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꽃> 제작기 이승준, 2018 예정

by.이승준(다큐멘터리 감독) 2018-04-13
그림자꽃

2018년 봄  
“요즘 특별한 일 있어요?” “요즘요? 바빠요. 부산, 광주, 대전… 강연하러 다니느라 정신없어요.” “강연요?” “북한 바로 알리기 강연요.” 그녀는 북에서 왔다. 평양엔 지금도 딸과 남편, 부모님이 살고 있다. 여러 시민단체를 대상으로 하는 그녀의 강연을 몇 번 촬영했던 터라 그녀가 강연을 하러 간다는 말에 그다지 큰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부산, 울산, 서울에서 강연이 있어요. 그리고… 참, 다음 주 월요일 저녁에는 합창 연습해요. 615 합창단…” “합창연습요?” “5월에 615 합창단이 일본에서 재일동포 대상으로 공연을 해요. 매년 했다고 하는데 이번엔 저도 가려고요.” “여권 없이 어떻게 가요?” 그녀에게는 여권이 없다. 많은 다른 탈북자들처럼 그녀는 중국, 동남아시아를 거쳐 대한민국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순간 그녀는 그녀를 다시 평양으로 돌려 보내줄 것을 당국에 요청했다. “저는 중국에서 브로커에게 속았어요. 남한에 가서 두세 달 일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고, 그러고 나서 평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땐 이미 늦었어요. 가족과 헤어지는 건 상상도 못 했어요.” 그 후로도 그녀는 지속적으로 송환을 요청했고, 신원 특이자로 분류되어 여권을 발급받지 못했다. 8년째다. “아는 분 통해서 알아보니까 여권이 4월에 나온다고 해요.” 여권이 나온다고? 카메라를 챙겨 그녀가 합창연습을 한다는 서대문의 연습실을 찾았다.
 
그림자꽃 스틸

2015년 여름, 그리고 가을  
2015년 여름 경상북도 영천의 플라스틱 재생공장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그녀는 지게차를 운전할 정도로 능숙하게 일을 하고 있었다. 한 일간지 신문 1면에 실린 ‘나의 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기사를 보고 나서였다. 그녀의 이야기는 놀라웠고, 북으로 다시 돌려보내달라고, 얼굴을 그대로 드러낸 채 인터뷰를 했던 건 신선한 충격이었다. 온갖 고초를 겪으며 고향에 돌아가기를 원했던 그녀는 여권위조, 밀항과 자살 시도까지 했지만 모두 실패했고, 마지막 희망을 부여잡는다는 생각으로 공개적으로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그녀의 이야기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후 통일 운동, 인권 운동을 해왔던 시민단체가 그녀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산 적십자사 앞에서, 종로 유엔 인권사무소 앞에서, 광화문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인 시위를 했다. 한편 그녀는 북쪽의 삶을 궁금해하는 남쪽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기 시작했다. 2015년 가을, 겨울, 그녀에겐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는 듯했다. “혼자였어요.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안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자살까지 하려고 했고… 이제는 희망이 생겼어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녀의 이야기는 점점 더 많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CNN과 BBC도 그녀를 취재했다. 그녀의 ‘조국’도 그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송환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희망은 점점 더 커져만 가는 듯싶었다.
 
그림자꽃 스틸

2016년 봄  
2016년 3월 어느 날, 그녀는 가방을 가만히 쌌다. 그날 저녁, 고향인 북쪽으로 돌아가기를 수십 년 동안 갈망해왔던, 서울에서 함께 지내던 장기수 어르신들께 평양식 국수를 대접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조그만 배낭 하나를 들고 집을 나섰다. 그녀가 간 곳은 주한베트남대사관. 그녀는 망명을 신청했다. “베트남이 사회주의 국가잖아요. 같은 사회주의 국가이니 저의 망명을 받아주지 않을까요?” 그녀가 내게 말했다. 대사관의 담당자는 그녀에게 몇 가지 사실 확인을 한 후 놀랍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드디어 고향에 있는 딸을 볼 수 있겠구나. 난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건강하세요. 평양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는 난 그 자리를 나왔다. 그녀의 망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베트남 대사관 앞에는 취재진과 경찰이 진을 치고 있었다. 나는 그 풍경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얼마가 지났을까. 닫혀 있는 육중한 대사관 문 너머로 날카로운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점점 가까워졌다. “망명을 신청한 사람한테 집에 가서 기다리라니… 그리고 어떻게 대사관에 경찰을 부를 수가 있어?” 그녀는 울부짖었다. 대문으로 나오는 그녀를 취재진이 감싼 채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잠시 후 경찰 관계자가 다가오더니 “주거침입 등으로 신고를 받았다. 차후에 소환장을 보낼 테니 소환에 응해 달라.”는 말을 건네고는 사라졌다. 그렇게 그녀의 망명은 실패했다.
 
그림자꽃 스틸

2016년 여름, 그리고 가을  
베트남대사관 망명 실패 후 경찰은 그녀를 따라다녔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사고’ 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목적이라고 경찰은 그녀에게 말했다. 힘든 하루하루였다. 희망이 사라진 듯했다. 마음을 추스를 수 있을까 싶어서 그녀는 고향 사람들을 오랜만에 만났다. 그들은 중국에서 브로커 감시하에 함께 공동생활을 하다가 대한민국으로 건너왔기에 그녀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녀는 말했다. “난 죽어서라도 고향으로 갈 거야.” 가족과 같이 살지 못할 바에는 죽는 게 낫고, 죽으면 몸이라도 고향에 돌려 보내줄 거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죽어서라도? 죽는다고 해도 그 몸이 북쪽으로 갈 수가 없어. 그렇게 될 수가 없어, 지금은….”라거나 “순진하네. 아직 고생 덜했어….”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며칠 뒤 그녀가 잔뜩 겁먹은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걸었다. “아침에 갑자기 들이닥쳤어요, 수십 명의 경찰이….” 경찰은 베트남대사관 주거침입 등으로 그녀에게 소환장을 보냈고, 압수수색영장을 들고 그녀를 찾아갔던 것이었다. 내가 4시간을 운전해서 그녀가 있는 곳을 찾아갔을 때도 그녀는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 해 여름과 가을은 그녀에게 가혹했다.

2016년 겨울, 2017년 봄 그리고 2018년  
2016년 겨울과 이듬해 봄은 온 나라가 촛불 정국이었다. 이 땅의 부패한 정권이 무너지는 역사를 그녀도 목격했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고, 그 정권은 북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이라 그녀는 다시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 역시 ‘곧 돌아가겠네요.’라며 인사를 하곤 했다. 하지만 북미 관계는 극단을 치달을 기세였고, ‘올해는 갈 거 같네요.’ 라던 그녀는 또 다른 한 해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했다.
해가 바뀌자 거짓말처럼 정세가 바뀌었다. 남북관계는 급격히 좋아지기 시작했다. 북측 선수단이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했고, 북측과 남측의 공연단이 평양과 서울에서 공연을 했으며, 이제 곧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 남북 당국은 그녀의 송환문제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이제는요… 희망이 아니라, 돌아가는 게 기정사실같이 생각돼요. 가면 생각 많이 날 것 같아요. 저를 도와준 사람들과 헤어진다는 게 제일 아플 것 같아요. 감독님과도 헤어져야 할 테고...” 그녀가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 날이 다가오고 있는 듯싶었다.
 
그림자꽃 스틸

<그림자꽃>, 그녀의 봄을 기다리다  
처음 이 다큐멘터리를 시작했을 때 제목은 ‘달의 바다’였다. 지구에서 우리가 바라보는 달은 한 면뿐이고, 그 반대편 달 표면은 지구에서는 절대 볼 수 없다는 사실, 그 반대편 달 표면을 일컫는 용어가 ‘달의 바다(Lunar Maria)’다. 사람이든, 사회든, 자연이든, 그 이면을 들여다보고 드러내는 것은 언제나 풀어야 할 숙제와 같은 것이다. 그녀를 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탈북자, 북한, 나아가 대한민국 사회의 이면이 보이지 않을까?
남북 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정치적, 이념적인 것으로 변질되어 버린다.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한 개인의 소망조차 그 틀 안에서 판단되는 현실 속에서 나는 <그림자꽃>을 통해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탈북자 문제에 관한 이야기는 한 가지밖에 없을까? 그녀가 정말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일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까? 남북은 서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는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일까?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본의 아니게 대한민국 정부의 여러 기관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게 됐다. 가족에게 돌려보내달라는 것, 그 마음을 잘 담고 싶은 것뿐인데, 그게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가 보다. “그들이 무슨 죄가 있겠어요, 분단이 죄지….” “돌아가면 관광 가이드 하고 싶어요. 제가 남쪽 사람들을 누구보다 잘 알잖아요. 남쪽에서 온 사람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평양을 안내하는 일, 멋지지 않아요?” 그녀도 돌아가고, 다큐멘터리도 잘 완성되고… 이 다큐멘터리를 가지고 평양국제영화제에 참가한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지나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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