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구술로 만나는 영화인] ‘카메라를 든 감독 심우섭’을 회고하며

by.공영민(영화사연구자) 2015-08-02조회 2,369
심우섭
언제 어디서나 카메라를 지니고 다니며 부지런히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던 노감독이 있었다. <청춘사업>(1965), <남자식모>(1968) 등의 코미디 영화로 유명한 심우섭 감독이다. 그가 지난 5월 14일 89세 나이로 별세했다. 이른 아침, 저장해놓았던 심우섭 감독 본인의 휴대폰 번호로 부고를 받았다. 한 달 반 전, 올해 진행하는 <주제사> 구술로 여쭤볼 것이 있어 통화를 하며 조만간 보자고 한 것이 마지막 대화가 되었다. 그날 저녁, 조문한 그의 영정 앞에는 평생의 친구였던 카메라가 자리하고 있었다.

고백하자면 2007년 심우섭 감독의 구술을 맡게 되었을 때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영화 행사가 있을 때마다 마주친 감독님의 모습에 편견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행사장 어디에서나 카메라를 들이대시는 모습에 괜한 부담을 느끼기도 하고, 말귀를 잘 못 알아들으시고, 잘 이어지지 않는 대화에 답답함도 종종 느꼈다. 2007년 감독님의 구술 담당자가 되었을 때 ‘소통을 잘할 수 있을까’ 걱정하며 ‘감독 심우섭’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고, 그의 코미디 영화에 웃음을 터뜨리며 경직된 마음이 조금은 이완되었던 기억이 난다.

심우섭 감독의 구술은 걱정과 편견 덕에 외려 흥미롭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특히 “오래간만에 출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돼서 쑥스럽고, 감회가 깊다”며 시작한 유년시절부터 청년 시절까지의 구술은 심우섭이라는 개인을 이해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1927년 일본에서 태어난 그는 광복이 되기 전까지 자신이 일본인인 줄로만 알았다. 메이지 시대 일본으로 이주한 그의 부모는 광복이 되자 한국인임을 밝히며 고국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원했다. “조선인과 갈등했던 자신이 어처구니없는 동시에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 그는 1946년 어머니와 함께 시모노세키 항을 떠나 부산에 도착해 자리를 잡았고, 경남상업고등학교에서 6개월간 청강하며 한마디도 못하던 한국말을 익히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연은 목소리를 높이며 대화해야 하는 소통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한쪽 귀가 들리지 않아 보청기를 사용해야 하는 건강 문제도 있지만 성인이 된 후 뒤늦게 익힌 한국말이 그에게는 종종 어렵고 익숙하지 않은 장애물이었던 것이다.


일본에서 보낸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는 카메라에 대한 그의 애정은 나 자신이 편견을 갖고 보던, ‘카메라를 든 현재의 심우섭’을 이해하는 배경이 되었다. 부유한 집안 환경 덕에 10살 무렵부터 카메라로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스스로 현상도 하며 놀던 그는 취미를 살려 부산에서 사진기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6?25전쟁기 대중문화 예술인들의 거점 역할을 하던 부산의 사진관들에서 그는 배우 김승호, 황해를 비롯해 후일 동료로 일하게 되는 여러 영화인들과 친분을 맺었다. 전쟁 후 서울로 올라온 후에도 그는 사진기사로 일하며 영화인들과의 인연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1955년 홍성기가 감독한 <애인>의 촬영부에 들어가며 ‘영화인 심우섭’의 이력이 시작되었다.

1959년 <백련부인>으로 데뷔해 1987년 <팔도주방장>까지 67편의 영화를 감독하면서도 그는 현장의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그렇게 기록한 현장의 모습을 생생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구술을 시작하며 사진 자료를 요청드리자 감독님은 정리되지 않은 한 보따리의 사진을 펼쳐 보이셨다. 당신께서는 어마어마한 사진 자료 중에서 나름대로 시기별로 추려 가져오신 것이었는데 사진마다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있었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관심이 많았던 인물 사진을 보여주실 때는 감정의 희로애락을 보여주시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청년 시절까지 본인의 프로필 사진을 설명하며 즐거워하신 모습, 홍성기 감독의 전성기를 함께 보낸 그 시절 현장의 생기, 감독으로서 전성기를 맞이했던 1960년대 코미디 영화 촬영 현장의 유머러스함, 고인이 된 동료들 사진을 보여주시며 그리움에 사무친 모습 등… 사진과 함께하는 지나간 이야기들 속에서 보여주신 감독님의 다양한 모습은 여러 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다. 2007년 연구자로서 심우섭 감독의 구술 작업을 마치고 난 후 오랜만에 채록문과 사진을 들여다보니 그 또한 어느덧 지나간 역사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소통의 문제로부터 시작한 감독님과의 구술은 소통의 또 다른 방법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이제와 돌이켜 생각해보니 심우섭 감독에게 카메라는 조금은 불편한 말 대신 당신의 여러 가지 감정을 담아서 세상과 소통하는 하나의 길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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