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by.김봉석(영화평론가) 2019-12-31조회 11,825
원스어폰어타임인할리우드 스틸

쿠엔틴 타란티노가 찰스 맨슨 일당의 샤론 테이트 살해 사건을 다룬 영화를 만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기분은 묘했다, 타란티노의 관심은 언제나 현실이 아니라 영화였다. 그가 열광하며 보았던 온갖 영화들에서 증폭되고 변형되어 황홀한 영화적 현실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은 완벽한 피안이었다. 현실에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찰나를 만끽하는 영화적 리얼리티의 낙원을 타란티노는 창조했다.

역시 타란티노였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2019)는 샤론 테이트의 살해를 다루는 영화가 아니라 그녀가 살았던 시대의 영화들을 타란티노의 방식으로 재구성한 세계였다. 샤론 테이트가 죽지 않은 세계를 보여주는 평행우주랄까. 마블이 <어벤져스:엔드게임>(2019)에서 핑거스텝으로 사라진 사람들을 되살리는 평행우주를 만들었던 것과도 비슷하다, 타란티노는 영화 속에 샤론 테이트가 영원히 살아 있는 세계를 창조한 것이다. 그곳에서 샤론 테이트는 어떤 미래를 살았을까. 영화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스타가 되었을까. 아니면 로만 폴란스키의 아내로서 살아가다가 이혼하고 또 다른 삶으로 나아갔을까.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중심은 그러나 샤론 테이트가 아니다. 한때 TV 드라마 <바운티 로>의 주연으로 인기를 끌었다가 서서히 내려가고 있는 릭 달튼과 그의 스턴트 배우인 클리프 부스다. 미국이 아닌 이탈리아에서 서부극을 찍으러 가는 릭 달튼의 행보를 보면 당연히 지금까지 거장으로 현존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젊은 시절이 겹치게 된다. 1959-65년까지 방영된 드라마 <로하이드>로 인기를 얻었고, 1964년부터 세르지오 레오네의 <황야의 무법자<(Fistful of Dollars), <석양의 무법자>(For a Few Dollars More), <석양에 돌아오다>(The Good, the Bad and the Ugly)를 찍으며 또 다른 명성을 얻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릭 달튼은 평행우주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다. 

타란티노는 영화 속에 실제 배우와 영화들을 마구 던져놓는다. 여자들은 샌님들만 좋아한다고 투덜대는 스티브 맥퀸이 나오고, <대탈주>에 대신 릭 달튼이 출연한 상상을 보여준다. 최고라고 으스대는 이소룡이 클리프 부스하고 싸우다 망신당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조롱하기도 한다. 인종차별이라는 비판을 당연히 받았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곳은 다른 세계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이소룡은 우리가 알고 보았던 이소룡과 다르다. 슈퍼맨이 평행우주에서 슈피히어로가 아니라 빌런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이곳의 이소룡은 오만한 허풍꾼이다.
 

<재키 브라운>(1997)을 만들었을 때의 비판이 생각난다. 당시 스파이크 리는 <펄프 픽션>(1994)과 <재키 브라운>에서 흑인들이 내뱉는 ‘깜둥이’(nigger)라는 단어 등을 거론하며 인종차별이라고 비판했다. 타란티노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흑인 친구들은 늘 서로 ‘깜둥이’라고 부른다며 웃어 넘겼다. 타란티노의 영화는 현실이 아니다. 모든 것이 재배치되고, 새롭게 해석되는 평행우주다. 

그것 역시 현실의 반영이라고? 찰스 맨슨을 숭배하는 히피족들은 이미지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자들이다. TV에 나오는 폭력적인 드라마들을 보면서 성장한 탓에 폭력적이 되었고, 그들을 타락시킨 감독과 배우들을 응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이미지는 곧 현실이다. 마약에 취해 눈앞에 보이는 환영도 그들에게는 현실이다. 그들은 허튼 망상을 믿고, 망상을 현실에 구현하려 한다. 그것이 현실에서 벌어진 찰스 맨슨 일당의 범죄였다.

영화나 TV 등의 이미지가 그들을 타락시킨 것이 이유일까? 아니다. 찰스 맨슨 일당이 호화 주택가로 침입하여 범죄를 저지르려 한 동기는 개인적 원한이다. 돼지새끼라던가, 그들의 어린 시절을 망쳐놓았다던가 하는 말들은 다 헛소리다. 그들에게 현실은 모두 왜곡된 이미지이고, 그들을 타락시키는 가짜가 된다. 그렇게 가짜와 진짜를 뒤섞으면서, 엉망진창인 히피들의 낙원을 허름한 목장에 구현한다.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한 가짜 현실을 만들어냈고 점점 망상에 사로잡힌다. 
 

영화에서 한 번도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정면으로 보인 적이 없는 스턴트 배우 클리프 부스는 스판 목장에 가자마자 알아차린다. 이곳은 가짜라는 것을. 히피들은 가짜를 진짜라고 세뇌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간다. 클리프는 언제나 자신이 가짜임을 알고 있으니까, 그들의 모순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린다. 영화 속의 그는 가짜이고, 현실의 그는 가짜로서 재현되는 자신을 받아들인다. 그것이 곧 타란티노의 영화 속 우주다. 영화의 세계야말로 지극히 구체적인 현실이고, 영화는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 그건 영화일 뿐이야, 라고 말해도 좋다. 이미 그 자체로 완벽한 하나의 우주를 만들어내고 있으니까.

클리프 부스는 아내를 살해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타란티노는 무엇이 진실인지 보여주지 않는다. 클리프는 정말 살인자일까? 필요하다면 클리프는 태연하게 살인을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클리프가 아내를 살해했는지 여부는 과연 중요한 것일까? 보통의 영화라면 그렇다.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타란티노는 모든 것을 그대로 내버려둔다. 지금 보이는 이미지만으로 그를 판단하고 빠져들게 만든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보여주는 이미지는 결국 가짜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가짜들로 구성된 세계에서 진실을 발견한다. 우리가 원했던 진실을, 타란티노는 유려하게 만들어내서 보여준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장면은, 극장을 찾아가는 샤론 테이트였다. 샤론 테이트는 자신이 출연한 영화 <렉킹 크루>(The Wrecking Crew>를 보러 간다. 자신이 출연한 배우라고 극장 직원에게 소개하고, 포스터 앞에서 사진을 찍고, 어두운 극장에서 스크린을 보며 미소 짓는다. 딘 마틴이 출연한 스파이영화. 영화에 출연한 자신을 보며 너무나 행복해 하는 샤론 테이트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쓰렸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그녀가 곧 죽어야만 한다니. 시간을 멈추고만 싶었다.

이미 타란티노는 <바스터즈:거친 녀석들>(2009)에서 히틀러를 살해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모두가 히틀러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있다. 그는 베를린의 지하 벙커에서 권총으로 자살했다. 그래도 타란티노는 굳이 특공대가 히틀러를 암살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유는 간단하다. 보고 싶으니까. 나의 세계, 내가 만든 영화에서 히틀러는 끔찍하게 죽어야만 하니까. 실제 역사가 어떻건 나의 우주에서 히틀러는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되어야 마땅하니까.

아마도 그런 마음일 것이다. 영화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상상이 아니라, 또 다른 우주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는 다른 세계에서 아마도 샤론 테이트는 행복하게 잘 살았을 것이다. 가끔 이웃의 릭 달튼과 술을 마시기도 하면서. 샤론 테이트의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순간 안도했다. 아, 그녀는 죽지 않았구나. 살아 있구나. 타란티노의 영화 속이라면, 나는 그녀의 모습을 언제나 볼 수 있겠구나.

그래서 너무나 좋았다. 타란티노 특유의 ‘헤모글로빈’은 마지막에 한 번 강렬하게 나올 뿐이지만, 그의 어떤 영화보다도 더 끌렸다. 단지 그녀가 살아 있는 우주를 선사해줬다는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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