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구술로 만나는 영화인] 정소영 - 영화감독

by. 전민성 2015-07-07조회 1,860

어림잡아 한 세기쯤 되는 한국영화사 전체를 놓고 봤을 때, 가장 많은 편수의 영화가 제작된 장르를 꼽는다면, 그건 누가 뭐래도 멜로드라마이다. 그 멜로드라마 가운데서도, 가장 대표적인 작품을 꼽는다면, 아마도 <미워도 다시 한 번>(1968)이 될 것임에는 큰 이론이 없을 걸로 안다. <미워도 다시 한 번>은 1968년 개봉 당시, 두 달 넘게 극장에 걸려 37만의 관객이 들어 당시 흥행 기록을 세웠으며, 이어 제작된 <속 미워도 다시 한 번>(1970), <미워도 다시 한번(3편)>(1970), <미워도 다시 한번(대완결편)>(1971) 등의 후속편까지를 더하면 서울 개봉관에서만 줄잡아 100만 가까운 관객이 든 시리즈이다. 이쯤 되고 보면 단순한 흥행작이라기보다는, 그 자체로 하나의 시대 표상이 된 영화라고 불러도 좋을 지경이다.

그리고 <미워도 다시 한 번> 시리즈 모두를 연출한 감독이 정소영이다. 정소영 감독은 192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신극 공연을 보며 자라났고, 해방 이후, 대학 재학 시절 본인이 직접 극단을 꾸려 지방을 돌기도 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HLKZ(대한방송)에 입사하여 라디오 방송극본을 쓰며 방송계에 입문하였고 1961년 KBS TV로 자리를 옮겨 수백편의 드라마를 쓰고, 또 연출한다. 그렇게 방송 쪽에서 활발히 활동하다가, 영화 쪽으로 활동 무대를 옮긴 것이 1967년 <내 몫까지 살아주>의 감독을 맡으면서이다. 그렇게 나이 마흔에 늦은 데뷔를 한 후, 이어 감독한 작품이 <규방>(1968)이다. 이 영화는 평단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흥행에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한다. 정소영은 회고하길, 이 때의 흥행 실패가 관객과 흥행에 대해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바로 뒤이어 발표한 <미워도 다시 한 번>(1968)과 차례로 제작된 속편들로 한국의 대표적인 흥행감독으로 떠오른다. <미워도 다시 한 번> 시리즈의 세 번째, 네 번째 속편의 시나리오는 당시 신예작가였던 김수현이 맡아 작업했는데, 이 이름 역시 감독 정소영을 이야기할 때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든 인물이다. 1970년 라디오 방송 공모에 당선되어 막 작가 생활을 시작한 김수현은 정소영 감독의 제안으로 <저 눈 밭의 사슴이>의 시나리오를 쓰며 영화계에 입문하고, 이후 정소영 감독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파트너쉽을 이룬다. 김수현이 시나리오를 쓰고, 정소영이 연출한 작품들은 최루성 멜로드라마를 범람케한 주범으로 비판 받기도 했으나, 이 시기 그들의 파트너쉽 아래 제작된 작품들은 평단에서 멜로드라마인 동시에, 새로운 리얼리즘 영화로 평가받기도 한다. 예컨대, <저 눈 밭의 사슴이>(1969). <잊혀진 여인>(1969), <아빠와 함께 춤을>(1970) 등의 영화들은 언론에서 (이른바 최루성 멜로드라마와 대비되는) 작품성 있는 멜로드라마라는 평을 들었으며, 특히 <잊혀진 여인>과 <아빠와 함께 춤을>은 각각 1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대중적 성공도 거둔 작품들이다. 이후 정소영-김수현 콤비는 <집을 나온 여자>(1971), <나는 고백한다>(1976)에서 비슷한 내용을 반복하여 영화로 만드는데, 1970년대 중반 한국영화의 전반적인 침체와 함께 슬럼프를 맞이한다. 그러던 정소영을 다시 흥행감독의 위치로 복권시킨 것은 1978년의 <내가 버린 여자>와 그 연작인 1979년의 <내가 버린 남자>이다. <내가 버린 여자>는 37만 명의 관객을 <내가 버린 남자>는 약 24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성공작이었다. 이 두 편의 영화는 어두운 과거를 가진 소녀가 중년의 부유하고 자상한, 하지만 어딘가 외로운 남자(두 편 모두 윤일봉이 연기하고 있다)를 만나고, 그 남자와의 결혼을 통해 새로운 삶을 꿈꾸지만 결국 출신을 극복하지 못하고 실패한다는 플롯을 공유하고 있으나, <내가 버린 여자>에서는 ‘소녀’(<바보들의 행진>(1975)의 히로인 이영옥)가 죽음을 맞는 것으로, <내가 버린 남자>에서는 (유지인이 연기한) ‘소녀’가 살인을 저질러 교도소에 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정소영, 김수현 콤비의 영화에는 그저 최루성 멜로드라마라고 폄하하기에는 아쉬운, 일종의 정치성이 담겨져 있다고 할 것인데, 그 정치성이 어떤 의미에서의 정치성인지 살펴보기 위해 1960년대와 1970년대 각각의 대표적인 흥행 시리즈인 <미워도 다시 한 번>과 <내가 버린 여자>, <내가 버린 남자> 연작을 비교해 보기로 하자.

1990년대 당시의 젊은 영화학자들 사이에서 기호학, 사회학, 여성주의, 정신분석학 등 자신들이 익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비평적 도구를 통해 한국 대중영화를 다시 읽어보려는 시도들이 경주되었는데, 그 때 가장 빈번히 소환된 영화 중 한편이 정소영의 <미워도 다시 한 번>이었다. 그러한 독해의 노력 속에서 폄하의 수사였던 ‘최루’는 권위주의 정권 아래의 억압된 상태에서의 카타르시스 혹은 억압적이고 차별적인 가부장적 사회에서의 여성의 위치에 대한 공감과 같은 의미로 다시금 의미화되고 구원되었다. 특히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페미니스트 비평은 <미워도 다시 한 번>과 같은 최루성 멜로 영화들이 결국 보수적인 가부장적 가족관계를 강화하는데 기여한다는 기존의 비평을 넘어, 그 가부장적 가족 관계에 상처를 내는 지점들이 있음을 포착해내려고 고심하였다.

그러한 적극적인 독해 작업을 지나, 오늘날 이 영화를 다시 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띠는 부분은 ‘혜영(문희)’과 ‘신호의 아내(전계현)’의 자리바꿈의 문제이다. 혜영이 겪는 문제는 계급갈등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미워도 다시 한 번>의 초반부를 생각해보자. 처음에 그 둘의 계급은 거의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유사하게 설정되어 있거나, 혹은 어떤 면에서는 혜영이 약간 더 상위의 자리를 차지하는 듯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다가 영화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전계현을 상위에 위치시키는데, 이는 <미워도 다시 한 번>을 통해 보여주는 한국의 중산층 가족이 매우 짧은 시기에 형성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 수행성은 그리 공고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미워도 다시 한 번>의 첫 장면, 호수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신호를 보여주고, 곧 이어 세련된 중산층 가정주부의 옷차림과 말투를 몸에 익힌 신호의 아내가 나타난다. 하지만 신호가 혜영이 서로 사랑하던 8년 전의 플래시백에서 나타나는 신호 아내의 차림과 행동거지는 상당한 격차를 보인다. 서울에서 하숙하며 공부하는 남편을 찾아온 아내의 옷차림은 고쟁이에 둘둘 말아 올린 한복 차림이며, 말투와 행동 역시 고상함과는 거리가 멀다. 반면 회상 속, 혜영은 세련되고 발랄하며 지적이다. 도시에서 유치원 교사를 하고 있는 혜영의 세련된 차림은 그녀의 고향 묵호의 다른 가족들과의 차림새와도 비교된다. 혜영은 묵호로 내려오라는 가족들의 권유를 필사적으로 거부하고, 신호와의 결혼을 통해 자신의 계층 이동의 완성을 꿈꾼다. 그리고 그 계층 이동의 꿈이 완성하려던 찰나, 신호가 유부남이었음이 드러나고, 그녀는 전국민적 상승의 계급이동 대열로부터 탈락하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치마를 들어 올리고 길바닥 싸움을 마다하지 않던 신호의 아내는 그 상승의 대열 속으로 안착하여, 8년 만에 전혀 다른 교양과 문화적 자산을 학습한 채 나타난다. 이 지점은 모성 멜로드라마 텍스트로 흔히 인용되고 분석되는 1930년대의 할리우드 영화인 <스텔라 달라스>(1937)에서의 갈등이 두 남녀의 계급차이와, 단지 부의 축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교양과 문화, 즉 문화적 자본의 문제까지를 포함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과는 다른 구조이다. 즉, <미워도 다시 한 번>이 증언하고 있는 1960년대의 한국은 그런 부르주아 멜로드라마의 배경이 될 부르주아 가정과 문화는 부재한 상태이며, 다만 누구나 욕망하고 더 중요하게는 실제로 곧 그렇게 될 수 있는 전국민적 계급 이동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러한 맥락에서 볼 때 혜영의 울분과 눈물은 그 탈락에서 비롯된다 할 수 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정소영-김수현 콤비의 1970년대 말의 히트작 <내가 버린 여자> 연작은 한국사회의 계급 기반이 <미워도 다시 한 번>의 그것과는 달라져 있음을 보여준다. 우선 혜영이 소망했던 삶이 가질 수 없는 무엇이 아니라, 가질 수도 있었을 무엇이었던 것에 비해, <내가 버린 여자> 연작에서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이 소녀가 매너 좋고 부유한 아저씨를 만나 사랑을 얻는다는 판타지적 설정에서 출발한다. 소녀와 아저씨 사이의 차이는 단순히 축적된 부의 규모의 차이일 뿐 아니라, 그 소유한 문화적 자본의 차이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버린 여자>에서 소녀의 세련되지 못한 모습과 교양 없음은 아저씨의 사랑을 얻어 획득한 위치를 계속 위협하고, 결국 죽음으로까지 내몬다. 한편, 이어 만들어진 <내가 버린 남자>에서는 기억상실이라는 설정이 더해져 소녀에게 아저씨의 문화 자본을 모방, 학습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놓지만, 종래에 드러나는 그녀의 출신성분은 그녀의 발목을 잡고 살인을 저지르게 내모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정소영, 김수현 콤비의 영화를 두고 정치적이라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정치적 사안에 대한 비판이나 슬로건을 내걸고서 함께 거리로 나아가 투쟁할 것을 종용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미워도 다시 한 번> 시리즈나 <내가 버린 여자>, <내가 버린 남자> 등이 정치적일 수 있는 것은 1960년대 전국민적 규모의 동원과 산업화 속에서 모두가 계층 이동성을 쉽게 얻고, 또 그 운동의 방향 안에만 속해있다면 문화적 자본 역시 그리 어렵지 않게 확보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열망으로부터, 1970년대 산업 구조의 정착과, 그로 인한 필요 노동력의 세분화 작업을 통한 계급화의 시작으로 인해 사회적 이동성이 점차 차단되어가며 이상적 가정이라는 공간 속에 자신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지 않음을 (극단적으로는 죽음을 통해서까지) 확인시켜주는 작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러한 확인이 학술적인 수사나 논리 정연한 추론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아도 좋은, 흥행에서도 성공한 대중영화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정소영, 김수현의 영화를 두고 정치적이라 한다면 바로 그런 의미이다.


*** 
사족 1. <미워도 다시 한 번>의 엄청난 성공은 1편의 시나리오 작가 이성재(정소영의 데뷔작 원작을 비롯 다수 인기 TV 연속극 작가)와 정소영 감독 사이의 분쟁을 낳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결국 둘은 결별하고 정소영 감독이 <속 미워도 다시 한번>이라는 제목으로 2편을 개봉, 이성재 작가 역시 거의 같은 설정, 같은 배역이름, 주요 역할에 중복된 배우(문희, 김정훈)를 캐스팅하여 <미워도 다시한번>의 2편이라고 홍보하며 <떠나도 마음만은>(1968)을 개봉하기도 했다.

사족 2. <내가 버린 여자>(1977), <내가 버린 남자>(1979)의 연작에 이어 비슷한 구조, 즉 낮은 계급의 소녀가 사회적으로 안정된 남성을 만나 사랑을 얻고, 결국 그 남성의 자리에 안착하려하지만 실패하고 만다는 이야기 구조는 <버려진 청춘>(1982), <그 마지막 겨울>(1988)까지 계속 이어지며 바꿔 묻는 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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