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미야케 쇼, 2018

by.김영진(영화평론가) 2020-02-10조회 3031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스틸

활기와 권태, 기쁨과 슬픔을 껴안는 방식에 관하여

‘나’는 서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청년이다. 어느 날 퇴근길에 같은 곳에서 일하는 사치코와 동행한다. 사치코는 한 잔 할 것을 제안하고 ‘나’는 몇 시간 후에 문자하겠다고 하고 헤어졌지만 ‘나’는 그만 잠을 자느라 약속시간을 어긴다. 그 날 ‘나’는 룸메이트 시즈오와 밤새 술을 마신다. 다음날 ‘나’는 카페에서 점심을 해결하다 사치코를 또 만난다. ‘나’는 어제의 약속을 어긴 것을 사치코에게 희미하게 사과하고 사치코는 애매하게 그의 사과를 받아들인다. 그렇게 두 사람의 연애 관계인 듯 아닌 듯한 관계가 시작된다. 

‘나’와 사치코가 처음 섹스하던 날 귀가하던 시즈오는 두 사람의 기척을 느끼고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 시즈오가 두 사람 곁에서 물러나는 건 이때가 마지막이다. 그 후로 세 사람은 거의 늘 함께 한다. 함께 웃고 떠들고 밥을 먹고 당구 치고 탁구 치고 술을 마시며 밤을 새운다. ‘나’는 누구의 삶에도 간섭하지 않고 누구로부터도 간섭받지 않는 삶을 원하며 사치코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그런 태도로 대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치코는 그런 ‘나’의 쿨함 또는 무심함에 슬쩍 마음이 상한다. ‘나’와 사귀기 전 서점 사장과 연인관계였던 사치코가 그 관계를 정리하려 할 때 ‘나’는 그런 사치코의 결정을 남 얘기 듣듯 하고 사치코는 ‘나’의 진지하지 못한 반응을 나무란다. 그 후 사치코는 ‘나’보다는 시즈오에게 끌린다. 
 

뭔가 슬픔을 품고 있지만 내색하지 않는 시즈오는 뚜렷한 직업 없이 하루 하루를 소일하며 친구들에게 사심 없이 마음을 내어준다. 그런 시즈오에게 사치코는 ‘나’와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사치코가 말한다. “난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시즈오가 말한다. “그는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을 거야.” 시즈오의 말은 빈정거리는 것이 아니다. ‘나’는 깃털처럼 가벼운 인생을 살고 싶어 하고 그런 척 한다. 약간의 선의를 품은 채 ‘나’는 가급적 세상으로부터 벽을 치고 방해받지 않은 삶을 살고 싶어한다. 연애도 ‘나’에게는 구속이 아니라 해방이다. 사치코가 시즈오와 더 가깝게 지내자 ‘나’는 그런 사치코의 변화를 기꺼이 수긍한다. 

미야케 쇼 감독의 세 번째 장편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2018)는 사토 야스시의 소설이 원작이며 요절한 작가가 서른 한 살에 쓴 작품을 역시 서른 한 살의 영화감독이 스크린에 옮긴 것이다. 원작을 읽어보진 못했으나 감독의 말에 따르면 원작의 비극적 결말을 소거하고 좀 더 무채색에 가까운 감정으로 옮겨낸 이 청춘의 이야기에서 사랑과 이별, 기쁨과 슬픔, 환희와 피로는 불가해한 형태로 뒤엉켜 공존한다. ‘나’와 사치코, 시즈오는 파트타임 직업으로 호구를 삼고 미래에 대한 별다른 계획도 없으며 세속적인 기준으로 보면 출구 없는 삶을 사는 젊은이들의 전형이다. 그들은 그들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 삶을 견디고 있는 상태에서 바깥으로부터 오는 행복의 신호에 부드럽게 반응한다. 사치코는 권태와 무의미의 극단에 삶이 처해 있는 듯한 서점 사장과의 관계를 가만히 견디면서 ‘나’를 만났을 때 자연스럽게 구애의 의사를 전한다. ‘나’와 마찬가지로 별다른 가족 관계가 화면에 상술되지 않는 사치코는 ‘나’와 시즈오를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며 그 대가를 바라지도 않는다. 밤새 바에서 술 마시고 춤을 출 때 무리에서 빠져나와 DJ 앞에서 홀로 자기만의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드는 사치코의 모습은 관계에 매달리지 않으면서도 어떤 순간의 농도를 제공하는 관계의 즐거움을 기꺼이 만끽하며 동시에 자기만의 영역을 세심히 지키는 행동을 보여준다. 

시즈오는 딱히 뭘 하고 지내는지 알 수 없는 청년인데 길거리에서 경찰 심문에 걸려 살짝 모욕을 겪어도 실실 미소를 흘리는 여유를 잃지 않고 직업소개소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옆 자리 사람이 건네는 사탕 한 알을 물고 천진한 웃음을 짓는 만사태평한 성격의 소유자로 보이지만 그는 치명적인 병을 앓는 어머니가 있다. 가끔 술을 마시며 심드렁한 대화를 이어나가는 이들 모자는 필사적으로 절망을 견디는 것처럼 보인다. 마침내 어머니가 쓰러졌을 때 그의 병상을 정리하면서 시즈오는 생각한다. “병원 냄새를 참을 수 없다. 친구들과 단골로 갔던 장소의 냄새를 기억해내고 싶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사치코와 시즈오와 마찬가지로 특별히 내세울 것 없는 삶이지만 행복의 징후가 보이면 반갑게 그걸 껴안는 두 사람과 달리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잠시 충만한 그 행복의 흐름에 무심한 척 몸을 맡기는 사람이다. ‘나’가 타인의 삶에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어떤 간섭도 용인하지 않겠다는 다짐의 표현이다. 서점에서 책을 훔쳐가는 손님의 행동을 보고도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나’의 태도에 동료 점원은 분개하지만 동료점원의 자신에 대한 비난에도 태연하던 그가 사장과 바람피운다며 사치코를 비아냥거리는 동료점원의 말을 참지 못하고 혼내주는 건 누군가를 함부로 규정하는 사람들의 일상적 무례에 ‘나’가 예민한 성격임을 보여준다. 그런 그의 태도만으로 그의 삶이 보호받는 것은 아니다. 사치코와 시즈오가 둘이서만 캠핑을 떠난 시간에 홀로 거리를 산책하던 ‘나’는 자전거를 몰고 다니는 누군가로부터 묻지마 폭행을 당한다. 집에서 상처를 치료하는 ‘나’의 앞에 시즈오의 안부가 궁금해 찾아온 시즈오의 어머니가 나타난다. ‘나’는 사과가 담긴 비닐봉지를 그녀에게 내민다. ‘나’를 좋은 아이라고 칭찬해주며 떠나는 시즈오의 어머니는 ‘나’ 앞에서 보인 호기로운 태도와는 달리 아무도 없는 거리를 걸어가며 울적한 뒷모습을 감추지 못한다. 그로부터 며칠 뒤 시즈오의 어머니는 발작을 일으켜 의식불명으로 쓰러진다. 이런 장면들에서 타인들에게 보여주는 모습과 혼자 있을 때의 모습이 다른 등장인물들을 담아내는 것을 통해 그들의 다면성을 이해시키는 이 영화의 뛰어난 점이 드러난다.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는 별 다른 사건 없이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상처를 드러내지 않고 오직 행복한 순간만 서로 주고받기 위해 애를 쓰는 일상의 순간들을 늘일 수 있는 만큼 늘이는 영화이다. ‘나’와 사치코와 시즈오가 바에서 밤새우며 노는 장면은 거의 7분 분량을 넘어서는데 별다른 사건 없이도 그들이 노는 모습만을 카메라가 따라다니는데도 화면에는 활기와 매력이 넘친다. 심지어 세 사람이 편의점 내부를 돌며 먹을거리와 마실 것을 사는 평범한 장면에서도 카메라와 인물의 움직임은 서로 조응하며 자그마한 흥분을 불러일으킨다. 밤새워 논 다음날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곤죽이 되어 졸고 있는 세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는 카메라는 이 영화가 희열과 상실의 순환으로 이어지는 젊은이들의 자잘한 일상을 궁극의 낙관적 기운으로 담아내고 있음을 알게 한다.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영원할 것처럼 즐기고 그 다음에 오는 허무의 기운을 부드럽게 응시하며 껴안는 인물들은 자기들이 처한 존재론적 조건을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고 각자의 존재를 스스로 보호하면서 상대에게 부드러운 선의의 손길을 내민다. 
 

영화의 후반부, 늦은 밤에 어머니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은 시즈오는 다음날 첫 기차를 타기 전까지 ‘나’와 사치코와 함께 단골 바에 가서 늘 그랬듯이 즐긴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슬픈 상황에서 그들은 함께 있음으로써 그 시간들을 견딘다. 다음날 일찍 시즈오과 집을 나설 채비를 할 때 그런 시즈오의 행장을 도와주는 ‘나’와 어둠 속에서 그 두 사람을 바라보는 사치코의 옆모습을 잡는 카메라는 기쁨도, 슬픔도 그들 각자의 방식으로 나누는 젊은이들의 사랑과 우정을 보여준다. ‘나’역의 에모토 타스쿠, 사치코 역의 이시바시 시즈카, 시즈오 역의 소메타니 쇼타 세 배우는 특정 역할을 연기하는 게 아니라 특정 역할로 특정 공간에서 살아가는 현대적 배우의 매력을 조용히 웅변한다. 그들은 그들 각자의 스타일로 인상적인 걸음걸이를 보여주며 아무 것도 말하지 않을 때의 표정과 동작으로 그들 각자의 캐릭터를 드러낸다. 

지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감독 미야케 쇼를 만났을 때 그는 감독으로서의 재능을 칭찬하며 세속적인 성공을 예견하는 나의 건방진 덕담을 정중하게 사양하면서 자신이 영화를 하는 것은 영화를 준비하고 찍으며 동료들과 누릴 수 있는 시간의 행복을 음미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를 촬영하면서 그는 배우들과 최상의 시간을 보냈고 그들 모두 영화 촬영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고 회상했다. 영화 속에서 보여준 행복에의 추구가 영화 바깥의 과정에서도 관철되었다는 그의 말은 만남과 이별이 늘 한 쌍을 이루는 인생의 궤도에서 슬픔을 견디면서도 기쁨을 폭발적으로 나누는 청춘의 아름다움을 오랜만에 실감하게 했다.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는 젊다는 것 자체를 부러워하게 만든 드문 활기의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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