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가을이었던가. 영화 한 편의 네거필름이 손상되는 큰 사고가 났다. 102컷에 52줄의 스크래치가 난 것이다. 제작사는 난리가 났고, 배우가 혼신을 다해 연기한 장면이 들어간 컷이라 재촬영도 힘들었다.
제작사가 요구하는 피해액은 4억 원에 달했다. ‘어떻게 하지’ 하는 고민에 빠져 있을 때, 국내에 MTI라는 디지털 복원 시스템이 들어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배우가 재촬영을 고사한 터라 스크래치 부분을 지우는 수밖에 없었다.
나를 포함해서 2명의 인원이 2교대로 밤새 지웠다. 복원장비를 처음 본 터라 지워지는 것이 신기했고, 아직 손에 익지도 않은 장비로 무조건 지웠다. 102컷 중에 80컷 정도 지웠을 때 제작사도 성의(?)에 감동했는지, 그때부터는 적군이 아니라 아군이 되어 응원을 해주었다.
그렇게 국내 처음 디지털 복원은 이루어졌다. 그 후 현상소에서 일어나는 심심치 않은 사고에 대비해 복원작업을 했지만, 팀을 꾸릴 만큼의 상황은 아니었다. 그래서 복원 회사를 만들기로 했다. 그해 나온 영화 중에 <내 머리 속의 지우개>라는 영화의 이름을 본떠 ‘지우개’라는 이름의 복원 회사를 만들었다. 국내외 사고가 난 영화를 디지털로 받아서 복원작업을 시작했다.
네거 커팅을 화면의 중앙에 해버린 작품, 카메라?현상기기?텔레시네에서 문제가 생긴 작품 등 다양한 작품을 복원했다. 어느 정도 복원기계 작동에 익숙해져서, 심심할 즈음, 고전영화 복원작업을 진행하게 된다. 스크래치, 먼지, 화면 떨림, 곰팡이, 깜박거림 등 정말 다양한 손상이 한 화면에 펼쳐지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외면해버리는 복원작업팀을 설득했고, 2006년에 1962년 작품 <열녀문>, 1956년 작품 <시집가는 날>, 그리고 그때까지 가장 오래된, 현존하는 우리 영화인 <미몽>(1936)을 복원했다.
전 세계적으로도 디지털 복원은 시작 단계라, 이 부분에서는 꼭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그렇게 디지털 복원이 시작되고, WCF에서 8만 유로를 지원받고, 복원한 <하녀>, 복원이 산업화되려면, 프로그램이 국산화되어야 한다는 목적 아래 복원 프로그램의 국산화, 복원의 장기사업화를 위한 자료원의 노력을 바탕으로 칸국제영화제 클래식 부문에 3년 연속 복원 프로그램 초청이라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이 모든 성과를 이루어낸 전우(?)가 AZWorks에 있는 복원 팀이다. 특히 WCF는 세계적인 감독 마틴 스콜세지가 이사장으로 있는 재단이다. 전 세계 작품 중에 한 편을 골라서 복원해, 칸 같은 영화제에서 소개하는 정도로 지명도가 높다. WCF는 이탈리아에 있는 복원회사에서 <하녀>를 복원하기로 했지만, 우리 복원 팀에게 실력을 견줄 기회를 주었고, 결국 경쟁에서 당당히 우리 복원 팀이 우위에 있음을 알렸다. 세계 최초로 영화에서 자막을 지우는 기술을 보여준 것이다. AZWorks 배재순 과장과 4명의 인력이 이루어낸 성과라고 할 수 있겠다.
디지털 복원기술의 현주소
현재 국내 디지털 복원작업을 거친 영화는 대략 50여 작품이다. 적게는 촬영 시 De-focus를 복원, 많게는 2권 분량의 현상 스크래치 등 다양하다. 나는 복원작업을 의료 작업에 곧잘 비유한다.
사람들이 사고가 난 것을 알면 안되므로 몰래 복원해야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고전영화는 7작품이 작업되었고, 2008년부터 시작된 국산 복원 프로그램인 ‘막지워’(가칭)을 사용하였다. 안타까운 것은 복원인력인데, 사업화되지 못하다 보니, 회사의 입장에서는 사업화하기 힘들어 전문복원업체가 없는 게 현실이고, 기존의 Post-Production이 상업영화 Dust-remove를 서비스하면서 고전영화를 같이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도 상업영화의 일정에 밀려서 작업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복원기술의 비전을 찾지 못해 전문인력이 적은 상태다. 복원기술은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 쪽이 활성화되어 있다. 그들과 경쟁할 수 있는 인력은 국내에 10명 남짓 있다. 자체 인프라를 복원인력으로 구축하고, 고전영화 전문 복원 팀이 있는 곳은 현재 AZWorks가 전부인 상황이다. 우리가 복원한 <미몽> <시집가는 날> 등은 문화재로 등록이 되었다. 문화재로 등록된 작품은 필히 복원해,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시급한 실정이다. 일본, 홍콩은 이미 국가와 콘텐츠 미디어 그룹이 공동으로 대규모 복원 사업을 시행 중이다. AZWorks는 부산시와 부산 영상위원회가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복원사업에 대한 책임감을 안고 가고 있다.
복원 기술자들이 부산 AZWorks에서 있는 것은 어쩌면 다행이라 하겠다. 장기적인 사업 방향이 정해져 있지 않으며, 아직까지는 상당히 불투명한 사업임에 틀림없다.
2005년 시작한 국내 복원 사업은 2010년 세계무대에서 뒤처지지 않는 정도까지는 왔다고 본다. 물론 아직까지 사운드 복원 같은 풀어야 할 숙제도 많지만, 한국 복원 기술 인력은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실력이 있다고 본다. 디즈니, 폭스 등 할리우드 영화사들은 자체 영화필름의 복원과 디지털 아카이브(Digital Archive) 사업을 시작하였다. 기술로 승부를 내고, 합리적인 가격 정책을 통해 할리우드 복원사업을 유치해야 하는 시점이다.
디지털 복원의 의미
내가 경험해본 바로는 복원만큼 다양한 기술이 종합적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직 보지 못했다. 그만큼 난이도가 높은 작업이다. 나는 CGI기술을 성형외과에 비유해 표현한다. 성형외과는 사람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의사는 그 아름다움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에 반해 복원은 종합병원이다. 몇 십 년이 지난 필름은 수축이 일어난다. 필름을 상영할 수가 없다. 이를 디지털로 복원해 다시 상영하는 것은 흡사 교통사고를 당해 죽어가는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내과, 외과 등 종합적인 의료 기술이 사용되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 만족감 역시 다르다. 아름다움 대신 살아서 병원을 퇴원하는 환자의 뒷모습을 보는 의사의 마음이다.
2006년 부산국제 영화제에서 복원한 <열녀문> 상영 시 주연 배우였던 최은희 여사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이 필름의 네거필름은 북한에 있는데, 이렇게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며 흐느끼는 최은희 여사의 모습에서 복원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다.
복원 기술
복원은 크게 아날로그 복원과 디지털 복원이 있다. 둘 중 하나만 해도 되는 작품이 있고, 두 작업을 다 거쳐야 하는 작품도 있다. 디지털 복원은 아날로그 필름을 디지털화해서 하는 작업이라 아날로그 필름 복원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물론 필름 상태가 좋아서 아날로그 세척 정도만 해도 되는 작업일 경우 디지털 복원작업으로 바로 들어간다. 디지털 파일로 된 영상은 100분 기준으로 14만4,000장의 프레임 포맷으로 입력이 되고, 이는 약 1.3 TB의 정도의 용량을 차지하게 된다. Restoration Supervisor(복원작업 팀장)은 작업의 난이도에 따라서 작업을 할당하고, 검수한다. 사운드의 경우는 사운드 네거에서 획득한 사운드 소스를 디지털화해 사운드 복원실에 의뢰한다. 국내에는 아직 사운드 복원 전문업체가 없는 상태라, 기존의 사운드 믹싱업체에 의뢰하는 것이 현실이다. 작업의 난이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영화 한 편의 경우 약 10명의 인력이 3개월 정도 작업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현재 복원의 현실적인 산업화가 되지 않아 5명 정도의 인력이 투입되는 상황이다. Dust, Flicker, Scratch, Stabilization, De-grain 등 다양한 복원기술로 완성된 영상은 Digital Intermediate(디지털 색보정)을 거치게 된다. 색보정은 전체 영상의 톤을 컷마다 맞추어 톤을 유지하는 작업인데, 이때 고전영화의 경우 색보정이라는 작업이 없어서 톤 자체가 촬영할 때 맞추는 것이 전부이므로 톤이 튀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것이 원본에 충실하느냐, 현재 보기 좋게 복원하느냐를 놓고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숭례문을 보기 싫더라도 원래의 재료만으로 복원하느냐, 아니면 현대 기술을 이용해서 새로운 재료로 복원하느냐’와 같은 고민일 것이다.
흔히 복원을 컴퓨터로 하는 막노동(?) 작업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잘못 알고 있는 내용이다.
아날로그 필름의 상태와 디지털 프로세스를 다 파악하는 기술자가 복원의 Supervisor라고 하는데, AZWorks의 배재순 과장은 현상소에서 일했던 경험과 디지털 기술을 겸비한 인재다. 광학 복원은 필름 손상 정도에 따라서 일본이나 프랑스에서 화학복원을 하고, 대부분 한국영상자료원 보존기술센터의 아날로그 복원 인력이 필름 복원을 하고 있다. 이분들 역시 디지털 복원의 프로세스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아날로그 복원을 하고 있다. 각 프로세스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일을 하면 불필요한 작업을 줄일 수 있다. 이 부분을 줄이는 것이 슈퍼바이저가 해야 하는 일이고 이것에 따라 작업시간과 비용이 줄 수 있다.
한국 역시 이 부분에 더 많은 노력과 공부를 해야 하고, 교육 지원을 더 해야 한다. 디지털 복원은 전체 작업을 모니터링한 후 ‘어떻게, 무엇을’먼저, 작업 프로세스를 어떻게 만드는지에 따라서 작업의 결과와 시간은 많은 차이가 난다.
Restored Korean Film Archive
한국의 CGI, 영화, 방송 등 영상산업은 세계 수준에 다소 뒤처져 있지만, 복원기술은 세계가 주목하는 수준이다. 한국인 특유의 집중력과 완성도로 말미암아 이미 해외에서 복원기술을 인정을 받은 바 있다. 복원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아니기 때문에 자생할 수 없다. 한 나라의 문화산업의 일환으로 지속적인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도자기는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지만 영화필름은 상영될 때 비로서 문화재로 인정받을 수 있다. 영화필름은 100년밖에 살지 못한다.
4,000여 편의 한국영화를 디지털로 변환해 복원하는 사업이 시급한 시점이고, 정부 주도로 대기업의 문화산업 지원에 한목소리를 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해 AZWorks에서 하는 <서울의 지붕 밑>이라는 작품은 부산국제영화제, 부산영상위원회, 한국영상자료원이 공동 사업자로, AZWorks가 수행기관으로 작업하는 것으로 복원이 앞으로 진행해야 하는 바를 설정해주는 예라고 하겠다.
현재 복원 인프라를 감안할 때 앞으로 2년 후 연간 약 20편의 고전영화 물량을 확보할 인프라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그 부분에서 산학협동과 정부의 적절한 지원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의 기술을 바탕으로 세계의 고전영화 복원사업에 참여할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하고, 보완 부분에서 한국영상자료원이 협력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현재 AZWorks에 있는 복원 교육생들은 내가 2009년 대학에서 한 학기 강의를 하면서 배출된 인력이다. 복원 기술을 가르칠 교육 인프라가 없어 힘들었지만, 복원기술인으로서의 비전과 가능성을 보여준 예라고 생각한다.
현재 국내에 복원시장은 불과 3억 원 규모도 되지 않는다. 시장이 없다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한국영상자료원과 부산시가 집행하는 것이 다라고 할 수 있다. 필름보존 창고에 있는 4,000여 편의 영화를 선별한 후 문화재적인 가치가 있는 것부터 디지털 복원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디지털 복원 작업이 진행되지 않으면, 이러한 영화필름은 산업 폐기물이 될 수밖에 없다. 땅속에 있는 문화재를 발굴하듯 필름보존 창고에 있는 필름을 복원하여, 디지털로 상영을 하는 사업이 좀 더 대규모로 이루어져야 한다.
끝으로 한국영화 복원사업을 우리 모두의 과제로 알고, 좋은 문화 원형 복원 정책이 나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