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구술로 만나는 영화인] 정성조 - 영화음악가

by.최지선(음악평론가) 2015-06-23조회 2,090

정성조(1946~2014)는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까지 활동했던 대중음악 작곡가이자 영화음악가, 플루트와 색서폰 연주자이다. 서울대 음악대학 출신으로 KBS관현악단장과 서울예술대학 교수를 역임하는 등 ‘엘리트’ 음악인이기도 하다. 지금도 여러 현장에서 현역 재즈 연주자로서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김민기, 양희은, 한대수 같은 1970년대 포크 음반에 중요한 ‘산파’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대중음악사에서도 중요한 ‘배후’ 인물이었다. ‘정성조 쿼텟’ 또는 ‘정성조와 메신저스’를 통해 연주자로 구성된 그룹 활동을 하면서 대중음악에 재즈적 어법의 연주와 편곡을 삽입했다. 그렇지만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재즈 록 어법이 보다 빛을 발할 수 있었던 데에는 영화음악이 주효했다. 1970년대 중반 무렵 <어제 내린 비>(장호, 1974), <영자의 전성시대>(김호선, 1975), <겨울 여자>(김호선, 1977) 등의 영화에는 메신저스와 함께 트럼펫이나 색서폰 등의 브라스 섹션을 위시하여 재즈 록(또는 퓨전 재즈)적인 사운드가 투영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정성조는 ‘청년영화’ 또는 ‘호스테스 멜로드라마’를 위시한 새로운 영화의 개막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상의 음악들은 ‘본격적인’ 의미의 사운드트랙 레코딩 시대를 개막한 작품들이라는 점에서 한국 영화음악사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당시 한 작품을 위한 영화음악 음반이 발매되는 사례는 거의 없었고, 영화음악 음반이라고 해도 단순하게 한두 곡의 주제가만이 해당 가수의 음반이나 컴필레이션 음반에 수록되는 정도에 그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온전한 의미의 사운드트랙 음반이 존재하지 않던 상황에서, 연주 음악과 주제가, 대화 클립 등을 모두 담은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본격적인 사운드트랙 음반이 발매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별들의 고향>이나 <바보들의 행진>처럼 <어제 내린 비>나 <영자의 전성시대>의 경우 영화와 음악을 위한 상생전략으로서 음반사와의 기획물로 발매되기도 했다.

이전 시기 많은 영화음악가들의 작품이 관현악단의 오케스트라 사운드 위주였던 경향과 달리, 그는 밴드 음악이 주도하는 일렉트릭한(또는 록적인) 어법의 사운드를 구사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영화음악’의 경향을 이끈 선두주자였다. 1970년대 ‘청년영화’로 대변되는 새로운 젊은 영화들의 실험이 (강근식이 속해있던 ‘동방의 빛’과 마찬가지로) 대중음악인의 작품과 조우하면서 화학작용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이처럼 정성조는 재즈 록 밴드 메신저스와 함께 (당시 대중가요계에서는 제대로 표현할 수 없던) ‘모던한’ 사운드를 위한 실험을, 영화 스코어 위에 구현했다. 이는 여러 버전의 변주 트랙을 통해 마련되기도 했고, <겨울 여자>처럼 (곡명에 모두 삽입되어 있는 것처럼) ‘겨울’을 소재로 한 컨셉트 음반 형식을 통해 표현되기도 했다. 또한 노래 형식의 각인적인 주제가를 통해 대중적인 접근도 함께 담았다. 

이후에도 그는 김호선과는 <밤의 찬가>(1979), <죽음보다 깊은 잠>(1979)의 영화(이상은 한 음반으로 발매)를, 이장호와는 <이장호의 외인구단>을 통해 영화음악 작업을 이어갔다. 버클리 음대 유학파 1세대로서 수학하고 돌아온 뒤인 1980년대에도 그는 영화음악계에서 다수의 영화음악을 맡아 왕성한 활동을 했다. <깊고 푸른 밤>(1985)을 필두로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안녕하세요 하나님>(1987), <천국의 계단>(1991) 등 배창호 감독의 영화의 작품에서 영화음악을 맡았다. 이외에도 <이혼하지 않는 여자>(곽지균, 1992), <레테의 연가>(장길수, 1987), <나의 사랑 나의 신부>(이명세, 1990), <우리 사랑 이대로>(강정수, 1992) 등에 참여했다. 영화음악의 경향은 보다 다채로와지는데, 정수라가 부른 영화주제가가 크게 히트했던 <이장호의 외인구단>처럼 노래 형식에 몰두된 경우도 있다. <깊고 푸른 밤>에서 ‘제인의 테마’처럼 쓸쓸하고 슬픈 트랙 이외에 불협화적이고 불길한 실험적 음악을 주인공의 절망과 갈등에 매치시킨 반면, <기쁜 우리 젊은 날>이나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서는 경쾌한 스윙감 넘치는 재즈 클립을 통해 낭만적인 청춘영화의 분위기를 돋우기도 했다. 

<이장호의 외인구단>으로 1986년 대종상 영화제에서 음악상을, <레테의 연가>로 1987년 한국영화평론가협회에서 수여하는 음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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