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뉴우스]뉴스영화로 보는 야구 이야기

by.공영민(영화사연구자) 2018-11-23조회 2,839

지난 12일 SK와이번스가 8년 만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며 길었던 프로야구 시즌이 마무리되었다. 그리하여 오늘 소재는 야구이다. <YMCA 야구단>(김현석, 2002)에서도 그려졌던 것처럼 20세기 초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 한 세기 넘게 한국에서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스포츠 중 하나가 야구이다. 한국전쟁 중에도 피난지인 부산에서 전국 리그전이 개최될 정도1)로 야구는 역사 현장의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뉴스영화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야구는 스포츠 소식 중에서도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긴 역사를 갖는 만큼 시대를 반영하는 다양한 야구 뉴스들을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중요한 야구 소식’이 한국전쟁부터 1970년대까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시기별로 정리해 야구 역사의 발자취를 부분적으로나마 조명해보려 한다.  

1950년대 영상은 아무래도 미국이 제작‧배급한 뉴스 위주로 보존되어 있다 보니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미국 메이저리그 관련 소식이다. 특히 한국전쟁 관련 뉴스에서는 유명 메이저리거들의 한국전 참전 소식이 눈에 들어온다. 예를 들면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의 전설적인 4할 타자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테드 윌리엄스(1918~2002)가 전쟁에서 귀환하는 푸티지(<군 복무 마치고 귀국한 메이저리그 야구선수 테드 윌리엄스Ted Williams Back From Korea>(1953))라든가 필라델피아 필리스 출신으로 역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투수 커트 시몬스(Curt Simmons, 1929~  )가 한국전 참전 소식을 직접 알리는 캠페인 영상(<AMERICA IN TRANSITION>(1950))을 들 수 있다. 커트 시몬스 영상의 경우 장래 유망한 젊은 투수가 시즌 중에 징병 되는 상황을 야구선수로서의 모습과 군인으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본인의 내레이션을 삽입해 한국전 참전의 당위성을 높이는 프로파간다로 활용하였다. 이와 같이 유명 선수들의 참전 소식과 함께 월드시리즈의 경기 결과를 알리는 뉴스들이 ‘해외소식’의 한 꼭지로 전해지기도 했다.              

커트 시몬스 장면
커트 시몬스 장면
<AMERICA IN TRANSITION>의 커트 시몬스 장면: 투구를 하는 커트 시몬스의 모습이 군복을 입은 모습으로 전환되고 한국전쟁 소식을 알리는 뉴스를 전하며 자연스럽게 미군 참전의 당위성으로 연결된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까지는 보다 다양한 야구 소식들이 전해졌는데 그중에서도 비중이 크고 눈여겨볼 것은 해외 야구팀의 내한과 친선시합 뉴스이다. 미국 대학팀이나 청소년 야구팀, 일본의 다양한 야구팀들의 방한은 한국야구의 ‘이벤트’로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친선시합들은 한시적인 국제 이벤트로만 기능한 것이 아니라 장비 원조와 기술 전수를 받음으로써 한국야구가 성장하는 데도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일본 야구팀의 경우 대학 야구팀부터 실업 야구팀 그리고 내한을 위해 결성된 재일교포 야구팀까지 다양한 리그의 야구단들이 방한해 전국의 야구팀들과 시합을 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광복절 행사’ 같은 국가행사 기념으로 ‘1950년대 후반부터 기획’된 재일교포 야구팀의 방한과 친선시합들은 1960년대 실업 야구리그가 자리를 잡고, 고교야구리그가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스포츠 자체로서 대중의 인기를 얻은 것과는 별개로 이처럼 국가가 기획해 한편에서 정치적으로 활용한 뒷이야기는 당시의 뉴스 영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2014년 공개된 다큐멘터리 <그라운드의 이방인>(김명준, 2014)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고교야구
(좌) 1957년 내한한 재일교포 학생야구단의 모습 (우) 시합이 열린 경기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야구를 관람하는 관중 (<국방뉴스 제73호>)
1957년 경무대를 방문한 재일교포 학생야구단
1957년 경무대를 방문한 재일교포 학생야구단 (<대한뉴스 제126호>)
 1962년 일본 도에이팀 소속으로 내한 시합을 가진 장훈과 경기가 열린 서울운동장 야구장의 관중 모습
1962년 일본 도에이팀 소속으로 내한 시합을 가진 장훈과 경기가 열린 서울운동장 야구장의 관중 모습 (<대한뉴스 제391호>)
 
1970년대는 명실공히 고교야구의 시대였다. 특히 1972년 제26회 황금사자기 결승전에서 부산고등학교를 상대로 9회 말 대역전극을 펼치며 우승한 군산상고는 ‘역전의 명수’로 불리며 고교야구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군산상고 야구팀의 인기가 얼마나 높았는지는 이 경기를 국립영화제작소에서 대한뉴스에서 다루는 것을 넘어 별도의 문화영화(<승리의 기록>(1976))로 제작한 것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1970년대 TV 매체가 급속도로 성장하긴 했지만, 스포츠 중계 여건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TV보다는 여전히 라디오 중계가 더 큰 비중을 차지했고, 따라서 시차는 있지만, 뉴스영화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되는 경우도 잦은 편이었다. 따라서 당시 고교야구경기 영상을 보면 현재 프로야구의 인기에 버금갈 정도로 경기장을 가득 메운 인파의 열기를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고교야구의 열기는 뉴스와 문화영화의 인기 소재로 활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하이틴영화의 인기와 맞물려 <영광의 9회말>(김기덕, 1977), <고교결전 자! 지금부터야>(정인엽, 1977) 같은 야구영화 제작에도 영향을 끼쳤다. <영광의 9회말>과 <고교결전 자! 지금부터야>는 실제 군산상고 야구부원들의 출연을 두고 경쟁을 벌인 끝에 <고교결전 자! 지금부터야>가 군산상고를 소재로 제작을 했다. 이에 따라 <영광의 9회말>은 경북고 야구부를 영화에 출연시켰다. 이와 관련한 뒷이야기는 김기덕 감독의 구술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72년 황금사자기 우승을 한 군산상고 야구팀과 경기가 열린 서울운동장 야구장의 관중 모습
 1972년 황금사자기 우승을 한 군산상고 야구팀과 경기가 열린 서울운동장 야구장의 관중 모습
    1972년 황금사자기 우승을 한 군산상고 야구팀과 경기가 열린 서울운동장 야구장의 관중 모습 (<승리의 기록>)
<영광의 9회말>과 <고교결전 자! 지금부터 시작이야>의 한 장면
<영광의 9회말>과 <고교결전 자! 지금부터 시작이야>의 한 장면

1) 『동아일보』, 1951년 10월 6일자 2면.

출처 
<Ted Williams Back From Korea>(1953), <AMERICA IN TRANSITION>, <국방뉴스 제73호>(1957) - 고려대학교 한국근현대영상아카이브
<승리의 기록>(1976), <대한뉴스 제126호>(1957), <대한뉴스 제391호>(1962) - KTV e영상역사관
공영민, 「김기덕 편」, 한국영상자료원 편,  『2016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1960~1970년대 한국영화 2 - 김기덕‧김수동‧김종래』, 한국영상자료원, 2016.

연관영화 : 영광의 9회말 (김기덕 , 1977 )

연관영화 : 고교결전 자! 지금부터야 (정인엽 , 1977 )

연관영화 : 변화하는 미국 ( , 1951 )

연관영화 : 군 복무 마치고 귀국한 메이저리그 야구선수 테드 윌리엄스 ( , 19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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