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불암, 아버지의 얼굴(계속)

2020-11-06 ~ 계속
최불암, 아버지의 얼굴(계속)
전국의 산해진미를 맛보는 ‘한국인의 밥상’ 진행자이기도 한 최불암은 특유의 소시민적이고 친근한 이미지에 ‘국민 아버지’ 타이틀을 지닌 배우이다. 최불암 배우의 이미지는 특유의 곰삭은 연기를 바탕으로 1971년에 시작한 ‘수사반장’, 1980년에 시작한 ‘전원일기’를 통해 완성되었다고 설명된다. 이미지를 굳히는데 TV 드라마의 힘이 컸던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 아버지’로서의 초석은 영화 연기를 통해 다져졌다. 
최불암의 영화 이력을 돌아보면 생각보다 깊고 오래 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아버지는 언론사와 영화 제작사를 운영 했었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생계를 위해 어머니가 운영했던 뮤직홀 ‘등대’에서 그는 많은 한국영화와 외국영화를 볼 수 있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본격적인 연기 인생이 시작되었다. 이후 대학과 연극무대를 거쳐 60년대 말 TV드라마와 영화계에 데뷔하였다. 데뷔 초기엔 다소 거친 역할을 주로 맡았고 70년대 중반이 되면 호스티스영화에서 멘토 역할과 함께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버지 역할로 등장하게 된다. 최불암은 아직 30대 밖에 되지 않았었지만 아버지 역할에서 더 나아가 할아버지 역할까지 소화하기에 이른다. 극중에서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이순재나 송재호 같은 이들이 그의 아들로 등장하기도 했으며 이때 선보인 연기는 30대라는 나이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친근하며 동시에 우직한 아버지/할아버지를 잘 표현했다.  
이번 기획전에서 그의 많은 영화 중 배우 최불암이 ‘국민 아버지’로서의 토대를 쌓을 수 있도록 만든 영화 5편을 준비했다. 즉 최불암의 초기 영화보다는 데뷔한 지 10년 정도 지난 시점의 영화들이고, 대부분 최불암 스스로 좋아한다고 밝힌 영화들이자 당시 왕성하게 활동 중이던 거장들 유현목, 김기영, 김수용, 김호선, 이두용과 함께 한 영화들이다. 5편의 영화들은 한국영화사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작품들인 만큼 이번 기획전을 통해 배우 최불암의 이미지가 쌓여가는 모습을 보는 동시에 당대 중요한 작품들을 즐길 수 있길 기대한다.


상영작품
  • 01. 파계 김기영, 1974
    김기영 감독의 기이한 불교 영화라고 할 수 있는 <파계>는 결코 편치 않은 영화다. 한치 앞을 알기 어려운 김기영 스타일의 기이한 분위기와 파격적인 스토리, 여기에 맞는 영상이 결합되어 내내 영화를 기괴하게 끌고 한다. 해서 영화는 주도권을 두고 벌이는 신구 파벌의 싸움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인간의 한계와 성욕에 대한 질긴 탐구로 보이기도 하며, 또 때로는 파계를 일삼는 이들의 과격한 사랑으로 보이기도 한다. 고은의 동명 소설을 이처럼 기이하게 연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파계>는 문제적 영화인데, 구도나 파계를 다룬 그 어떤 감독의 영화보다도 독창적이고 기괴하고 흥미롭다. 그래서 불교영화라고 할 수 있으면서도 불교영화라고 하기 어렵기도 하다. 영화에서 최불암은 속세를 통달한 듯한 노승 캐릭터를 적절하면서도 강렬하게 소화한다. 그의 나이 불과 34살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놀랍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 02. 영자의 전성시대 김호선, 1975
    1970년대 호스티스 영화를 대표하는 영화 가운데 하나인 작품. 이장호, 김호선, 하길종 등이 이끌던 1970년대 중후반의 영화계에서 김호선은 흥행작이 많은 감독이다. <겨울여자>, <여자들만 사는 거리> 등을 통해 김호선은 흥행 감독이자 감각적인 영상을 구사하는 감독으로 명확히 자리 잡았는데, 그 중심에 <영자의 전성시대>가 있다. 특이하게도 <영자의 전성시대>는 성 폭행 당한 여성이 호스티스가 되었다가 자살하는 내용이 아니다. 그러니까 순결을 지키지 못해 정상적인(?) 가족을 구성하지 못한 채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통상적인 호스티스영화의 스토리가 아니라 헌신적인 남성을 만나 가족을 구성한다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매우 특이하다. 영화에서 최불암은 창수에게 조언을 하는 멘토 역을 맡았는데, 흥미로운 것은 최불암보다 (창수 역을 맡은) 송재호가 세 살 많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면 그의 연기는 너무도 자연스럽다.    
  • 03. 달려라 만석아 김수용, 1979
    흔히 보기 어려운 아동 소재의 영화인데, 김수용 감독의 영화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해할 수 있기도 하다. <사격장의 아이들>, <저 하늘에도 슬픔이> 등을 이미 만들었기 때문이다. 특이한 것은 지독한 가난을 다룬, 불행한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시골에서 혼자 살고 있는 할아버지를 위해 서울에서 시골로 내려온 만석이가 주인공이다. 그를 골리려는 동네 아이들과 결국 화합해 마을을 변화시키고, 마침내 아버지도 귀향한다는 내용인데, 마을의 문화 유산을 보호한다든가, 맥락 없이 현충원에 참배한다든가, 이촌향도를 무조건 비판하는 영화 속 정부 정책이 약간 거슬리지만, 그럼에도 가족주의에 바탕을 둔 정서적 울림은 꽤나 깊게 다가온다. 영화에서 최불암은 고집스럽지만 강직한 노인 역할을 무겁게 연기해 냈다. 최불암의 대종상 남우주연상 수상작.
  • 04. 최후의 증인 이두용, 1980
    김성종의 원작을 이두용이 영화화한 <최후의 증인>은 북한을 재현하는 방식에서 기존 영화들과 혁신적으로 차별화된 영화이다. 직전 유신 시대의 <똘이장군>처럼 극단적인 선과 악으로 재현하는 것에서 과감히 벗어나 한국전쟁 상황으로 부드럽게 침잠해 들어간다. 미스터리 구조로 구성된 영화에서 황량하고 쓸쓸한 당시 거리를 걸어가는 형사의 고통이 처연하고, 분단이 인간에게 안겨준 상처도 무겁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돈과 이익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행하는 인간들이 세상을 얼마나 파괴했는지 영화는 여실히 보여주는데, 최불암은 순진하고 무고한 인물 황바우를 연기한다. 그래서 결국 쓸쓸하게 자살할 수밖에 없는 역이지만, 최불암이 아니면 누가 할 수 있을지 대체재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쳤다. 
  • 05. 사람의 아들 유현목, 1980
    원작은 이문열의 출세작이고 영화는 유현목의 대표작 중 하나이지만 단지 이런 사실에 그치지 않고 <사람의 아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종교 영화이자 기독교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미스터리로 구성된 서사가 서서히 종교 문제로 집중하게 되는데, 결국 영화는 성경 안에 있는 개신교의 교리와 성경 밖의 민중신학을 강하게 대비시킨다. 신이 민중을 구원하지 못한다고 생각해 요섭과 조동팔은 천막교회를 만들면서 생전의 예수처럼 행하지만, 결국 개신교 안으로 들어간 요섭과 이를 용납하지 못하는 조동팔을 통해 기존의 개신교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다시 보수적 결말로 귀착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드라마 <수사반장>에서 반장 역을 맡은 최불암은 영화에서 형사 역할을 연기하면서 이상한 데자뷰를 불러왔는데, 드라마처럼 영화에서도 매우 인간적인 형사 역을 맡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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