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주목 이 한편의 영화] 김광식 - 감독

by.이화정(씨네21 기자) 2015-11-02조회 2,029

이화정(이하 ‘이’) <내 깡패 같은 애인>과 <찌라시: 위험한 소문>(이하 ‘찌라시’) 모두 대사에서 두드러진 강점을 보인다. 아마도 감독 이전의 이력이 작용하는 것 같다. 국문학을 전공했고, 영화감독 이전에 방송작가로 활동한 적이 있다. 어떻게 글을 쓰게됐나? 

김광식(이하 ‘김’) 어릴 때부터 소설가가 꿈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내 글로 누군가를 재밌게 만드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내 감정을 모두 끌어내어 글을 쓰기보다, 내 글로 타인의 기분을 가지고 노는 것이 재밌었다. 예술가적 기질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이후 국어국문학과에 들어갔는데 대학가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의 종말’이라는 말이 돌면서 문학이 중심에서 변방으로 물러나는 분위기였다. 그게 1990년대 초반인데, 소설 외에 다른 대안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영상으로 관심을 돌렸고 단편영화 스태프로 일했는데 현장에서 무거운 장비를 많이 들어야 했다. 세상에서 무거운 짐 드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일동 웃음) 지금의 몸을 보면 아무도 안 믿지만 당시에는 순수한 문학청년이라 몸도 여렸다.(일동 웃음) 그때부터 방송용 시나리오를 쓰게 됐다. <베스트극장>에서 단막극으로 몇 편 방송이 나갔는데, 마감을 정해놓고 글을 쓰는 것이 너무 지치는 일이더라. 그래서 영화 일을 시작하게 됐고 영상원에 시나리오 전공으로 들어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감독이라는 직업이 기술의 영역인 줄 알았는데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고 오랜 경험이 쌓여도 보는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른 작품이 나온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의 감수성으로 내가 직접 연출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 생각해 직접 연출을 하게 됐다. 단편 작품을 만들다가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 조감독을 하게 됐고, 이후 본격적으로 이 일에 뛰어들었다. 

첫 작품 <내 깡패 같은 애인>(2010)이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바로 후속 작품을 제작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내 깡패 같은 애인> 이후 여러 영화에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내 마음에 드는 작품을 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늑대>(가제)라는 제목의 시나리오를 받았다. 탈북한 특수부대원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꽤 괜찮은 작품이라 생각해 시나리오 수정 작업을 시작했다. <내 깡패 같은 애인> 개봉이 끝나고 반년 즈음 지나서였다. 사실 이미 개봉한 비슷한 소재의 영화들 중 당시 나에게 감독 제안이 들어온 영화도 있었다. 난 모두 거절하고 <늑대> 초고를 마무리하고 캐스팅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그 사이 그 영화들이 개봉하더라. 시작은 먼저 했는데 시나리오를 다듬다보니 캐스팅이 늦어진 것이다. 그렇게 유사한 장르의 영화들이 개봉되면서 <늑대>란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없어졌다. 그렇게 1~2년을 보냈는데, 이후 <찌라시> 시나리오를 받았다. 초고가 나온 상태여서 시나리오 수정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원래 정치?사회적 이슈가 담긴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있어서 <찌라시>를 선택하게 됐다. 

<찌라시>도 그렇고, 비록 제작되진 않았지만 이야기 구성만 봐도 <늑대>란 작품 역시 <내 깡패 같은 애인>보다는 제작비 면에서 규모가 커 보인다. 

<내 깡패 같은 애인>의 순제작비가 10억 원이었다. 이 영화를 만들고 배급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저예산 영화가 배급과 마케팅 면에서 블록버스터 영화에 비해 불리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래서 다음 작품의 규모를 키워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제작이 중단되긴 했지만 <늑대>의 경우 제작비를 70억~100억 원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 영화를 연출하지 않은 것이 나에게 더 잘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비슷한 소재의 <용의자>만 보더라도, 이 영화를 연출한 원신연 감독은 누구보다 액션을 잘 표현하는 감독이다. 내가 과연 액션에 적합한 감독일까 생각하면 아니라는 결론이 난다. 

<찌라시>의 순제작비는 30억 원 규모였다. 다른 상업영화들에 비해 여전히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라고 볼 수 없지만 이전 영화에 비해 제작비가 늘어났다. 연출하는 데 수월해진 부분이 있지 않았나? 

흔히 우리나라 블록버스터 영화를 ‘독립 장편 블록버스터’라고 한다.(웃음) <찌라시>는 30억 원이 투입됐는데, 사실 그 이상, 100억 원이 투입된 영화라고 해서 그 돈이 스태프에게 더 분배되는 것은 아니다. 주.조연급 배우의 캐스팅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영화는 제작 예산이 빠듯하다. 제작비가 많다고 감독이 진행비를 더 쓰는 것도 아니다. <찌라시>가 <내 깡패 같은 애인>에 비해 제작비 규모가 커졌다고 해서 연출이 수월해지진 않았다. 100억, 150억이 투입되는 영화여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찌라시> 역시 30억 원으로 ‘찍을 수 있는’ 영화가 아니라 30억 원에 ‘찍어야 하는’ 영화였기 때문에 그 예산에 맞춰 연출했다. 사실 <찌라시>는 영화의 내용에 비해 제작비가 많이 투입된 영화라 볼 수 없다. 다만 <내 깡패 같은 애인>을 10억 원이라는 저예산으로 연출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30억 원에 제작이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전작도 그렇고 <찌라시>에서도 세트 촬영보다 로케이션 촬영을 많이 진행했다. 이것도 예산을 절감한 효과를 가져왔을 것 같다. 

두 가지 이유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선호한다. 제작비 규모를 맞추기 위해 로케이션 촬영을 많이 한 것이 첫 번째 이유다. 결과적으로 로케이션 촬영을 통해 제작비를 절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영화는 카메라에 인물만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물과 함께 주변 공간을 담아내는 것이 감독으로서 나의 주된 관심사다. 따라서 세트보다는 로케이션 촬영을 선호하는 편이다. 

<내 깡패 같은 애인>과 <찌라시>를 보면 사실적인 공간에 대한 감독의 욕심이 보인다.

세트를 활용하면 사실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세트 촬영을 지양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이명세 감독이나 박찬욱 감독같이 세트를 활용하면서도 그 공간을 미술적으로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감독이라면 세트 촬영을 많이 했을 것이다. 

<찌라시>라는 제목이, 실제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핵심 이야기와 조금 동떨어진 느낌이 든다. 영화 제목을 정할 때 마지막까지 고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전작 <내 깡패 같은 애인> 역시 제목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가 있었다. 왜 유독 제목에 대한 지적이 많이 나온다고 생각하나? 

솔직히 나도 <찌라시>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진 않았다. 원래 이 영화의 제목은 <예언자들>이었다. 하지만 <예언자들>은 아무도 호응해주지 않더라. SF나 판타지 장르의 느낌이 난다는 이유였다. 마지막까지 제목을 결정하지 못하다가 결국 <찌라시>로 결정했다. 사실 내가 국문과 출신이라 일본어, 비속어를 제목으로 사용하는 것이 내내 찜찜했다. 하지만 간단하게 생각하면 이영화는 사설 정보지, 즉 ‘찌라시’에 대한 이야기다. <찌라시>라는 제목이 이 영화를 가장 잘 그리고 독창적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제목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찌라시>가 가장 적합했다고 생각한다. 

<찌라시>뿐만 아니라 <내 깡패 같은 애인>도 멜로가 기반이지만 88만원 세대의 고충이 이야기의 한 축을 구성한다. 특히 세진(정유미)이 입사 면접에 들어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무척 씁쓸한 현실 보고였다. 주로 어떤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갖고 영화에 담아내고자 하는가? 

의도적으로 특정한 사회적 이슈를 영화에 담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영화가 반드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줘야만 하는 매체도 아니지 않나? 개인적으로 전쟁물이나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 영화도 즐겨 보는 편이다. 판타지 장르 영화는 논외로 하고, 영화가 드라마든 멜로든 어떤 장르든지 시대성, 사회성을 배제했을 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 깡패 같은 애인>의 경우, 건달과 취업준비생의 사랑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모든 것을 배제하고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만 할 경우 관객이 그 영화를 볼 가치가 있을까? 속된 말로 ‘지들끼리 잘살면’ 되는 것이다.(웃음) 그 둘의 관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안에서 녹아들어오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찌라시>도 마찬가지다. 단순하게 배우와 매니저의 관계로만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은 의미 없는 멜로영화가 될 수 있다. 어떻게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안으로 끌어들여야만 그것이 장르적 재미로 발현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영화라면 한국의 시대성을 반영해야 한다. 그래야 이야기의 구성이 촘촘해지고, 관객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제작사(영화사 수박) 성향으로 볼 때 (※ 영화사 수박은 <이태원 살인사건>(2009), <특수본>(2011), <찌라시>(2013)를 제작했으며, 오는 10월 <제보자> 개봉을 앞두고 있다. 편집자 주) 초고는 조금 더 강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각색했나. 

사실 초고 시나리오에서는 제목 그대로 ‘찌라시’ 유통업자 세계를 다룬 영화였다. 원래 내용은 매니저가 배우의 불미스러운 죽음을 캐내다가 결국 ‘찌라시’ 유통업자로 성공하는 이야기였다.(일동 웃음) 나는 이 구조에 동의할 수 없었고, ‘찌라시’를 통해 정치, 경제 등 이 사회의 권력구조가 어떻게 연계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많은 이가 <부러진 화살>(정지영, 2012)이나 <26년>(조근현, 2012)과 같이 사회적인 소재를 담은 영화와 비교해주신다. 하지만 두 영화는 소재 자체가 영화의 내용인데 반해, 나는 사회적 이슈를 영화의 배경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들과 <찌라시>가 다른 지점에 있다고 본다. 

실제로 ‘찌라시’라는 것이 워낙 보안 유지가 철저한 유통 자료이다보니 자료 조사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영화 개봉 이후 TV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사설 정보지의 정보 생산과 유통에 관한 내용을 보여주었는데 영화의 내용와 매우 흡사하더라. 관객 역시 영화에 나오는 ‘찌라시’에 대한 내용이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궁금할 것 같다.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전 자료 조사와 관련자 인터뷰를 많이 했다. 하지만 조사를 하면서 이 사설 정보지를 유통하는 업자, 정보를 생산해내는 ‘정보맨’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전문적이거나 대단한 인물이 아님을 알았다. 대기업 홍보팀이나 전직 기자 수준이었다. 기자의 세계를 다룬 영화를 보면, 관객은 무척 전문적으로 보이겠지만 기자가 봤을 때 일상적인 일로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찌라시’ 유통업체들을 실제로보니 영화에서보다 더욱 영세했다. 이들이 결코 우리 사회를 움직이지 못한다. 이 소재가 영화에 표현되면 재미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조사해보니 별거 아니었구나 싶었다. 그래서 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최대한 사실감을 살려 ‘찌라시’에서 파생되는 권력관계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사실 모든 국민이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거대 권력이 정치와 경제 분야 인물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한 번 더 각인시키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 사회에서 유통되는 ‘찌라시’는 어감 자체도 그렇고, 그 기능 역시 부정적인 측면이 많다. 하지만 박사장(정진영)이 매니저 우곤(김강우)에게 “자, 알았으면 이제 추가 취재를 하러 가자.”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찌라시’는 취재 기자들의 좋은 소스가 되기도 한다. 언론의 취재 형태를 어느 정도 상당 부분가지고 있다. 

동의한다. ‘찌라시’는 단순히 사람들의 호기심을 위해 유통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보로서 유통된다. 그리고 그것이 주식, 사업 투자 등 돈과 관계되기 때문에 신속하게 입수하려고 하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사실과 다른 정보를 생산하거나 유통하는 사람도 있고 그 어감 자체도 상당히 부정적이지만 여전히 필요한 사람들에 의해 고급 정보로 유통되는 것은 사실이다. 

영화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어가보자.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만 해도, 미진(고원희)이 살해당하는 장면이 인터넷과 SNS를 통해 일반에 유포되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영화적인 설정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불과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유튜브나 SNS를 통해 무척 선정적인 영상이나 이미지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예컨대 얼마 전 유병언 사체 사진이 인터넷상에 유포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전문가들만 볼 수 있었던 영상을 대중이 모두 공유하는 것이다. 대중이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을 보고 있달까? 미진이 살해당하는 영상. 이것은 오히려 2014년 현재 우리에게 더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영화적인 리얼리티와 그것의 의미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영화에서 미진의 동영상이 SNS를 통해 급속도로 확산되고 공유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미진의 동영상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다. 그것이 약간은 비현실적으로 보이더라도 관객에게 더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면 언론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찌라시’ 유통업자 박사장은 결국 자신의 본업(기자)으로 돌아가 진실을 캐내려고 한다. 우리 시대 언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묻는 듯하다.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권력은 정치계와 대기업이다. 보통 사회권력을 이야기할 때 언론을 언급하진 않는다. 개인적으로 우리 사회에 나타나는 심각한 모순이 언론에 의해 발생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영화의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기자나 언론에 초점이 맞춰진 것은 사실이나 애초에 우리 사회에서 언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갖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불의의 사고로 숨진 배우를 위해 진실을 캐내는 매니저 우곤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영화의 중심이 박사장일 수도 있었는데 특별히 매니저를 소시민의 영웅으로 내세운 이유가 있나? 

영화에 다양한 직업이 등장한다. 이 영화가 정치인, 대기업, 언론을 다루는 영화이기는 하나 이 사람들의 시점으로 영화가 표현되면 자칫 정치적인 영화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한 정치권력에서 한발 물러나 있는 매니저에 관객이 감정이입을 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미진과 강우의 관계 설정에서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 단순히 배우를 아끼는 매니저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그 배우를 위해 진실을 밝히겠다는 것은 조금 설득력이 떨어지지 않나 생각한다. 

그것엔 동의하지 않는다. 매니저와 배우는 서로 관계된 직업일 뿐이다. 영화의 인물이 반드시 가족이나 연인을 위한 ‘사랑’이라는 감정이 있어야만 움직이나?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순하게 우곤을 개인적인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부조리에 맞서 정의를 추구하는 인물을 만들고 싶었다. 물론 둘 사이의 관계가 좀 더 명확했다면 관객의 입장에서 한결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대중적인 지지를 더 받을 수는 있겠지만 사실 우리 사회에 사사로운 감정을 떠나 순수하게 정의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 않나? 하나의 모델을 제시하고 싶은 마음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제하려고 했다. 

악한 인물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중에서도 절대악 차성주 역을 맡은 박성웅의 연기가 돋보였다. 차성주의 역할을 계속 나쁘게 몰아가면서 선과 악의 대비가 더욱 더 조화를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박성웅은 <신세계>(박훈정, 2013)류의 조직폭력배 역할이 반복적이라고 우려했다. 그래서 나는 차성주 역할은 회사의 CEO, 국정원 직원이라며 그를 설득했다.(웃음) 이 배우를 계속 설득한 것은 무엇보다 잘 어울려서였다. 차성주라는 인물이 영화에 자주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등장과 동시에 관객에게 악한 이미지를 줄 수 있는 배우가 필요했다. (‘이’ 다음 작품에 로맨틱 코미디를 약속하고 <찌라시> 출연을 설득했다고 들었다.) 나도 언론의 인터뷰를 봤다. ‘만약 내가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연출한다면’ 같이 하겠다는 말이었는데, 주연을 시켜주겠다고 받아들였다.(웃음) 어떻게든 방법을 강구해봐야겠다.(일동 웃음) 

영화에서 액션이 차지하는 비중도 높다. <찌라시>에서는 액션이 적재적소에서 특정한 기능으로 사용된다. 가령 박사장의 은거지인 ‘찌라시’ 유통 회사를 찾아간 우곤이 번개(윤영균)와 격투를 벌이는 신은 나중에 이들이 한 팀이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둬 조금 가벼운 합이 된 것 같다. 

맞다. 사실 그 격투 신은 굉장히 진지하게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찌라시’를 유통시키는 사무실에 대한 이미지가 무척 부정적이다. 결국 이들은 주인공과 한 식구가 되기 때문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깰 필요가 있었다. 초반에 등장하는 ‘번개’도 그렇고, 백문(고창석)도 그렇고, 조금씩 부족해 보이는 설정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극복해나가려고 했다. 

영화 초반 추격 신도 인상 깊었다. 자동차를 쫓아가는 사람. 애초에 불가능한 설정인데 도심의 빌딩을 잘 활용하고 계산해 결국 사람이 차를 따라잡게 만들었다. 상당한 재미를 주는 장면이다. 

우곤이 번개의 차를 추격하는 것이 일반인이 ‘찌라시’를 추격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런 정보 없이 무모하게 쫓아가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이용해 쫓아가는 것도 생각해봤는데, 그건 다른 영화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이라 이 방법을 택했다. 나중에 설명이 되긴 하지만 그래서 우곤을 전직 200미터 육상선수라고 설정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우곤이 매니저 일을 그만두고 발레파킹 일을 할 때 입고 있던 옷도 육상협회 옷이다.(일동 웃음) 그 추격신은 소공동에서 찍었는데 워낙 유동 인구가 많은 거리이고 최근 관광객도 많이 늘어 1주일에 한 번만 촬영할 수 있었다. 연기한 김강우 씨가 고생을 많이 했다. 

이 영화의 세 번째 액션으로 차성주의 ‘손가락 부러뜨리기’를 얘기하고 싶다. 반복적으로 나오는데, ‘찌라시’라는 상징성 때문에 손가락을 부러뜨려 글을 쓰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가 함축된 것인가? 

맞다. 애초에 시나리오상에는 손가락을 부러뜨리는 장면이 한 번 등장한다. 하지만 한 번으로 끝내는 것은 깊은 인상을 줄 것 같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손가락이 부러진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그 느낌을 알기 때문에 더욱 잔인하게 느끼는 것 같다. 사실 차성주는 O&C라는 대기업의 대리인이다. 이 그룹의 악한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차성주를 더 악한 인물로 나타내야만 했다. 사담이지만 영화 촬영 중 실제로 촬영감독의 손가락이 부러졌다. 근데 사실 별로 안 아프다고 하더라.(웃음) 더 잔인하게 손가락을 부러뜨려야 했다.(일동 웃음) 

<내 깡패 같은 애인>과 <찌라시> 두 편에 모두 출연한 배우 이준혁이 감독님을 두고 ‘조곤조곤 순해 보이지만 칼을 가진 감독’이라고 하더라. 현장에서 애드리브를 하면 좋다고 웃고서는 결국 그것을 다 편집해버린다고. 현장에서 쉽게 다가가 까다롭게 관철하는 스타일인가보다. 전략인가?(웃음) 

나는 내 스타일을 잘 모르지만, <찌라시>를 함께 한 배우 정진영도 비슷한 말을 했다. “배우가 현장에서 무엇을 요구하면 다 들어줄 것처럼 하다가 결국 감독 마음대로 한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다.”라고 하더라. 의견을 많이 듣는 편이나 결국 내 뜻대로 하는 편인 것 같다. 하지만 그러면서 관계가 좋다면 좋은 일 아닌가? 현장에서 강압적이거나 독단적인 모습을 보이진 않는데, 가능한 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설득하고 칭찬하면서 서서히 몰아가는 편이다.(웃음)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대중적 기호와 코드에 맞는 영화를 연출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찌라시> 역시 대중의 취향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인가? 

<찌라시>를 그렇게 대중적 코드에 맞춰 연출하고 싶다는 의도는 아니었다. 영화를 연출하면서 어떻게든 대중과의 접점을 찾아야 한다는 나의 영화 전반에 대한 연출 철학을 이야기한 것이었다. 사실 ‘찌라시’라는 사설 정보지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소재 자체가 일반적이지도 않고, 대중적이지도 않다. 그렇지만 해보고 싶었다. 오히려 <찌라시>는 대중적 흥행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다. 

<내 깡패 같은 애인>도 성과가 있었고, <찌라시> 역시 흥행 면에서 성공했다. 두 영화 모두 대진운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감독의 흥행운이 좋은 것 같다. 

지금 <명량>이 10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시점에 나에게 흥행운이라니….(일동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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