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의OST]인크레더블 (브래드 버드, 2004) 작곡가: 마이클 지아치노 Michael Giacchino

by.문상윤(영화음악 수집가) 2013-10-18조회 13,174
인크레더블 (브래드 버드, 2004)
타이틀이 뜨기 전의 짧은 인터뷰 컷들. 슈퍼히어로들 저마다의 고충이 이어진다. 악과 맞서 싸우며 세상을 지키고 평화를 수호하는 그들이 한번쯤 느꼈을법한 사소하고도 중요한 불만과 아쉬움들이다. 끊임없이 벌어지는 사건사고의 뒤치다꺼리를 하다보면 아이를 돌보는 가정부가 된 것 같다는 푸념부터 남성들만 히어로 대접 받는 걸 들러리로 지켜볼 수 없다는 헤로인의 항변이나 이중생활로 인해 불편한 연애관이나 결혼관까지 털어놓는 속내가 제법 진솔하게 들린다. 거기에 자신의 힘을 물려받은 2세들의 정체성 문제나 성장통까지 포함되면 사태는 조금 심각해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은 일반인들의 줄 고소가 이어지고 정부의 제반시설 복구에 대한 재정적 부담감까지 더해져 결국 더 이상 슈퍼히어로로서 삶을 누리지 못하게 되는 순간, 그들은 일반인보다 더욱 피곤한 삶을 살게 되는데... 픽사의 6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은 바로 이 지점부터 시작하는 유쾌하고 독특한 슈퍼히어로물이다. 그간 장난감이나 곤충, 동물에 국한해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왔던 픽사에서 최초로 사람들의 세계를 다룬 작품으로 종전의 모든 기록을 모조리 깨부수고 제목 그대로 ‘인크레더블’한 비평적 · 흥행적 성과를 거뒀다.

슈퍼히어로 가족

슈퍼히어로 가족
 
<아이언 자이언트>로 휴머니즘 가득하고 복고 지향적인 애니메이션을 선보인 바 있는 브래드 버드 감독은 자신이 좋아했던 60년대 스타일의 만화책들과 스파이 영화들에서 힌트를 얻어 슈퍼히어로 이야기를 떠올렸는데, 여기에 자신의 유년시절과 애니메이터로 회사에서 근무하며 느꼈던 감정들을 뒤섞어 일반적인 영웅담과는 조금 다른 재미와 감수성을 드러냈다. 슈퍼히어로의 액션과 로망에 주안점을 두기보다 일과 가족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여러 세대의 공감대를 이끌어낸 것이다. 애초 이 작품은 워너브라더스에서 셀 애니메이션으로 준비 중이었으나, <아이언 자인언트>가 재앙급 흥행 참패를 당해 입지가 좁아지자 자리를 옮겨 칼아츠 시절 자신의 친한 동기이자 픽사의 수장이 된 존 래스터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픽사에서 완성되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선 보기 드물게 악당이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며(극중에서 에드나가 그렇게 망토 반대를 외친 건 다 이유가 있어서다!), 픽사에선 유래 없이 사상 최초로 외부 감독이 영입돼 단독 각본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란 기록을 남겼다. 이미 다섯 편의 성공적인 CG 애니로 기술력을 쌓은 픽사의 모든 노하우가 발휘된 작품으로 부드럽고 자연스런 인간 캐릭터들의 움직임과 스피디한 추격전, 상상한 그 이상의 액션 스케일 등이 어우러져 개봉 전에 돌았던 기우를 말끔히 날려버리며 첫 주말 3일 동안에 7,047만불을 쓸어 담는 괴력을 발휘했다. 그해 아카데미 장편 애니상을 비롯해 제 32회 애니 어워드 7부문을 독식하며 2004년 최고 애니메이션으로 우뚝 섰다. 브래드 버드의 <인크레더블>에 대한 음악적 아이디어는 확고했다. 자신이 스토리를 떠올리며 지대한 영향을 받았던 5-60년대 수사물이나 스파이 뮤직 스타일을 원했던 것. 50년대 말 헨리 맨시니의 <피터 건>을 필두로 <핑크 팬더> 시리즈나 6-70년대를 풍미한 존 배리의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 그리고 랄로 쉬프린의 <미션 임파서블>과 제리 골드스미스의 <0011 나폴레옹 솔로> 같은 TV 첩보시리즈 테마가 그 대표적인 예로, 재즈 사운드의 경쾌한 스윙감과 긴장감 넘치는 그루브함이 무엇보다 이 코믹하고 신나는 활극에 잘 어울릴 거란 판단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그의 첫 선택은 당연하게도 스파이 뮤직의 대가, 007 사운드의 아버지 존 배리였는데, 그는 자신의 초기 스타일을 반복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몇 곡의 데모 작업만 진행하다 결국 하차하고 만다. 만약 작업이 이루어졌다면 배리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을 텐데, 그랬다면 그의 경력 중 시작과 끝을 완벽하게 잇는 결과물이 탄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쉽게도 협업은 불발되었고 그 기회는 버드와 <아이언 자이언트>로 만났던 마이클 케이먼에게로 넘어갔다. 그러나 이 또한 스코어 진행 중 케이먼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뜨게 되며 중지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이제 막 꽃 피우기 시작한 신예 마이클 지아키노가 그 임무를 물려받게 된다. 그 당시 인기 TV시리즈 <앨리어스>로 첩보물의 음악을 들려주고 있었던 터라 그의 스타일이 눈에 띈 점도 한몫했다.

마이클 지아키노
마이클 지아키노
 
60년대의 강렬한 빅밴드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원했던 브래드 버드 감독을 위해 마이클 지아키노는 멀티 채널의 최신 디지털 레코딩을 포기하고, 그 당시 녹음하던 방식 그대로 아날로그 레코딩으로 작업을 진행하며 그 시절의 분위기를 담아보고자 했다. 그런 각고의 노력 덕분인지 <인크레더블>의 레트로한 사운드는 놀랍기 그지없다. 브라스 섹션의 힘찬 팡파르와 울부짖는 와와 사운드는 물론, 리드미컬하고 이국적인 퍼쿠션과 비브라폰의 명징한 긴장감, 그리고 스케일의 위용을 드러내는 압도적인 스트링이 한데 어우러진 스코어는 가히 존 배리의 재림이라 불려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다. 이미 <쥬라기 공원>의 게임과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게임 버전이라 할 수 있는 <메달 오브 아너>를 통해 존 윌리엄스 사운드를 자기 방식대로 해석한 바 있는 지아키노였기에 <인크레더블>에서 존 배리식의 변주는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는지 모른다. 게임계의 존 윌리엄스라는 평가를 들었던 지아키노지만 사실 이 작업이 당시 그에게 주어진 가장 큰 기회였기에 긴장했을 법도 한데, 그는 50년 경력의 노련한 베테랑 작곡가처럼 숙성된 재즈 사운드로 감독과 관객들을 동시에 만족시켰다. <인크레더블>의 음악은 닐 헤프티의 <배트맨> 테마처럼 날렵하고, 존 배리의 <007 여왕폐하 대작전>처럼 우아하다. 노골적인 클리셰와 컨벤션 덩어리지만, 그 유희는 창의적이고 도전적이기에 즐겁게 다가온다. 존 모리스가 멜 브룩스 영화에서 시도했던 일련의 재기발랄함보다 더 세련되고 영리하다. 포문을 여는 ‘The Glory Days’부터 그 명확한 색채를 드러낸다. 웅장한 팡파르 뒤로 펼쳐지는 올드 패션의 스파이 뮤직은 익숙하면서도 능청스럽다. 과잉의 빅밴드 사운드로 애니메이션 특유의 위트와 과장된 미키마우징을 소화하며 자칫 존 배리 스타일에 함몰될 수 있는 요소들을 교묘히 피해가고 있다. ‘Mr. Huph will see you now’와 ‘New and Improved’, ‘Kronos Unveiled’, ‘Lithe or Death’ 등은 제임스 본드 음악에 대한 훌륭한 지아키노식의 번안으로 단순한 스타일의 모방에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테마를 덧입혀 솜씨 좋게 변형 가공하고 있으며, ‘Road Trip’과 ‘Marital Rescue’에서는 존 배리의 <007 위기일발>에서 흐르던 ‘007 Takes the Lektor’란 곡의 컨셉을 의도적으로 차용해 장르에 대해, 스타일에 대해 오마쥬하고 있다. 다시 슈퍼히어로로서 일을 하며 활기를 찾는 몽타주 씬에 흐르던 ‘Life’s Incredible Again’이나 ‘Lava in the Afternoon’, ‘Off to Work’는 부드러운 라운지 사운드로 낭만적인 모험담의 여유와 극적인 이완감을 선사하고 있으며, ‘Bob vs. the Omnidroid’나 ‘Saving Metroville’은 강력한 파워와 묵직한 긴장감을 오롯이 간직한 액션 스코어로 손색이 없다. 찬탄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아찔한 질주감을 던져주는 ‘100 Mile Dash’에선 비브라폰과 뮤트 트럼펫의 현란한 대쉬와 스트링의 숨 막힐 듯한 보잉을 맛볼 수 있으며, 대망의 엔딩 크레딧에 흐르는 ‘The Incredits’는 그간 등장한 모든 테마의 총합이자 스타일의 과시로 지아키노가 들려줄 수 있는 최상급의 사운드를 들려준다.

<인크레더블> 이후의 영화음악들
<인크레더블> 이후의 영화음악들
 
이후 그는 이 아이디어를 공유한 실사판 슈퍼히어로 영화 <스카이 하이>의 음악을 담당하며 본격적인 영웅담 팡파르에 도전했고, 60년대 첩보 시리즈를 블록버스터로 바꾼 <미션 임파서블> 3, 4편의 음악을 내리 맡으며 랄로 쉬프린의 테마를 재해석한 첩보물 사운드를 완성했다. 어디 그뿐인가. 브래드 버드와 다시 함께 손을 잡은 <라따뚜이>로 아카데미 음악상에 첫 지명됐으며, <업!>으로 대망의 아카데미를 비롯해 십여 개의 상을 휩쓸었다. <존 카터><슈퍼 에이트>는 그에게 드디어 (‘게임계의’라는 한계를 떼고) 차세대 존 윌리엄스가 될 것이란 찬사를 붙여주었다. 그는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 나가는 영화음악가다. 이 모든 게 바로 <인크레더블>의 사운드트랙에서 시작되었단 사실.
Track List
1. The Glory Days
2. Mr. Huph Will See You Now
3. Adventure Calling
4. Bob vs. The Omnidroid
5. Lava in the Afternoon
6. Life's Incredible Again
7. Off to Work
8. New and Improved
9. Kronos Unveiled
10. Marital Rescue
11. Missile Lock
12. Lithe or Death
13. 100 Mile Dash
14. A Whole Family of Supers
15. Escaping Nomanisan
16. Road Trip!
17. Saving Metroville
18. The New Babysitter 
19. The Incred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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