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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영화제 이모저모
한국영상자료원 개관영화제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영화 보물창고가 열린다’는 슬로건으로 지난 5월 9일부터 17일에 걸쳐 열린 개관영화제는 평소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없었던, 추억 속에만 아련히 남아있던 영화들을 만날 수 있었던 기회였다. 그리고 다양한 행사들이 영화제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디지털 시대 관객들, 변사의 공연에 울고 웃다.
개관영화제 최대의 화제작은 단연 한국 최고(最古)의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1934, 안종화 감독) 개막공연이었다. 김태용 감독의 총연출로 무성영화 시대 상영방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낸 개막공연은 변사를 맡은 배우 조희봉의 입담과 4인조 악단의 연주로 객석의 열광적인 호응을 얻어냈다. 2회 공연 모두 일반석 예매는 매진되었고 328석의 상영관이 꽉 차서 둘째날은 보조석과 방석이 동원되기도 했다. 동국대학교 김종원 교수는 “원작의 내용이 충실히 반영되었다.”면서 “무엇보다 당시 변사의 느낌과 현대 언어를 적절히 조화해 무성영화에 친숙하지 않은 젊은이들의 흥미를 이끌어 내는데 성공했다.”고 평했다. 에바 오르반즈 FIAF(국제영상자료원연맹) 회장은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주인공들의 감정이나 이야기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고, 관객과 함께 형성되는 현장 분위기는 매우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원로배우 구봉서씨는 “오랜만에 보는 변사공연에 감회가 새로웠으며, 변사역할을 맡은 친구가 곧잘 한다.”면서 후배변사 조희봉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의 사랑, 나의 영화
한국의 내로라하는 감독 15명이 참여한 다큐멘터리 시리즈 <나의 사랑, 나의 영화>가 공개되었다. 김수용 임권택 이장호 배창호 정재은, 김태용, 이성강, 오승욱 감독 등이 각기 한국영화에 대한 애정어린 고백을 쏟아낸 옴니버스식 영화다. <나의 사랑, 나의 영화>를 통해 현역 감독들의 한국 고전영화를 향한 애정을 확인하는 동시에 한국영화사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됐다. <로보트 태권V>(김청기, 1976)를 리메이크한 원신연 감독은 김청기 감독과 인터뷰를 통해 영화가 <마징가Z>의 표절로 회자돼선 안돼는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 있던 시대에 태권 무술을 응용해 만든 태권V의 구성은 그로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영화 속 숨은 진주
영화 <불나비>(조해원, 1965) 상영 후에는 영화 <기담>(정식·정범식, 2007)의 정범식 감독과 한국영상자료원 김한상 연구원의 진행으로 관객과의 대화가 있었다. “영화에서 히치콕의 정서를 느꼈다”고 말한 관객의 반응에 정 감독은 본인 또한 “쿠엔틴 티란티노의 느낌을 받았다”고 답했다. 정 감독은 또한 그냥 보면 신영균의 시점에서 영화가 진행되는 것 같지만 뜯어보면 영화가 신영균을 깨닫게 해주는 진행인 것 같다며 흥미로운 구성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불나비>외에도 김기영 감독의 <이어도>(김기영, 1977), 임권택 감독의 작품들을 언급하며 감독 데뷔 전 ‘친정과 같은 곳’이라며 한국영상자료원과의 인연을 고백하기도 했다.
국제 심포지엄
5월 10일 시네마테크 KOFA 1관에서 “반환, 혹은 영화유산의 나눔:동아시아의 유실영화 수집과 역사 기술”이라는 주제로 국제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번 심포지엄은 20세기 초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해외로 흩어진 동아시아의 필름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가 됐다. 유실영화를 발굴·수집할 때의 국적 부여 문제와 유실영화를 수집할 때 동아시아 역사의 특수성이 미치는 영향 등을 토론했다. 호주 국립대학교 일본사학 테사 모리스-스즈키 교수와 영상원 김소영 교수등이 발제했고 주은우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및 에바 오르반즈 FIAF 회장 등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3D 강연
5월 17일에 열린 “3D 특별상영: 3D로 보는 세계영화사”는 영화관을 찾은 관객들에게 세계 영화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주었다. 독일 뮌헨영화박물관장 슈테판 드뢰슬러의 진행으로 이루어진 이번 상연은 영화사 초기 거장인 조르주 멜리에스와 뤼미에르 형제가 제작한 전설 속의 3D 영화들부터 1947년 러시아에서 제작된 최초의 장편 3D영화 <로빈슨 크루소> 등을 볼 수 있었다. 또한 1930~1950년대에 독일 차이스 이콘 사가 개발한 원스트립 시스템으로 제작된 영상들, 그리고 196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까지 사용된 스테레오비전의 사례 등이 실제화면으로 소개됐다.
개관영화제 이벤트
개관영화제 동안 한국영상자료원은 두 가지 이벤트 행사를 했다. 하나는 <빈티지 콜렉션>으로 옛날 개봉영화 엽서나 개봉기념 경품, 잡지·신문 등에 실린 광고, 특이한 비디오 자켓등의 개인 소장자료 등을 게시판에 올려 공유하는 이벤트였다. 70여 편의 작품들이 게시판에 올라오면서 흥미로운 자료들이 공개됐는데 지금은 음유시인으로 노래하고 있는 가수 이상은이 주연한 영화 <담다디>(김응천, 1989),<굿모닝 대통령>(이규형, 1989)도 볼 수 있고, 64년작 영화 <진성여왕>(하한수, 1964)대본도 소개됐다. 또 다른 이벤트 <엄마 찾지 마 오늘 영화 보러 간다>는 우리 어머니들의 잊혀진 청춘을 두고 아들딸이 멍석을 깔아주는 코너였다. 엄마의 빛바랜 사진이나 엄마와 함께 개관영화제를 보고 난 후기를 올리면 푸짐한 상품을 제공했다.
복원강연
5월 23일부터 25일은 UCLA 영화&TV 아카이브 로스 립맨과 일본필름보존센터 이시하라 카에가 함께 하는 복원강연이 이어졌다. 첫 날은 보존의 기술적, 윤리적 이슈와 복원에 대한 로스 립맨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재미있게 꾸며졌고, 이튿날 ‘일본필름보존센터’의 영화입양 프로젝트 중 <전설의 닌자, 사이조>에 대한 소개가 이시하라 카에의 설명으로 이루어졌다. 마지막 날은 로스 립맨, 영상자료원 장광헌 보존기술센터장, HFR 옥임식 본부장이 참여한 세미나로, 복원동향과 정보를 교류하는 시간이 되었다.
폐막식
한국영상자료원이 올해 발굴해 첫 공개한 한국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홍길동>(신동헌, 1967)이 15일 간 영화축제의 대미를 장식했다. 인디애나 존스와 캐리비안의 해적 등 다양한 헐리웃 캐릭터들이 모험을 통해 홍길동 ‘필름’을 발견한다는 재치 있는 홍보영상물을 시작으로 조선희 영상자료원장의 인사말과 당시 <홍길동>을 만들었던 신동헌 감독과 스탭들의 무대인사가 이어졌다. 신동헌 감독은 무대인사를 통해 당시 열악했던 제작환경과 그로 인한 스탭들의 고충, 애니메이션에 대한 본인의 철학을 짤막하게 소개했다.
지금 보기에는 어설픈 장면들도 간간히 있었지만 ‘최초’를 구경하러 온 지금의 관객들에게 크게 거슬리진 않았다. 오히려 관객은 ‘최초’에 설레고, 현재와 통하는 정서에 감탄했다.
안의 해적 등 다양한 헐리웃 캐릭터들이 모험을 통해 홍길동 ‘필름’을 발견한다는 재치 있는’를 구경하러 온 지금의 관객들에게 크게 거슬리진않았다. 오히려 관객은 ''최초''에 설레고, 현재와 통하는 정서에 감탄했다.
by.
송지윤(한국영상자료원 기획홍보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