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구술로 만나는 영화인] 장석준 - 촬영

by.안재석(한국영상자료원 객원연구원) 2012-08-17조회 3,365

1980년 8월 17일, 장석준 촬영감독이 영면(永眠)하던 날 억수 같이 장대비가 쏟아졌다고 한다. 향년 47세. 바로 얼마 전 이만희 감독도, 하길종 감독도 젊은 나이에 훌쩍 데리고 갔던 하늘이 그마저 일찍 데리고 간 것이 못내 미안했던 것일까.

서라벌예술대학을 졸업하고 1959년 김수용 감독의 <구혼결사대>로 촬영감독으로 데뷔한 장석준은 미공보부(USIS) 출신으로 청계천에서 영화기재를 제작하던 영공사의 전원춘 대표와 함께 1967년 한국 최초로 입체영화 카메라와 현상기, 영사기를 만들어 <천하장사 임꺽정>(1968, 이규웅), <몽녀>(1968, 임권택) 등을 촬영했고, 1970년에는 역시 한국 최초로 70mm 카메라 제작에도 성공해 <춘향전>(1971, 이성구)을 내놓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유재형 촬영감독, 이종상 한국천연색현상소 대표 등이 테크니스코프(Techniscope) 카메라와 현상기를 만드는 데 크게 일조하기도 했으며, 좀 더 근사한 컬러를 만들어내고픈 일념으로 직접 현상소를 차려 운영하기도 했다.

사실 그가 생전에 남긴 글에서도 “흔히 영화가에서 ‘나’하면 청계천을 연상하리만치 많은 시간을 청계천에서 서성거린다. (중략) 청계천 하면 영화와는 거리가 먼 동네이다. 이런 곳에서 내가 미쳐버린 영상에의 모험은 시작된 것이다.”1) 라고 했을 만큼 그는 촬영감독으로서보다 평생을 한국영화의 기술 개발에 매진한 ‘영화기술자’로 더 유명하다. 이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1978년 여름, 대종상 수상자 해외연수 계획에 따라 <집념>(1976, 최인현)으로 제16회 대종상영화제에서 촬영상을 수상한 그가 할리우드 등지를 견학하고 돌아왔는데, 귀국하는 날 세관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 한다. 묵직한 가방에서 쏟아져 나온 물품들이 모두 카메라나 현상소에 필요한 부속품들로 마치 고철상인을 방불케 했기 때문이었다. 궁색한 여비를 아끼고 쪼개 써서 사온 선물보따리가 한국영화계의 낙후된 기술 분야를 개선해보기 위한 자료들로만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2)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장석준을 비단 ‘영화기술자’로만 기억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그는 20여 년의 짧은 활동기간 동안 무려 81편(KMDb 기준)의 작품을 촬영했으며, ‘은막의 이중섭’이라는 별명답게 유명 감독들과 함께 영화사(史)에 남을 수많은 명작을 남겼다. 대종상, 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상 등에서 촬영상을 수상한 <>(1967, 유현목), <봄봄>(1969, 김수용), <집념> 등을 비롯해 한국 모더니즘 영화의 효시로 평가받는 <안개>(1967, 김수용), <장군의 수염>(1968, 이성구) 등의 수려한 영상이 바로 그의 솜씨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1970년대 한국 뉴 시네마(New Cinema) 운동의 숨은 공로자이기도 했다. 한국영화사상 유래 없는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청년영화(Young Cinema)’의 화려한 서막을 알린 이장호 감독의 <별들의 고향>(1974), 1975년 1월부터 국도극장에서 연이어 개봉되어 흥행 릴레이를 펼친 <어제 내린 비>(1974, 이장호), <영자의 전성시대>(1975, 김호선), 그리고 한 동안 한국영화 최고의 흥행작으로 군림했던 <겨울여자>(1977, 김호선) 모두 그가 촬영한 작품들이다. 또한 이들 젊은 감독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영상시대’의 공식적인 첫 작품 <숲과 늪>(1975, 홍파)과 마지막 작품 <>(1978, 홍파), 하길종 감독의 유작 <병태와 영자>(1979)도 그의 손을 거쳤다.

“흔히 영화는 오락이라고 쉽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흔히 영화가 예술인가 하고 의심하는 경우도 겪는다. 딴따라. 그러면 지금까지 생명처럼 지켜온 영화 20년은 무엇인가?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영화의 방법처럼 순수하게 많은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언어는 없다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공감할 수 있는 방법은 영화 이외에는 없는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유언이 되어버리고 말았지만, 이러한 영화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있었기에 그는 그렇게 짧디 짧은 생애에도 그토록 많은 일을 하고 떠났다.

 
/ 안재석(한국영상자료원 객원연구원)

주)
1. 장석준, 「청계천과 나」, 계간 《영상시대》 1977년 여름 창간호, 126쪽.
2. 변인식, 「젊은 한평생 고철만 모으다가 - 장석준」, 『영화를 향하여 미래를 향하여』, 공간미디어, 1995, 1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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