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빛 조민재, 2018

by.이용철(영화평론가) 2020-01-07조회 4741
작은빛 스틸
이미지는 오래 간다.

“감독은 데뷔작의 인물에 자신을 담을 수밖에 없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일 테고, 실제로 며칠 전 한 자리에서 올해 데뷔한 감독이 하는 말을 곁에서 듣기도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중영화에서 인물 하나에 자신을 툭 던져놓는 정도일 것이다. 대개는 그렇다. 자기 이야기를 한답시고 조용한 인물과 소소한 가족의 이야기로 일관하는 영화에 돈을 댈 대중영화 제작자는 거의 없을 터이기 때문이다. <작은 빛>(2018)은 조민재가 제작하고 연출한 작품이다. 작년 말 첫 번째 ’관객과의 대화‘에서 조민재 감독이 했던 말을 희미하게 기억할 즈음, 나는 1년이 지나 그와 다시 한 번 ’관객과의 대화‘를 가졌다. 그는 그 자리에서 <작은 빛>이 그의 자전적 이야기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냥 그의 삶이 조금 반영된 이야기일 거라고, 짐작할 즈음 그의 말을 듣게 됐다. 꼭 자전적 영화가 아니라 하더라도 평범한 인물의 평범한 삶의 풍경을 그린 독립영화를 근래 많이 보았다. 은은한 내음이 나쁘지 않지만, 자칫 향이 아예 안 나다시피 하는 심심한 영화도 여럿 있었다. 그럴 때 나는 보통 잠을 자게 된다. 영화가 만들어놓은 세계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잠을 자는 게 아니라 영화가 잠을 자게 만든다. 좋은 일은 아니다. <작은 빛>은 그렇지 않다, 고 자신할 수는 없다. 시작부터 홀라당 빠져 끝까지 눈을 깜빡이며 보았을 나 같은 사람도 있겠지만, 어떤 관객은 의미를 찾다 슬며시 다른 세상으로 갔을지도 모른다.

조용하고 평범한 영화란 어떤 것일까? 위에 써놓은 글을 반복하자면, 보통 사람의 일상을 굴곡 없이 담아놓은 작품이 한 예가 될 것이다. 이런 경우 대개 사건이 일어나지 않거나 일어나더라도 관심을 기울일 만한 것이 못 된다. 간단하게 말해 장르성이 너무 없어 재미가 없는 영화라고 해도 되겠다. 감독을 포함해 채 열 명이 안 되는 스태프로 찍은 <작은 빛>은 분명히 그런 범주에 속한다. 그런데 평범한 것과, 평범한 것을 그리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평범한 것도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이는 법이다. <작은 빛>의 도입부에서 나는 인물의 어머니가 지내는 허름한 방을 보았다. 내 눈에 제일 박힌 건 빗물이 배 얼룩진 벽지다. 아들이 오고 딸이 찾아오지만 아무도 그 벽지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흉해서 도배하자고 말할 법도 한데 그런 대사는 나오지 않는다. 두 번째로 불안해 보인 건 벽에 허술하게 박힌 전기 코드였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바뀌지 않은 벽지보다는 나은 게, 어느 날 아들이 전기 코드에 손을 댄다. 그것도 전등에 고장이 나서야. 공장에서 성의껏 일하던 그는 의외로 섬세하게 코드를 정리하지 않는다. 대충했다고 보는 게 맞다. 대충이라도 어쨌든 정돈된 덕분에 천정의 등은 제 기능을 하고 그들은 그 아래에서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눈다. 내 마음속 긴장은 그렇게 해소된다. 엉뚱한 사건을 만들거나 어울리지 않는 인물을 끼워 넣는 일은 <작은 빛>에 절대 없다. 위와 같은 일들이 그들을 설명하고 그들을 이해시키고 그들을 사랑하게 만든다. 감독이 그런 의도를 지녔는지, 그건 또 다른 문제다. 내게는 그랬다.
 

아들 진무가 엄마의 집을 찾았다. 휴가라고 둘러댔지만 거짓말이다. 그는 다니던 공장을 곧 그만둘 예정이다. 19분경, 의사가 진무의 수술을 언급한다. 잘못하면 기억을 잃어버릴 수 있으니 만반의 준비를 하라는 말도 더했다. 그가 엄마, 형, 누나, 그리고 백부의 집과 아버지의 묘를 차례로 방문하는 걸 보노라면 무언가를 정리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기억을 이유로 그는 캠코더를 들어 가족을 찍기 시작한다. ‘1. 잠든 어머니가 돌아누웠다, 2. 어머니와 조카 호선이 손바닥을 맞대며 논다. 3. 공장의 시계는 멈춰 있고 기계가 돌아간다. 4. 호선이 마당에 앉은 할머니, 삼촌, 엄마를 찍는다. 5. 형 정도가 문 앞에서 춤을 춘다. 6. 호선이 방에 앉은 할머니, 삼촌, 엄마를 찍는다. 7. 누나를 인터뷰한다. 8. 아들이 어머니를 인터뷰하고, 연결된 숏에서 어머니가 아들을 인터뷰한다. 9. 어머니가 터미널에서 아들을 배웅한다. 10. 어머니가 병실에 누운 아들을 찍다 이어 남편이 남긴 사진을 담는다.’ 조민재는 10개의 캠코더 신 바로 다음에 영화의 카메라로 캠코더 바깥의 인물을 찍어 붙여두었다. 1-1은 어머니를 향해 캠코더를 든 진무, 2-1은 잠자는 할머니와 호선, 3-1은 기계를 향해 캠코더를 든 진무, 4-1은 캠코더에 찍힌 가족을 보는 정도, 5-1은 동생이 떠난 후 정도가 보내는 시간, 6-1은 캠코더에 찍힌 가족을 보는 누나 현, 7-1은 동생이 떠난 후 현이 보내는 시간, 8-1은 방에서 잘 준비를 하는 어머니와 진무, 9-1은 아들을 배웅한 후 집으로 돌아와 고개를 숙이는 어머니, 10-1은 이듬해 여름 아버지의 묘를 이장하는 날.‘ 

● 정확하게 말하면 1번에 앞서 캠코더 신이 하나 더 있다. 진무가 집으로 가는 길에 버스에서 찍은 바깥 풍경일 텐데, 조민재는 그것을 빠르게 지나가는 추상적 이미지로 만들어 오프닝 크레디트로 삼았다.

이미지의 본질이란 측면에서 캠코더 신이나 카메라 신이나 다를 건 없다. 필름으로 영화를 찍던 시절에, 캠코더로 찍은 장면을 삽입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사실 두 개의 디지털 이미지 사이에 화질이 좋고 나쁜 것 외에 차이라곤 없다. 그래서 조민재는 캠코더 신과 카메라 신 사이에 어떤 블랙 이미지도 넣지 않고 점프하듯이 넘어와 버린다. 이것을, 필름의 유령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가 이미지를 이어붙이는 방식이라고 불러도 될까. 어쨌든 조민재가 캠코더 신과 카메라 신으로 짝을 짓는 방식은 그러하다. 영화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영화에서, 조민재는 그것을 그들의 삶의 흐름이라 부른다. 사건을 보겠다는데 삶의 흐름으로 박자를 만든다. 그 삶 또한 보통의 영화에서 보기를 기대하는 유와 거리가 멀다. 1번에서 10번에 이르는 캠코더 신은 그야말로 진무라는 인물이 기억을 간직하기 위해 애쓰는 태도에 다름 아니다. 아픈 남자가 어쩌면 잃어버릴지 모르는 기억을 담는 행위, 조민재는 설령 당신이 그것에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그것을 자기 영화에 담아 기억하겠다고 다짐한다. 1-1에서 10-1에 이르는 카메라 신이 바로 그의 다짐이다. 인물이 바라본 것을 그는 자기 카메라로 다시 확인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 알지 못하는 시간에 대한 호기심과 질문들, 얼굴을 맞대고 말하기엔 쑥스러웠던 사연들, 혼자의 시간으로 돌아와 조용히 되돌아보는 순간들‘ 조민재는 그것이 자신에게 소중한 어떤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것을 보여주는 것이 자신이 영화를 찍는 행위의 목적이라고 말한다.
 

진무의 캠코더와 조민재의 카메라가 기억하고 기록하는 행위는 영화 바깥에서 부여된 어떤 것의 도움을 받는데, 조민재는 그것을 일컬어 ’작은 빛‘이라 불렀다. 이미지를 기록하는 데 도움을 주었던 빛은 몇몇 장면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연히 드러낸다. 첫 번째 순간은 8분 40초쯤, 현이 아들과 함께 어머니의 집을 방문하는 날 오전이다. 어머니의 집은 서너 층짜리 건물들에 둘러싸인 탓에 빛이 스며들기가 힘들다. 오전의 짧은 순간에 빛은 골목 사이로 어머니의 집을 방문한다. 물론 집 전체는 아니고 오른편 지붕 정도에 불과하다. 오른쪽 한켠 지붕 위로 살포시 내려앉은 따뜻한 빛. 두 번째 순간은 가족이 외출하는 때다. 부감 쇼트로 첫 번째 순간을 포착했던 것과 반대로, 두 번째 순간은 마당의 위치에서 빛을 향한 방향으로 담겼다. 11월 초겨울의 빛은 얼마나 귀한 것인가. 빛은 이제 집에서 거의 사라지려 하고, 카메라는 조금이라도 그 빛을 붙잡으려 한다. 세 번째 순간은 아들이 돌아가는 날 아침이다. 빛은 며칠 전과 마찬가지로 오른쪽 창에 살짝 걸쳐 있을 뿐이다. 빛은 더듬거리는 듯이 창을 어루만지는데 떠나는 아들과 아들을 마중하는 어머니는 그것을 보지 못한다. 네 번째 순간은 회사를 그만둔 진무가 자기 방에 누웠을 때다. 그의 방에서도 빛은 박하다. 빛은 머리 부분에만 살짝 비추는 대신 강렬하다. 눈이 부신 진무는 인상을 쓴다. 그에게 빛은 낯설다.
 

낯선 남자의 아이를 밴 어머니는 아들을 둔 남자를 만나 결혼을 서둘렀다. 그리고 현에 이어 진무를 낳았다. 아내와 가족에게 주먹을 휘두르던 남편은 젊어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36살인 아들을 보며 아버지보다 더 나이를 먹었다고 알려준다. 어머니나 세 오누이나 다 유복한 편은 못 된다. 힘겹게 노동을 해야 살 수 있는 형편은 어머니부터 진무까지 다 똑같다. 빛은 때때로 그들 위에서 비치지만 그들은 그것을 제대로 느낄 틈이 없다. 너무나 작고 너무나 짧은 순간만 비추기에 빛은 남의 것처럼 느껴진다. 그들의 기억에 아버지는 원수 같은 존재다. 어머니는 죽은 남편에게 욕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수술 전, 진무는 창고에서 아버지의 카메라를 찾았다. 작동하는지 확인하려 셔터를 누르자, 플래시의 빛이 창고 밖으로 흘러나온다. 반짝, 반짝, 카메라는 세 번 빛을 발했다. 이 장면은 좀 특이한 곳에 배치되었는데, 조민재는 아버지의 묘를 이장하는 시퀀스 가운데 그것을 끼워놓았다. 빛이 외부에서 내려앉았던 것과 다르게, 이 장면에서는 작은 빛이 문틈 사이를 통해 바깥으로 발산한다. 바깥의 빛과 내부의 빛은 그렇게 서로 조응한다. 아버지의 유산인 카메라 속 묵은 필름엔 그가 기록한 옛 가족의 모습이 들어 있었다. 진무의 캠코더에 담긴 이미지를 보고 웃었던 가족들은 아버지가 남긴 사진을 보고 신기해한다. 그도 가족을 사랑했을까. 다섯 번째 순간은 이듬해 여름 즈음 아버지의 묘를 이장하는 날에 일어난다. 힘들게 아버지의 시신을 추린 뒤 어머니와 세 오누이와 손자는 산을 내려온다. 그들이 스쳐 가는 나지막한 숲 위로 빛이 내린다. 탁 트인 덕분인지 빛의 크기는 더 이상 작지 않고 한낮이 끝나 가는데도 금방 사라질 것 같지 않다. 빛은 가족 위로 쏟아져 내린다. 가족이 오른쪽에서 등장해 스크린 왼쪽 밖으로 사라질 때까지 빛은 변함없이 찬란하다. 빛은 그렇게 순환하는 삶을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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