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 모가디슈, 2021

by.노혜진(스크린인터내셔널 기자) 2021-12-27조회 1,392
 
올해 초쯤, 계속되는 팬데믹 속에 적응해 나가는 한국영화 제작사들에 대한 취재를 한 적이 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의 기승 덕분에 국내의 한 해 총 관객수가 73.7% 급감했던 터다. 극장 개봉 일정들은 미뤄지거나 아예 취소 되어서 작품들이 OTT 서비스로 직행하는 경우가 속속 나왔다. 그리고 제작사들을 취재하다 보니 원래 극장용 영화로 기획 되던 작품들이 예산을 줄여 작은 화면 OTT용으로 만들 궁리를 하거나 심지어 시리즈물로 변환되는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 영화계 생존을 위한 현실적이고 당연한 처사였다.

유독 외유내강 강혜정 대표와 통화했을 때, OTT에 열려 있기도 하지만 ‘어떻게 하면 더 사람들이 돈 내고 영화관에서 보고 싶게 만들 수 있을까’에 중점을 두고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모두가 어려운 상황에서 현실성과 적응력을 보였지만, 외유내강은 거기에 더해 패기를 보였다. <모가디슈>라는 영화가 그런 제작사에서 나온 것이 놀랍지 않다. 뉴욕 아시안 영화제 조직 위원장 사뮤엘 자미에는 ‘카 체이스 씬 하나만 보려고 극장에 가도 될 만 한 영화다’라고 하면서 올해 개막작으로 상영하기도 했다.

1980년대 말부터 유엔 가입을 먼저 하는 것을 목표로, 남한과 북한이 아프리카 국가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 치열한 외교전을 벌였다고 한다. 1990년 말 소말리아 내전이 발발하면서 숙적이던 두 대사관 사람들이 힘을 합쳐 수도 모가디슈를 탈출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어떤 때는 실화가 더 거짓말 같을 때가 있다. 관객들이 못 미더워 할 같아 많은 취재와 고안 끝에 카 체이스 씬도 나온 것이라 류승완 감독은 말한다.
 

아이들까지 해서 네 대의 차량에 나눠 탄 두 대사관 사람들은 구조 비행기를 마련한 이탈리아 대사관을 향해 간다. 류 감독은 실제로도 처음에는 정부군이 반군으로 오인하면서 사격을 가했고, 탈출 하는데 반군이 또 정부군으로 오인해 사격을 가했다고 한다. 결국 양쪽의 추격과 사격을 받으면서 이탈리아 대사관 50미터 앞까지 가는데 한 사람만 사망한 실화가 너무 기적 같아서 고민했다고 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라 영화로 처음 이것을 접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싶어 조사 하다가 당시 AK 소총이 전화번호부 한 권을 뚫지 못했다던가, 명중률 자체가 낮은 데다가 정부군 조차도 훈련이 잘 안되어 있어서 표적을 잘 못 맞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대사관에 있는 책과 문짝, 즉석에서 헌 옷으로 만든 모래 주머니를 박스 테이프로 차에 붙여 임시방편으로 나름의 방탄 차량을 만드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 와중에 아이들 팔에 매직 마커로 크게 혈액형을 적어주는 모습이 잠깐 나온다. 죽거나 다칠 가능성이 얼마나 높은지 직시 하며 현실적으로 대비 하는 모습이 긴장감을 한층 높여 준다. 준비 끝에 서커스단 차량처럼 색색가지 물건으로 뒤덮이고 그 무게에 눌려 기우뚱거리는 외교관 차량 네 대의 행렬은 가관이다.
 

실제로 촬영 중에 이 80년대 자동차들은 세월과 물건들의 무게를 못 이겨 가다가 서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류승완 감독은 ‘스펙타클 보다 서스펜스’를 목표로 연출했다고 말한다. 총알 세례 추격전 중에 네 대의 차량 내부를 관통하는 하나의 샷인 듯한 것으로 모든 이의 공포와 서스펜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창문에 매달린 군인과 싸우는 모습까지 가미해 결국 액션, 서스펜스, 스펙타클 두 마리도 아닌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모가디슈> 언론배급시사를 놓치고 광복절 주말 극장에 가서 보고 이틀을 못 참고 다시 보러 간 사람으로서 카 체이스 씬에 더해 하나를 더 꼽는다면, ‘양주 장면’이다. 엄청난 소리와 액션과 위험이 따르는 카 체이스에 반해, 늦은 밤 대사 집무실에서 조용히 벌어지는 장면이지만 서스펜스와 솔솔한 재미가 있는 장면이다.

남한 대사 한신성 역을 맡은 김윤석 배우가 안기부에서 파견된 강대진 참사관 역을 맡은 조인성을 회유하는 장면이다. 양주병을 들고 이야기하면서 술을 따라주려다가 자기 마음을 몰라준다, 섭하다 한숨을 내쉬면서 마치 무의식적으로 양주병을 내려 놓는 한 대사, 시선이 은근히 양주병을 따라가다가 자기 차례 대로 회유에 나서는 강 참사,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도 한국 고유의 풍습 대로 자작은 또 서로 못하게 하는 등 둘의 안무는 큰 화면에서 가히 볼 만 하다. 이런 경우, 연기도 스펙타클이다.
 

소말리아에서는 계속 되는 내전으로 현지 촬영이 불가능하여 모로코에서 100% 촬영한 영화다. 2019년 11월 11일부터 2020년 2월 18일까지 에사우이라와 케니트라 두 항구 도시에서 찍고, 수개월의 후반작업으로 90년대 초 모가디슈 모습을 완성한 것이다. 그리고 대대적인 오디션 끝에 한국, 케냐, 그리고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배우를 데려와 한국어, 영어, 불어, 스페인어 등 통역도 여러 명 둔 촬영 현장이었다. 그리고 무술팀이 현지에서 임시 액션 스쿨을 만들어 배우들을 훈련 시켰다고 한다.

이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이 아니다. 역시 소말리아 내전 배경으로 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2001년 영화도 모로코에서 찍은 것이라 비교가 되기도 하는데, 아는 사람이라면 비교가 아니라 대조라 해야 할 것이다. 할리웃 액션영화만큼 잘 만들고 재미있을 지는 몰라도, <모가디슈>에 나타나는 세계관이나 인간에 대한 접근 방식은 다르다. 아프리카 현지인을 ‘우리 주인공들이 그저 넘어서야 할 장애물’ 또는 악당 역으로만 그리는 일반 할리웃 영화와는 달리, <모가디슈>가 소말리아인들을 그리는 방식은 한국인들을 그리는 방식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 관객이라면 안다. 사실상 멀지 않은 과거의 한국에서도 소말리아와 마찬가지로 부패한 정권에 대한 저항과 독재 타도를 위한 시위, 폭력진압, 그리고 심지어 학살까지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정부 인사가 자녀 학자금 명목으로 뇌물을 요청할 때, 민간인들이 시위를 하고 무참히 밟힐 때, 전쟁통에 시장에서 난리가 날 때, 우리는 한국의 비슷한 상황들을 충분히 떠올릴 수 있다.
 

피부색은 달라도 사람들의 행동 모습들이 너무 낯익어 기억 속의 영상들과 중첩 될 때가 있다. 주인공들이 드디어 떠날 때 창 밖을 보며 재난이 닥친 그 나라에 남아 있어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부채감을 안고 가는 모습도 그래서 더 와닿을 지도 모른다. 한국 현대사를 모르거나 생각하지 못하는 외국인들이 <모가디슈>가 무조건 할리웃 영화처럼 현지인들을 치부할 것이라 생각하는 걸 보면 답답할 때가 있다. 그런 편견을 깨는 것도 우리 몫일 지 모른다.

그 외에 한국인들에게는 친숙하고 당연하지만 외국인들에게는 그리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라면 먹는 것과 거기에 담긴 의미에 관한 게 있다. 국내에서 많이 회자 된 ‘깻잎 장면’은 남북 대사관 사람들이 서로 긴장된 첫 식사 자리에서 깻잎 반찬이 붙어 북한 사람이 난감해 할 때 남한 사람이 잡아주는 장면이다. 같은 아시아인끼리도 김치나 깻잎 같은 걸 잡아주면 깜짝 놀라서 고마워 하는 경우는 봤지만 이런 행동을 당연 시 하는 사람들은 한국 사람 밖에 없을 지도 모르겠다. 아주 쬐그만 행동이지만 그 자연스러움에서 같은 동포임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북한 대사관 사람들이 습격을 받고 중국 대사관으로 피신하려다가 남한 대사관까지 와서 들여보내달라고 요청하는 장면이 있다. 그때까지 서로 온갖 방해 공작에 치열하게 외교전을 벌이던 두 대사관 사람들이다. 한 대사가 들여보내주기를 거부하고 허준호 배우가 맡은 북한 림용수 대사에게 계속 핀잔을 준다. 그러다 같이 나온 꼬맹이들에게 눈길이 가면서 ‘아이들 밥은 먹였소?’ 하는 순간, 우리는 게임이 끝났다는 걸 알 수 있다. 다른 명분은 필요 없다. 애들은 굶기는 게 아니다.
 

보면서 속 시원했던 것이 하나 있다. 모든 한국인들의 정말 한국적인 영어 사용법이었다. 예전에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기자회견을 하는 걸 처음 봤을 때 깜짝 놀랐던 게 기억난다. 영어 문장은 세련된 고위 관료의 것인데, 발음은 기가 막히게 아니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생각하고 보면 당연하다. 그 시대, 그 세대 외무고시를 보고 외교관 된 사람들은 어디에 중점을 두고 공부했겠는가? 발음 연습과 교정의 기회가 얼마나 됐겠는가? 지금처럼 편리한 인터넷과 DVD나 방송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 안기부 직원이라면 외신 기자에게 담배 한 보루 선물 던져 주면서 “Your favorite cigarette!”을 그냥 (사실 단수가 아닌 복수가 맞는데) 한글로 발음 적어놓은 듯, “유어 패이버릿 시가렛!”을 노래 부르는 어조로 하는 것이 사실상 더 자연스럽다. 대사관에 쳐들어오려는 현지 경찰들을 막으려고 “Listen, you can’t come in here!”라고 해야 되는데 흥분해서 “리슨, 유 캔트 낫 컴 인 히어어”로 (이중 부정의 문장을 만들어 마찬가지로 한국적인 발음으로) 소리치는 서기관의 모습, 그런 모습들이 더 자연스럽고 개연성 있다. 

한국 배우가 영화 속 인물에 적절하지도 않은 영어 숙어나 문장 구조와 발음을 구사하면서 연기는 뒷전, 부자연스러운 대사를 얼마나 잘 외웠나, 발음은 얼마나 잘 하나, 무슨 줄타기 곡예 구경하듯 긴장하면서 보는 한국 영화는 이제 많이 없어져서 속 시원하다. 발음이 너무 한국적이어서 해외 배급할 때 자막 깔아야 하면 그냥 깔면 된다. 우리도 북한말 나올 때 한글 자막 까는데 무슨 상관인가? 인물에 맞는 말하기 방식과 발음,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올 때 전달 되는 게 더 많다.

<모가디슈>에 대한 이야기는 하면 할수록 이것저것 더 할 수 있겠지만, 일단 ‘2021년 사사로운 영화’의 원고는 여기서 이만 줄인다. 다만 이 작품을 보면서 한국 영화가 계속 발전하고 있다는 것, 패기가 넘친다는 것에 기쁨을 표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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