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현장][인터뷰] 홍성윤 센트럴파크 단편영화 배급사 대표

by.차한비(REVERSE 기자) 2020-10-12조회 4,832
10년 전 마음 맞는 친구들과 센트럴파크를 설립했을 당시, 홍성윤 대표는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살 수 있을까?’라고 자문했다. 1년 정도 해보면 감을 잡을 거라 예상했지만 막상 1년이 지나자 2년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설렘과 걱정, 기대와 의심을 고루 품으며 해를 넘기다 보니 어느덧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20대 중반의 영화학도가 배급사 대표로 성장하는 동안, 센트럴파크 역시 수많은 작품을 만나며 개성과 깊이를 더해갔다. 

이번 센트럴파크 10주년 기획전 “오늘이 어제와 마주하는 법”에서 선보이는 10편의 영화에는 공통적으로 무언가를 찾아가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들은 갑작스럽게 떠나간 이의 발자취를 좇으며 새로운 사실을 깨닫는가 하면, 우연한 계기로 인해 한동안 잊고 지낸 장면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에 따른 결과는 제각각이지만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최선을 다한다. 안부를 전하고, 응원을 건네고, 도망치다가도 결국 다시 돌아가서 대면하기를 선택한다. 

어쩌면 이는 센트럴파크와 홍성윤 대표가 통과해온 10년의 풍경일지도 모른다. 어제와 마주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영화에는 지나간 시간을 격려하는 마음과 더불어, 다가올 시간을 향한 환영 또한 담겨 있다. 홍성윤 대표는 여전히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는 법을 궁리한다. 좋아하는 일을 계속 좋아하고 싶어서, 앞으로도 더 많은 영화가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한다. 

축하한다. 기획전 준비하면서 감회가 새로웠겠다.
언제 이렇게 됐지 싶다. 탈출할 타이밍을 놓쳤다고 해야 하나. (웃음) 시작할 당시에는 단편영화 배급사도 적었을 뿐더러 새로 뛰어드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10년을 버티다 보니 함께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센트럴파크 설립 이후 다른 배급사도 여럿 등장했다. 창작자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진 셈이고 나 역시 든든한 동료를 얻었다고 느낀다. 단편영화의 경우에는 권리를 침해당하는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도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제 같이 의논하고 힘을 모을 사람이 늘어나서 다행이다.

센트럴파크 홈페이지 소개에 “가장 젊고 열정적인 한국의 독립영화배급사 중 하나”라고 썼더라. 10년을 보내는 동안 젊음과 열정에 관해 곱씹는 순간이 있었을 거 같은데.
6년 전쯤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안필름마켓에 처음 나가면서 썼던 문구다. 이제 마냥 젊다고만은 할 수 없을 거 같다. 다만 얼마나 경력을 쌓고 인지도가 올라가든 초심을 잃고 싶지는 않다. 우리가 대규모 자본력을 갖춰서 창작자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입장도 아닌데, 꼰대는 되지는 말아야지. 초심을 지키며 계속해서 친근한 배급사로 남고 싶다.

결국 센트럴파크가 말하는 젊음과 열정은 영화를 대하는 자세를 의미한다. 
1년에 단편영화 900편 정도를 본다. 늘 기대하는 마음으로 집중해서 보려고 애쓰지만, 사람이다 보니 무뎌지는 순간도 있다. 200편쯤 보고 나면 지칠 때도 있지만, 신기하게도 그때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가 딱 나타난다. 그럼 다시 200편을 볼 수 있는 힘이 생기더라.

피로감이나 아쉬움은 없나. 단편을 학생영화라든지 장편을 위한 발판쯤으로 축소하는 시선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말한 것처럼 독립된 창작물로서 매력과 강점을 드러내는 단편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창작자의 문제라기보다는 창구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나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개봉 기회조차 없는 단편으로서는 영화제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관객 이전에 영화제로부터 선택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아무래도 영화제는 그해 이슈로 떠오른 사회 문제와 현 시대를 반영하는 작품을 높은 확률로 선정하다 보니, 창작자 역시 비슷한 주제를 쫓아가는 듯하다. 그럼에도 자기 세계를 드러내는 참신한 영화는 꾸준히 나온다. 이런 작품이 관객과 만나도록 돕고 싶다. 

기획전 프로그래밍 과정은 어땠나.
10주년을 기념할 수 있는 작품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기억이라는 주제가 나왔다. 시기적으로도 적절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올해 코로나19로 인해 과거를 떠올리는 순간도 많았으니까. 영화를 통해 지난 시간과 장면을 한 번쯤 회상할 수 있으면 좋겠다.
 

<12번째 보조사제>(장재현, 2014) <몸값>(이충현, 2015) <자유연기>(김도영, 2018) 등 소위 말하는 ‘간판’ 작품 대신, 비교적 생소하면서도 주제에 어울리는 작품들로 알차게 꾸렸다. 소개 겸 자랑을 해본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에 남는 영화들이다. <아지랑이>(박지윤, 2014)는 정서로 밀어붙이는 힘이 대단하고 촬영도 무척 훌륭하다. 풀샷을 그토록 잘 잡아낸 단편도 드물다. <글리제>(정누리, 2018)는 오래된 전설을 다루는 SF영화다. 엔딩을 마주할 때 굉장히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글리제>의 유이든, <복숭아>(심수경, 2018)의 문혜인, <미나>(박우건, 2018)의 심달기처럼 영화에 자신만의 색을 칠하는 배우들도 만나볼 수 있다.

<보강촬영>(임현희, 2018)과 <졸업>(한태희, 2017)은 영화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영화가 기억이라는 행위와 긴밀하게 연결되는 거 같다.
영화는 결국 시간예술이니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의 테마 중 하나가 시간여행이기도 하고, 모든 영화는 기본적으로 시간여행적 요소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과거로 돌아갈 수도 있고 미래를 보여줄 수도 있는 게 영화의 매력인 거 같다. 두 작품은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말하면서도 끝내 보편적인 감정으로 설득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단순히 감독 본인의 이야기를 했다기보다는 다각도로 고민을 거쳤다는 게 느껴진다. 

어제와 마주하는 오늘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내일과 닿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영화인으로서 꿈꾸는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
숫기가 없는 편이라 먼저 다가가기를 어려워하는데, 영화를 통해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다. 영화는 내게 일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나를 외부와 연결해주는 끈이다. 그러다 보니 곁에 있던 사람이 떠날 때 참 힘들더라. 센트럴파크를 시작할 무렵에 만났던 단편영화 일을 하시던 분들도 하나둘씩 흩어졌고, 감독님들 역시 단편이 잘 되면 장편으로 옮겨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새로운 만남 자체는 즐겁지만, 때로는 동료가 성장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없다는 사실이 힘에 부치기도 한다. 그래서 센트럴파크를 좀 더 튼튼히, 오래 지속하고 싶다. 10년 동안 단편을 배급해왔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는다. 어쨌든 10년째 회사가 굴러가고 있으니 아주 비관적인 상황은 아니다. (웃음) 머무르기가 쉽지 않은 이곳에서 변함없이 존재하는 이정표가 될 수 있다면, 그렇게 영화를 꿈꾸는 누군가에게 위안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 
 

[센트럴파크 10주년 기념전: 오늘이 어제와 마주 하는 법]
* 상영 링크: https://www.kmdb.or.kr/vod/plan/575
* 예고편 : https://youtu.be/RDrnGR2ihoo
* 상영 기간: 2020.10.12.(월)~10.26(월)
* 센트럴파크 홈페이지: http://centralparkfilm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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