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연재]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 1980년대 에로티시즘 사극 80년대 한국영화, 카오스의 이색지대 ⑩

by.김형석(영화저널리스트, 전 스크린 편집장) 2018-07-31조회 13,211
엄종선 감독의 <변강쇠>(1986)의 변강쇠(이대근)와 옹녀(원미경)

한국영화사에서 사극의 전성기는 1980년대였다. 하지만 ‘전성기’라는 표현은 이중적이다. 1980년대는 1970년대부터 하락하기 시작한 한국영화 산업이 장기 침체로 접어든 시기. 사극은 1960년대 신상옥 감독의 신필름이 주도한 이후 충무로를 대표하는 ‘대작’ 장르였다. 그런데 1980년대에 오면, 사극은 과거의 위용에서 멀어지며 양적 팽창에 전념한다. 그리고 그 중심은 ‘에로티시즘 사극’이었다.

모두 ‘에로’를 지향한 건 아니었다. 전통의 올곧은 계승은 있었다. 사극의 서브 장르 중 하나인 ‘여인 잔혹사’는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이두용, 1984) <자녀목>(정진우, 1985) <씨받이>(임권택, 1987) 등의 수작들을 보유했다. ‘궁중 사극’의 흐름도 건재했다. 이두용 감독은 신상옥의 <내시>(1968)를 나름의 스타일로 뛰어나게 리메이크 했다. 신상옥의 영향력은 여전했는데 그의 <연산군>(1961)과 <폭군 연산>(1962)을 잇는 <연산군>(이혁수, 1987)과 <연산일기>(임권택, 1988)가 등장했다. 계유정란을 다룬 <사약>(김효천, 1984), 당시 사대부와 왕실을 농락했던 여인의 이야기 <어우동>(이장호, 1985) 등도 만들어졌다. 임권택의 <흐르는 강물을 어찌 막으랴>(1985)도 빼놓을 수 없는 ‘사대부 사극’이다. 배창호는 <황진이>(1986)에서 미학적 실험을 했고, <박철수의 헬로 임꺽정>(박철수, 1987)도 당대 사극의 독특한 지점이었다.
 
(상단 왼쪽부터 지그재그) <물레야 물레야> <자녀목> <어우동> <연산일기>. 1980년대 ‘A급 사극’의 계보.
(상단 왼쪽부터 지그재그) <물레야 물레야> <자녀목> <어우동> <연산일기>. 1980년대 ‘A급 사극’의 계보.

여기까지는 1980년대 나름의 ‘A급 사극’ 리스트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사극’, 즉 ‘B급 사극’, 좀 더 구체적으로 ‘에로 사극’ 이야기를 하려 한다. 1980년대 에로 지형도에서 사극이 처음부터 야한 기운을 얻은 건 아니었다. 1980년대 초엔 홍콩과의 합작이나 위장합작을 통해 만들어진 무협 사극이 쏟아졌고, <팔불출>(고응호, 1980)처럼 코미디나, 호러 장르 혹은 종교 영화 등과 결합되었다.

변화의 조짐은 1980년대 중반에 보였다. <어우동>과 <변강쇠>(엄종선, 1986)는 에로의 원투 펀치와도 같은 결정타였다. 특히 <변강쇠>는 모든 것을 규정했다. 이 영화의 변강쇠(이대근) 이후 절륜한 정력을 지닌 거구들이 스크린에 횡행했으며, 옹녀(원미경) 이후 독거미처럼 남성을 옭아매는 치명적 성욕의 소유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역사와 민속의 장이었던 사극은 바야흐로 적나라한 욕망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정작 <변강쇠>의 시작은 의외로 근엄하다. 18세기 영조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변강쇠>는 이 영화의 의의를 설명하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성 윤리의 해학적 의미의 참뜻을 에로티시즘으로만 간과하려는 상업성을 탈피하면서, 그 시대의 유랑 서민들의 웃음과 눈물을 서사적 영상미로 승화시켜 무분별한 성은 곧 자기 파멸이라는 교훈을 던짐으로써, 우리 고전의 진정한 의미를 오늘에 재조명하고자 한다.”
 
 <변강쇠>는 1980년대 에로 사극의 모든 것이었다. 이 영화는 변강쇠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결국은 옹녀의 유랑으로 끝을 맺는다.
<변강쇠>는 1980년대 에로 사극의 모든 것이었다. 이 영화는 변강쇠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결국은 옹녀의 유랑으로 끝을 맺는다.

다소 중언부언하는 서론이지만, 판소리 <가루지기전>을 원작으로 하는 <변강쇠>는 에로티시즘을 해학과 교훈의 방식으로 다루겠다고 선언한다. 해학이라 한다면 정사로 산이 뒤흔들리며 옹녀 때문에 줄초상이 나 한 마을 남자의 씨가 마르는 식의 과잉된 성적 표현일 것이다. 한편 교훈이라면 술에 취해 장승을 뽑은 변강쇠가 신령에 시달리다 죽게 되는, 정력의 과시가 불러온 비극일 것이다. 하지만 이후 에로 사극은 교훈보다는 해학에 방점을 찍으며 <고금소총> 시리즈(지영호, 1988~95) <호걸 춘풍>(이혁수, 1987) <이조 춘화도>(박호태, 1988) <껄떡쇠>(김진국, 1989) <후리꾼>(최거영, 1991) 등 ‘호색한’이 이곳저곳을 누비며 방사를 벌이는 영화들이 이어진다. 

여기서 에로 사극의 위대한(!) 점은 단지 남자의 욕망만 만족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 <변강쇠>에서 더욱 흥미로운 캐릭터는 옹녀다. 변강쇠를 만나기 전까지, 그녀의 딜레마는 언제나 욕정의 결핍 상태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그녀와 관계를 가진 남자는 모두 죽는다. 남성의 죽음을 담보한 섹스의 히로인 옹녀. 그녀는 언제나 겁탈이나 보쌈의 위협에 시달려야 하는 수절 과부의 반대편에 있는 공격적 섹슈얼리티의 여성이다. <변강쇠>의 첫 장면, 옹녀는 첫날 밤에 스스로 옷고름을 풀고 남성의 옷을 벗기고 불을 끈다. 첫날 밤 장면은 과거의 사극에서 숱하게 반복되었지만, <변강쇠>의 옹녀는 그 관습을 과격하게 파괴하는 적극성을 보여주며, 이어지는 정사 신에서도 그녀가 섹스를 리드한다. 그리고 결국엔 자신과 궁합이 맞는 남자를 직접 찾아 나선다.
 
 이대근은 1980년대 에로 사극의 간판 스타였다. (왼쪽부터) <호걸 춘풍> <고금소총> <가루지기>의 이대근.
이대근은 1980년대 에로 사극의 간판 스타였다. (왼쪽부터) <호걸 춘풍> <고금소총> <가루지기>의 이대근.

변강쇠뿐만 아니라 옹녀 캐릭터도 이후 후손들을 거느리며 이른바 ‘궁합 장르’, 즉 강한 양기와 음기를 지닌 남녀가 드디어 만나 완벽한 궁합을 이룬다는 내용의 영화들이 등장한다. <속 변강쇠>(엄종선, 1987) <변강쇠 3>(엄종선, 1988)를 비롯 <가루지기>(고우영, 1988) <합궁>(남기남, 1988) <고금소총 2>(지영호, 1990) <색녀도>(박호태, 1990) 등이다.

옹녀가 영감을 준, 에로 사극의 또 다른 흐름은 ‘유랑녀 서사’다. 이것은 <어우동>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마치 ‘호스티스 멜로’를 연상시킨다. 가난, 집안의 몰락,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 공동체의 추방…. 여러 이유로 떠도는 여성은 결국 몸을 팔게 된다. 여성의 운명성을 에로티시즘과 결합한 컨셉트로, <됴화>(유지형, 1987)는 아예 저주를 타고난 여성의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이후 <호호전>(박호태, 1988) <들병이>(유진선, 1989) 등도 이 범주에 포함된다. 

‘에로티시즘’이라는 강렬한 이미지가 있긴 했지만, 에로 사극 역시 사극 장르의 한 갈래였고, 그런 의미에서 시대적 테두리를 벗어나진 못했다. 즉, ‘계급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이 장르의 많은 것을 규정했고, 여기서 만들어진 긴장 관계가 오히려 에로티시즘 강화하기도 했다. 이른바 ‘씨받이 장르’는 대표적이다. 반드시 남자를 통해 대를 이어야 했던 조선 시대, 양반들은 대를 잇기 위해 소실을 두거나 오로지 아들 생산을 위한 도구인 ‘씨받이’를 두곤 했다. 이 설정에서 수많은 변주가 이뤄졌다.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가 대표적. <변강쇠> 시리즈의 엄종선 감독이 만든 <사노>(1987)은 숨겨진 수작인데, 나이 든 양반이 하녀 오월(원미경)를 건드리자, 그녀와 결혼을 약조한 머슴 들판(이대근)은 오월을 데리고 도주한다. 이외에도 <잦은 방아야>(김병기, 1989) <살꼬지>(김인수, 1989) <요화경>(박호태, 1988) <소녀경>(박호태, 1992) 등이 있으며 <빨간 앵두> 시리즈는 3편(박호태)에서 갑자기 사극으로 선회해 씨받이 이야기에 <변강쇠> 콘셉트를 결합한다.
 
<변강쇠>로 신드롬을 일으킨 엄종선 감독, 이대근, 원미경이 다시 만난 <사노>는 숨겨진 수작이다. 이 영화의 결말은 서늘하면서도 통렬하다. 
<변강쇠>로 신드롬을 일으킨 엄종선 감독, 이대근, 원미경이 다시 만난 <사노>는 숨겨진 수작이다. 이 영화의 결말은 서늘하면서도 통렬하다.

씨받이만 있었을까? 아니다. 대를 잇지 못하는 집안에서 그 문제가 남자 쪽에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 마님과 은밀하게 통정할 ‘씨내리’가 등장하기도 했다. 주로 튼실한 머슴이 그 역할을 수행하는데, 이두용 감독의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는 이 분야 최고의 걸작. 하지만 이후 에로틱해지면서 약간은 <변강쇠> 톤으로 변했고, <소녀경>에선 씨받이와 씨내리가 관계를 맺는 단계에 이른다. 이외에도 <홍두깨>(김준식, 1990) <씨내리>(남기남, 1993) 등이 있다. 

<씨받이>처럼 여성의 육체(자궁)을 어떤 도구로 이용했던 과거를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화도 있었지만. 씨받이와 씨내리가 등장하는 영화들은 그 자극적 캐릭터로 인해 대부분 선정주의와 소재주의로 치달았다. 그러면서 개척된 분야가 이른바 ‘회춘녀’ 장르다. <어울렁 더울렁>(차성호, 1986)은 그 시작. 이른바 ‘목밀녀’, 쉽게 말하면 ‘대추녀’ 순이(김문희)가 주인공이다. 대추녀는 양반들이 원기를 회복하기 위해 둔 스무 살 정도의 하녀로, 아침에 여성의 그곳에 대여섯 개의 대추를 넣었다가 저녁에 꺼내먹으면 젊은 여성의 기를 받아 정력이 회복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씨받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여성의 육체를 도구화하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종종 몸을 묶는 SM 관계의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다소 변태적인 설정이지만, “올해 같은 흉년에 살아남기가 쉬운 줄 아느냐!“라는 양반의 호통 앞에선 순순히 응할 수밖에 없었다. ‘유랑녀’처럼 ‘대추녀’도 가난 때문에 몸을 팔아야 했던 여성에 대한 이야기로 <목밀녀>(차성호, 1988) <회춘녀>(방순덕, 1989) <춘화춘풍>(최기풍, 1990) <소녀경> 등 적잖은 영화들이 다루고 있다. 흥미로운 건 <이조 춘화도>나 <고금소총> 같은 영화들인데, 이 영화에서 긴 세월 동안 병을 앓던 여성들은 섹스를 통해 그 병을 치유한다. ‘회춘녀’의 반대편엔, 여성의 묵은 성욕을 해소시켜 주던 ‘육봉남’들이 있었던 셈이다.
 
(왼쪽) <홍두깨>는 씨내리 장르의 영화다. (오른쪽) ‘대추녀’ 장르의 시작인 <어울렁 더울렁>. 이 장르는 종종 SM 컨셉트로 흐르곤 했다. 
(왼쪽) <홍두깨>는 씨내리 장르의 영화다. (오른쪽) ‘대추녀’ 장르의 시작인 <어울렁 더울렁>. 이 장르는 종종 SM 컨셉트로 흐르곤 했다.

가부장적 계급 사회가 만든 또 하나의 캐릭터는 수절하는 젊은 과부다. 언제나 은장도를 꺼내 들고(하지만 자결하진 못한다), 열녀문 기둥을 어루만지는(결국 그것은 무너지게 된다) 그녀들은 1980년대 에로 사극의 가장 모순적 인물들이었는데, 그들은 시대의 규율에 의해 한없이 욕망을 억눌러야 했지만 결국 본능을 선택한다. <마님>(김인수, 1987)는 이 분야의 전형적인 작품. 마님(김문희)은 몇 년 째 수절 중이며 열녀문을 하사 받은 정숙한 여자다. 마음이 심란할 때마다 절을 찾아 불심에 호소하지만 욕망은 사그러들지 않는다. 하인(백일섭)은 마님을 사랑하지만 이때마다 마님은 “이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게냐!” “그래도 이놈이!”라며 물리친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얼싸안게 된다.
 
 김인수 감독의 <마님>. 마님과 머슴은 결국 맺어진다.
김인수 감독의 <마님>. 마님과 머슴은 결국 맺어진다.

그러나 과도한 억압은 반드시 저항과 전복을 낳게 된다. 욕망은 절대 억압할 수 없기 때문인데, <사방지>(송경식, 1988)은 레즈비어니즘을 통해 이러한 테마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흉악범과 광녀 사이에서 태어난 사방지(이혜영)는 겉모습은 여성이지만 남성을 지닌 양성구유다. 절에서 성장하는데 예불 드리러 오는 청상 과부 이소사(방희)는 사방지를 거두어 몸종으로 데려가지만, 그의 비밀을 알게 된 후 섹스 파트너로 삼는다. 결국 두 사람 모두 죽음을 선택하는 비극으로 끝나는데 <사방지>는 수절하는 마님, 계급 사회의 모순, 여성의 운명성 같은 사극의 관습을 계승하면서도 파격을 추구하며 ‘여인 잔혹사’의 서사에 균열을 낸다. 이외에도 <이조 여인숙명사 청상계>(윤석봉, 1991)나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양병간, 1993)처럼 과부의 욕망을 해방시킨 ‘안티 열녀문’ 콘셉트의 사극도 있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계급 사회 속에서도 욕망에 충실한 여성 캐릭터들이 만만치 않게 존재했다는 점이다. 양반집 마님이 허벅지에 바늘을 찌르며 긴긴 밤을 외롭게 보낼 때, 옹녀나 도화 같은 ‘타고난 성적 파워’를 지닌 여성이나 무당이나 주모 혹은 하녀들은 거침 없이 방으로 남성을 끌어들였다. 
 
1980년대 가장 파격적인 사극 <사방지> 
1980년대 가장 파격적인 사극 <사방지>

마지막으로 언급할 이 시기 에로 사극의 특징은 느닷없는 판타지다. <변강쇠 2>(엄종선, 1987)에서 변강쇠(김진태)가, <가루지기>에서 옹녀(김문희)가, 소변으로 폭포를 만든 후 수많은 영화들이 이 엄청난 과장법을 예사롭지 않게 모방했다. 시간 파괴의 경향도 흥미로운 지점인데, <호걸 춘풍>에서 춘풍(이대근)은 기생들과 디스코를 추며 “백 년 후에 유행할 춤”이라고 말하고, <장미 속의 살모사>(강구연, 1989)의 머슴 살모사(조형기)는 ‘라 밤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마이클 잭슨의 문 워크를 추기도 한다. 강구연 감독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1993)에서도 이런 파격을 시도하는데, 조선 시대 여인들이 캉캉 춤을 추는 장면이 있다. <고금소총 3>(지영호, 1995)과 <애마와 변강쇠>(김문옥, 1995)는 타임머신 콘셉트를 이용해, 배지기나 변강쇠 같은 캐릭터가 현대의 필리핀과 서울에 나타나 자신의 파워를 과시한다.
 
1980년대 사극의 파격적인 상상력들. (상단) <빨간 앵두 3>과 <애마와 변강쇠>. 현대로 온 배지기와 변강쇠. (하단 왼쪽) <장미 속의 살모사>에서 기생은 현대식 속옷을 입고 있다. (하단 오른쪽)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의 캉캉 춤. 
1980년대 사극의 파격적인 상상력들.
(상단) <빨간 앵두 3>과 <애마와 변강쇠>. 현대로 온 배지기와 변강쇠.
(하단 왼쪽) <장미 속의 살모사>에서 기생은 현대식 속옷을 입고 있다.
(하단 오른쪽)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의 캉캉 춤.

 
당대 에로 사극의 시그니처 숏인 ‘방뇨 신’. (상단 왼쪽) 그 시작은 <변강쇠 2>였다. (상단 오른쪽) <고금소총>에서 달비의 강력한 방뇨. (하단 왼쪽) <합궁>에서 남자의 힘찬 방뇨와 그것을 바라보는 여성의 시선. (하단 오른쪽) <미지왕>(1996. 김용태)은 1980년대 에로 사극의 방뇨 신을 패러디한다. 
당대 에로 사극의 시그니처 숏인 ‘방뇨 신’.
(상단 왼쪽) 그 시작은 <변강쇠 2>였다.
(상단 오른쪽) <고금소총>에서 달비의 강력한 방뇨.
(하단 왼쪽) <합궁>에서 남자의 힘찬 방뇨와 그것을 바라보는 여성의 시선.
(하단 오른쪽) <미지왕>(1996. 김용태)은 1980년대 에로 사극의 방뇨 신을 패러디한다.

어쩌면 1980년대 충무로 지형도에서 에로티시즘 사극은 가장 과격한 상상력을 발휘하고, 가장 욕망에 충실했으며, 짧은 기간에 가장 많은 작품을 양산했던 장르였을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 기획 영화가 등장하면서 사극은 10년 가까이 종적을 감추었고,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기에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이재용, 2003)나 <왕의 남자>(이준익, 2004) 등을 통해 ‘웰메이드’ 방식으로 다시 등장한다. 하지만 과거 ‘B급 사극’의 저렴하면서도 진솔한 상상력이 되돌아오진 않았고, <가루지기>(신한솔, 2008) 정도의 시도가 있을 뿐이었다.

+
이로써 작년 말부터 시작된 1980년대 장르 영화에 대한 긴 여정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 동안 부족한 글을 읽어 주신, 그리고 가끔씩 피드백을 주셨던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지면을 열어주신 한국영상자료원에게도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다. 혹시 기회가 된다면, 또 다른 콘셉트로 옛날 영화들을 정리할 날을 기약하며, 10회에 걸친 연재를 닫는다.
 

연관영화 : 고금소총 (지영호 , 19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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