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과 예술, 여성의 경계를 넘어 정주행, 임순례 감독 아름다운 생존: 한국여성영화감독 ⑥

by.이화정(씨네21 기자) 2018-12-12조회 2382
임순례

‘소중한’ 흥행이었다. 올 초 개봉한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의 흥행은 극장가에 고무적인 사건이었다. 남성중심의 장르영화가 각광받는 분위기에서 <리틀 포레스트>의 흥행을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적은 제작비에, 김태리가 첫주연을 맡은 작품. 도시생활에 지친 혜원이 시골로 돌아와 꾸려가는 일상의 이야기가 전부다 보니 스토리라인도 단조로웠다. 임순례 감독이 <제보자>(2014)의 흥행에 실패한 후 꽤 오랜만에 내놓은 신작이니 전작의 흥행이라는 수식어도 없는, 소위 업계의 표현대로라면 ‘총알이 부족한’ 영화였다. 

개봉 2주차 흥행 역주행을 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앞서 열거한 모든 흥행 약점들은 <리틀 포레스트>를 관람하는 관객들에게 오히려 강점으로 다가왔고 극장가 비수기임에도 영화는 150만 명이 넘는 관객으로 흥행 반열에 올랐다. 관객들은 남성 캐릭터 위주의 극장가에 등장한 여성 캐릭터에 환호했고, 소소한 이야기로 자극적인 설정의 장르영화에 지친 마음을 달랬다. <리틀 포레스트>의 흥행은 더 이상 남성 캐릭터의 등장과 자극적인 설정, 높은 예산의 영화만 흥행할 수 있다는 투자자들의 변명을 불식시킬 수 있는 선례를 제시했다. 무엇보다도 1996년 장편 <세친구>로 데뷔, 올해 22년. 임순례 감독의 저력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했다. 

임순례
<세상밖으로> 스크립터 시절 이경영, 문성근, 여균동과

숲세권, 슬로우 푸드, 소확행 등의 가치 언어가 통용되는 사회. 일본 원작이 있지만, 혜원의 시골생활은 경쟁사회에서 벗어나 삶의 가치를 찾고자 하는 지금 대한민국 젊은 층의 사고를 여실히 반영한 작품이었다. 2018년의 ‘트렌드’를 담아낸 영화 같지만, 이 이야기가 탄탄하게 힘을 받은데는 임순례 감독이 지난 영화들을 통해 보여준 지향점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경쟁사회의 논리에서 벗어나 소외받는 이 사회의 약자를 향한 마음, 근 10년 간 지속해 온 유기 동물을 보호하는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KARA)의 대표를 역임하며 보여준 동물과 자연에 대한 사랑, 여성영화인 모임의 활동에서 이어진 끈으로 현재 명필름 심재명 대표와 함께 성평등센터 든든의 센터장으로 일하며 여성에 대한 지지를 아끼지 않았던 임순례 감독의 철학이 모두 담긴 결과물이었다. 

<리틀 포레스트>로 또 한 번 임순례 감독의 건재함을 입증한 현재, 데뷔 초부터 지금까지 임순례 감독의 시간들을 살펴보려한다. 임순례 감독의 지난 역사를 돌아보는 건 ‘한국에서 그 시절, 여성이 어떻게 영화감독이 되고도 중심을 잃지 않고 꾸준히 차기작을 내놓고 호평 받는가’에 대한 답변과도 같을 것이다. 임순례 감독이 처음 영화계에 뜻을 품고 입문하기까지 90년대 초반의 상황으로 볼때 감독 데뷔까지는 쉽지 않은 굴곡이 있었다. 감독들의 데뷔까지의 과정을 기술한 『데뷔의 순간』(주성철 저)에 보면 “여자라서” 영화감독이 되는 걸 불가능해 보인다는 시선에 처음엔 꿈을 접고 처음엔 영문학과를 택하기도 했으며, 감독을 꿈꾸는 여자들 대부분이 스크립터 역할이 주어지던 때라, 오히려 그 인식을 피하려고 부러 연출부의 다른 포지션을 꿈꾸기도 했다는 일화가 나온다. 어쨌든 감독이 되고자 하는 목표를 정하고 우회로를 탐색하던 끝에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온 그는 여균동 감독의 <세상 밖으로>(1994)의 연출부에서 스크립터로 일한다. 그 시기에 임순례 감독이 스스로 만든 영화가 독립단편 영화로 엄청난 호평을 이끌어낸 <우중산책>(1994)이었다. 변두리 삼류극장에서 근무하는 매표직원 여성의 이야기를 응시한 작품으로 제1회 서울단편영화제에서 최우수상과 젊은 비평가상을 수상했으며, 영화계가 임순례 감독을 주목하는 계기가 된다. 마침 당시는 삼성영상사업단을 통해 대기업 자본이 충무로에 유입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그전까지 일반적이던 충무로 도제시스템을 통해 입봉을 하려했다면 장벽이 될 요소들이 없지 않았지만, 영화제 수상으로 입증한 재능을 인정받으며, 임순례 감독의 장편 데뷔는 다소 빨리 찾아왔다. 그렇게 2년 후 <세 친구>(1996)가 첫 장편 연출작이 되었다. <미망인>(1955)으로 한국 최초의 여성감독으로 수식되는 박남옥 감독 이후 흔치 않은, 한국 여성감독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기록할 만한 등장이었다.  

임순례
<세친구> 주인공들과 함께

<세 친구>와 이후 <와이키키 브라더스>(1996)까지, 단편 <우중산책>과 더불어 임순례 감독의 초기작으로 불리는 세 작품은 다르지만, 무력한 청춘의 모습이라는 점에서는 같은 선상에서 바라보게 되는 영화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하지 못한 세 친구가 갑작스레 날아온 입영통지서를 받고, 군 면제를 받기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가 청년에게 가하는 압박과 모순을 여실하게 보여준 작품으로 호평 받았으며, <세 친구>에서 묘사된 씁쓸한 청춘의 삶은 차기작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로 이어진다. 나이트클럽에서 연주하는 남성 4인조 밴드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리더 성우(이얼)이 떠났던 고향 수안보 와이키키 호텔에 다시 찾아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꿈꾸던 밴드일을 하고 있지만, 생활에 치여 허우적대는 30대 밴드 마스터와 그가 바라보는 친구들의 현재가 씁쓸하게 묘사된다. 마치 <세 친구>의 막막한 청춘의 20년 후를 들여다보는 게 아닐까 싶은 드라마 장치를 통해 임순례 감독은 개개인을 압박하는 사회를 향한 비판적인 화두를 또 한 번 던지고 있다. 

잇단 비평적인 호평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임순례 감독의 시장에서의 입지는 미약했다. 호평과 반대로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았던 임순례 감독은 장편 차기작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가 2000년대 초반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류승완 등의 감독이 대거 출연하며 한국의 장르영화가 ‘뉴웨이브’라는 말로 지칭되며 활황을 맞기 시작할 때 정작 여성감독들의 입지와 여성이 주최가 되는 영화들은 자취를 감추었던 시절이다. 그 사이 임순례 감독은 인권영화 옴니버스 프로젝트 <여섯 개의 시선>(2003)중 한 편인 <그녀의 무게>를 연출했다. 외모지상주의인 사회에서 한 여성의 극단적 선택을 그린 작품으로, 단편 <우중산책>에서부터, 이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7), <날아라 펭귄>(2009) 등에서 임순례 감독이 표방한 여성 서사와 맥을 잇는 작품이기도 했다. 하지만 장편 연출의 기회는 쉽게 찾질 못했던 휴지기이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임순례 감독의 ‘부활’을 알리는 기회가 찾아온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활약한 여자 핸드볼 선수단의 활약을 그린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은 임순례 감독은 자신이 가진 주제가 대중과의 접점을 획득한 첫 순간이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함께 한 명필름과 함께한 작품으로, 전작으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걸린 6년 만의 신작이었다. <우생순>은 모든 면에서 기록적인 작품이었다. 전작의 흥행을 입증하지 못한 감독이 시장의 기대를 얻지 못한 채 손을 댄 작품이자, 흥행 취약장르인 스포츠 영화라는 우려도 가지고 있었다. 또 여성이 전면에 나선 여성 주연 영화라는 점도 우려의 지점이었다. 기획으로만 보자면 역시 대중의 선택을 벗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애초 ‘여성감독’으로서 의식을 배제한 채 매 작품 임했던 그가 침체된 여성감독의 입지를 마련하겠다는 목표는 아니었으라. 하지만 “이번만은 손익분기점을 맞추겠다”는 감독 자신의 의도에서 시작해, 4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이룬 성공은 당시 충무로 여성감독의 명맥을 환기하는 기록할 만한 성과이기도 했다. 영화 속, 여성으로, 주부로, 비인기종목으로 소외당하고 차별받는 국가대표 여성 핸드볼 선수들의 처우와도 겹쳐지며 묘한 쾌감을 불러일으켰고,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 냈다.  

<우생순>은 소외받는 핸드볼 선수들의 분투라는 점에서 다분히 상업적인 스포츠영화의 공식을 따르고 있음에도, 임순례 감독의 전작 <세 친구>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씁쓸한 정서를 나눠 갖는 작품이기도 하다. 다소 ‘마이너’하다 칭해졌던 요소들을 탈피하고자, 나현 작가가 시나리오 작업에 합류해 감동이 있는 휴먼드라마의 틀을 완성했으며, 스포츠영화가 줄 수 있는 스펙터클한 촬영과 편집 역시 쾌감을 불러일으켰다. 지금의 <리틀 포레스트>가 그랬듯, 약점이라고 지적된 <우생순>의 모든 요소들이 오히려 극장가에 신선한 환기를 시켜주는 요소로 다가온 결과다. 

임순례
임순례, 이미례, 박남옥, 이정향

이후 임순례 감독은 기존 약자를 돌아보던 시선을 확장해 우리 사회의 모순을 짚어보는데 관심을 기울여 왔다. 사교육 열풍, 기러기 아빠 문제와 식성과 취향 등에 인색한 우리사회의 풍경을 모자이크 한 <날아라 펭귄>을 거쳐, 시골로 내려간 아나키스트 최해갑 가족의 충돌을 통해 자본주의, 환경 파괴, 국가, 교육의 문제를 되새김질 하는 <남쪽으로 튀어>(2012), 2005년 있었던 황우석 사건을 모티브로 줄기세포 조작 사건을 다룬 <제보자>(2014)등에서 보여준 일련의 흐름은 임순례 감독의 색깔로 다가왔다. 또한 그 사이 상업영화의 사이즈에 머물지 않고 작은 영화의 기획과 연출로도 활동을 이어왔다. 우시장에 몰래 소를 팔러 갔다가 소와 여행을 하며, 자아를 찾는 한 남자의 내적 성장을 그린 작품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2010)을 연출하며 자신의 삶의 철학을 견지해 왔으며, 연출가의 역할을 하는 그 시기, 동물보호를 위한 옴니버스영화 <미안해, 고마워>(송일곤 , 오점균 , 박흥식 , 임순례, 2011)의 제작 총지휘와 연출을 하는 등의 활동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영화로 실천해 오기도 했다. 

가장 최근 임순례 감독을 만난 건 영화계 성폭력 예방, 피해자 지원을 모색하는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의 센터장으로서였다. 『씨네21』과 든든이 함께 모색할 수 있는 지점들을 찾아보자는 생각에 함께 센터장으로 역임된 명필름 심재명 센터와 회의를 가지기도 했는데, 영화계에서 소외된 ‘여성’의 인권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임순례 감독은 그 존재감만으로도 든든함을 안겨준다. 지난 3월 열린 개소식에서 임순례 감독은 “미세먼지가 많다고 활동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지 않냐”며 미투운동은 “권력을 가진 남자의 횡포와 이에 공적으로 보호할 장치를 갖추지 못한 한국 사회 전체의 구조적 문제이자 어둠이라고 생각한다”는 말로, 각종 편견에 찬 시선으로 위축됐던 미투운동에 대한 지지운동을 전달하며, 미투운동의 선봉에 나서고 있다. 

임순례 감독이 개진해 온 필모그래피 자체에 충무로가 가진 구조적 문제와 해결 방법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순례 감독은 그런 면에서 배급과 투자가 규모가 큰 영화로만 몰리”는 상황에서 여성감독의 약세를 몸소 겪고 지켜보면서, 영화계 수직계열화의 흐름에서도 설 자리를 잃지 않고 지금의 성과를 거둔 대한민국 대표 감독이다. 인터뷰에서 그가 한 발언 중 “자주 영화를 그만둘까”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소통하는 매개체로서 영화의 매력”을 놓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을 곱씹게 된다. 지난 22년 그가 내놓은 작품들을 통해서 우리는 그가 소통하고자 하는 캐릭터가 이 사회의 힘없는 청년, 여성, 소외된 자, 그리고 보호받아야 할 동물들이라는 점을 알게 됐다. 그렇기에 그 소통의 창구를 지속적으로 열어준 임순례 감독의 자리가 지금의 극장가에 얼마나 소중하고 필요한지 절실히 깨닫게 된다. 다시 한 번 <리틀 포레스트>의 성공 이후 임순례 감독의 행보가 기대되고 또 매번 응원하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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