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한의 여곡성: 1980년대 호러영화 80년대 한국영화, 카오스의 이색지대 ⑦

by.김형석(영화저널리스트) 2018-04-24
천년백랑
※  섬뜩한 이미지들이 많으니 심약한 분들은 주의를 요합니다
 
한국 공포영화의 주기는 파란만장하다. 1960년대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 장르는 196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상상력은 다양했다. <악의 꽃>(1961, 이용민)처럼 흡혈 식물을 소재로 한 영화도 있었고, <불가사리>(1962, 김명제)와 <대괴수 용가리>(1967, 김기덕)같은 괴수 영화도 있었다.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였던 이용민 감독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살인마>(1965)나 <목 없는 미녀>(1966) 같은 걸작을 내놓았다. <월하의 공동묘지>(1967, 권철휘)는 한국 공포영화의 정전이 되었고, 유현목 감독의 <한>(1967)은 큰 흥행을 기록하며 ‘옴니버스 호러’의 전통을 세웠고 속편으로 이어졌다. 당대 최고의 영화사였던 신필름도 이 장르에 결코 무관하지 않았는데 <천년호>(1969, 신상옥), <사녀>(1969, 신상옥)는 당대의 흥행작이었다.
 
박윤교 감독의 <마계의 딸>(1983)
박윤교 감독의 <마계의 딸>(1983)

1960년대에 ‘준 메이저’ 장르로 시작한 한국 호러는 1970년대에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용민, 박윤교, 이유섭, 김인수 등의 감독들이 꾸준히 작품을 이어갔고 사극의 서브 장르로서 1960년대의 유산을 양적으로 확장시켰다. <설야의 여곡성>(1972, 임원직), <며느리의 한>(1972, 박윤교) 등이 이때 등장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크리처 쪽으로 트렌드 변화가 왔다. <반수반인>(1975, 김기)의 늑대 인간, <정형미인>(1975, 장일호)의 고양이 인간, <원무>(1976, 박윤교)의 미이라 등 더 이상 소복을 입지 않는 공포영화가 등장했다. 대만, 홍콩, 필리핀, 태국 등과도 합작이 활발히 이뤄졌다.
 
남자의 등을 어루만지는 귀신의 손길. <삼국여한>(1982. 김인수)의 한 장면.
남자의 등을 어루만지는 귀신의 손길. <삼국여한>(1982. 김인수)의 한 장면.

 <깊은 밤 갑자기>(1981. 고영남)의 이기선은 세련되면서도 당돌하지만 한편으론 백치미를 지닌, 복합적 이미지의 배우였다.
<깊은 밤 갑자기>(1981. 고영남)의 이기선은 세련되면서도 당돌하지만 한편으론 백치미를 지닌, 복합적 이미지의 배우였다.

 1980년대 마지막 호러인 <하녀의 방>(1987. 김인수). 이 시기에 이르면 호러와 에로의 경계를 거의 무너진다.
1980년대 마지막 호러인 <하녀의 방>(1987. 김인수). 이 시기에 이르면 호러와 에로의 경계를 거의 무너진다.

1980년대 호러의 가장 큰 특징은 ‘익스플로이테이션 필름’(exploitation film)의 경향이다. 즉 ‘노골적인 상업영화’라는 강력한 상업적 의지가 드러난다는 점이다. 이것은 1970년대 중반부터 급격하게 진행된 한국영화의 산업적 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안간힘이었다. 1970년대에는 크리처와 합작이 그 타개책이었다면, 1980년대엔 에로티시즘과 하드고어였다. 1980년대 호러에 새로운 것은 없다. 대신 표현 수위의 강도를 상승시키며 생존하려 했다. ‘여인의 한과 피맺힌 복수’라는 전통적 가치는 오롯이 살아 있지만, 그 정서와 방법론과 비주얼은 훨씬 더 자극적이었다.

‘에로틱 호러’의 창궐은 시대정신에 발맞춘 것이었다. <애마부인>(1982, 정인엽)을 기점으로 충무로에 불기 시작한 ‘살색 열풍’은 모든 장르를 잠식했다. 단지 ‘야한 영화’가 양산되기 시작했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크게 보면 ‘선정주의’의 확장이었다. 성적 표현뿐만 아니었다. 액션 스펙터클이든 폭력 묘사든 감정 표출이든 ‘80년대식 표현’은 이전에 비해 한두 눈금 더 올라가 있었고, 호러 장르는 그 표현에 최적의 토양이었다. 당대의 에로티시즘 영화와 일맥상통했던 ‘1980년대산 호러’는 비주얼의 관능성과 폭력성에서 한층 업그레이드되었다. 김인수 감독은 상징적 인물이었다. 1990년대엔 비디오 시장으로 건너가 <젖소부인 바람났네>(1995)를 연출하며 거대한 족적을 남긴 그는, 1980년대에 마치 그 예행연습이라도 하듯 끈적끈적한 공포영화를 선보였다. 

그가 1982년에 연출한 <삼국여한>의 예고편 문구인 “치정과 욕정이 얽힌 성인용 공포 드라마”는 당대 공포영화 감독들의 좌우명이었다. 한국과 중국과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옴니버스 호러였던 <삼국여한>은 단순한 에로티시즘이 아니라 도착적 성을 다룬 ‘섹스 과잉 공포’로서 여기에 하드고어를 결합했다. 그의 <미녀 공동묘지>(1985)에는 시체와의 섹스까지 등장하니, 1980년대 한국 호러의 성적 상상력은 에로티시즘에서 사도마조히즘을 거쳐 네크로맨틱에 이르는 여정이었던 셈이다. ‘호러 장인’ 박윤교 감독의 <춘색호곡>(1981)의 오프닝도 ‘섹슈얼 호러’라 불러도 될 만큼, 그의 전작들과는 확연히 다른 톤이었고 <천년백랑>(1983)에서는 근친적 삼각관계를 보여준다. 

<춘색호곡>과 <한녀>(1981, 이유섭)의 ‘귀신 액션’.
<춘색호곡>과 <한녀>(1981, 이유섭)의 ‘귀신 액션’.

스타일과 비주얼도 더욱 자극적이며 적나라한 양상을 띠었다. 그 결과물 중 하나는 호러와 무협 액션의 결합이었다. 이 시기 귀신들에게 텀블링은 기본이었으며 피아노 줄을 달고 경공술을 선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춘색호곡>은 대표적이며, 한중일 콘셉트의 옴니버스 영화인 만큼 <삼국여한>은 중국식 무협과 사무라이 액션 등을 선보였다. 남기남 감독의 <흑삼귀>(1985)는 강시 영화를 좀 더 하드고어 버전으로 만든 듯한데, 1970년대 액션 전문 배우였던 권영문이 등장하며, 도사 캐릭터의 활약이 펼쳐진다. <천년백랑>의 후반부는 호러보다는 무협 액션에 가깝다.

 <깊은 밤 갑자기>는 다양한 광학 효과로 그로테스크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런 효과는 1980년대 호러의 클리셰였다.
<깊은 밤 갑자기>는 다양한 광학 효과로 그로테스크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런 효과는 1980년대 호러의 클리셰였다.

 <천년백랑>에서 사람이 여우로 변하는 장면. 디졸브를 이용해 꽤 그럴듯하게 변신을 표현한다.
<천년백랑>에서 사람이 여우로 변하는 장면. 디졸브를 이용해 꽤 그럴듯하게 변신을 표현한다.

 <공포의 축제>와 <월하의 사미인곡>. 특수분장의 기술적 발전을 토대로 호러 비주얼을 만들어낸다.
<공포의 축제>와 <월하의 사미인곡>. 특수분장의 기술적 발전을 토대로 호러 비주얼을 만들어낸다.

<삼원녀>의 잘린 팔과 <제4의 공포>의 잘린 머리.
<삼원녀>의 잘린 팔과 <제4의 공포>의 잘린 머리.

다양한 효과들이 호러 장르의 시각적 쾌감을 위해 사용되었다. 1980년대 호러는, 지금 보면 약간 조잡하게도 느껴지지만 다양한 광학 효과를 통해 기괴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화면을 흐리는 블러 효과를 비롯, 렌즈를 통해 왜상을 만들고 프리즘 효과를 냈으며, 이중노출이나 디졸브 등을 통해 변신이나 빙의를 표현하기도 했다. 여기엔 대부분 자극적인 사운드가 결합되어 그로테스크한 기운을 더했다.

특수효과와 특수분장도 빼놓을 수 없다. 소복 소매에서 흰 연기가 나오는 <원한의 공동묘지> 스타일의 초보적 수준도 있었지만, 때론 실감나는 수준을 보여주었다. 이 분야의 기술적 발전 역사에서 1980년대는 초기에 해당하는데, 자본의 취약성에 때문에 그 수준은 높지 않았지만, 당시 공포영화가 원하던 ‘쎈’ 표현을 어느 정도는 충족시켰다. 신체를 절단하고 괴물 같은 얼굴을 필요로 했던 하드고어 콘셉트가 대거 등장할 수 있었던 건 그런 이유다. 특히 김철석(특수효과)과 장인한(분장)이 만난 <월녀의 한>(1980, 김인수), <마계의 딸>(1983, 박윤교), <제4의 공포>(1984, 노진섭), <월하의 사미인곡>(1985, 박윤교) 등은 이 분야의 초석이 된 작품들이다.

기술적 발전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영화도 있다. 김인수 감독의 <제4의 공포>와 <공포의 축제>(1986)는 기형적으로 얼굴이 일그러진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영화다. <한녀>(1981, 이유섭)은 경성 시대를 배경으로 성형 수술을 소재로 한다. <삼원녀>(1981, 김시현)와 <삼국여한>엔 팔이나 머리가 잘리는 신체 절단 요소가 있으며, <월하의 사미인곡>이나 <여곡성> 등 1980년대 중반 사극 호러에 오면 더욱 괴물 같은 메이크업을 선보인다.

 <관 속의 드라큘라>와 <흡혈귀 야녀>. 서양의 뱀파이어 캐릭터는 1980년대에 직접 도입되거나 귀신으로 변형된다.
<관 속의 드라큘라>와 <흡혈귀 야녀>. 서양의 뱀파이어 캐릭터는 1980년대에 직접 도입되거나 귀신으로 변형된다.

한국 최초의 좀비 영화인 <괴시>, 좀비 연쇄 살인마가 등장하는 <육체의 문>.
한국 최초의 좀비 영화인 <괴시>, 좀비 연쇄 살인마가 등장하는 <육체의 문>.

<제4의 공포>와 <여곡성>. 메이크업을 통한 섬뜩한 ‘괴물적 캐릭터’의 탄생.
<제4의 공포>와 <여곡성>. 메이크업을 통한 섬뜩한 ‘괴물적 캐릭터’의 탄생.

‘스네이크플로이테이션 무비’(snakeploitation)라고 불러도 무방할 <인사대전>.
‘스네이크플로이테이션 무비’(snakeploitation)라고 불러도 무방할 <인사대전>.
이 영화에서 뱀은 무차별한 학살의 대상이며, 건물 한 채를 혼란에 빠뜨리는 재난의 원인이며, 인간과 액션 대결을 하는 가공할 만한 크리처다.

 
1960~70년대의 전통적 공포영화에서 벗어나 더욱 자극적인 요소로 호소하려는 1980년대 호러의 노력 중 하나는 이국적 요소의 도입이었다. 중국인 며느리의 한을 담은 <삼원녀>나 중국과 일본의 요소를 끌어들인 <삼국여한>, 혹은 국적 불명의 <흑삼귀> 등은 대표적이다. 여기에 한동안 한국영화에선 선보이지 않았거나 최초로 등장하는 호러 크리처들이 등장했다. 흡혈귀들이 대표적인데, 사극 공포영화에서 여자 귀신들은 종종 흡혈을 하며 <삼국여한>에는 관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를 받아먹는 귀신마저 등장한다. 주목할 만한 영화는 <관 속의 드라큘라>(1982, 이형표)다. 영미권의 호러 캐릭터인 드라큘라를 도입해 한국적 맥락에서 퇴마를 가한다. <흡혈귀 야녀>(1981, 김인수)는 기존의 사극 귀신에 흡혈의 모티브를 두드러지게 결합시킨다.

좀비 영화도 등장한다. <괴시>(1981, 강범구)는 한국 최초의 좀비 영화로 평가되는데, 해충 박멸을 위한 초음파 실험이 시체들을 깨어나게 한다는 설정이다(방사능이 원인이 되었던 조지 로메로의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1968)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이기환 감독의 <육체의 문>(1981)엔 좀비 연쇄살인마가 등장해 여자들을 연달아 살해한다. <제4의 공포>엔 화상으로 흉측한 얼굴을 지니게 된 남자가 마치 미이라처럼 얼굴을 붕대로 휘감고 등장하며, <여곡성>엔 괴물처럼 변해버린 마님이 등장한다. 독사에 물린 여자가 뱀파이어가 되는 <몽녀한>(1984, 강범구)과 기형 인간이 등장하는 <공포의 축제>도 언급할 만한 영화다.

동물들도 한몫 했다. 고양이, 뱀, 까마귀 등의 동물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한의 매개체’가 되는 전통적 소재였는데 1980년대에 와서는 더욱 끔찍한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바로 ‘학살’의 대상이 된 것. 홍콩과의 합작 영화인 <인사대전>(1983, 김선경)은 <홀로코스트>(1980, 루게로 데오타도)를 연상시킬 정도로 수많은 뱀들을 무차별로 죽인다. <원한의 공동묘지>에선 수많은 고양이들이 죽임을 당하는데, 이런 살풍경은 이전 호러에선 좀처럼 접하기 힘든 잔인한 스펙터클이었다. <여곡성>엔 전설의 ‘지렁이 국수’ 장면이 있다.
 
<망령의 웨딩 드레스>의 계단 신. 김기영 감독의 미장센을 연상시킨다.
<망령의 웨딩 드레스>의 계단 신. 김기영 감독의 미장센을 연상시킨다.

<깊은 밤 갑자기>에서 무당의 딸인 하녀는 주술적 위력과 함께 섹슈얼한 힘으로 집을 장악한다. 
<깊은 밤 갑자기>에서 무당의 딸인 하녀는 주술적 위력과 함께 섹슈얼한 힘으로 집을 장악한다. 

 
1980년대 공포영화의 트렌드 중 하나는 별장이나 외딴 곳의 저택을 배경으로 하는, 굳이 이름 붙인다면 이른바 ‘맨션 호러’의 등장이다. 할리우드의 ‘하우스 호러’가 집에 깃든 악령이나 저주로부터 섬뜩한 기운을 가져온다면, ‘맨션 호러’는 집 자체에 영혼을 부여하진 않는다. 대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젊은 여자와 중년 남자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며, 여기서 억울한 죽음과 복수극이 벌어진다. 그런 면에서 <하녀>(1960, 김기영)나 <마의 계단>(1964, 이만희) 같은 1960년대 한국 스릴러에서 그 근원을 찾아야 할 듯하다. 1980년대 ‘맨션 호러’는 공포 장르의 공간을 확장하려는 의도 속에서 과거의 유산을 되살리는 시도였다. 그 전형은 <망령의 웨딩드레스>(1981, 박윤교)다. 회사를 운영하는 남자는 우연히 히치하이킹으로 만난 여자를 자신의 별장 하녀로 고용한다. 그녀는 그의 아이를 임신하고, 마치 <하녀>의 하녀처럼 남자를 차지하겠다고 위협한다. 이에 남자는 여자를 죽이고 우물에 던져버리지만, 마치 <마의 계단>처럼 그녀는 다시 출몰한다. 귀신인지 산 사람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구도는 <귀화산장>(1981, 이두용)에서 병원장과 간호사의 관계로 변주되며, <깊은 밤 갑자기>에선 주술적 요소가 가해진다. 특히 <깊은 밤 갑자기>는 전원 저택의 안주인(김영애) 캐릭터에 초점을 맞춰 망상 속에서 미쳐가는 여성을 보여준다. <살인마>를 리메이크 한 <목없는 여 살인마>(1985, 김영한). 외딴 폐가와 병원을 오가는 <제4의 공포> 등도 같은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는 작품들. 한편 <악녀의 밀실>(1984, 김선경)이나 <요색유희>(1985, 강대선)는 집에 깃든 악령의 존재를 설정한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1980년대, 작게나마 호러 전문 배우진이 형성된다. 정세혁과 박암은 대표적. 사진은 <망령의 웨딩 드레스>와 <삼국여한>이다.
1980년대, 작게나마 호러 전문 배우진이 형성된다. 정세혁과 박암은 대표적. 사진은 <망령의 웨딩 드레스>와 <삼국여한>이다.

<미녀 공동묘지>의 진봉진과 곽은경. 그들도 1980년대 한국 공포영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배우들이다.
<미녀 공동묘지>의 진봉진과 곽은경. 그들도 1980년대 한국 공포영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배우들이다.

1980년대 호러엔 이국적 이미지의 배우들이 종종 등장했다. (상단 왼쪽부터 지그재그로) <괴시>의 유광옥, <여곡성>의 홍명진, <월녀의 한>의 박병순, <제4의 공포>의 정현숙.  
1980년대 호러엔 이국적 이미지의 배우들이 종종 등장했다. (상단 왼쪽부터 지그재그로) <괴시>의 유광옥, <여곡성>의 홍명진, <월녀의 한>의 박병순, <제4의 공포>의 정현숙.
 
서양의 호러가 가톨릭 사제를 주로 퇴마사로 내세운다면, 한국의 공포영화엔 대사나 법사의 존재가 있었고 십자가 대신 불교의 상징인 ‘卍’(만)이 있었다. <여곡성>과 <월녀의 한>에 등장하는 ‘卍’.
서양의 호러가 가톨릭 사제를 주로 퇴마사로 내세운다면, 한국의 공포영화엔 대사나 법사의 존재가 있었고 십자가 대신 불교의 상징인 ‘卍’(만)이 있었다.
<여곡성>과 <월녀의 한>에 등장하는 ‘卍’.

 
1980년대 한국 공포영화는 흥행을 위해 좀 더 강렬한 이미지와 스토리로 관객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영화산업의 전반적인 침체와 낙후한 자본 구조 속에서 장르적 진화를 이루지 못하고 클리셰를 반복했다. 그 결과 1980년대 중반이 되면 충무로에서 더 이상 호러는 생산되지 않는 멸종 상황에 이르며, 이 암흑기는 <여고괴담>(1998, 박기형)이 등장할 때까지 이어진다. 10년 넘게 제작되지 않은 셈인데, <여고괴담> 이후 2000년대 초중반에 왕성하게 부활한 호러는 2010년 이후엔 다시 침체기에 들어섰다.

한국영화의 수많은 장르들 중에서 가장 격렬한 흥망의 사이클을 보여주는 장르, 호러. 지금은 잠시 침체되었지만 언제 또 새로운 모습으로 상승곡선을 그리며 등장할지 모른다. <원한의 공동묘지>의 마지막 신을 장식하는 자막은 그 이유를 잘 설명한다. “원한은 죽지 않는다. 언제나 우리 가슴속에 맴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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