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한국 애니메이션, 비상을 꿈꾸다!
이 원고를 작성하는 10월 말 현재 올해 애니메이션 산업을 결산하고 내년도 전망을 내놓기가 다소 조심스럽다. 보통 한 해를 마무리하고 다음해를 전망하는 시기는 찬바람이 엄습할 때쯤이 되어야 비로소 업계 안팎의 활발한 의견을 모아 보다 객관적인 전망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올 한 해 결산은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준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내년도 전망 또한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점진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전망해 보고자 한다.
먼저 올해 론칭한 애니메이션들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유일하게 극장에 정식 개봉한 <마법천자문>을 들 수 있다. 현재 일차적인 극장 배급을 마치고 애니메이션 전용 극장 등에 대한 후속적인 배급 절차를 밟고 있다. 국내 출판시장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무려 1000만 부 이상 판매 기록을 보유한 원작 기반임에도 개봉 실적은 상당히 저조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TV시리즈 애니메이션으로는 한중 공동제작 <뛰뛰빵빵 구조대>((주)빅스크리에이티브스튜디오, KBS2), 국내 최고의 성공사례를 보여준 <뽀로로>의 제작사가 기획제작한 <꼬마버스 타요>((주)아이코닉스엔터테인먼트, EBS), 한일 공동제작 <쥬로링 동물탐정>((주)제이엠애니메이션, KBS2), <부릉부릉 브루미즈>((주)삼지애니메이션, EBS), <구름빵>((주)디피에스, KBS2), <볼츠와 블립>((주)레드로버, KBS2), <우당탕탕 아이쿠>((주)마로스튜디오, EBS), <내친구 해치>((주)동우애니메이션, SBS) 등이 있다.
2~3년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 등 해외 방송 채널을 비롯한 콘텐츠 업계의 위축은 국내 애니메이션 업계를 더욱 열악한 여건에 놓이게 했다. 그럼에도 올해 신규 발표된 애니메이션과 향후 1~2년 내에 완성될 애니메이션의 해외 공동제작과 투자유치 실적은 과거 해외 OEM방식이 주류를 이루었던 시기와 비교해볼 때 자국의 저작물이 가져올 고부가가치를 기대하는 측면에서 많은 질적 성장을 했다고 평가된다. 특히 방송사(EBS)의 적극적인 편성으로 국내에서 충분히 인지도를 확보한 후 해외 150여 개국 이상에 수출된 <뽀로로>의 성공은 한국을 영유아 콘텐츠의 글로벌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내년도 가장 두드러진 약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는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실제 개봉 때까지 변수가 작용할 수 있지만 올해 연말이나 내년 개봉을 목표로 제작을 마무리하고 있거나 제작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장편 애니메이션이 5~6편에 이르고 있다. 2007년에 개봉된 <천년여우 여우비>와 <빼꼼의 머그잔 여행> 이후 지금까지 정식 배급 라인을 타고 개봉된 장편 애니메이션이 최근 8월에 개봉한 <마법천자문-대마왕의 부활을 막아라>가 유일할 정도로 부진했던 상황을 고려하면 실로 비약적인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사이에는 <별별이야기2-여섯빛깔무지개>(2008), <인디애니박스: 셀마의 단백질커피>(2008), <제불찰씨이야기>(2009), <로망은 없다>(2009), <오디션>(2009) 등이 극장에서 상영되기도 했지만, 그중 일부는 단관 개봉에 그치거나 기획 자체가 정규 극장판이라기보다는 옴니버스 구성이고 초저예산 장편물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2000년부터 2007년까지의 개봉작이 매년 1~3편에 그쳤던 점을 미루어보면 내년에 극장에서 보게 될 국산 장편 애니메이션의 양적인 성장은 질적 평가나 관객 수 정도를 떠나서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특히 배우나 카메라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사람의 손으로 이미지를 창조하고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고도의 창작력과 노동력이 집약된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국가는 미국, 일본을 제외하면 소수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계획대로 내년에 5~6편의 극장판이 개봉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세계 3위에 등극할 만한 수치라 할 수 있다.
더욱이 TV시리즈 애니메이션이나 웹, 모바일 애니메이션과 달리 극장용 애니메이션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실사 극영화와 TV드라마가 차별화되는 점과 비슷한 맥락이다. 즉, 앞서 언급한 대로 애니메이션만의 독특한 제작공정이 결합된 집약적인 콘텐츠 형식일뿐만 아니라, 극장 개봉 당시의 관객 동원 정도에 따라 흥망성쇠가 결정되는 극장 플랫폼 특유의 리스크를 극복해야 하는 역량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내년에 극장에서 만나게 될 국산 장편 애니메이션 중 <소중한 날의 꿈>(한혜진, 안재훈 감독, (주)연필로명상하기)은 SBA 서울애니메이션센터와 EBS가 공동으로 제작지원한 작품으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부문에 초청 상영된 바 있다. 청소년 이상을 주 타깃으로 하는 2D 애니메이션으로 일본 애니메이션과 차별화된 경쟁력을 가지고 한국적 스타일을 구축했다는 점과 함께 서정적인 드라마 전개와 캐릭터 연기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기대하는 바가 크다.
<마당을 나온 암탉, 잎싹>(오성윤 감독, (주)MK픽처스, (주)오돌또기)은 스테디셀러 동화를 원작으로 하는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영화사 MK픽처스의 영화 기획과 제작 노하우가 결합된 새로운 모델이 적용된 작품이다.
<지구대표 롤링 스타즈>(임상준 감독, (주)한컴)는 2009년에 KBS2에 방영된 TV시리즈를 바탕으로 제작된 극장판으로 다수의 영화 투자와 제작을 해온 (주)한컴이 동명의 TV시리즈 애니메이션에 이어 극장판을 시도한 작품이다.
<꾸루꾸루와 친구들>(문제대 감독, (주)팡고엔터토이먼트, 차이나필름그룹)은 2006년에 KBS1 TV에서 방영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현재 한중 공동제작을 통해 한중 동시개봉을 목표로 한창 촬영 중에 있다. 제작기법의 추세가 디지털화하는 시점에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희소성이 경쟁력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되며, 최근 극장용 애니메이션에 대한 중국의 폭발적인 붐 현상으로 미루어 볼 때 산업적으로도 성과를 기대해봄 직하다.
<다이노 맘>(최윤석, 존 카프카, (주)토이온)은 기획 단계부터 미국 개봉을 염두에 둔 작품으로 시나리오부터 캐릭터 개발, 더빙에 이르기까지 현지화 작업이 선행됐을 뿐만 아니라 국산 장편 애니메이션으로는 최초로 미국 정식 배급을 하게 될 예정이며 국내 창투사의 메인투자가 이루어진 작품이다.
내년에 TV에 방영될 시리즈 애니메이션으로는 올해 500억원 규모의 월드와이드 토이 라이센싱 계약을 체결했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 칸에서 열린 밉주니어(MIPJunior) 라이선싱 챌린지에서 1등상을 수상한 <로보카 폴리>((주)로이비주얼)가 있다.
<똑딱하우스>((주)퍼니플럭스) 또한 올해 프랑스 칸에서 열린 밉콤(MIPCOM)에서 글로벌 네트워크 ‘니켈로디언(Nickelodeon)’과 월드와이드 방송 계약을 체결해 전 세계 200여 국에 동시 방영될 계획이다.
이외에도 프랑스 등과 공동제작하는 <오아시스>((주)투바엔터테인먼트), 2008년에 EBS와 투니버스에서 방영된 바 있는 <코코몽>((주)올리브스튜디오) 시즌 2, 영국의 유명 스튜디오 ‘아드만’과 공동 제작하는 <캐니멀>((주)부즈클럽) 등이 TV를 통해 안방을 찾아갈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의 구조적인 난제 중 하나인 TV 방영의 유효시청 시간대 확보와 국산 신작 애니메이션에 대한 방송총량제 강화를 위한 법률 개정이 내년에는 꼭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본다. 2005년부터 시행된 방송총량제는 방송사에 의무적으로 할당된 국산 애니메이션에 대한 방송 쿼터와 국산 신규 애니메이션에 대한 방송 총량을 규정하고 있다.
국산 방송 쿼터의 경우 국내 제작 애니메이션의 편성 비율을, 지상파 채널은 전체 애니메이션 방송시간의 45% 이상, 케이블과 위성 채널은 35% 이상, 교육방송은 8% 이상, 종교방송은 4% 이상으로 규정해놓고 있다. 또한 국산 신규 애니메이션에 대한 방송 총량제는 지상파 채널의 경우 채널별 방송 총량의 1% 이상(EBS는 0.3%)을 국산 애니메이션으로 신규 편성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EBS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상파 채널들이 미취학 아동들조차 TV를 시청하기 어려운 시간인 오후 4시대에 애니메이션을 편성함으로써 사실상 무용한 법률에 그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전문 케이블 채널의 경우 프라임타임에는 일본과 미국 애니메이션 일색으로 편성하면서도 국산 애니메이션은 새벽이나 심야 시간대가 주를 이룰 만큼 편향이 심한 것이 사실이다.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콘텐츠인 애니메이션은 산업적으로도 물론 의미가 있지만, 우리 사회에 무궁한 문화적 자양분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특히 요즈음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느끼는 문화적 긍지와 자부심은 자신과 함께 상상력을 키우며 같이 성장해온 자국의 애니메이션과 캐릭터들로부터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더욱이 많은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꾸준히 애니메이션을 제작함에도 불구하고 자국 시장에서조차 검증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메이드 인 코리아 애니메이션’은 언제까지 우리 옆에 존재할 수 있을까? 비록 현재는 성장 폭이 좁지만 해외에서도 창작력을 높이 평가받고 있는 국산 애니메이션이 2011년에는 선전하기를 기대해본다.
by.박보경(SBA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애니팀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