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FC는 올해로 설립된 지 40년이 되지만 여러모로 인력이 부족해 필름을 카탈로그화하는 작업을 우선시하고 필름 이외의 자료는 뒷전으로 제쳐두었었다. 2000년에 들어서며 겨우 자료 전문 부서가 생기기는 했지만 도서실 운영, 전시 기획의 입안 및 운영과 IT사업도 겸임해야 하는 부서이기 때문에 할 일은 아직 무수히 남아 있다.
필자는 2007년 여름부터 이 일을 하고 있는데 필자 이외에도 자료 정리나 전시 보조 3인, 도서실 사서 3인, 정보 사업 담당자 1인이 있지만, 이 7명은 주 4일 근무하는 비상근 직원이므로, 정규직은 아직도 본인 한 명이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필름 보존이나 상영에 대해 배우기는 했지만, 필름 이외 자료의 아카이빙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이 분야에 대해 비전문가였던 필자가 지금 이렇게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전임자가 보존 환경의 정비나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의 측면에서 기반을 튼튼하게 닦아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무실에는 과거에 받아둔 자료가 너무도 많아 지금도 이 자료 정리 작업에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투여하고 있다. 포스터(약 4만 6000매)와 스틸 사진(약 61만 매), 영화 장비(약 500점)에 대한 데이터 등록은 거의 완료되었지만, 시나리오는 아직도 등록 작업을 하고 있다. 도서실의 자료도 현 시점에서 데이터베이스화한 것은 단행본(약 2만 9000권)과 일본 내의 영화제 카탈로그뿐이며, 영화 잡지의 리스트화는 좀처럼 끝나지 않고 있다. 게다가 2008년부터 시작한 홍보 자료(보도 자료, 시사회장 등) 정리는 갈 길이 먼 상태다. 일본 영화계와 한국 영화계의 공통점으로 광고지를 활용한 홍보가 활발하다는 점을 들 수 있는데, 방대한 광고지를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지 현재 고민 중이다.
상황이 이렇기는 하나 업무적으로 전시 운영에 많은 시간을 소비할 수밖에 없다. 2009년은 전시 사업 분야에서 테마의 폭이 넓으며 충실했던 한 해라고 할 수 있다. 연초에는 무성시대의 소련 영화 포스터전을, 봄에는 일본문학과 그 영화화를 테마로 한 전람회를, 여름에는 미나마타병의 기록영화로 알려진 다큐멘터리 감독 쓰치모토 노리아키 (土本典昭)를, 가을에는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여배우 다나카 기누요 (田中絹代)에 대한 전시를 진행하였다. 전시실이 넓지는 않지만 여러 전문가의 협력을 받아 각각 깊이 있는 전시회가 되었다고 자부한다.
최근에는 외국에 자료를 대여하기도 하는데, 예를 들면, 지난해에는 몬트리올의 시네마테크 퀘벡(Cinematheque Qu?b?coise)에서 NFC가 소장한 로망 포르노 영화와 핑크 영화의 포스터를 대여해 <일본 에로틱 영화 포스터전>을 개최했다. 이런 포스터는 일본에서도 열람을 희망하는 사람이 거의 없고 NFC(국립미술관의 일부이다!)에서는 큰 전시를 열기 어려웠기 때문에 매우 귀중한 기회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포스터를 발송하기 위해 포스터 전용의 노란 케이스를 특별 주문하여 제작하기도 했는데, “너희들이 캐나다 여행을 하다니, 생각지도 못했다. 너희들은 행운아다”라며 포스터들에게 속삭이며 배웅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전시는 앞으로도 계속 활약을 펼칠 것이라 본다.
지난해 연수 차 방문한 파리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Cin?math?que Francaise)에서는 오랫동안 쌓여 있던 자료를 카탈로그화하는 것을 ‘Catalogage passif’ 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영어로 직역하면 ‘Passive cataloging’, 즉 ‘수동적 자료정리’ 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NFC는 지금 이러한 상태이지만 이제 ‘수동’에서 ‘능동’으로 이행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다. 예를 들면, 올해 겨울에는 전후 16년 동안만 존재했던 프랑스 영화의 수입 배급 회사인 신외영(新外映/Shingaiei)이 소장했던 프랑스 영화의 오리지널 포스터를 전시했다. 포스터는 영화의 홍보 매체일 뿐만 아니라 훌륭한 그래픽 작품이기 때문에 영화 팬뿐만 아니라 그래픽 아트 애호가들의 시선도 집중되어 큰 호평을 받았다. 필자는 커플이 NFC를 방문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평소보다 젊은 관람층이 많은 것을 보니 NFC 전시실이 데이트 코스로 자리를 잡은 것 같다. 그리고 이번 여름에는 일본의 초기 애니메이션을 구축했던 고고한 작가 오후지 노부로(大藤信?)의 전람회를 개최한다. 프랑스의 포스터도, 오후지의 자료도 오래전에 기증을 받았으나 최근 들어 간신히 정리를 끝마쳤다. 그런 의미에서는 이 역시 ‘수동적 정리’이기는 하지만 “전시를 해야지!”라는 적극적인 선언을 함으로써 정리 작업에 탄력을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향후의 과제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우선은 디지털화 사업이 지연되고 있기 때문에 스틸 사진을 중심으로 자료의 디지털 이미지화를 계획적으로 축적할 예정이다. 그리고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영화 미술 데셍이나 설계도를 미술감독별로 보존한 것처럼 일본에서도 영화 미술 자료와 관련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해보려고 생각하고 있다. 게다가 일본 영화사에서 중요했던 영화인들이 작고함에 따라 그들의 개인 자료의 기증 역시 증가 추세를 보일 것이다.
이러한 영화 필름 이외의 소장품을 전반적으로 뭐라 불러야 할지 항상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영화 관련 자료’라는 공식적인 용어를 최소한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자료는 어디까지나 필름에 종속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논필름’이라는 외래어도 ‘필름이 아니다’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포함되지만 ‘논’과 ‘필름’을 나누지 않고 ‘논필름’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생각하기로 했다. 물론 자료는 영화 연구를 위한 보조적인 소재이기도 하지만, 지금 필자의 관심은 프랑스 영화 포스터전이 가리키는 바와 같이 논필름 그 자체의 즐거움이나 즐기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급히 쓴 것이기는 하나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 일본에서는 본인에게 이런 글을 의뢰한 사람이 아직 없었다. 한국영상자료원 여러분께 감사의 말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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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국립필름센터는 한 명의 수석 큐레이터와 3명의 큐레이터가 영화 프로그래밍, 전시, 교육, 비필름 자료 아카이빙, 자료 대여 등 방대한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3명의 큐레이터는 특정 업무를 정해진 기간에 담당하는 순환보직 형태로 일하고 있는데 오카다 히데노리는 비필름 아카이빙 업무를 맡기 전 오랫동안 시네마테크 프로그래밍 및 교육 프로그램을 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