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구술로 만나는 영화인] 우연정 - 촉망받은 70년대 배우. 마지막 작품은 외다리 연기

by.조관희(영화평론가) 2008-11-11조회 1,519

우연정(禹演征. 본명 朴希子)은 1970년도 노진섭 감독의 '사랑을 빌립시다'로 영화배우가 되었고 10년 뒤인 80년도에 이원세 감독의 ''그대 앞에 다시 서리라'를 끝으로 배우생활을 마감했다. 직업 배우에게 10년 경력은 결코 길다고는 할 수 없으나 우연정은 그 10년 동안 100편 가까운 영화에 출연했고 70년대 중반까지 가장 주목받는 신세대 여배우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대학 다닌 여배우가 흔치않던 당시에 서울 예고와 숙명여대 무용과를 다닌 재원이란 점과 재학중에 어느 스타킹회사가 주최한 '제1회 전국 각선미대회'에 뽑힌 화제인물이란 점이 그녀의 줏가를 높였다. 실제로 감독들은 영화속에서 그녀의 미모와 각선미와 유연한 몸매를 어껗게 성공적으로 상품화 하느냐에 신경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우연정의 최대 강점은 예리한 감각과 활달한 성격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항상 남보다 한발 앞서는 감각과 화술과 사교술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과 교류했다. 한 두감독에게 얽매이지 않고 이감독 저감독 여러 감독의 다양한 영화에 출연할수 있었던 것도 그녀의 활달한 대인 관계 덕이라고 본다. 


문학에도 재질이 있어서 시도 쓰고 수필도 썼다. 그녀는 두권의 책을 써내어 화제를 일으켰다. 80년도에 펴낸 '그대앞에 다시 서리라'와 90년도에 나온 '삶의 무대에는 아무도 대신 서주지 않는다'가 그것이다. 전자는 그녀가 골수암이라는 치명적인 병을 앓고 오른쪽 다리를 절단한후 그 비참하고 절박했던 생활을 그린 투병기인데 한동안 베스트 셀러가 되었었다. 후자는 그 뒤 10년을 치열하게 살면서 겪고 깨달은 삶의 단상을 담은 자전적 에세이로 한 여성지에 연재된후 단행본으로 출판하였다.



'뜻밖의 암선고로 임신 6개월만에 다리를 절단해야만 했을 때 나는 내 인생이 완패했다고 단정했었다. 그런데 절망 속에서도 한가닥 살고픈 마음을 내 주위에서 항상 불러 일으켜 주었고 그것이 어언 10년이 되었다. 여러 배색으로 짜여진 나의 목발인생. 그 10년 동안의 삶을 되돌아보는 지금 나는 이렇게 허탈한 것이 ,이렇게 상처투성이 인 것이 인생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90년도에 펴낸 '삶의무대--'책머리에 우연정은 이렇게 썼다.



다리를 잃은 脚線美의 여왕



필자가 우연정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80년도 '그대앞에 다시 서리라'의 시사회장에서 였다. '각선미의 여왕'이라던 우연정이 한창 나이에 오른쪽 다리를 통째로 들어 내고 외다리로 서서 연기한 눈물 겨운 영화다. 다리를 잃은 각선미의 여왕이라니, 그 심신의 고통이 어떠했을까. 그녀가 생사의 고비를 넘으며 일기형식으로 기록한 그 투병일기가 영화로 만들어진 것인데 채 치료가 끝나지 않은 상태여서 우연정은 항암제주사를 맞으며 그 어려운 촬영을 해냈다. 


'--다리의 절단도 문제였지만 항암제 주사로 머리카락이 다 빠져 정말 카메라가 머물 곳이 없었다. 감정을 잡고 연기를 하다보면 그냥 가발이 벗겨져 버리는 것이다.--그걸 주으러 다니는 사람이 소품부에 고정적으로 정해져 있기도 했다.--10센티의 다리만 있어도 의족착용이 쉽다는데 대퇴부 절단의 불편은 엄청났다.'



'목욕 도중 다리에 이상이 온 것을 발견하는 장면을 찍을 때 머리카락이 다 빠진 나에게 이원세 감독은 수건을 쓰게 했다. 탕 안에서 내 얼굴 표정만 찍고 나를 안아 밖으로 나오게 해주면 두다리가 있는 대역이 들어가 멀쩡할 때의 다리를 찍고, 다시 나를 탕안에 넣어주면 소스라치는 표정을 찍고 ,다시 대역이 들어가 분장한 다리를 찍고--이때 연출부에서 우리를 준비시킬 때 이렇게 불렀다. 얼굴 스탠바이--,다리 스탠바이--,다시 얼굴 스탠바이--'


보통의 결심으로는 감당키 어려운 고역이었으나 우연정은 계속되는 통증과 항암치료의 고통을 극복하고 이를 해낸 것이다. 그 초인적 집념의 배경을 그녀는 수기에 이렇게 썼다.


'죽음의 그림자만이 뒤따를 때 나에게 할 일이 있다는 것은 더없는 힘이 되었다-스탭들과 촬영장에서 다시 만나는 것은 나의 살아있음의 확인이었고 스탭들은 다시 돌아오는 나에게 항상 박수를 쳐 주었다.'



'幸運'으로 演技 開眼



사족같은 얘기지만 필자는 당시 영화담당 기자로 뛰면서 우연정 출연 영화는 데뷔작에서부터 마지막 작품까지 거의 다 보았다. 대표작을 꼽는다면 '나와나'(이원세 감독') '들국화는 피었는데' (이만희 감독) '빵간에 산다' (이원세 감독) '행운' (주동진 감독) '나는 살아야 한다' (최하원 감독 ) 그리고 위 의 '그대앞에 다시 서리라' 를 들수 있다.


이중 '나와 나'는 데뷔 2년생인 우연정에게 72년도 대종상의 신인연기상을 안겨주었다. 대종상의 부문상중 가장 경쟁이 심한게 이 신인상이기 마련인데 우연정은 이 상을 쟁취함으로서 순탄한 연기가도를 보장 받은 셈이었다. 위에서 지적했듯 우연정에게는 각기 내로라하는 야망있는 감독들이 출연 교섭을 해왔으며 그래서 그녀는 애정 멜로영화 스파이 추리영화 로맨틱 코미디 그리고 박노식의 '작크'같은 액션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섭렵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우연정의 영화속 캐릭터는 대부분 그녀의 이미지 그대로 활달 발랄한 첨단 여성이었다. 비극속의 청순가련형이 아니라 당당하게 자기주장을 관철하는 신세대 여성상이었고 그게 제격이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주동진 제작 감독의 '행운' 이다. 국내 굴지의 영화 제작자로 당시 막강한 재력과 영향력을 가졌던 주동진이 감독으로 변신하면서 그 야망을 쏟은 영화인데 그만큼 규모나 물량 면에서 화려했다. 출연진도 김진규 도금봉 신일용 백일섭 쓰리보이 이기동 튀스트김 등 당대의 인기스타들이 동원된 가위 올 스타 캐스트다. 이 영화에서 우연정은 6명의 남자배우 상대역으로 주연했다.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일약 대기업의 후계자가 된 처녀 재벌 총수역이다. 6명의 신랑 후보들이 이 일등신부를 차지하려고 펼치는 갖가지 구애작전이 주요 내용인데 새마을 노래가 깔리고 변화하는 서울, 국토개발 건설현장이 배경을 이룬다. 


히로인이 선택하는 신랑감은 결국 겉멋 든 미남이 아니고 묵묵히 일하는 산업 일꾼이라는 것으로 70년대 정부시책에 맞춘 정책영화의 하나이다. 하지만 우연정은 이 작품에서 놀기 좋아하는 철없는 말괄양이에서 권위 있는 기업주로 변모해 가는 心象을 비교적 잘 그려냈다. 그래서 이작품으로 연기개안을 했다는 평을 들었다.



사업가로 다시 섰다



우연정의 마지막 영화 ' 그대 앞에 다시 서리라' 는 실화를 사실 그대로 그리는데 충실한 작품이다. 까닭에 이 영화에서 웃음이나 유머같은 영화적인 재미를 찾을 여유는 없다. 넌 픽션 영화의 함정이다. 하지만 우연정에게는 삶의 의욕을 되찾게한 기념비적인 영화이며 필생의 역작임에 틀림 없다. 관객의 평판도 대단해서 그해 대종상의 특별상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영화제들이 그녀에게 상을 안겨주었다. 매스 컴은 다투어 우연정의 '인간승리'를 보도했었다.


그로부터 22년이 지난 이제 우연정은 그녀가 거둔 인간승리의 결실들을 바라보며 경기도 부평의 안락한 아파트에서 안정되고 넉넉한 50대를 보내고 있다. 생후 6개월에 엄마와 함께 영화에 나왔던 큰딸 민들레(23)는 러시아 볼쇼이 무용학교에서 무용공부를 하고 돌아와 광고모텔을 하고있으며 그 아래 민나리 민비 두딸은 현재 대학 연극영화과 재학중이다. 엄마를 닮아 포토제닉한 미모의 세 자매는 기회가 되는대로 영화에 나갈 생각으로 준비를 하고 있다.


31살에 영화배우의 꿈을 접고 인생 完敗의 절망감에 빠졌던 우연정--그러나 그녀는 절망과 불구를 딛고 일어나 사업가로 훌륭히 성공했다. 타고난 사업수완을 살려서 한때 4개의 요식업체를 경영했고 인천 송도와 부평에 고층 빌딩을 지었다. 건축업 빌딩 임대업등 우연정은 억척스레 일했고 돈도 많이 벌었다고 한다 .각계각층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두다리 인간보다 더 바삐 뛰어왔고 지금도 뛰고 있다. 활기를 잃지 않는 밝은생활 덕인지 우연정의 얼굴은 밝고 편안하다. 무엇보다도 30대의 미모를 아직 잃지않고 있는게 놀랍다.
 
조관희(영화평론가) / 2003년




<프로필>

1949년 4월 17일 전주 출생

1971년 숙명여자대학교 무용과 졸업 

1971년 노진섭 감독 <사랑을 빌립시다> 데뷔



<주요 경력>

1980 골수암으로 우측다리 절단 투병기 영화화

1982 신앙을 통한 암투병 간증으로 전국 순회

1985 KBS주최 영광의 얼굴 수상

1991 중국 등소평 주석의 子 '등풍방'의 초청으로 아태장애인 대회 참석

1992 중국 국영방송 C-TV출연

2000 MBC 주부교실 강사 전국순회 강의 30~40회

현재 EURO SYSTEM 대표, 한국장애인 복지신문사 부이사장, 

한국장애인복지체육회 이사, 한국장애인문인협회 이사, BETTER LIFE이사 



<수상 경력>

1972~1980 한국영화 및 홍콩영화 90여 편 주연

청룡상, 대종상, 여우주연상 등 다수 수상



<주요 작품>

그대 앞에 다시 서리라, 나와 나, 몸 전체로 사랑을, 행운, 배따라기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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