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안티고네

by.조지훈(무주산골영화제 프로그래머) 2020-01-28조회 6,951
소녀 안티고네 스틸
2019년 사사로운 리스트

5년째 이 일을 하다 보니, 연말이 되면 사사로운 영화리스트를 작성하고, 리스트에 있는 영화 중 한 편을 골라 글을 쓰는 일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일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최고의 영화를 꼽는 것도 아닌 그저 사사롭게 좋았던 영화들의 리스트를 작성하는 일이 해가 갈수록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유가 뭘까에 대해 매년 생각하고 있는데, 그게 나의 문제인지, 영화의 문제인지는 아직까진 잘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막상 리스트를 완성하고 나면 뭔가 일관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이상한 리스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0편을 선정한 건 각각의 이유가 있긴 하다. 그러나 이 10편의 영화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하기보다 2019년 한 해 동안 이러 저런 영화들을 보면서 느낀 몇 가지 생각들을 이야기하고 싶다. 

작년까지만 해도 명확하게 느낄 수 없었지만, 2019년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확신하게 되었다. 우리는 그리고 영화는, 지금, 분명히, 새로운 물결이 한 시대를 밀어내고 있는 거대한 변화의 중심에 있다. 이 흐름은 영화를 보는 관점 자체를 바꾸어놓고 있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멀쩡해 보이는 영화에서, 아니 애초부터 멀쩡하지 않았지만 그런 줄 몰랐던 영화 속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되었다. 이걸 봐 버린 이상 우리는 이제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저항이 있지만, 돌아갈 수 없는, 돌아가서는 안 될 강을 이미 건너버렸다. 따라서 설사 되돌아갈 방법이 있다 해도, 그런 일은 이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2019년 주요 영화들을 관통하고 있는 난민, 페미니즘, 불평등의 주제는 모두 사회적 약자와 연결되어 있다. 사회적 약자가 강력한 주제의식을 가진 영화의 전면에 나서면, 영화는 순수한 영화적 즐거움과 사회를 바꾸려는 캠페인을 위한 프로파간다의 경계에 서게 된다. 그 경계에서 어떤 쪽으로 얼마나 발을 내딛느냐에 따라 영화의 운명은 달라진다. 2019년 최고의 수작과 큰 영화제의 수상작들은 대부분 이 경계에서 양쪽에 모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영화이거나, 주제를 꽉 쥔 채 영화적 쾌감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그걸 끝까지 밀어붙인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흥미로운 건 이런 시도들이 거대 자본을 투입하여, 정교하고 세련된 세계를 창조, 확장하고 있는 할리우드와 자본의 간섭을 받지 않으려는 최고의 창작자들에게 자본으로 영화적 자유를 선물하고 있는 넷플릭스를 통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항상 반복되어 이야기되는 독립, 예술영화들의 위기가 이번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두 개의 전혀 다른 거대 자본의 틈새에서 시작되고 있다.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넷플릭스는 알폰소 쿠아론, 코엔 형제, 마틴 스콜세즈, 노아 바움백 등 영화의 만신전에 들어갈 위대한 감독들과 손잡고 ‘넷플릭스 오리지널’들을 만들고 있다. 넷플릭스와 손잡은 감독들은 간섭하지 않는 자본이 선사해준 창작의 자유를 간증하며 자신의 영화 세계를 담아낸 야심 찬 수작들을 연달아 내놓고 있다. 이와 함께 넷플릭스는 명성이 있는 영화제들을 통해 나오는 주요 예술영화들의 전 세계 배급권을 확보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넷플릭스는 이제 자본의 사이즈로는 경쟁이 되지 않는, 중소 규모의 수입 배급사들의 경쟁자이자, 전통적인 예술영화 시장을 위협하는 포식자가 되었다. 디즈니로 대표되는 할리우드 상업영화의 반대편에는 우리가 알던 독립, 예술영화가 아니라, 주요 독립, 예술영화들의 배급권을 모조리 사들이고 싶어하는 넷플릭스가 서 있는 형국이 되었다. 독립영화도, 예술영화도 자본이 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앞으로 독립, 예술영화는 소수의 예술영화 전용관과 영화제 서킷 그리고 미술관과 박물관을 통해서, 그게 아니면 넷플릭스를 통해서만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최근 ‘시네마’에 대한 논의가 다시 시작된 건 이런 상황이 지속 또는 확장될 것임을 예측하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2019년 리스트에 있는 영화 10편은 그 수많은 영화들 중 ‘시네마 Cinema’ 또는 ‘시네마틱 Cinematic’에 대해 영감을 주었던 영화, 그래서 응원하고 싶은 영화들을 중심으로 ‘사사롭게’ 선택했다. 여기 있는 영화들은 대부분 국내 개봉을 했거나, 국내 영화제를 통해 공개된 영화들이다. 안 본 영화들이 있다면 기억해두었다가 챙겨보길 권하고 싶다. 
 

지금부턴 리스트에 있는 10편의 영화 중 가장 강렬하게 다가왔던 <소녀 안티고네>(소피 데라스페, 2019)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이 영화의 원제는 <Antigone>다. 맞다. 고대 그리스의 3대 극작가 중 한 명이었던 소포클레스의 희곡이다, 그가 저술한 4대 비극 중에서도 첫 손에 꼽히는 그 『안티고네』다, 그래서 한글 제목인 <소녀 안티고네>에서 ‘소녀’라는 단어를 처음 보고 갸우뚱했다. 사람들이 안티고네가 어린 여성인 줄 모른다고 생각했던 걸까? 아니면 안티고네가 어린 여성, ‘소녀’라는 사실이 중요했던 걸까? 의도했든 안 했든 ‘소녀’라는 단어가 강인한 인물인 안티고네와 함께 쓰이면서 제목이 주는 아이러니가 한층 강해진 것 같긴 하다. 

대부분의 영화는 원작이 어떤 작품인지 제목과 간략한 내용만 알아도 영화를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다르다. 원작과 제목만 같은 게 아니라, 영화 속 인물의 이름이 기원전 441년에 만들어진 원작 속 인물의 이름과 똑같다. 거기에 주요 인물들이 벌이는 논쟁의 지점도 유사하다. 원작의 틀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제목이 보여주듯 원작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래서 이 영화를 이해하려면 원작에 대해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원작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 왕』,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와 함께 소포클레스의 “테베 3부작” 중 한 편이다. 서사적으론 『오이디푸스 왕』이 다음의 이야기지만, 시기적으론 가장 먼저 쓰였다. 혈육의 도리를 다하려다 국법을 위반한 여주인공 안티고네의 운명을 다루고 있다. 독일의 극작가이자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헤겔은 “걸작 중의 걸작이며 고대와 현대를 막론하고 이와 비견될 작품이 없다”고 했다. 

안티고네는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와 그의 어머니이자 왕비 이오카스테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자신의 손으로 눈을 찔러 맹인이 된 후 왕국을 떠난 오이디푸스를 따라 여러 나라를 전전하다가 오이디푸스가 세상을 떠나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오이디푸스가 테베를 떠난 뒤 그의 두 아들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는 왕위를 둘러싸고 전쟁을 벌이다가 모두 죽었다. 그런데 이때 테베의 새로운 왕이 된 숙부 크레온은 외국의 군대와 함께 테베를 공격했던 폴리네이케스를 조국의 배신자로 규정하고 매장을 금한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크레온 왕의 칙령을 어기고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매장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크레온은 안티고네에게 생매장의 벌을 내리지만 그녀는 벌이 실행되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한편 안티고네를 사랑했던 약혼자이자, 크레온의 아들 하에몬은 아버지로부터 그의 사면을 얻어내지 못하자 그를 따라 자결한다. 

『안티고네』가 19세기 유럽 사회에서 큰 사랑을 받았던 것은, 군주의 폭정과 귀족과 성직자들의 수탈에 저항하여 봉기를 일으킨 프랑스인들과 혁명의 동조자들에게 안티고네는 자유, 평등, 박애로 대변되는 혁명 정신에 대한 완벽한 알레고리였기 때문이다. 안티고네가 죽은 오빠에게 보낸 절대적인 사랑은 가족으로서의 의무를 초월한 보편적 인류애로 읽혔고, 국가권력에 맞서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다가, 자살을 선택한 그의 모습은 천부인권설에 담긴 개인의 자유를 구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와 함께 여성으로서 모든 권력을 가졌던 남성과 당당하게 맞섰던 그는, 성평등은 물론이고 모든 사회적 영역에서의 평등과 정치적 참정권의 옹호자로 상징되었다. 그리하여 폭군에 대한 안티고네의 저항은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던 혁명 정신과 겹쳐졌고, 저항의 대가로 받게 된 생매장의 형벌은 바스티유의 지하 감옥을 환기시켰다. 또한 그의 자결은 어떤 억압에도 굴하지 않는 강력한 자유 의지와 혁명을 위한 숭고한 순교로 받아들여졌다. 논쟁적 사유, 불굴의 의지, 과감한 결단과 실행력으로 무장한 영웅적 주인공의 이상적 모델로서의 안티고네의 상징성과 이미지는 이렇게 만들어졌다.1)
 

특히 『안티고네』가 주목받았던 건 왕의 칙령을 어기고 오빠를 매장한 안티고네와 국가 반역자의 매장을 금지한 크레온의 대립과 둘 사이의 논쟁 때문이었다. 신성한 윤리이자, 감정에 호소하는 가족 윤리(자연법)와 공동체의 안녕과 존속을 위해 존재하는 국가법의 정면 충돌, 각자의 입장에서 정당성을 주장하는 두 개의 거대한 윤리 또는 법 사이의 충돌과 논쟁은 안티고네와 크레온으로 상징되는 『안티고네』 서사의 핵심이다. 또한 시스템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 논쟁은 결국 비극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완벽한 가부장적 사회에선 혁명의 서사가 아니고선 결국 막강한 국가권력과 법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있는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안티고네』는 이 운명과도 같은 비극의 서사를 활용하여 당대의 사회적 논쟁에 대한 정치적 성찰을 이끌어내고 도덕적 힘들의 충돌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제시했다.

『안티고네』가 세상에 나온 지 2천 4백여 년의 세월이 흘렀고, 새로운 모습을 한 안티고네는 캐나다의 몬트리올에 살고 있다. 그는 이제 왕족이 아니라 알제리에서 온 난민이다. 3살이 되던 해, 오빠인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 언니 이스메네, 그리고 할머니와 함께 조국을 떠나 캐나다와 도착했고, 몬트리올에 정착했다. 현재 그의 가족은 아직 시민권을 갖지 못했지만, 자신들의 뿌리가 알제리임을 잊지 않은 채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두 오빠는 자기 밥벌이 정도는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역의 갱단에서 활동하고 있고, 성인이 된 이스메네는 미용실에서 보조로 일을 하고 있으며, 안티고네는 장학금을 받아가며 열심히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이제 안티고네 가족은 풍족하진 않아도 미래를 꿈꾼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의 불심 검문을 받던 에테오클레스가 경찰이 우발적으로 쏜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설상가상으로 함께 있던 폴리네이케스는 저항하다가 체포되어 경찰폭행죄로 알제리로 추방될 위기에 처한다. 부모의 죽음을 겪으며 먼 타국에서 간신히 삶의 터전을 잡은 듯했던 한 가족은 이제 합법적 국가권력에 의해 해체될 위기에 놓인다. 이제 안티고네의 시간이 도래했다. 연약하게만 보이던 막내 안티고네는 가족을 위해 수감된 오빠를 감옥에서 빼내기로 마음먹는다. 폴리네이케스는 남은 가족 중 유일한 남자이고, 그의 존재는 자신의 정체성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처음 생각은 단순했다. 미성년자인 자신은 어떤 잘못을 하든 쉽게 풀려날 거라 믿었다. 머리를 자르고, 문신을 하고, 남자 옷을 입고, 오빠와 비슷하게 변장하고 면회에 가서 옷을 바꿔입고 오빠를 탈옥시킨다. 원작의 매장은 탈옥으로, 크레온은 국가의 사법시스템으로 대체되었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안티고네의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안티고네는 자신의 모든 용기를 짜내어 법을 지키는 대신 가족의 윤리를 택했다. 완전히 상반되지만 각자의 입장에서 정당한 두 가치를 어떻게 충돌시키냐와 안티고네에게 얼마나 감정이입할 수 있느냐가 이 영화의 관건이다. 가족을 위해 범법자가 되어 법정에 선 그는 두려워하면서도 당당하게 유죄를 인정한다. 그리고 “전 언제든 다시 법을 어길 거예요. 오빠를 도우라고 제 심장이 제게 말하고 있어요”라고 외친다. 재판 초기 범죄 조직에 가담한 불법 난민의 아이콘이 되어 인터넷에서 조리돌림을 당하던 안티고네는, 남자친구 하에몬의 노력으로 인해, 가족를 위해 범법자가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은 용맹한 소녀로 회자된다. 대중의 지지가 강해지면서 난민 소녀 안티고네는 가족의 가치를 수호한 영웅이 된다. 그러자 합법의 탈을 쓴 국가폭력의 이면이 모습을 드러낸다. 고대 그리스에서 목숨을 놓고 벌인 2천여 년 전의 비극적 논쟁은 이렇게 동시대적 감각으로 깊은 공감을 이끌어 내며 부활한다. 

이 흥미로운 각색의 중심에는 소피 데라스페 감독이 있다. 그는 원작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오랜 시간을 견디고 살아남은 안티고네의 서사에 현재 전 세계의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인 난민 문제를 성공적으로 이식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건 주연을 맡은 신인 배우 나에마 리치다. 그는 데뷔작임에도 강렬한 연기력으로 서사를 장악하고 주도한다. 안티고네가 머리를 깎고 언니에게 가족을 위해 일할 것을 강하게 요구할 때, 애써서 탈옥시켰지만 다시 잡혀 와 법정에 선 오빠를 향해 피를 토하듯 절규할 때, 그리고 그 어떤 유혹의 순간에도 망설임 없이 가족의 윤리를 선택할 때 등 서사의 인과관계의 중요한 고비마다 튀니지 출신의 이민자인 그의 연기는 마법 같은 순간을 만들어내며 관객을 설득해낸다. 이렇듯 <소녀 안티고네>는 한 발 더 나간 결말에 대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원작에 담겨 있던 사회적 논쟁에 대한 정치적 성찰과 함께 양립하는 두 가치의 충돌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고스란히 영화에 담아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1) 『안티고네』 소포클레스 저, 강태경 역, 홍문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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