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 v 페라리

by.김영진(영화평론가) 2021-03-26조회 4,144
<포드 v 페라리>의 도입부, 차를 몰고 가는 캐롤 셸비. 그는 심장에 이상이 생겨 은퇴한 카레이서다. 화면에 그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7000 RPM 어딘가엔 그런 지점이 있어. 모든 게 희미해지는 지점. 차는 무게를 잃고 그대로 사라지지. 남은 건 시공을 가로지르는 몸뿐. 7000 RPM. 바로 거기서 만나는 거야. 그 순간은 질문 하나를 던지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넌 누구인가?” 캐롤의 내레이션은 후반에 다시 나온다. 캐롤이 스카우트해 르망 대회에서 끝내주는 레이스를 벌이고 돌아온 켄 마일스가 시승차를 테스트하고 있을 때다. 켄이 운전을 하고 있는데 캐롤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남은 건 시공을 가로지르는 몸뿐... 가장 중요한 질문. 넌 누구인가?’ 켄이 모는 시승차의 브레이크는 작동하지 않고 그대로 달려간 끝에 폭발한다. 캐롤과 그의 스탭들이 사고 장소로 달려가지만 이미 늦었다. 켄 마일스는 그렇게 영화에서 단숨에 퇴장한다. ‘넌 누구인가?’란 질문에 답할 여유도 없이.

영화의 도입부에서 더이상 차를 몰 수 없는 레이서 캐롤 셸비는 이미 한 번 죽은 것이다. 영화의 끝에서 켄 마일스는 물리적으로 진짜로 죽는다.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확실한 답은 ‘죽는 존재’라는 것이다. 캐롤 셸비와 켄 마일스는 죽음과 삶의 경계가 백짓장처럼 얇은 카레이싱의 경험을 몸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속도의 한계 끝에 다다르는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어떤 도에 관해 이심전심 서로 통하는 친구들이다. <포드 v 페라리>는 카레이싱이라는 스포츠에서 전문가주의에의 헌신이 가닿을 수 있는 어떤 도의 경지를 보여준다. 캐롤 셸비와 켄 마일스는 알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설명할 수 없는 것, 그리고 굳이 설명해줄 필요도 없는 것, 그렇지만 이 심원한 도의 깨달음의 끝도 다른 모든 사람들의 종말과 같이 단순하다. 그저 죽는다는 것뿐이다. 
 
포드 페라리 2, 선글라스를 끼고 트랙을 바라보는 두 주인공
 
은퇴해서 스포츠카를 디자인해 파는 사업으로 성공한 캐롤 셸비에게 실적부진에 시달리는 자동차 회사 포드의 중역 아이아코카가 찾아와 솔깃한 제안을 한다. 포드의 신형 개발차로 르망 레이스에 참가하자는 프로젝트다. 캐롤은 레이서 파트너로 켄 마일스를 스카우트한다. 여전히 현역이지만 비사회적인 성격으로 인해 후원사를 구하지 못하고 근근이 레이싱 대회에 나가면서 적자투성이 카센터를 운영하며 호구하는 켄은 캐롤과 함께 레이싱 훈련에 돌입한 후에도 포드사의 마케팅 임원들과 갈등을 빚는다. 캐롤과 켄에게 그들이 만들고 타는 차는 그것 자체로 존재하는 의미이며 다른 어떤 교환가치도 갖지 않는 것이지만 포드 회사의 임원들에게 차는 셀링 포인트가 집약된 도구이자 기호이다. 캐롤과 켄은 최고 수준으로 설계된 차로 한계를 돌파하는 레이싱에 매달리지만 포드의 임원들은 레이싱에 동원된 차를 통해 새롭고 매력적인 삶의 표상을 대중에게 팔고 싶어할 뿐이다. 

표면적으로 이 영화는 마케팅 목적으로 르망 대회를 이용하는 포드 사 임원들의 관료주의와 캐롤과 켄의 전문가주의가 부딪치는 대립과 갈등을 부각시킨다. 그 저류에 흐르는 것은 도구화된 삶을 지향하고 강요하는 자본주의의 이념과 거기에 순응하는 가운데서도 끝내 저항하지 않을 수 없는 개인들의 도구화되지 않는 삶에 대한 열망이다. 역설이지만 삶에 대한 자각은 너덜거리는 차의 부속에 대한 자각과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켄 마일스는 레이싱 연습을 하던 어느 날 자기 훈련을 지켜보던 아들 헨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준다. “빨리 달리면 차의 속도는 올라가지만 나머진 모두 느려져. 요렇게 보는 게 아니라 이렇게 보는 거야. 그럼 다 보여... 차에겐 다정해야 해. 아래서 신음하는 그 녀석을 딱하게 느껴야 돼.  기계를 한계까지 밀어붙이면서 버텨주길 바라려면 한계가 어디인지 알고 있어야 해. 저길 봐. 저기 퍼펙트 랩이 있어. 실수도 없고 모든 기어 변속과 코너 공략이 완벽한 랩. 대부분은 존재도 모르지만 분명히 존재해.”

기계문명의 총아인 자동차를 다루면서 그걸 살아있는 생명처럼 여기고 다정하게 대하고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소모되는 그걸 딱하게 여기면서 모든 기능 조절이 완벽한 ‘퍼펙트랩’이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 켄 마일스는 그 자신 역시 그가 다루는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마모될 때까지 스스로를 혹사하면서 죽음/폐기의 경계로 다가가는 존재이다. 최고 시속을 오래 버텨내는 최고의 자동차는 그 대가로 짧게 존재하고 대체되지만 인간은 대체될 수 없다. 새 것으로 대체될 수 있는 자동차 기계의 부속품들과 새 것으로 대체될 수 없는 인간존재의 유한성을 같은 열에 놓고 대하는 켄과 마일스는 결국 여러 겹으로 꼬인 삶의 모순을 받아들여 견딜 수밖에 없는 비극적 존재들이다. 그들은 자동차를 그들의 분신으로 여기고 대하지만 그걸 팔거나 타서 마모시키고 그들을 고용한 포드사는 그들을 도구로 이용해 하찮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롤과 켄은 그들의 운명에 장쾌하게 대들고 즐긴다. <포드 v 페라리>가 자동차 레이싱을 소재로 한 여타 영화들과 다른 우월한 개성을 갖는 것은 속도의 쾌감에 화면의 리듬을 종속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레이싱의 경쟁상태를 묘사하면서도 초점은 레이서와 차의 혼연일치 상태, 나아가야 할 때와 늦춰야할 때를 의식하는 레이서의 마음으로 관객을 안내한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반복되는, 켄이 마지막 스퍼트를 올려야할 때 캐롤이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는, ‘아직 아냐...아직 아냐...지금이야’라고 외는 주문과 그에 조응하는 켄의 운전은 속도와 경주에 주목해 즐기는 이 장르의 관성을 깨트린다. 영화 속 한 장면에서 애초 약속과 달리 켄 마일스를 르망 레이스 팀에서 제외하려는 포드 2세 회장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그를 레이싱카에 태운 캐롤은 전속력으로 차를 모는데 회장은 난생 처음 경험하는 가공할 속도에 공포를 느끼고 눈물을 질질 짠다. “난 몰랐어. 우리 아버지가 살아서 이걸 보셨어야 했는데. 이걸 느껴보셨어야지.” 보통 사람들에게 극한의 스피드는 눈으로 즐기는 것이지 몸으로 즐기는 것이 아니다. 
 
포드페라리2, 트로피를 번쩍 올려든 포드페라리 속 크리스찬 베일
 
<포드 v 페라리>에서 포드 2세 회장을 비롯해 삶과 비즈니스의 철학에 관해 장광설을 펴는 인간들은 결정적 순간에 겁에 질려 눈물을 흘리는 비루한 존재임을 감추거나 쉽게 망각해버린다. 포드사가 애초 인수하려 했던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의 회장 페라리는 자기 회사를 인수하려는 포드 경영진의 제안을 일축하면서 “포드 2세는 포드 1세가 아니다.”라고 인수 제안 책임자 아이아코카에게 쏘아붙인다. 르망 레이싱 경기장 현장에서도 포드 2세 회장은 개막식 행사 참석 후 곧바로 현장을 떠난다. 포드 마케팅 수장의 잔꾀로 포드 차가 나란히 결승지점에 골인하는 희대의 이벤트가 일어난 후에 1등을 달렸던 켄 마일스는 자기 보다 뒤에서 출발했던 같은 회사 동료 레이서에게 우승을 도둑맞는다. 망연자실한 켄 마일스에게 관중석에서 경의를 표하는 유일한 이는 페라리 회장이다. 황당하고 미안해서 어쩔줄 모르는 캐롤에게 마침내 사태를 파악한 켄은 말한다. “차를 팔아야 한다 이건가?” 그리고는 시상을 하는 포드 2세 회장과 중역 일행을 본다. 그는 이어 말한다. “차를 파는 게 저 사람들 일이니까. 네가 약속했던 건 레이스였어. 우승이 아니야. 끝내주는 레이스였어. 끝내주는 차야. 빠르지. 더 빠를 수 있었어. 7리터 엔진은 좋지만 차대는 지금보다 가벼워야 해. 접합 알루미늄이 어떨까 싶은데. 더 갈아엎어야겠지만 효과 좋을 거야. 한 100kg 줄일 걸. 그럼 여기서 뭐하고 있어? 샤워하고 차도 좀 마시고. 샌드위치나 하나 먹고 가자. 내년에 전부 다 박살내버리자고.”

적재적소로 대사를 아끼면서 과시적이지 않은 스타일로 드라마를 운반하고 미국 작가주의 영화의 무궁한 소재인 전문가주의의 내밀한 본질을 장쾌한 시각적 묘사로 그려낸 <포드 v 페라리>는 다른 한편으로 할리우드의 위선적인 프로파간다와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을 시스템의 도구화를 거부하는 두 주인공 장인을 통해 은밀히 수행하는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감독 제임스 맨골드는 부담 없이 영화를 보게 하면서도 곱씹을 것이 많은 이미지와 대사의 절제된 인장을 통해 장르영화의 작가주의가 여전히 가능한 미국영화의 위대함을 역설한다. 흥미롭게도 영화의 끝 장면에는 시스템의 도구일 수밖에 없는 개인들의 운명을 긍정하는 재치있는 언급이 나온다. 켄 마일스가 죽은 후 차 세일즈 비즈니스에 심드렁한 채 시간을 죽이던 캐롤 셸비는 켄 마일스의 집을 찾았다가 그의 아들 헨리를 집 앞에서 만난다. 안부 인사를 전하다가 캐롤은 켄이 쓰던 렌치를 헨리에게 건네주며 말한다. “공구는 쓸모 있지. 이걸로 뭘 만들거나 고치기도 하거든.” 그는 말을 잇지 못한다. “네 아빠는...” 헨리가 말을 이어받는다. “아저씨 친구였죠.” “그래. 친구였지.” 인간이든 공구이든, 각자의 쓰임대로 뭘 고치거나 만들면서 존재할 이유를 얻는다. 그리고 친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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