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양극화다. 만화만 파다가 불과 4, 5년 전부터 영화라는 장르를 본격적으로 좋아하기 시작한 나는 난감했다. 관객의 양극화 때문이었다. 결국 영화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고 싶으면 기원이 되는 고전영화를 보기 시작해야 했는데, 주위에 물어도 대부분은 그런 옛날 고리짝 같은 영화를 왜 보느냐는 식으로 반응했다. 한 줌도 안 되게 대답을 준 이들은 아직도 그 걸작들을 보지 못 했느냐며 혀를 차는 구름 위 신선들뿐이었다. 그들이 경전처럼 읊어대는, 들어본 적도 없는 제목, 이름, 사조 앞에 나는 고액과외 선행학습을 받은 애들로 가득 찬 교실의 열등생 같았다. 나는 이제 집합을 보고 있는데 그들은 미적분을 이야기했다. 그때 한국영상자료원이 상암동으로 이사했다는 소식을 우연히 들었다. 그전부터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집에서 더 먼 곳으로 이사 간 그때서야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왜였을까? 포장마차를 탄 개척민처럼 나는 무작정 버스에 몸을 실었다. 당시는 미 개척된 서부처럼 황량했지만, 그곳은 나에게 금광이었다. 보고 싶지만 보지 못했던, 혹은 처음 볼 수 있는 국내외 고전영화들이 그득했다. 그 작품들로 짜임새 있게 이루어진 상영 프로그램들은 돈이 없어도, 기초가 없어도 의욕을 가지고 출석만 하면 열정적으로 가르쳐주는 야학 선생님들 같았다. <청춘의 십자로> <홍길동전> <오발탄> 그리고 매달 빠짐없이 진행되는,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기획전들. 여태까지 감사한 마음으로 내가 배워온 것들이다. 특히 한국영상자료원의 프로그램은 그 안에서도 소수 장르인 애니메이션들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고 있어 영화 이전,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더 관심이 많았던 나로서는 정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앞으로도 이 가르침이 꾸준히 이어질 수 있기를 앙망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한다. 상식적인 말이지만 비상식이 상식을 압도하는 요즘 같은 시기에 나는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 영화를 아무리 많이 모아놓아도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라고. 나는 한국영상자료원이 앞으로도 좋은 프로그램, 좋은 강연들을 통해 빌 게이츠가 말한 ‘동네 도서관’으로 남기를 희망한다. 영화를 좋아하는 모든 사람에게 말이다.
P.S : 하지만 역시 지하철은 직접 개통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가올 서울시장 선거에서 누구든 이 공약만 내놓으면 묻지마 투표 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