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 홈 어게인 웨인 왕, 2019

by.노혜진(스크린인터내셔널 기자) 2020-01-21조회 7,298
커밍 홈 어게인 스틸

한국영상자료원에서 3년째 ‘사사로운 영화 리스트’와 그 중 한 작품에 관해 쓰는 ‘사사로운 영화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고민을 좀 했다. 지난 한 1년 간 웨인 왕 감독의 <커밍 홈 어게인 Coming Home Again>이라는 영화에 어쩌다 익세큐티브 프로듀서로 참여하게 됐기 때문이다. 괜히 자기 영화 홍보하는 것 같을 것 같았다. 그런데 당연히 올해 나에게 이보다 더 사사로운 영화는 없다.
 
솔직히 ‘홍보라고 해 봤자’라는 생각도 든다. <커밍 홈 어게인>은 9월 토론토 국제 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부문에서 월드 프리미어 한 후로 각처의 영화제 초청과 언론의 호평을 받고는 있지만, 각처의 수입사와 배급사에서는 지금까지 고사하는 상황이니 뭐…… 그래, 그냥 주제에 맞게 ‘사사롭게’ 쓰자. 지금 다른 영화 얘기할 머리 상태도 안 된다는 것도 인정하자. 거의 1년 간 내가 사는 서울과 감독님이 계시는 샌프란시스코의 시차 17시간을 두고 일하다 보니 심각한 수면 부족으로 (면역성은 물론이요) 뇌세포도 많이 상한 것 같다. 

한창 후반작업 중일 때는 거의 잠 고문을 당하는 것 같았다. 아마 관타나모 같은 데서 나 보고 테러리스트라고 고백을 하라고 부추겼더라면 당연히 아님에도 불구하고 “방해 없이 8시간만 쭉 자게 해주세요” 하면서 테러리스트를 자처했을 법한 정신적 누더기 상태가 됐다. (문제는 내 본업이 ‘스크린 인터내셔널’ 아시아 부국장이자 한국 통신원이라는 것 – 그러잖아도 낮에는 아시아 일을, 저녁에는 런던 본사와 소통을, 아주 늦은 밤에는 새벽 잠이 없는 감독님이 샌프란시스코에서 깨셔서 하루 일을 시작하는 식이었다. 급한 불 끄고 해놓을 수 있는 연락은 일단 다 취해놓고 서울 시간 새벽 5~6시쯤 지쳐서 ‘그만!’ 하고 외치고 서너 시간 자던가 말던가 하고 다시 일과를 시작하는 식이었다.)

아무튼 처음으로 돌아가서 얘기해볼까 한다. 웨인 왕 감독을 만난 건 작년 이맘때 ‘사사로운 영화’ 원고를 쓸 때 즈음, 도쿄 필름엑스 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을 같이 하면서였다. 아마 심사위원으로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 정도로 허심탄회하게 영화와 커리어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과 느낌들을 깊이 공유하고 논의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감독님이 연출하신 예술영화도 좋고 할리웃 대중영화들도 다 뭔가 결이 다른 데가 있어 좋아요”하는 정도의 말쯤은 했었겠지만, 영화제 카타로그에 내 약력이 나온 걸 보고 한때 LJ 필름이 CJ 엔터테인먼트와 합병했을 때 글로벌 프로젝트팀 프로듀서였다는 것에 대해 감독님이 추가 질문을 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심사를 같이 하다가 밥도 같이 먹고 리셉션도 같이 가고 하면서 그냥 저냥 얘기하다 “왜 프로듀싱을 계속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때 기획개발에 일조는 해도 과연 이 영화들이 나를 꼭 필요로 하느냐, 필요로 한다 쳐도 내가 몇 년 동안 그 영화에 110%를 바쳐도 보람이 느껴질까 하는 두 가지 질문을 하다가 ‘스크린 인터내셔널’ 한국 통신원 자리가 열려서 원래 하고 싶기도 했던 기자 일을 택했다”고 했다. 그게 2005년이었는데, 그 사이 출판업계 상황이 한창 안 좋아진 것도 당연하지만, 나란 인간에게 뭔가 긍정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분도 감지하셨을 것 같다.
 
요즘 영화인을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웨인 왕 감독의 <스모크 Smoke>’(1995)는 제 인생의 영화예요!”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물론 할리웃 최초로 아시아계 미국인 주인공을 두고 대중적 인기를 얻은 <조이 럭 클럽 Joy Luck Club>(1993)이나 제니퍼 로페즈와 레이프 파인즈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러브 인 맨하탄 Maid in Manhattan>(2002)으로 웨인 왕 감독을 알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도 그 영화들 다 좋아한다. (특히 <러브 인 맨하탄>은 비슷한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 로맨틱 코미디로 따지자면 더 유명한 <노팅 힐 Notting Hill>(1999) 보다 여러가지 면에서 낫다 생각한다. 이 쟁점을 갖고 가볍게 한판 붙을 자신은 있다. 잠 좀 자고 뇌세포가 회복되고 나서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왕 감독 영화 중에 제일 좋아하는 건 <천년의 기도 A Thousand Years of Good Prayers>와 그 작품과 짝으로 만들어진 <네브라스카의 공주 Princess of Nebraska>다. 중국계 미국인 작가 리이윈의 원작을 영화화 한 작품 두 편인데, 2007년 하와이 국제 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으로 나란히 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는 걸 감독께 말씀 드렸었다. 
그래서 그러셨나? 한국계 미국인 이창래 작가의 자전적인 글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한 편 만들고 있다고 귀띔해주셨다.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이창래 작가의 <생존자 The Surrendered>나 <영원한 이방인 Native Speaker>, <가족 Aloft>, <척하는 삶 A Gesture Life> 등의 베스트셀러 소설은 아니고, 저명한 <더 뉴요커 The New Yorker> 잡지에 실렸던 단편 에세이 같은 것을 원작으로 한 것이다.) 그때 동경 오기 전에 며칠 만에 찍고 가편집본을 만들고 있는데 한 번 보겠냐고 하셔서 당연히 영광이라 했다. 영화제가 끝나고 얼마 후, “나에게 아주 개인적인 영화”라는 간단히 말씀 한 줄 적고 스크리너 링크가 든 이메일을 보내오셨다.  
 
색보정이나 사운드 등등 후반작업은 하나도 안된 가편집본이었지만 너무 좋았다. 위암을 앓는 엄마를 간호하기 위해 월 스트리트의 좋은 직장을 그만 두고 샌프란시스코 고향집으로 돌아온 아들 ‘창래’의 이야기였다. 창래는 자라면서 엄마가 늘 - 특히 미대륙을 횡단해 있는 엑서터 기숙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 해주던 갈비며 전, 잡채 등의 한국 전통 요리를 죽어가는 엄마에게 배우면서 마지막 섣달 그믐날 가족 식사를 준비하기도 한다. 위암 말기의 엄마는 씹어서 삼켜도 바로 토해낼 수밖에 없는 단계에 이르렀음에도 아들은 자기가 차린 음식을 엄마가 먹어주길 바라는 것이 인상적이기도 했다.
 
창래 역에는 <트와이라잇 Twilight>에 개구장이 십대로 나왔던 저스틴 전 (Justin Chon)이 다 자라서 나왔고, 엄마 역에는 주로 연극계에서 활동 하고 <그레이 아나토미 Grey’s Anatomy> 등의 테레비젼 드라마 조연으로 출연했던 재키 정 (Jackie Chung)이 절제된 명품 연기를 했다. 
 

<커밍 홈 어게인>은 죽어가는 부모를 간호 하면서 희생하기도 하고, 음식을 배우면서 소통을 하기도 하는, 그저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 동안 쌓여있었던 가족 간의 갈등도 회상으로 나오고, 억울하다 싶을 정도로 아직은 젊은 엄마를 잃을 것을 당면한 자녀의 자기중심적인 잔인함도 깃들여 있다. 그래서 더욱 현실적이다. 이런 일을 겪어보지 않거나 이타적으로 착하기만 한 사람이라면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마 심사위원을 함께 하면서 그토록 많은 이야기들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냥 간단히 “잘 봤습니다.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하고 말았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더 자세한 피드백을 솔직히 드려야 예의일 것 같았다. 그래서 고백했다. 위의 얘기를 하면서 친척 중에 항상 명절 때 손수 모든 요리를 하시고 아이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시던 한 분이 암으로 돌아가셨을 때 옆에서 봤던 가족들의 모습들, 고통 속에서 죽음을 당면한 본인이 어떨 지에 대한 생각보다 자기가 곧 직면할 상실감을 감당 못하고 행동하는 것 같은 모습들, 당시엔 납득할 수 없어 긴 세월 상처로 남아있었던 것이 치유되는 것 같았다는 걸 말씀드렸다. 

그리고 영화 속 한국계 미국인들의 모습도 좋았다고 말씀드렸다. 한국인인데 한국에서 나서 살기만 한 한국인과는 좀 다른 행동과 반응을 하는 것을 영화에서 보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나도 어렸을 때 미국에서 한 8년 자라면서 봤었던 이들이 스크린에 살아나오는 것 같기도 했다. 작은 예를 들어, 가정 방문한 교회 아줌마들의 성경찬송과 H-라인 스커트와 브로치 – 너무 전형적으로 익숙했다. 그런데 그들이 주는 익숙한 기독교적 위안에 전형적으로 착한 한국인 아들처럼 묵묵히 받아들이기만 하지 않는 창래의 반응이 신선하고 좋았다. 

캐스팅도 대사도 연기도 너무 훌륭해서 아빠로 나오는 존 리 (John Lie)가 처음 나와서 “창래야” 하는 순간부터 이 인물이 누군지 파악이 될 정도였다. 아마도 나름 미국 사회에서 많은 학생들이나 후배들에게 권위가 있으나 집에서는 라면 하나 못 끓여먹는 한국 남자 어른. 이런 심각한 감정적인 위기에 대처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한국 남자 어른. 한때 이문세 노래 하나로 불륜이 걸렸음에도 계속 학자적인 ‘썰’을 푸는 한국 남자 어른. (코미디가 아님에도 이 영화에서 제일 코믹한 인물이기도 하다.)
 

누나로 나오는 크리스티나 줄라이 김 (Christina July Kim)도 화면에 나오는 순간부터 완벽한 인물 재현을 한다. 한국에서 커리어를 꾸리다가 비행기 타고 날라와 엄마의 치료를 끊겠다는 결심을 반대하며 항상 자기 보다 총애를 받던 남동생에게 편들어 달라고 설득하는데 실패하는 딸. 곧 비행기 타고 가부장제의 나라에 돌아가서 또 진급을 투쟁하듯이 찾아나서야 하는 한국계 미국인 여자. 딱 아는 사람 같았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났더니 감독님과 <커밍 홈 어게인>의 국제 영화제와 시장에서의 난점과 가능성에 대해 논의를 하게 됐다. 아마도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와 또 공감하지 못할 사람도 많을 것이라는 점도 공유했다. 절제된 표면 밑에 깊은 감정들이 흐른다는 점이 강점이지만, 절제성 때문에 폭넓은 대중성을 갖기 힘들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것도 얘기 했다. 거의 모든 장면이 (실제 프로듀서 도날드 영의 돌아가신 할머니 댁이었던) 한 아파트 안에 이루어진다는 점도 이 작품을 ‘체임버 피스’라고 좋게 말할 수 있으나 ‘스펙타클’하지 않다고 흠 잡을 수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얘기 했다. 

그리고 나중에 어떤 수입사에서 얘기 한 것처럼, ‘겉모습은 한국인인데 내용은 보통 사람들이 이런 데서 기대하는 한국적 멜로나 신파가 아니어서 마케팅하기 애매하다’는 평도 예상 했으나, 어쨌든 세계에 퍼져 있는 디아스포라가 있는데 스크린에 다양한 한국인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좋았다는 것도 얘기했다. 결론적으로 작품에 대한 신뢰와 가능한 한 많은 사람과 만나게 해주고 싶다는 바램을 공유했다. 

통화가 끝나갈 무렵, 감독님은 익세큐티브 프로듀서 크레딧을 받고 일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나는 이미 본 촬영이 끝난 작품에 뒤늦게 합류하면서 그런 크레딧 받는 것도 부담스럽고, 아직 기자 일을 포기할 수 없으니 ‘어쏘시어트 프로듀서’나 ‘공동 프로듀서’ 또는 ‘컨설턴트’ 같이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을 만한 크레딧을 차라리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씀 드렸다. 그렇게 합의하고 전화 끊은 후 이메일 몇 번 더 주고 받으면서 샌프란시스코 팀은 추가 씬 촬영과 후시녹음 등을 한 후 새로운 편집본을 보내왔다. 

이번엔 간단히 "언짢아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익세큐티브 프로듀서 크레딧에 네 이름을 넣었다”는 한 줄이 들어간 이메일에 스크리너 링크가 왔다. 솔직히 좀 곤란한 건 사실이었으나 웨인 왕 감독 같은 거장이 분명 다른 프로듀서들과 논의 끝에 결정해서 크레딧에 넣었을 것을 알면서 거기에다 대고 뭐라 말하겠는가? "영광입니다. 크레딧에 부합하게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엮인 거다. 그 후로 후반 작업에 의견을 내는 일 외에 크게는 이문세 ‘옛사랑’ 노래 판권을 구하는 일, 국제 세일즈사를 구하는 일, 영화제 출품을 돕는 일 등을 맡게 됐다. (‘스크린 인터내셔널’에다간 편집장에게 양해를 받았다. 리뷰를 쓰고 에디팅 하는 동료들은 기사가 완성 되고 나서야 내가 이 영화에 참여했다는 걸 알게 됐다. 솔직히 리뷰에 대한 걱정은 안 했으나 마지막 순간에 ‘이 동료는 작품이 마음에 안 들면 가죽을 벗겨 회를 치는데’ 하는 노파심이 살짝 든 건 사실이다. 나중에 영화를 너무 잘 봐주고 좋은 평 써줘서 고맙다고 했더니 ‘네가 관여한 작품인지 몰랐다’며 진정 놀라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했다.)

<커밍 홈 어게인>은 9월 토론토 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 할 때 여러 호평을 받았고 심지어 평론가 중의 한 명이 기자 시사 나오면서 트위터에 ‘눈물을 양동이로 들고 나오느라 동료 기자들에게 사과해야만 했다’는 식의 트윗을 남기기도 했다. 특히 남자들이 엄청 울었다는 반응이 기억난다.

상영 전에 왕 감독이 “내가 할리웃 영화 만들 때 스튜디오 관계자들이 편집의 속도를 점점 급하게 가자고 다그쳤었다. 잠시라도 관객이 숨을 들이쉬거나 생각을 할 수 있는 겨를을 주지 못하게 강요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나도 숨쉬는데 어려움을 신체적으로 겪게 됐다. 의사한테 가보니 요가를 해보라고, 숨쉬는 법을 배우게 될 거라고 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만들 때 관객이 숨을 쉴 수 있고, 각자 인생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만들었다”고 했다.

등장 인물들뿐 아니라, 그들의 환경, 소품들을 찬찬히 들여다 보며 호흡하고 생각할 겨를을 많이 주는 영화다.
 

아시아 프리미어는 10월 부산 국제 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에서 하게 됐다. 그런데 마지막 후반작업에 너무 많은 것을 쏟아 부으시고 토론토에서 두 번 상영과 관객과의 대화를 하시고 여러 언론과 인터뷰를 한 끝에 집에 돌아가신 왕 감독은 발병해 결국 부산에 못 오셨다. 솔직히 프로모션 측면에서 말하자면 재앙 같았다. 부산 영화제 24년 역사에 갈라 상영 때 감독이 안 나타난 일은 우리 영화가 처음이었다. 항상 젊게 사시는 왕 감독이 1949년생이라는 걸 이때 상기했다. 

그래도 명품 연기를 한 재키 정이 임신중임에도 보석 같이 나타나서 부산 상영 때 ‘가족 영화인데 남편과 아들과 곧 태어날 아들과 함께 부모의 나라인 한국에 와서 상영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말을 하면서 관객들을 사로 잡기도 했다. 

남편은 <커밍 홈 어게인>의 중요한 조연으로도 나온 루이 오자와 장치엔 (Louis Ozawa Changchien)이다. 곧 아마존 프라임에 나올 <헌터스 Hunters>’이라는 아카데미상 후보자였던 조던 필 (Jordan Peele)이 제작하고 알 파치노 (Al Pacino)가 나오기도 하는 나치 추적 시리즈에서 볼 수 있게 될 배우이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그들에게는 당연히 그렇고 나름 프로덕션과 영화제 입장에서도 큰 일이었기에 뱃속 아기가 몇 주 빨리 나오면서 부산에 계획보다 오래 머물게 됐다는 점을 안 쓸 수 없다. ‘부산 국제 영화제 1호 베이비’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부산에서의 많은 일은 프로듀서 스쿨에서 배운 적이 없는, 간단히 줄여 말하자면 파란만장한 여정이었다 하겠다.) 

그리고 유럽 프리미어는 11월 말, 에스토니아의 탈린 블랙 나이츠 영화제 경쟁부문에서 했다. 여기 다녀오느라 이 원고가 좀 늦어진 점이 없지 않아 있다. 혼자 가서 영화를 소개하고 관객과의 대화를 하는 등등 일정을 마치고 (버스로 4시간 반, 비행기로 50분 가량 떨어진) 같은 발트해 3국의 하나인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 있는 친구 집에 가 있는데 “만세! 빨리 탈린으로 돌아와”라며 우리 영화 리챠드 웡 (Richard Wong) 촬영감독이 최고 촬영감독상을 타게 됐다는 소식을 이메일로 받았다. 빨리 미국에 있는 리챠드한테 비디오 인사를 만들어 달라고 하고, 얼른 탈린으로 돌아와 대리 수상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영화 속 촬영은 현재 시점의 장면들은 다 “객관적”이고 안정적인 와이드 샷으로 찍었고, 회상 장면은 다 조금씩 흔들리는 핸드 헬드로 가까이 다가가 찍었다. 색깔도 회상 장면들은 조금 더 따뜻하게 했다. 거의 모든 장면이 첫 테이크였던 것도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일 것이다.

어쨌든 탈린 블랙 나이츠 영화제 경쟁부문은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Four Weddings and a Funeral>(1993) 마이크 뉴웰 (Mike Newell) 감독이 심사위원장을 맡았고, 심사평에 “우아한 미니멀리즘으로 스토리의 긴장과 드라마를 이미지로 표현하고, 물리적으로 그리고 은유적으로 좁은 공간을 통해 프레이밍하여 인물들의 절망을 신중한 눈으로 옮기고, 영화 촬영 예술이 어때야 하는지 대담한 비전을 전달하는 능력”을 높이 사 시상한다고 했다. 
 
스펙타클한 영화는 아니다. 그래도 “영화 촬영 예술이 어때야 하는지 대담한 비전을 전달한다”고들 한다. 시장성이 어떻던 간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앞으로도 받을 수 있을 영화라 생각한다. 사사로운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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