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아키비스트란 누구인가?” 라는 물음에는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로 나누어 대답할 수 있는데, 이 글에서는 “필름 아카이브 및 관련 분야에서 영화 보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필름 아키비스트” 라는 넓은 의미의 입장을 가지고 의견을 개진하고자 한다. 물론 좁은 의미로 이를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상을 지나치게 한정시키면 자기모순에 빠지기 쉽다.
그러면 일본 유일의 국립영화기관인 필름센터를 예로 들겠다. 세계 각국의 필름 아카이브를 참고해 현재의 형태로 완성된 필름센터는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안고 있다. 메리 리 밴디(Mary Lea Bandy)1 가 일찍이 필자에게 말했던 것처럼 “문제가 없는 필름 아카이브는 어디에도 없다,” 물론 사람이라면 좋은 점과 나쁜 점 모두를 통해서 배울 수 있다.
필름센터에서 일하는 스태프들은 다양하다.
우선, 연구원이 있다(영어로는 큐레이터curator에 해당한다). 그들은 모두 어려운 시험을 거쳐 채용된, 말하자면 선택받은 인재들이다. 출신 대학이나 대학원도 모두 일류이며, 더욱이 유럽 또는 미국에서 학위를 취득했거나 영화 쪽의 권위 있는 학술 논문상을 수상한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실제로 항상 필름과 접하면서 일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필름 아키비스트다. 그들 없이는 영화 보존이나 상영 및 이용 등 여러 가지 사업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필름센터 대표직에 있는 필자도 연구원 중 한 명이지만, 젊은 세대에 비하면 고학력도 아니고 석사나 박사 자격도 취득하지 못했다. 이는 외국의 필름 아키비스트 1세대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공통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필름 아카이브나 필름 아키비스트 모두 아직은 새로운 분야라는 증거일 것이다.
연구원들은 영화 수집, 보관과 복원에 필요한 보존 처리 결정, 세밀한 연구, 상영 프린트 선정 및 감수, 국내외 상영 프로그램 기획 및 입안, 기증자 또는 저작권자와의 교섭, 홍보 활동, 자료 이용 요청에 대한 답변, 보도자료 및 홍보물의 내용 집필, 강연, 예산이나 정원 확충을 위한 자료 작성과 같은 일들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연구원에게는 영화사 및 영화 기술사는 물론 역사, 문학, 연극, 미학, 미디어론에서부터 사진화학, 디지털 기술, 정보학, 지적 재산권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식과 끊임없는 노력이 요구되며, 더욱이 그러한 것들을 총괄하면서 영화 보존학의 최전선에 지속적으로 서 있어야 하기 때문에 웬만한 노력으로는 흐름을 따라가기 힘들다. 그런데도 이들에게 이러한 연구와 바쁜 일상업무를 양립해나가기를 항상 요구하고 있다. 게다가 영화계와 영상 산업계는 물론 대학, 연구기관, 학회,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공문서관, 방송국, 언론사 등 다양한 분야와 긴밀하고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고 인맥을 구축해야 하며, 또한 외국과도 빈번하게 정보를 교환하고 공동으로 작업해야 한다. 물론 연구원에게도 한계는 있다. 따라서 객원 연구원 제도를 만들어 목적에 맞게 기간제 비상근 전문가를 고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사무직이 있다. 연구원들의 의향을 파악하고 서류 및 자료 작성, 회의 준비, 품의서 작성, 현상소를 비롯한 외부 업자에 대한 작업 발주, 예산 준비와 집행 등 다양한 관리 업무를 담당한다. 연구원이 뇌라면 사무원은 심장이다. 연구원과 사무원이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움직이지 못한다. 어느 한쪽이 빠지면 필름 아카이브라는 이름의 생명체는 움직이지 못한다.
그리고 필름 기술직 직원이 있다. 그들은 매일 필름과 접하면서 세척, 검사, 검척 등을 담당한다(영사 기사도 그들의 동료다). 대부분은 현상소를 퇴직한 후 재고용된 사람들로, 필름 취급 분야에서는 프로 중의 프로다. 그들을 협의의 필름 아키비스트라고도 할 수 있다. 아득한 옛날 자신들이 현상했던 필름과 재회했을 때 그들은 기뻐하는 것 같다. 그들의 기술과 장인 정신을 젊은 세대에 계승시켜 최신 기술과 조화시켜 나가야 한다. 일본에서는 차세대 아키비스트의 양성 과정이 아직 궤도에 오르지 않고 있다.
또한 정보 및 자료를 다루는 직원이 있다. 도서관의 사서(librarian), 데이터 입력자(cataloguer), 컴퓨터 기술자(computer and network system integrator) 등으로 구성된다. 그들이 없으면 NFCD라는 필름센터의 소장 영화 데이터베이스와 소장 도서 데이터베이스도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 그들 역시 필름 아키비스트다(필름센터의 경우, 유감스럽지만 현재로서는 거의 모든 기술계와 정보 자료계 직원들이 비상근 대우를 받는다).
일본에서 필름 아카이브나 필름 아키비스트라는 말을 의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사람은 필자인데, 그 시작은 1985년경이다. 1984년 필름센터에 들어와서 5년 반이 지날 무렵, 내게는 두 가지 커다란 사건이 일어난다. 하나는 9월에 일어났던 필름센터 빌딩의 화재 사고였고, 다른 하나는 그 직후 2개월간 다녀왔던 뉴욕(주로 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과 런던(주로 영국필름연구소British Film Institute) 연수과정이었다. 전자는 당연히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영화 보존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했고, 후자는 ‘필름 아카이브’라는 낯선 용어와 개념의 실체를 가르쳐주었다(당시 일본에는 ‘필름 라이브러리’라는 말밖에 없었다). 4반세기가 지난 지금, 영화는 상당히 큰 폭으로 변화를 거듭했다. 필름 아카이브나 필름 아키비스트 모두, 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쫓아가고는 있지만, 전 세계 어디를 보더라고 그러한 것이 완전하게 갖추어지진 않은 상황이다.
영화에 관한 일을 동경하거나 필름 아카이브라는 일에 흥미를 갖고 있는 젊은이들을 위해 필름 아키비스트라는 직업을 좀 더 로맨틱하게 정의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필름 아키비스트는 현재, 여러 가지 면에서 로맨틱한 존재가 아니다. 그것이 2010년의 현실이다.
다만 이 글을 끝까지 읽어준 사람에게는 작은 소리로 전할까 한다. “이렇게 즐겁고 보람 있는 일은 어지간해서는 찾아볼 수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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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리 리 밴디는 미국현대미술관(MOMA)의 영화 및 미디어 분과의 수석 큐레이터를 역임했다. 현재 FIAF 명예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