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생 유현목 감독은 부유한 기독교 집안 출신이면서 한국전쟁 때 고향과 가족을 잃은 실향민이었다. 전쟁의 폭력과 극심한 빈곤, 폐허를 경험한 그가 비극적 현실과 인간의 운명에 관한 문제의식을 영화에 녹여내기 시작한 것은 데뷔 5년차, 8번째 작품이었던 <오발탄>(1961)부터였다. <오발탄>은 1961년 4월 13일에 개봉됐지만 대중들의 호응을 받지 못했고 그 후 1961년 7월 17일 두 번째 상영됐으나 5·16 군사 정권에 의해 상영 중지 처분을 받았다. “반공이 국시일 수는 없다”는 유현목 감독의 발표문(1965년 3월 24일 세계문화자유회의 한국본부에서 주최한 세미나에서 그가 발표한 기고문 「은막의 자유」) 속 그의 주장과는 달리, 당시는 반공이 국시였던 반공사회였다. 이는 1960년대 중반 위 기고문으로 인한 검찰 기소, <춘몽>(1965)의 외설시비, <순교자>(1965)의 기독교계 논란으로 인해 정치, 종교, 도덕 등 한국사회를 떠도는 온갖 권위주의 유령에 시달려야 했던 유현목 감독이 <카인의 후예>(1968)에서 <악몽>(1968), <나도 인간이 되련다>(1969), <불꽃>(1975)에 이르는 일련의 (문예영화 겸) 반공영화를 내놓게 된 맥락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유현목 감독의 1960년대 중후반 커리어는 <오발탄> 이후 이렇다 할 성과가 없는 침체기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반공물을 만들면서 분단과 신앙, 인간의 운명과 같은 유현목 감독이 가진 본질적인 주제의식은 보다 심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로서, 분단의 비극을 다룬 마지막 영화이자 영화경력 후기 걸작인 <장마>(1979)에서 그는 심화된 주제의식과 뛰어난 연출력을 선보였다.
한국전쟁 발발 72주년을 맞이해 마련된 이번 KMDb VOD 기획전에서는 <순교자>, <카인의 후예>, <장마> 세 편을 통해 유현목 감독이 묻고자 했던, 그리고 줄곧 탐구해왔던 전쟁과 인간 실존의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엿보고자 한다.
상영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