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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꼬린내, 그리고 구여사님과 함께
내가 영상자료원에 다니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쯤, 대학 4학년 무렵으로 기억된다. 1984년부터 미친 듯이 영화를 보기 시작했으니까 그 시기 볼만한 한국 영화는 다 봤고 연극영화학과에 진학, 세계영화사에 언급되는 명화들을 봐가며 공부해가던 중 1980년대 이전 한국 영화들이 궁금해졌던 것이다.
500원을 내고 필름 냄새(자세히 말하면, ‘필름 꼬린내’) 풍겨오는 시사실에 들어가 항상 뵙는 할아버지, 할머니 서너 분에 뜨내기 관객들까지 많아봤자 열 명 미만의 관객들과 함께 늘 영화를 봤다. 많은 관객이 몰린 적도 물론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함께 김기영, 신상옥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서 당시 그 영화들의 뜨거운 관객 반응을 직접 체험했고, 심우섭, 이형표 감독님의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 당시의 웃음 코드에 공감했다. 그리고 근처에서 냉면, 혹은 순두부찌개, 혹은 얼큰 갈비탕을 먹고 난 뒤, 예술의 전당에 올라가 산 향기 머금은 시원한 바람을 쐬며 책을 읽거나 방금 메모한 영화 속 명대사를 음미하고는 한 편 더! 가끔 김진규, 최무룡, 김석훈 선생님과 김지미, 도금종, 문정숙 선생님을 좋아하는 구 여사님(엄마)과 함께 영화를 보고, 맛있는 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영화와 얽힌 구 여사님의 젊은 시절 얘기를 듣는 것도 참 좋았다.
대학원에 진학해서 수업을 듣고 단편 작업을 하면서도 그 생활은 쭉 계속됐다. 그 당시 난, 영상자료원 근처로 이사를 하고 나중 그곳에 취직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시간 허비 없이 더 많은 영화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지금은 감독이 되어버렸지만 아무튼 난 영상자료원을 통해 어디서도 배울 수 없는 한국영화의 참맛을 알게 됐다.
고전영화를 보다보면, 다소 어설프기도 하고 만듦새가 엉성한 부분들도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그 시절 종로가 있고, 명동이 있고, 남대문이 있고, 코로나 택시가 있고, 차장이 탄 ‘뻐스’가 있고, 카메라를 힐끗거리는 그 시절 사람들과, 그 시절 생각들과, 그 시절 우리나라가 있다. 그래서 좋다!
좋은 한국 영화, 많이 아껴주시고 할아버지, 할머니들 만수무강하세요! 구 여사님도!
by.
정범식(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