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소묘: <와니와 준하>(김용균, 2001) 월간 스크린⑭ - 한국영화 현장 기행

by.김형석(영화저널리스트, 전 스크린 편집장) 2019-01-11조회 1398
와니와 준하

2001년 | 청년필름

감독: 김용균 | 각본: 김용균 서신혜 서용호 윤순용 | 제작: 김조광수 | 촬영: 황기석 | 미술: 이진호 | 음악: 김홍집  | 애니메이션: 이종혁

CAST
와니: 김희선 | 준하: 주진모 | 영민: 조승우 | 소양: 최강희 

<8월의 크리스마스>(허진호, 1998) 이후 한국의 멜로 감성은 사뭇 바뀝니다. 과도한 신파적 감정을 자제하고 일상의 미학을 내세운 멜로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거죠. 김용균 감독의 첫 작품 <와니와 준하> 역시 그 흐름 안에 있습니다. 영화를 열고 닫는 파스텔 톤의 애니메이션처럼, <와니와 준하>는 정적이면서도 순정만화 같고 무엇보다도 예쁜 영화입니다. 물론 그 안엔 의붓남매 사이의 사랑이라는 가슴 아픈 사연이 깃들어 있지만요.

와니와 준하
와니와 준하

이날 촬영은 마당에서 물을 뿌리고 발을 씻던 와니(김희선)가 발 근처에서 달팽이를 발견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와니와 준하>에서 달팽이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메타포인데요, 평소 김희선의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하네요. 김용균 감독은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배우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곤 했다고 합니다. 이때 김희선이 모기에 질색하는 모습을 목격했고, 그러면서 와니가 달팽이를 무서워한다는 설정을 만들었다고 하네요. 껍질은 단단하지만 알맹이는 약한 달팽이를 통해 와니라는 인물을 표현한 것인데요, 영화에서 와니는 준하가 떠난 뒤 달팽이를 더 이상 피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과 대면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긴 것이겠죠.

와니와 준하
 
현장에서 이리저리 호스를 휘두르며 장난을 치고 있는 김희선의 모습입니다. <와니와 준하>는 김희선이라는 배우의 필모그래피에서 중요한 지점인데요, 적잖은 평자들은 그녀 최고의 연기와 자연스러움이 이 영화에 담겨 있다고 이야기하죠. 이런 평가에 대해 배우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배우 자신이 불안하면 보는 사람도 불안할 거예요. 내가 그만큼 열정을 보였으니까 달라졌다고들 하는 것 같아요.” 현장에서 겉으로는 장난스럽고 유쾌한 모습이었지만, 와니는 김희선이 나름의 열정으로 만들어낸 캐릭터였습니다.

와니와 준하 

준하(주진모)가 녹슨 자전거를 닦는 장면도 이날 촬영되었습니다. 김희선처럼 주진모에게도 <와니와 준하>는 배우의 자연스러운 느낌이 잘 배어 나오는 영화였죠. 이전까진 섹슈얼한 욕망의 캐릭터를 맡았던 그는, 이 영화에서 넉넉하고 포근하고 순박한 남자 준하가 됩니다.

와니와 준하 

디테일한 동작에 대해 김용균 감독이 주진모와 함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김 감독은 주진모에 대해 “현장에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통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시나리오에선 준하의 비중이 커 보이지 않았지만, 막상 영화로 옮기고 나니 그 존재감이 커졌다고 합니다. 감독은 주진모를 “나도 되고 싶은 이상적인 남자”로 그리고 싶었다고 하네요.

와니와 준하 

영화에서 와니의 집은, 직장이 있는 춘천에 있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실제로 촬영은 서울 후암동에 있는 어느 오랜 집에서 이뤄졌습니다. 경사진 정원, 무성한 나무, 담쟁이 넝쿨 등이 빚어내는 운치가 가득한 곳이었는데요, 외관은 낡아 보이지만 그 안엔 아기자기하면서도 깔끔한 곳입니다. 지금은 리모델링을 거쳐 게스트 하우스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와니와 준하
와니와 준하

현장에서의 자연스러운 김희선의 모습. 여유 있어 보이지만 속내는 조금 달랐다. “현장에서 왜 예민하지 않겠어요? 사람들 앞에서 괜히 노력하는 모습 같은 걸 보여주는 게, 어쩐지 자존심 상해서 일부러 티를 내지 않는 거죠.”

와니와 준하 

‘영화제작소 청년’ 출신인 김용균 감독은 ‘청년필름’의 창립작품인 <와니와 준하>의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그는 첫 영화에서 “최대한 테크닉을 배제하고 인물의 정서를 따라가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포부가 있었는데요, 인물의 정서적 여백을 전달하기 위해 한 박자 늦게 대사를 하거나 인서트를 넣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와니와 준하   
와니와 준하

촬영 직전의 두 배우. 이 영화에서 와니와 준하 사이엔 일종의 ‘데자 뷰’가 존재합니다. 어쩌면 그들이 운명으로 엮여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설정이죠. 오프닝과 엔딩의 애니메이션에 그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와니와 준하 

김희선은 현장에서 테이크마다 여러 가지 감정선을 연기했지만, 김용균 감독은 감정의 폭이 가장 적은 장면을 선택해서 편집했다고 합니다. 그 선택이 이 영화의 정적인 톤을 만들어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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