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FA 복원 이야기: 영화를 다시 살아 숨 쉬게 하다

2018-11-01 ~ 2018-12-31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무엇이든, 사람이나 물건이나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나이가 든다. 나이가 들어 노쇠해져 가는 인간들처럼, 어떤 물건이든 여러 해가 지나면 처음의 반짝임을 잃고, 작은 흠집들이 생기고 얼룩이 진다. 그러다 쓰임을 다하면 사람의 손은 더 이상 그 물건을 찾지 않고, 결국 그것들 위에는 서서히 하얀 먼지가 쌓이는 게 세상 순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같은 순리는 영화를 기록하는 매체-물리적인 ‘필름’의 생리이기도 하다. 대중에게 웃음과 눈물 등, 즐거운 볼거리를 제공했던 영화의 필름들이 수백, 수천 번씩 영사되면서, 그 위에는 작거나 큰 흠집과 얼룩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다 상업적 생명을 다하게 되면 필름은 창고에 처박혀 빛을 보지 못하고 먼지 속에 파묻히게 된다.

그렇지만 한국영상자료원(Korean Film Archive: KOFA) 같은 필름 아카이브가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먼지가 쌓이고 흠집이 생기거나 찢어진 필름들을 보수하고 처음의 모습과 가장 가까운 형태로 복원해 많은 이들이 한국영화를 즐겨 찾고 그 역사를 기억하도록 하는 일. 이것이 바로 필름 아카이브의 존재 이유이자 사명이기 때문이다. 그간 이중 인화된 영어자막 버전으로밖에 감상할 수 없었던, 한국영화사의 정전과도 같은 <오발탄>(유현목, 1961)과, 필름 일부가 망실되어 자칫 온전한 영화를 감상할 수 없을 뻔했던 <빨간 마후라>(신상옥 1964) 등의 복원이 없었더라면, 이 작품들을 오늘날까지 감상하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영화를 다시 살아 숨 쉬게 하는 복원 이야기. KMDb VOD 11~12월 기획전은 한국영상자료원이 그간 복원한 작품들과 함께 한다. 이미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소재) 등의 영화관 상영 및 블루레이 출시 등을 통해 복원 버전이 공개되어 왔지만, VOD로는 이번 기획전에서 처음으로 소개되는 꼴이다. 한국영상자료원이 심혈을 기울여 디지털 복원한 <피아골> <오발탄> <빨간 마후라> <초우> <서편제> 등 5편의 복원작을 감상해보자.


상영작품
  • 01. 피아골 이강천, 1955
    <아리랑>(1954)로 데뷔한 이강천 감독의 연출력이 두각을 나타난 작품이다. 제작 당시 정부와 군으로부터 대대적인 지원을 받았지만, 개봉 무렵 빨치산들의 고뇌를 인간적으로 그렸다는 것이 문제가 되어 용공 논쟁에 휩싸이기도 했다. 등록문화제 제346호 등재 필름이며, 2016년, 한국영상자료원이 처음으로 디지털 4K로 심화 복원한 작품이다. 먼지, 화면 수축, 화면 떨림 및 화면 전체에 씌워진 부정형의 얼룩을 제거하는 등의 복원 작업을 진행했다.
  • 02. 오발탄 유현목, 1961
    2015년 한국영상자료원 디지털 복원 작품. 현재까지 남아있는 필름은 1961년 <오발탄>의 조기 종영 이후 1963년 샌프란시스코 영화제 출품을 계기로 제작된 영어 자막 프린트를 1975년 경 ‘광복 30주년 기념 한국영화 감상회’를 위해 복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화면 전반에 지속적으로 출몰하는 얼룩과 불안정한 화면 밝기를 수작업을 통해 리터칭하였고, 화면 우측 일부가 연속적으로 지워진 부분의 화면 복원에 성공했다. 또한 화면의 절반을 가리는 저품질의 영어자막을 제거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 03. 빨간 마후라 신상옥, 1964
    2012년 한국영상자료원 디지털 복원 작품. <빨간 마후라>는 1964년 개봉 당시 1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당해연도 최고 흥행작으로, 국내 최초로 공중전 장면을 스크린으로 구현해 한국영화사상 초유의 볼거리를 제공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신상옥 감독이 납북 되었을 때, 김정일의 지시로 영화의 필름 절반 이상이 북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이후 이 영화는 신상옥 감독이 탈북하면서 가지고 나온 VHS 테이프의 일부 장면(30분 분량)을 필름으로 변환하고 남아있던 필름과 합쳐 1989년에 재개봉되었다. 그러나 VHS에서 변환된 화면의 해상도는 상당히 열악하였고, 화면 비율 역시 좌우가 잘려져 있어, 원본의 생동감이 떨어지는 상태였다. 이후 공군 본부로부터 16mm 필름(92분 버전)을 기증 받고, 홍콩으로부터 네거티브 필름(100분 버전)을 입수함으로써 본격적인 복원을 시작할 수 있었다. 전체적인 편집은 1964년 개봉 당시와 가장 유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공군 본부에서 기증한 16mm 필름을 기준으로 하였으며, 음향은 1989년 재개봉한 필름의 음향을, 화면의 약 60%는 가장 화질이 좋은 홍콩에서 입수된 네거티브 필름을 사용하여 복구하였으며, 잘려나간 화면의 좌우는 16mm와 홍콩에서 입수한 네거티브 필름에서 추출하여 복원하였다.
  • 04. 초우 정진우, 1966
    2017년 한국영상자료원 디지털 복원 작품. <초우>는 오리지널 필름의 손상으로 화면 떨림이 심하였으나 디지털 복원을 통해 화면 떨림 현상을 최소화하였으며, 오리지널 필름에서 손상이 심했던 일부 장면들을 마스터 필름에서 추출한 후 합치는 과정을 통해 보다 원 상태에 가까운 모습으로 복원할 수 있었다.
  • 05. 서편제 임권택, 1993
    2017년 한국영상자료원 디지털 복원 작품. 화면 전반에 걸친 스크래치와 먼지, 일부 화면 흔들림 현상 등을 수작업을 통해 거둬냈으며, 개봉 당시의 색감 재현에 심혈을 기울였다. 또한 <서편제>의 네거티브 필름은 옵티컬 인화를 많이 사용하면서 심도나 선예도가 떨어지는 장면들이 유독 많았는데, 복원 과정은 거친 질감의 옵티컬 컷들이 튀는 것을 최대한 완화시키기 위해 앞뒤 장면의 선예도를 적정선에서 조정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한편 <서편제> 복원판에는 원본 네거티브 필름에는 없지만 상영용 프린트 필름에는 존재하는 판소리 창의 가사가 자막으로 함께 보여진다. 이는 1993년 개봉 당시, 판소리 특유의 어투나 방언 등을 보다 잘 전달하고자 했던 감독의 의도를 반영한 것으로, 개봉 당시의 상황 역시 최대한 복원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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