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영화를 공부하면서도, 다운로드를 통해 영화를 보는 것을 싫어한다. 이런 촌스러운 나에게 자료원은 거의 구세주와 같았다. 하지만 우리의 엇갈린 인연은 참 얄궂다. 은평구에 살던 난 서초구까지 가서 열심히 강의를 들었는데, 막상 자료원이 상암동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난 다시 서울의 반대편으로 이사를 간 것이다. 심지어 예전 살던 집 앞을 다니던 버스 노선이 자료원 앞에까지 연결됐으니 이렇게 허망할 수가 있겠는가. 그러던 어느 날, 친구와 우연히 상암동으로 <청춘의 십자로>를 보러 갔다. 무성영화인데 변사도 나오고 연주도 해준다는 정보를 듣고도 별 기대 없이 갔다. 그런데 상암동은 신도시가 따로 없었다. 무척 놀라워하며 자료원을 들어섰는데, 웬걸 좌석은 만원이었고, <청춘의 십자로>는 정말 대학로의 웬만한 공연보다 재미있었다. 신선한 감동에 상큼한 만족감까지 내 배를 채워줬다.
이러한 인연 덕에, 난 다시 끊었던 영화 공부를 하면서, 이제 지하철만 꼬박 40분을 타고 가야하는 자료원을 틈틈히 찾는다. 합정역쯤 지나면 엉덩이가 저려오지만 책을 읽으면서 보람찬 마음으로 간다. 극장에서 아저씨들과 낄낄대며 <외팔이>를 보기도 하고, 한적한 자료원 앞에서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아, 얼마 전에는 썩 좋은 경험을 했다. 무성영화 <시칠리아의 영웅>과 <단테의 생애>에 맞춰 이탈리아에서 온 연주자가 피아노 연주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 피아노의 생생한 울림에 감동했다. 이탈리아영화제 오픈 파티에서 맛난 와인과 다과를 먹은 행복한 기억까지 떠올랐다. 이렇게 자료원은 영화랑 같이 놀게 하며 나에게 항상 새롭고 행복한 영화 경험을 제공한다. 이젠 일반 친구들에게 이 행복한 공간을 자랑하고 그들을 데리고 간다. 친구들이 영화를 공짜로 보여주는 그런 곳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며 깜짝 놀랄 때가 가장 짜릿하다. 얘들아, 영화 보러 같이 놀러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