빔 벤더스 감독과의 질긴 인연
한때 영화감독을 꿈꾸다가 시절도 하 수상하고 그럴 깜냥도 못 되는지라 공부의 길로 나서고도 난 늘 영화 언저리를 떠돈다. 오래전 EBS <시네마 천국>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어 지켰고, 지금도 서울 국제청소년영화제 일을 거든다. 이렇게 된 것은 누가 뭐래도 빔 벤더스 감독과의 질긴 인연 때문이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1978년, 모처럼 오랜 침잠 끝에 태동하기 시작한 독일 젊은 감독들 영화를 독일문화원에서 특별 상영하던 때였다. 당시 독일어 배우러 그곳을 드나들던 나는 딱히 영화라기보다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 때문에 열심히 기웃거렸다. 그러던 중 인력이 모자라 이른바 보조통역으로 나섰다가 나중에 한국영화계에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된 김홍준, 정성일, 전양준 등과 만나 벗 삼게 되었다. 이들과 알게 되는 바람에 작은 영화집단을 만들어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같은 영화를 볼 때 팔자에 없는 변사(더 정확하게는 ‘자막 번역해서 읽어주는 사람’) 노릇까지 하고, 어느 독립영화 현장에도 슬며시 끼어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답답하고 캄캄한 이 땅을 떠나 독일로 공부하러 가, 그 낯선 땅에서 남들이 먹다 버린 지식의 찬밥덩이나 구걸한 게 10년 세월을 넘겼다. 정작 독일에서는 벤더스를 만날 기회는 없었고, 오로지 그의 영화를 빠짐없이 챙겨 보며 인연을 이었다. 그가 외국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기 전 만든 <시간의 흐름 속으로(Im Lauf der Zeit)>는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다. 하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 역시 ‘로드무비’다. 이 영화야말로 적어도 내게는 로드무비의 본보기다. 실제로 여러 차례 영화를 찍은 분단 시절 옛 동독과 서독의 경계지역을 여행하면서 내 삶과 영화, 그리고 세상에 대한 성찰, 회한 등을 거듭 되새김질하곤 했다. 아무튼 영화, 로드무비, 빔 벤더스, 시간의 흐름 속에 등은 아직도 내 감각뿐 아니라 존재 속에 깊숙하게 자리 잡았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시네마 천국> 지기 활동뿐 아니라 제도권 밖에서 양성평등, 환경, 교육 운동 등 실천의 끝자리나마 더럽히며 헤매다가 대학이라는 제도권에 들어서고는 한동안 영화와는 멀어졌다. 그러던 중 지난 2000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문득 연락이 왔다. 벤더스가 드디어 오니 함께하면서 사회도 보고 통역도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달려가 모처럼 오랜만에 해후하는 기쁨을 제대로 누렸다. 무엇보다도 당시 상영되었던 <밀리언달러 호텔> 끝나고 1시간 40분 넘게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지켜보면서, 그 진지하고 툭 트인, 이젠 장인을 넘어 대가가 된 감독이 세월의 흐름 속에 열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만도 눈물겨웠다. 그러고도 몇 해 지난 3년 전 거듭 찾아온 그를, 특히 1978년 첫 만남에서 어울리고 기억하는 사람들과 함께 조촐한 나눔의 자리에서 다시 보았다. 좀 더 담담하고 그러면서도 잔잔하게 해후를 즐길 수 있었다. 이제 다시 소중한 추억상자에 여퉈두었던 벤더스를 영화로 한꺼번에 만날 기회를 마련한 영상자료원에서 새삼 내 기억을 되살려본다. 마치 그의 영화, 아니 나의 영화이기도 한 <시간의 흐름 속에> 때맞춰 한 움큼씩 굵직한, 웅숭깊은 자취를 만들 듯이….
by.정유성(서강대학교 교육문화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