고 있었다. 신파 코미디라는 장르로 소개될 수 있는 <청춘의 십자로>는 그러나 바닥으로 치닫는 일제 감정기의 가장 어두운 시절을 웃음과 눈물로 견뎌내는 삶의 혜안을 담고 있었다.
말 한 마디 없어도, <청춘의 십자로>는 우리를 웃게 하고 걱정하게 하고 또 기쁨에 넘치게 만들었다. 변사의 공연으로 그 희로애락은 극대치까지 올릴 수 있었지만,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외국인 역시 우리와 같은 장면에서 폭소하고 탄식하는 것을 보면서, ‘이 오래된 무성영화의 매력은 정말 엄청난 것이구나!’ 절감할 수 있었다. 정말 사랑스러운 영화적 순간이 가득한 <청춘의 십자로>를 좀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다면, 우리에게도 이렇게 놀라운 30년대 옛날 영화가 있다는 자부심을 공유할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이 왕왕 솟아나서 영화를 보고서 나는 한참 흥분해 있을 수밖에 없었다.
by.이지영(한국영상자료원 카탈로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