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모시스 외 저우 타오, 2019

by.장병원(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 2019-12-20조회 6,957
오스모시스 스틸
이 리스트를 빌어 최근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접했던 현대 중국영화의 성취에 관해 언급하고 싶다. 기술과 물질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정신과 제도의 불모성에서 비롯된 사회, 정치적 문제들을 의제화한 과거 중국영화의 흐름과 결별하려는 시도들이 최근 등장한 몇몇 젊은 작가들에게서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2018년 이 리스트에 올린 <지구 최후의 밤>(2018)의 필감, 중국 현대영화의 지배적인 조류로부터 벗어나 장르의 스타일로 세공된 <백일염화>(2016), <더 와일드 구스 레이크>(2019)의 디아오 이난, 강력한 스토리텔링의 위업을 보여주는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2018)의 후보 등이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였다. 이들의 뒤를 이어 올해 등장한 저우타오의 <오스모시스>, 주셩저의 <프레젠트.퍼펙트>, 우 린펑, 이반 마르코비치의 <내일부터 나는>이 돋보인다.  
 
<오스모시스>

위에 거론한 세 편의 영화는 해석적이고 의미지향적인 중국영화의 과거 경향으로부터 이탈하려 한다는 점에서 한 맥락을 형성한다. 현대 미술가로 내외의 주목을 받고 있는 저우타오의 <오스모시스>는 의심할 여지없이 올해 가장 눈에 띄는 중국영화 중 한 편이었다. 디지털 기술의 도입 이후 예술 장르 간 융합의 흐름을 이끌고 있는 현대미술 분야에서 활동해 온 저우타오의 이 영화는 ‘무빙 어헤드 Moving Ahead' 라고 이름 붙여진, 올해 로카르노국제영화제의 신설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되었다. 리얼리즘과 로맨티시즘이 결합된 저우타오의 작품들은 국내에서도 비엔날레나 각종 기획전을 통해 간간이 소개되었다. 중국 서부의 위구르를 배경으로 한 <오스모시스>는 원시적 삶의 조건이 온존하는 마을에서 공생하는 인간과 동물들을, 서사의 논리를 따르지 않고 제시한다.  

이 영화의 설정은 문명사회에 사는 우리들이 한낱 동물과 다름이 없고 거대한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잊고 있음을 일깨우려는 것 같다. 저우타오는 인간과 동물이 서로 침투하면서 그들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경관을 묘사하면서 현실과 초현실이 중첩된 이미지를 통해 리얼리티를 재구성한다. <오스모시스>는 먼지와 눈보라, 변화하는 계절 같은 자연 경관들과 그 속의 인간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 생존을 위해 싸우는 다른 종족(동물)들을 교차하며 풍부한 이미지의 레퍼토리를 쌓아간다. 이야기의 계율을 따르지 않는 이미지의 흐름 안에서 인간, 동물 및 자연과 같은 일상적인 대상들을 기대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보여줌으로써 충격을 준다. 광대하고 숭고한 자연 환경조차도 인간의 흔적에 의해 새롭게 변형된 이미지로 나타날 수 있다. 동물에 대한 일부 묘사는 가학적이고 따라서 논쟁을 야기할 수도 있지만 이미지의 외설성을 강조하는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높은 해상도의 카메라로 촬영한 <오스모시스>의 이미지는 영화 기술을 생태화하려는 작가의 일관된 관심이 나타난 것으로, 지각과 현실 사이의 관계를 재고(再考)하기 위해 기술에 의해 매개되는 세계를 수정한다. 촬영, 구도 및 프레임은 엄격한 형식적 고려로 선택되었고 이미지의 서술은 서사에 종속되기보다 의식의 움직임을 따른다. 이미지를 만드는 모든 행위는 현실과 직접적인 접촉이고, 촬영 과정에 연루된 지각, 느낌, 기억은 이미지를 통해 개조될 수 있다는 신념을 이 영화는 품고 있다. 영화를 포함한 시청각 미디어의 진화로 인한 감각과 반응의 새로운 국면을 보여줌으로써 오늘날 영화 표현이 도달할 수 있는 극점에 가닿는 작품이다. 
 
<프레젠트.퍼펙트>

주셩저의 세 번째 장편영화 <프레젠트.퍼펙트>는 현대적인 인간관계를 새롭게 정의하고 있는 라이브 스트리밍의 세계에 초점을 맞춘 독창적인 다큐멘터리이다. 감독의 전작 <또 다른 해>(2017)의 정적인 스타일과는 대조적으로 대다수의 이미지가 픽셀화 되어 나타나고, 흑백 화면과 총천연색 텍스트의 대비가 선명하다. 800시간에 달하는 라이브 스트리밍 영상으로부터 추출한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중국의 개인방송 진행자들이다. 노동의 공간을 엔터테인먼트의 장소로 전환시키는 공장 여공과 건설 노동자, 익명의 거리 퍼포먼스로 존재감을 어필하려는 댄서, 끔찍한 화재사고로 화상을 입은 남자, 성장 호르몬에 문제가 있는 왜소증 사내, ‘좋아요’를 누른 사람들에게 연신 감사하다며 고개를 주억거리는 소녀 등 다면적 인물들의 사연을 배치한다. 현대 중국 사회에 관한 인상적인 초상화를 만들기 위해 채택된 삽화들은 오래 지속되는 쇼트와 관찰적인 접근방식을 통해 일상적 세계를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에 대한 이 감독의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준다. 

<프레젠트.퍼펙트>는 미학과 양식, 윤리의 관점에서 강력한 논쟁을 야기하는 영화이다. 정형화된 다큐멘터리의 문법으로부터 멀리 나아간 이 영화는 중국의 사회, 경제, 문화, 정치적 지형을 가상공간의 변화로 지도 그린다. 라이브 스트리밍은 오늘날 중국 사회 안에서도 위력적인 엔터테인먼트의 보고(寶庫)일 뿐 아니라 이 새로운 관계의 네트워크에 매달리는 이들에게는 거대한 기회이고, 수입원이다. 이 영화는 그들의 퍼포먼스가 돈이나 영향력으로 치환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다루면서, 라이브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수집한 다채로운 장면들을 편집하였다. 직접 접촉이 아닌 가상의 네트워크에 의해 운항되는 관계라는 사안을 다루는 관점과 태도, 탐구의 스타일, 형식의 긴장은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주셩저는 10개월 동안 12명의 주요 등장인물들과 관계하면서 그들이 온라인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욕망을 수집하였다. 다 보고 나면 시공간의 리얼리티, 실재성에 기초한 다큐멘터리의 기록적 특성이 이러한 대상을 다룰 때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라는 본원적인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내일부터 우리>

다네 콤렌의 <북쪽의 모든 도시들>(2016), 앙겔라 샤넬렉의 <나는 집에 있었지만>(2019)의 촬영감독이자 영화감독인 이반 마르코비치와 중국의 독립영화 감독 우 린펑이 공동 연출한 <내일부터 우리>의 주인공은 거대 도시 ‘베이징’이다. 놀랄만한 이미지의 조형과 세공으로 도시의 구성요소들을 탐구하는 이 영화는 베이징 교외에 거주하는 노동자의 일상을 추적한다. 내면을 읽기 힘든 주인공 리의 욕망과 기대는 삶을 여러 조각으로 나눈다.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면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하는 시대의 조류에 몸을 실은 리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반복적인 일상의 루틴에 갇힌다. 다른 이민자들과 마찬가지로 리는 지하의 작은 방에 산다. 후미진 지하실에서 그는 친구로 짐작되는 한 남자와 동거하고 있다. 현실에 좌절하거나 또는 항복하여 리는 도시가 요구하는 반복 작업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빠르게 팽창하는 도시는 그 크기만큼이나 거대한 미스터리를 품고 있어서 이 도시를 완전히 탐험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모든 등장인물을 비전문 배우로 채운 <내일부터 나는>은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요소를 혼합하여 도시화의 맥락 안에서 개인과 군중, 그들과 건축물 간의 관계를 기록한다. 달리 말할 것도 없이, 영화의 테마는 도시와 건축, 그 앞에서 위축되어 가는 인간 존재의 미미함이다. 도시는 현대화되었지만, 이 현대화에 기여한 사람들은 성장의 과실로부터 배제되어 그 이후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다. 이반 마르코비치와 우 린펑 감독은 베이징이라는 거대한 도시의 리듬과 빠르게 현대화되어 가는 그곳의 경관을 관습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카메라에 담는다. 일견, 도시의 역사를 탈각하고 외경에 밀착하여 다루는 이러한 태도는 이방인의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시장, 거리, 건물, 장막, 창문, 거울, 스마트폰 등의 장치를 활용하여 캐릭터를 격리하면서 억류된 존재의 조건을 형상화하는 영화는 도시 환경의 축소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밀려나는 소외감을 전달한다. 사회적인 문제를 피상적으로 다루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미지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운 기운이 전편을 장악한다. 

이 세 편의 영화를 통일된 경향으로 묶기는 곤란하다. 정치적, 문화적 동류의식에 기초한 이전 세대를 거스르면서 개개인의 개성을 분방하게 표출하는 반(反) 세대 영화들이라고 해야 할까. 출신성분과 세계관, 주제, 미학에 있어서 현저한 차이를 드러내는 젊은 작가들이 과거 중국영화에서 무시되거나, 강조되지 않은 요소를 조명함으로써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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