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72주년 기념 유현목 분단영화 3부작(계속)

2022-06-21 ~ 2022-07-31
한국전쟁 72주년 기념 유현목 분단영화 3부작(계속)
1927년생 유현목 감독은 부유한 기독교 집안 출신이면서 한국전쟁 때 고향과 가족을 잃은 실향민이었다. 전쟁의 폭력과 극심한 빈곤, 폐허를 경험한 그가 비극적 현실과 인간의 운명에 관한 문제의식을 영화에 녹여내기 시작한 것은 데뷔 5년차, 8번째 작품이었던 <오발탄>(1961)부터였다. <오발탄>은 1961년 4월 13일에 개봉됐지만 대중들의 호응을 받지 못했고 그 후 1961년 7월 17일 두 번째 상영됐으나 5·16 군사 정권에 의해 상영 중지 처분을 받았다. “반공이 국시일 수는 없다”는 유현목 감독의 발표문(1965년 3월 24일 세계문화자유회의 한국본부에서 주최한 세미나에서 그가 발표한 기고문 「은막의 자유」) 속 그의 주장과는 달리, 당시는 반공이 국시였던 반공사회였다. 이는 1960년대 중반 위 기고문으로 인한 검찰 기소, <춘몽>(1965)의 외설시비, <순교자>(1965)의 기독교계 논란으로 인해 정치, 종교, 도덕 등 한국사회를 떠도는 온갖 권위주의 유령에 시달려야 했던 유현목 감독이 <카인의 후예>(1968)에서 <악몽>(1968), <나도 인간이 되련다>(1969), <불꽃>(1975)에 이르는 일련의 (문예영화 겸) 반공영화를 내놓게 된 맥락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유현목 감독의 1960년대 중후반 커리어는 <오발탄> 이후 이렇다 할 성과가 없는 침체기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반공물을 만들면서 분단과 신앙, 인간의 운명과 같은 유현목 감독이 가진 본질적인 주제의식은 보다 심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로서, 분단의 비극을 다룬 마지막 영화이자 영화경력 후기 걸작인 <장마>(1979)에서 그는 심화된 주제의식과 뛰어난 연출력을 선보였다.
한국전쟁 발발 72주년을 맞이해 마련된 이번 KMDb VOD 기획전에서는 <순교자>, <카인의 후예>, <장마> 세 편을 통해 유현목 감독이 묻고자 했던, 그리고 줄곧 탐구해왔던 전쟁과 인간 실존의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엿보고자 한다. 

상영작품
  • 01. 순교자 유현목, 1965
    <순교자>는 한국계 미국인 김은국 작가가 1964년 미국에서 발표한 소설 The Martyred를 원작으로 한다. 이 소설은 출간 이후 20주 연속 미주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독일어, 한국어 등 20개 언어로 번역되며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유현목 감독이 이 작품을 영화화하여 발표한 1965년은 유현목 감독에게 엄청난 시련을 안겨준 해였다. <춘몽>(1965)의 외설시비, 이만희 감독의 <7인의 여포로>에 대해 옹호하는 글을 발표했다가 반공법 위반으로 입건, <순교자> 발표 후 기독교계의 강력한 항의 및 상영 저지 운동까지. <순교자>의 경우 김진규가 연기한 신 목사가 인민군의 고문에 못 이겨 “신은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부분이 문제가 되었다. 당시 유력한 기독교신문 1면에 실린, “유현목은 사탄이다!”라는 표제를 보고 유현목은 방송에 출연해 “나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서 꽃이나 나비를 보아도 거기서 하나님의 존재를 느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해야만 했다. 영화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평양에서 12명의 목사가 인민군에게 살해당한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철학적 드라마이다. 사건의 진상은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 대위와, 진상보다는 신앙의 진실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신 목사가 대립한다. 연합군의 평양 탈환부터 평양 철수까지의 시기를 담았다.
     
  • 02. 카인의 후예 유현목, 1968
    황순원 작가의 1954년 발표작 『카인의 후예』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황순원과 유현목의 공통점은 둘 모두 한국전쟁 이전 이북 지역에서 지주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랐고, 해방 이후 이북 지역에서 지주들의 토지를 몰수하는 토지개혁이 진행되었을 때 신변의 위협을 느껴 남한으로 내려온 경험이 있다는 점이다. 소설과 영화 ‘카인의 후예’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박훈의 모습은 그들의 직간접적인 경험에 기반하고 있을 것이다. 원작소설과 영화를 비교해서 보면 인물들에 대한 유현목 감독만의 각색 포인트가 드러나서 흥미롭다. ‘타는 듯한 눈을 가진’ 주체적인 캐릭터 오작녀는 “시원한 눈을 가진”(문희 배우의 실제 눈에 대한 인상에서 기인한 듯하다) 순종적인 여성으로 바뀌었고, 무색 투명한 의존적 인물로 그려진 박훈은 영화에서 김진규가 연기하면서 무력하지만 어딘가 한 군데 찌르면 할 말이 쏟아져 나올 듯한 ‘할말하않’ 캐릭터로 결이 살짝 바뀌었다. ‘군턱이 진’ 얼굴의 박혁은 영화에서 턱선이 날렵하기 이를 데 없는 잘생긴 젊은 청년으로 바뀌어 있다. 소설과 영화에서 비교적 동일하게 느껴지는 캐릭터는 도섭 영감이다. 박노식이 열연하는 도섭 영감 캐릭터는 후에 만들어진 <장마>(1979)에서의 순철 캐릭터와도 연결되는데, 분단과 분열의 시대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극복했던, 순박하지만 파멸을 야기하는, 이 영화에서 가장 활력 넘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 03. 장마 유현목, 1979
    1973년에 발표된 윤흥길의 단편소설 『장마』를 각색한 영화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여름 장마철을 배경으로, 어린 동만의 눈을 통해 한국전쟁이 한 가족과 한 마을 공동체에 미친 영향을 시각화하였다. 소설 자체가 기왕의 전후소설과 달리 남북 간의 이념 대립보다는 한국전쟁을 민족 모두의 아픔으로 승화시키고 있는데, 영화 역시 남북의 적대관계를 부각시키기보다는 화해와 상생의 길을 모색하는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유현목 감독 스스로도 <장마>를 반공영화라고 보지 않으면서도 이를 끝으로 분단 비극을 소재로 다루는 영화를 만들지 않은 것을 보면, <장마>는 적어도 ‘반공’이라든지 ‘분단’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하고 싶은 말을 다 소화한 작품이 아니었는가 하는 추정이 가능하다. 1979년에 제작되었지만 흥행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제작사의 판단으로 1981년 5월에 개봉했다. 영화는 한국전쟁이라는 상황이 동만의 두 할머니(친할머니, 외할머니) 간의 대립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줌과 동시에, 순박하고 순수한 인물이었던 동만의 친삼촌이 본인의 내재적 각성에 의한 것이 아닌, 혼란스러운 외부의 소용돌이에 의해 공산주의자가 되어 가며 결국 파멸하는 과정을 그림으로써 전쟁이라는 거대담론이 개인의 영역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마지막에 극적인 화해와 회복의 가능성을 제시하며 극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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