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트롯 사무엘 마오즈, 2017

by.장영엽(씨네21 편집장) 2018-12-24조회 4,564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폭스트롯Foxtrot>(사무엘 마오즈, 2017)을 보자마자 올해의 사사로운 리스트에 재빨리 추가했다. 이스라엘 감독 사무엘 마오즈의 두번째 장편영화인 이 작품은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작으로, 2018년 만날 수 있었던 가장 독창적이고 유려하며 감각적인 작품 중 하나였다. 국내에서 다시 볼 기회가 요원한 것 같아 아쉽지만, <폭스트롯>이 어떤 영화인지 궁금한 관객이라면 웹상에 공개된 2분가량의 예고편(유튜브 바로보기)을 보길 권한다. 파트너 대신 총을 얼싸안고 무아지경으로 춤을 추는 군인이나, 무장 군인들이 지키는 검문소를 한 마리의 낙타가 유유자적 통과하는 장면만 보아도 이 영화가 한 프레임 안에 담아내고자 하는 다층적인 맥락을 짐작할 수는 있을 듯하다. <폭스트롯>에서 일상과 폭력과 유머는 장면마다 뒤엉켜 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은 종종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난감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복합적인 감정은 이야기가 전개될 수록 슬픔과 무력감으로 전환된다. 이스라엘 사회의 아이러니한 단면을 유려한 내러티브와 독창적인 비주얼을 통해 구현하던 <폭스트롯>은 영화의 말미에 이르러 인간의 의지로 바꿀 수 없는 운명과 세대를 거쳐 반복되는 비극의 연대기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작품의 스케일을 확장한다. 예상치 못한 우회로를 경유해 출발한 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그러나 출발지에서 무엇을 상상했든 목적지에서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는 영화. <폭스트롯>은 그런 연유로 마음이 가는 작품이다. 
 
폭스트롯 스틸

세 갈래의 이야기로 진행되는 <폭스트롯>은 부분을 통해 전체를 가늠하기 어려운 영화다. 이 작품의 내러티브는 많은 부분을 빈칸으로 비워두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조금씩 그 빈칸을 채워나가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사건의 전말과 인물의 속마음이 공개되는 세 번째 파트에 가서야 관객은 퍼즐을 완성할 수 있는데,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기까지 텐션을 잃지 않는 연출자의 솜씨가 대단하다. <폭스트롯>의 이야기는 이스라엘 텔 아비브에 사는 부르주아 부부, 미카엘과 다프나로부터 출발한다. 어느 날 갑자기 비극이 그들의 집 현관문을 두드린다. 군대에서 복무 중이던 아들 요나단이 죽었다는 소식이다. 부부는 크게 상심하지만, 신속하고 기계적으로 진행되는 장례 절차는 그들에게 아들을 애도할 최소한의 시간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몇 시간 뒤 부부의 집을 찾아온 군인들은 뜻밖의 소식을 전한다. 두 번째 이야기는 미카엘과 다프나의 아들 요나단이 근무하는 이스라엘 북부의 국경을 배경으로 한다. 인적 없는 국경에서 요나단과 동료들이 하는 일이라곤 이따금 초소를 통과하는 사람들의 신분을 확인하거나,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리며 소일하는 것이다. 전시 중의 국경이라기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볼품없는 요나단의 초소는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총격 사고로 지옥이 된다. 세번째 파트에 해당하는 영화의 후반부에서는 다시 미카엘과 다프나 부부가 등장한다. 서먹해져 버린 그들의 관계는 영화의 초반부와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두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 밝혀지는 진실은 충격적이면서도 서글프다. 

사무엘 마오즈는 외상을 입은 인간의 마음 상태를 시각적으로 구조화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감독이다. 그건 아마도 전쟁의 후유증을 크게 앓았던 그의 과거와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마오즈는 1982년 레바논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이스라엘의 여느 청년들처럼 전쟁에 참전했다. 그리고 사람들을 죽였다. 영화감독을 꿈꾸던 청년이었던 그는 전쟁에서 살아온 뒤로 오랫동안 카메라를 들지 못했다. 그러다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모티브로 한 영화 <레바논Lebanon>(2009)(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을 만들었다. 대부분 장면을 밀폐된 탱크 안에서 촬영한 이 작품은 오직 포수(사무엘 마오즈 자신이 포수였다고 한다)의 스코프를 통해 탱크 밖 세계를 조명하며 관객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당신이라면 방아쇠를 당길 수 있겠습니까? 영화 속 등장인물들과 관객이 세계를 보는 도구인 스코프는 <레바논>에서 한 치 앞 운명을 알지 못하는 군인들이 느꼈을 노이로제와 공포감을 실감 나게 표현하는 데 일조했다. 

폭스트롯 스틸

전작에 비해 내러티브와 공간의 폭이 확장된 두 번째 장편영화, <폭스트롯>에서도 역시 사무엘 마오즈는 챕터(편의상 그렇게 부르기로 하자)에 따라 달라지는 등장인물과 그들의 심리 상태에 조응하는 시각적 표현 기법을 명민한 감각으로 취사 선택하고 있다. 먼저 첫 번째 챕터가 묘사하는 아버지 미카엘의 세계는 현기증을 유발할 정도로 단정하고 억압되어 있다. 그는 아들을 잃은 슬픔에 살갗이 벗겨질 정도로 뜨거운 물에 손을 담그며 자학할지언정 다른 사람들 앞에서 목놓아 울지 않는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부모 세대를 둔 덕분이다.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미카엘의 부모 세대는 자녀로 하여금 그들의 아픔이 홀로코스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는 법을 가르쳤다. 아들의 부고 소식을 전하는 미카엘과 그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표정만으로 관객은 세대 간의 불발되는 소통과 그로부터 작동되었을 미카엘의 방어기제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미카엘과 달리 요나단의 세계는 지나치게 환상적인 필치로 묘사된다. 파스텔톤의 하늘과 황량한 벌판에 울려 퍼지는 낭만적인 재즈 넘버, 물 위에 비치는 군인들의 댄스 장면은 요나단의 세계를 전시 중의 국경이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법한 장소처럼 묘사하고 있다. 요나단과 세 명의 젊은 군인들은 지나치게 나이브하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총을 껴안고 춤을 추는 그들은 스스로를 온라인 사격 게임 속 스나이퍼같은 존재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총을 들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누구에게도 상처를 입히지 않고, 상처를 받을 일도 없는. 그러나 분명한 경고의 신호조차 감지하지 못한 그들은 환상에 젖었던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된다.   

영화의 제목인 ’폭스트롯’은 ’어느 방향으로 가든 원래 시작했던 곳으로 돌아오게 되는’ 특성을 가진 춤의 이름이다. 사무엘 마오즈는 결말에 해당하는 영화의 세,번째 챕터를 통해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듯 보였던 아버지와 아들이 실은 같은 춤을 다른 방식으로 추고 있었다고 말한다. 두 사람의 삶을 관통하는 건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과 죄의식이다. 마오즈는 극 중 요나단이 만화로 그린 미카엘과 요나단 자신의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삽입함으로써 세대를 거쳐 반복되는 이스라엘인들의 트라우마를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불가사의한 운명의 작용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몸으로 운명에 부딪혀보려는 인간의 의지가 하나의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폭스트롯>의 세 번째 챕터는 그리스 비극을 닮았다. 그동안 이스라엘 사회가 직면한 전쟁과 그로 인한 희생을 다룬 영화는 많았다. 하지만 <폭스트롯>처럼 잔인함을 전시하지 않고 눈물을 강요하지 않으며 다층적인 맥락과 독창적인 시각으로 비극의 연대기를 탐구하는 작품은 드물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사무엘 마오즈의 <폭스트롯>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폭스트롯>은 지난해 이스라엘 사회에서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실수로 아랍 청년들을 죽인 뒤 사건을 은폐하려고 하는 극 중 장면 때문인데, 이스라엘 문화부 장관인 미리 레제브가 "세계에서 가장 윤리적인 군대를 부정하며 젊은 세대를 선동하고 있다"며 영화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좌파 진영에서는 이 영화가 전쟁을 너무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며 ’점령의 미학’을 선보이는 영화라고 비난했다. 어찌 되었건 이 영화는 심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고 있을 이스라엘인들의 마음을 어떤 방식으로든 끓게 만든 것 같다. 과거의 아픔을 망각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이들의 발목을 잡고 지금 여기에서 여전히 비극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하는 사무엘 마오즈의 <폭스트롯>은 지금 현재 가장 뜨거운 이스라엘 영화다. <쇼아Shoah>(1985)의 감독 클로드 란즈만이 세상을 떠난 2018년, <폭스트롯>을 만난 건 정말이지 의미심장한 우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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