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내 옛날 옛적에
소스가 권력이던 시절이 있었다. 영화 이야기다. 시내 곳곳에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던 비디오떼끄와 그 언저리를 뽕쟁이 모양으로 맴돌며 리스트를 돌려보던 우리들을 떠올려보면, 그래 과연 그런 때도 있었던 것이다. 특히 영화 커뮤니티에서 다수의 희귀 소스를 가지고 있는 자는 언제나 권력의 중심에 있었다. 덕분에 분쟁도 많았다. 누가 시삽 테이프를 가져다 복사를 떠 팔았다더라, 시삽이 그 회원을 공개처형식으로 강퇴시켰다더라, 그런데 알고 보니 진짜 장사꾼은 시삽이고 사석에서 “소스만 있으면 여자 정도는 얼마든지” 따위의 말을 했다더라, 그런저런, 적당히 지저분하고 시끄러운 이야기들 말이다.
그 시절에는 황학동 벼룩시장에도 참 많이 갔다. 거의 주말마다 찾았다. 귀한 비디오인지 모르는 주인과 그것을 알면서 시치미 뚝 떼고 헐값에 가져가려는 손님 사이 신경전이, 황학동의 이상하리만치 늘 누렇게 들떠있던 공기에 열기를 더했다. 황학동 쌍마비디오를 돌아 을지로의 청춘극장에 닿아서야 원하는 영화를 찾았던 기억이 어렴풋한데, 그게 아마 강범구 감독의 1980년 작품 <괴시>였을 거다. 표절작이긴 해도 명실 공이 한국 최초의 좀비 영화다. “죽은 지 3일이 지난 용돌이가 되살아왔다!”
얼마 전 영상자료원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보고, 외출했다 돌아와 팬티를 벗다 아직 한 쪽 다리가 채 빠져 나오지 못한 상황에서, 통일이 됐다는 소식을 듣는 것만큼이나 정말 깜짝 놀랐다. <살인마>가 있다는 거다. 김영한의 <목 없는 여 살인마>말고 이용민의 <살인마> 말이다. 그리 쉽고 편하게 <살인마>를 보다가, 조금 울고 많이 이상했다. 죄책감마저 느꼈다. 이렇게 쉽게, 다른 것도 아닌 <살인마>를 볼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주변 식당만 빼면, 난 지금의 상암동 영상자료원이 지나치게 사랑스럽다. 보물이다. 앞으로도 버스를 한 번 이상 갈아타야 하는 곳으로는 이사조차 가지 않을 생각이다. 소스를 독점하는 권력 따윈, 최소한 영화에서만큼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장단을 따지자면 말이 길어질 테고 어찌됐든 나는 전보다 지금이 더 좋다. 귀한 걸 귀한 줄 알고 아껴 볼 수 있는 심미안만 있다면, 영상자료원은 지금의 한국을 살아나가면서 누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문화적 사치가 아닌가 싶다.
by.허지웅(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