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용삐용B무비]사방지 송경식, 1988

by.주성철(영화평론가) 2013-12-11조회 15,572

어려서 본 에로영화 중 가장 충격적인 영화는 단연 <사방지>다. ‘그들에겐 남자가 필요 없었다!’는 도발적인 카피와 함께 입을 반쯤 벌린 배우 방희의 뇌쇄적인 표정이 꽉 찬 포스터도 무척 야했고, ‘퀴어’라는 개념 자체도 없던 시기에 ‘반남반녀’ 사방지라는 캐릭터 자체가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다. 선우일란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큰 가슴을 억지로 가리고 있던, 그러니까 마치 나이아가라 폭포를 널빤지로 막고 있는 것 같은 모양새의 <이조춘화도>(1988) 포스터와 더불어, 그저 한참을 서서 봤던 당시 포스터들 중 하나였다. 실제로 <사방지> 제작사인 인창영화사의 정준규 대표는 공연윤리위원회의 불가판정에도 불구하고 <사방지> 포스터를 배포, 부착한 혐의로 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나이아가라를 널빤지로 막는 <이조춘화도> 포스터
나이아가라를 널빤지로 막는 <이조춘화도> 포스터

영화가 시작하면, 폭풍우가 몰아치는 가운데 외딴 초가에서 한 여자가 아이를 낳고 죽는다. 우연히 옆을 지나던 한 스님이 그 아이를 거둬 절로 데리고 들어가고, 그렇게 사방지(이혜영)는 절에서 성장한다. 한편, 절에 남편의 탈상제를 지내러 왔던 청상과부 이소사(방희)는 독특한 매력을 뿜어내는 사방지를 눈여겨 본다. 폭포에서 몸을 씻던 그녀 앞에 또아리를 튼 뱀이 등장하자, 그것을 나뭇가지로 건져 올려 무심히 던져 버리는 사방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뱀의 클로즈업과 사방지의 등장은, 이후 이소사가 사방지의 ‘물건’을 처음 발견하고 놀라는 장면에 대한 복선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소사는 스님에게 얘기해 사방지를 자신의 몸종으로 데리고 내려온다. 
 
사방지의 등장
사방지의 등장

한창나이에 남편과 사별한 이소사는 밤마다 마구 몸을 뒤척이며 괴로워한다. 급기야 남근 모양의 나무로 만든 성기구를 꺼내 욕구를 해소한다. 그러고 보면 방희임권택의 <씨받이>(1986)에서도 비슷한 역할이었다. 아이를 낳지 못해 씨받이 옥녀(강수연)에게 밀려난 윤씨 부인(방희)의 처지도 그러했다. 유현목 감독의 <>(1977),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1981), 박호태 감독의 <빨간 앵두>(1982) 등에 출연한 1973년 TBC 특채 탤런트 출신의 방희는 무척이나 매력적인 배우였다. 특히 <신궁>(1979), <짝코>(1980), <오염된 자식들>(1982), <불의 딸>(1983), <흐르는 강물을 어찌 막으랴>(1984) 등 임권택 감독 영화에서 주, 조연을 가리지 않고 중요한 역할을 해냈는데(아마도 출연 편수로만 보자면 김지영 아주머니와 함께 가장 많은 임권택 영화에 출연했을 것이다), 바로 <씨받이>가 일종의 세대교체의 순간이었던 것. 임권택 감독의 이전 영화들에서 방희가 맡은 역할이 ‘욕’(欲)이었다면 언제부턴가 그의 영화에서 그것이 사라졌고, 그것을 임권택 영화에서 방희의 퇴장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오염된 자식들>에서 병구(안성기)는 명희(방희)의 과도한 자식욕으로 인해 성적 공포심에 시달리는 남자였다. 

별당에서 혼자 지내는 이소사는 이제 대놓고 사방지를 방으로 불러들인다. 천자문을 읽고 수를 놓을 줄도 아는 사방지를 보고는 “절에서 밥이나 짓는 애인 줄 알았는데 이런 재주가 있다니. 날마다 너를 새롭게 보는구나.”라며 작업을 걸고 결국 야심한 시각에 이르자,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거라.”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소사가 레즈비언은 아니지만 사방지에게서 어딘가 사내다운 중성적 매력을 느껴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이소사의 손이 점점 아래쪽으로 내려가자 사방지는 방을 박차고 나온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 이소사가 사방지의 특별한 육체에 대해 알게 되는 순간이 기어이 찾아온다. 그때 사방지의 ‘아래’를 손맛으로 확인함과 동시에 거의 0.1초 정도 막대기 모양의 물체가 몽타주로 끼어든다. 그리고 두 사람의 정사신이 <쌍화점>(2008) 못지않은 농도로 진행된다. 다음 날 아침 식사시간, 이소사는 무척 흡족한 표정으로 ‘먹방’을 시연하며 기존의 별당 담당 사월이에게 명령을 내린다. “앞으로 별당 일은 사방지가 다 혼자서 할 수 있으니, 이제 넌 그만 가 보거라.”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거라.”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거라.”

얼마 전 900만 관객을 동원한 <관상>처럼 ‘사방지 사건’ 역시 수양대군이 김종서를 죽이고 계유정난으로 왕권을 찬탈한, 바로 그 세조 때의 이야기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생생하게 기록돼 있는데 세조 집권 후기인 1462년, 괴이한 사건으로 대신들과 사법기관이 떠들썩했다. 이른바 양성인(兩性人) 사방지 사건이다. 사방지 사건이 처음 제기된 것은 세조에게 올려진 한 상소 때문이었다. “김구석의 처 이씨의 여자 종인 사방지가 여복을 하며 종적이 괴이하다고 하여 관가에서 잡아다가 이를 보았더니, 과연 여복을 하였는데 음경과 음낭이 곧 남자였더라.” 물론 여자의 성기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사방지를 그냥 내버려두고 싶었던 세조는 그 일을 거론하지 말라는 영을 내렸다(이씨의 아버지 이순지는 세종이 아끼던 공신이었고, 또 이씨의 외아들 김유악의 아내가 바로 세조의 왕위 찬탈을 도와 영의정이 된 정인지의 딸이었다). 나중에 사방지가 다시 이씨의 집에 들어가 이전과 같은 행각을 벌이자, 우의정 한명회도 나서서 먼 지방으로 유배하라고까지 했다. 그럼에도 세조는 “전에도 이미 국문(조선 시대, 국청에서 역적이나 강상죄인 등의 나라의 큰 죄인을 형장을 가하여 신문하던 일)하지 않았으니 지금도 또한 용서하라”고 했다. 하지만 신숙주를 포함한 대신들의 반대가 이어지니, 세조도 어쩔 수 없이 “사방지는 인류가 아니다.”라는 말과 함께, 먼 지방으로 보내 노비로 삼게 했다.
 
사방지
사방지

이소사 집안의 어르신들에게 발각된 이후, 문제가 된 사방지를 데리고 간 무당 모화는 ‘뚜쟁이’처럼 사방지를 사대부 부인들에게 보낸다. 수많은 부인들을 만족시켜주고 농락하는 사방지의 행각은 당시 1980년대 에로영화의 그것과 유사하다. 그걸 통해 양반사회를 뒤틀고자 했던 무당의 욕망은 당시 산업화사회 한국의 모습과 맞닿아 있는 것. 사방지의 물건을 향해 달려드는 사대부 부인들의 모습을 담아낸 고속촬영은 당시 룸살롱을 가득 메운 사내들의 탐욕과 다를 바 없다. 그 매춘 생활에 질린 사방지가 “전 남자도 여자도 아니지만 짐승도 아니에요.”라고 항변하며 달아나려 하자, 무당은 “넌 달팽이의 혼을 타고 나서 음지에서 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물론 달팽이의 몽타주가 끼어든다. 그렇게 무당은 사방지를 ‘악마의 씨’라 여기고, 급기야 사방지는 “부처님이 계시다면, 왜 저 같은 저주받은 생명을 만드셨습니까. 남자도 여자도 아닌 병신을 말입니다.”라며 울부짖는다.
 
(잘 안보이지만) 욕망의 사대부 부인들 고속촬영
(잘 안보이지만) 욕망의 사대부 부인들 고속촬영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이수광 지음)을 보면, 당시 사방지 사건과 비교해 영화 <사방지>의 ‘격정 멜로’스러운 스타일이 눈에 띈다. 먼저 실제 노비 출신 사방지는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어머니가 죽으면서 낳은 것이 아니라, 늘 함께 지냈다. 살결이 곱고 입술이 붉어 다들 ‘계집애가 사내로 잘못 태어난 것’이라는 얘기를 듣던 사방지를 보면서 그 어머니는 늘 수심에 잠겼다. 그러니까 영화의 첫 장면은 뭔가 사방지에게 ‘몹쓸 운명’이라는 숙명을 부여한다. 또한 장성해서는 벼슬한 선비의 집안에 꽤나 드나들며 많은 여종들과 정을 통했다. 그와 달리 이소사에게 일편단심을 바친 것으로 묘사되는 영화는 사방지의 가슴 아픈 사랑을 더욱 강조하는 것. 그러니까 사실과 달리 두 사람의 자살로 끝맺는 <사방지>는 조선왕조실록의 사방지 사건을 ‘첫사랑의 멜로’로 완성했다. 이쯤에서 실제 사방지의 ‘그것’이 어떠했는지 궁금하기도 할 것이다. 사헌부가 사방지를 잡아들여 심문하면서 여자아이를 시켜 직접 만지게 했는데, 그 아이는 무척이나 놀란 얼굴로 ‘아주 장대하다’고 했단다. 왜소한 수많은 남자들의 탄식이 여기저기서 들릴 얘기다. 

이혜영
방희

감독: 송경식
각본: 지상학, 안태근

개봉극장: 아세아
관람인원: 40,221(서울)명

사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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