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와 시대의 반란 하라 가즈오, 2019 

by.김영우(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프로그래머) 2020-12-31조회 1,134
레이와 시대의 반란 스틸
시작은 올해 2월 열렸던 베를린국제영화제, 그러니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대부분의 영화제와 상영회가 온라인 상영과 개최라는 대안적 방식을 선택하기 전, 정상적인 형태로 개최된 마지막 국제영화제였던 베를린영화제에서 소다 카즈히로 감독을 만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8년 공개된 <멘탈>과 이어지는 <정신: 제로>라는 신작으로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된 소다 감독과는 2018년 중국에서 잠시 만난 이후 재회한 셈이었는데, 정치 이야기, 미국생활 이야기, 작업이야기 등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정신: 제로>가 소다 감독의 10번째 장편영화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딱 떨어지는 숫자나 년도를 기념하거나 그걸 계기로 행사를 도모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떨어지는 숫자에 맞춰 무엇인가를 하는 게, 명분이나 근거를 설명하기에 여러모로 용이하다는 현실적이라는 그간의 경험에 기반해, 자연스럽게 그에게 어떤 식으로든 무엇이든 같이 해보자, 라는 제안을 즉석에서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 전후로, 하라 가즈오 감독의 2019년 영화 <레이와 시대의 반란>을 보면서 소다 가즈히로의 전작 <선거>와 연결하면 흥미로운 지점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고, 이후 모리 타츠야 감독의 <나는 신문기자다>를 본 후로는 ‘선거’와 ‘언론’라는 키워드를 통해 일본사회를 조망하는 기획을 해볼 수 있겠구나, 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리고 봄이 지나면서, 민환기 감독이 작업해오던 제주도지사 선거전에 뛰어든 녹색당 고은영 후보를 따라가는 <청춘 선거>가 마무리단계에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며, ‘선거’라는 소재를 두고, 한국과 일본의 쟁쟁한 감독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한국과 일본사회가 공히 처해 있는 정치와 민주주의의 위기를 함께 논하고 비판하는 모습을 미리 그려보며 행복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올해 일어날 수 없었다.  
 

위에서 언급한 영화들은 모두 강고한 체제로 굳어진 기존 정당 중심의 질서에 도전하는 소수정당이나 보통 사람들의 무모한(?) 도전과정을 기록한 영화들이다. 그 중에서도 하라 가즈오 감독의 <레이와 시대의 반란>은 2019년 7월에 열린 일본 참의원 선거에 10명의 후보를 낸 신생정당 ‘레이와 신센구미’와 그들의 선거 도전기를 따라가는 영화다. 레이와 신센구미는 일본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발언으로 주목을 받으며 한국에도 꽤 알려진 ‘거리의 정치인’ 야마모토 타로가 주도하는 신생정당으로, 진보적인 경제정책과 오키나와 미군기지 건설반대와 원전 중단 등 일본사회에서는 금기에 가까운 급진적 정책들을 내세우는 정당이다. 하지만 <레이와 시대의 반란>의 주인공은 야마모토 토로가 아니다. 물론 그가 종종 등장하기는 하지만, 하라 가즈오 감독이 집중하는 주인공은 비례대표로 출마한 야스토미 아유미 후보다. 도쿄대학교에서 교수로 근무하는 경제학자이자 2014년 커밍아웃한 트렌스젠더이자 ‘여장남자교수’로 유명한 야스토미 아유미가 세간의 주목을 끌었던 건 2018년 사이타마현에서 열린 시장선거에 출마하면서이다. 당시 말을 타고 유세를 벌이던 파격적인 모습과 이상적이면서 비현실적인 공약들로 화제를 모았던 그에게 야스모토 타로가 2019년 참의원 선거 비례대표 출마를 제안하면서 그를 다시 선거판으로 불러들인 것. 2018년 당시 야스모토 아유미에게 흥미를 가졌던 하라 가즈오 감독은 유튜브 채널에서 그녀와 인터뷰를 하며 다음에도 선거에 출마하면, 관련해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겠다는 농담처럼 약속을 하는데, 그 약속을 기억한 야스모토 아유미 교수가 하라 감독에게 연락해온 것이 <레이와 시대의 반란>의 작업으로 이어지게 된다.  

하라 가즈오 감독은 사건과 인물을 집요하게, 오랫동안 촬영하며 기록한다. 대상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형성하고 대상과 소통하면서, 최대한 가감 없이 그들의 말과 모습을 영화에 담아낸다. 그런 점에서, <레이와 시대의 반란>은 하라 가즈오 감독의 작품관이 여실히 드러나는 영화면서도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조금 이질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특이한 지점들을 동시에 지닌 영화다. 다작 감독은 아니지만, 꽤 오랫동안 침묵하던 하라 감독은 2017년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으로 귀환한 이후 거의 매년 작품을 공개하고 여러 편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활발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하라 감독만의 작업방식은 8년이 넘게 촬영한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에도 그리고 올해 공개된 또 다른 영화 <미나마타 만다라>를 통해서도 잘 드러나는데, 미나마타병을 앓고 있는 환자와 가족들을 다룬 <미나마타 만다라>는 15년을 촬영했고 편집에만 5년이 걸려 6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으로 완성된 그의 역작 중의 하나다. 하지만 <레이와 시대의 반란>은 프로젝트의 시작에서 완성까지 기존 작품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2019년 6월, 메일을 통해 야스모토 아유미 교수에게 연락을 받았고, 6월 26일 처음 만나 제작을 결정했고, 그리고 기자회견부터 이후 16일간의 선거운동 기간까지, 대략 3주간의 촬영으로 완성된 이 영화는, 제작기간을 비교하자면 전작들과는 궤를 달리 하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의 초반,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감독의 언급이 있다. 그건 오락영화를 만들겠다는 것. 인터뷰나 마스터 클래스 같은 강연에서도 감독은 관객이 흥미를 느낄 장면이나 요소들을 넣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한다, 라고 종종 언급하고 있는데, <레이와 시대의 반란>은 감독의 작업 중에서 가장 재치 있고 오락적인 요소가 많은 작품이다. 그건 아무래도 선거라는 제도가 지닌 연극적이고 블랙코미디적인 요소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압권은 목장에서 키우던 말을 도심에 데려와 선거유세에 활용하는 장면들. ‘Protect our children, heal the world’를 공약으로 외치는 야스토미 아유미 후보는 이번에도 말을 이용한 선거유세를 통해 그의 메시지를 선명하게 전달하는데, 도심에 나타난 말의 이질적인 이미지만큼 그의 선거유세는 우리에게 기이하게 다가온다. 오락적인 부분을 가장 많이 담당하는 캐릭터는 아무래도 주인공인 야스토미 아유미 후보이지만, 영화는 레이와 신센구미 비례대표로 출마한 다른 후보들에게도 고른 관심을 보여준다. 비례대표 중에서도 우선 순위를 받은 두 명의 중증 장애인 후보, 환경운동가 출신의 후보, 싱글맘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하는 여성후보, 일본창가학회가 모태인 공명당이 자민당과 연립여당을 구성하면서 보수화되자, 그에 반발하는 창가학회 멤버이자 오키나와 출신의 후보, 편의점 세븐 일레븐 점주로 대기업 횡포에 맞서 자영업자를 대변하는 후보 등이 등장해 자신들의 공약과 주장들을 당당하게 밝힌다. 선거는 말의 성찬이다. 다양한 주장과 선언들이 분출하는 열린 공간. 하지만 그 모든 말들이 같은 무게를 갖지 못하고, 대중에게 전달되지 못하며, 그래서 세간의 관심을 받을 수 없다. 일종의 기울어진 운동장. 그건 선거 때만 그런 건 아니다. 일상에서도 권력에서 배제된 집단들의 목소리는 늘 왜곡되고 감춰진다. 그건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의 주민들도 <미나마타 만다라>의 환자들과 가족들도 겪고 있는 일이다. 오랫동안 왜곡되고 소외되어 온 그들의 이야기. 그래서 하라 감독은 그들의 곁에서 오랫동안 기록하며 그들의 진심이, 속내가 드러나는 순간을 기다려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들려주는 말과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려 했을 것이다. <레이와 시대의 반란>도 감독의 세계관과 닿아 있다. 주류 언론에서 배제된 소수정당 후보들의 주장과 진심들. 정치는 사람을 잇는 수단이지 소통을 가로막는 장치가 아니다, 라는 믿음. 그래서 감독은 10명의 후보들이 쏟아내는 말과 증폭되는 감정들을 가까이서 끈기 있게 담아낸다.  

몇 개의 인상적인 장면. 시민들을 좀비처럼 만들어버린 사회에 대한 저항이 마이클 잭슨의 히트곡 ‘스릴러’에 상징적으로 담겨 있다는 발상. 그래서 좀비들이 등장하는 플래시몹을 기획해 유세현장에서 진행하지만, 막상 영화에는 저작권 문제로 그 음악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자, 기괴한 사운드효과를 배경으로 깔고 자막과 함께 영상만 내보는 장면은, 하라 감독의 재치가 돋보이는 백미다. 그리고 대중 앞에서 진지한 연설을 하는 와중에, 술 취한 아저씨가 등장해 어슬렁거리자, 후보보다 취객에 더 흥미를 느끼고 카메라에 담으려 하는 장면도, 감독의 여유와 코미디적 감각이 건재함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자료화면과 유튜브 영상을 활용하고, 재치 있는 자막처리로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레이와 시대의 반란>은 작지만 소중한 발걸음을 내딛는 소수정당의 의미 있는 시작을 함께 한다. 하지만 영화보다 더 돋보이는 건, 여전한 감각과 시대정신을 지닌 하라 가즈오 감독의 태도와 그의 영화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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