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판문점 풍경

by.공영민(영상자료원 객원연구원) 2018-05-11

지난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인상적으로 꼽힌 장면들이 있다. 그 중 판문점 경계선에서 남북 정상의 월경(越境)은 큰 화제가 되었다. 그래서 이번호 “오늘의 뉴우스”에서는 지난 몇 주간 세계뉴스에서 가장 주목 받은 판문점이 과거 뉴스영상 속에서는 어떠한 풍경으로 그려졌는가를 살펴보려 한다. 
 
<코리안뉴스> 타이틀
 
현재까지 수집된 기록영상에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것은 한국전쟁 관련 영상이다. 국내 제작 뉴스영상은 물론이고 이 시기 생산된 해외 뉴스를 비롯한 기록영상에서 제작 국가를 불문하고 1순위를 차지하는 소재는 한국전쟁일 것이다. 그만큼 한국전쟁은 냉전의 시작을 전 세계에 알리는 프로파간다의 첨병 역할을 했다. 따라서 이 시기 기록영상에는 전쟁 발발의 원인부터 전선 상황, 정전협정까지 한국전쟁과 관련한 다양한 ‘소식’이 담겨 있다. 그 중에서도 1951년 7월 10일 시작해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 조인에 이르기까지 무려 2년 동안 진행된 정전협상은 판문점과 비무장지대가 뉴스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협상이 이루어지는 장소의 특성상 판문점은 주로 적과 적이 코앞에서 대면하는 장소로 긴장감 있게 연출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곳은 비무장지대라는 특성상 한반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참화는 마치 다른 세계의 일인 양 일상적이고 평안한 장소로 그려지기도 했다. 여기에서는 미 공보원(USIS)이 제작한 <코리안뉴스>에 삽입된 세 개의 장면을 통해 널리 알려진 판문점 협상 장면 이외의 모습들이 어떻게 묘사되는지 살펴보려 한다.

1951년 12월 판문점에서의 소년 포로 석방과 귀환





첫 번째 장면은 1951년 11월 발행된 <코리안뉴스 제476호>의 ‘한국에 관한 소식’에 등장하는 어린 포로의 석방 모습이다. 이 뉴스는 북한군에 구류되었던 11살 소년이 판문점에서 유엔군 손으로 넘겨져 가족과 상봉하는 모습을 전한다. 판문점 인근에 주거하며 먹을 것을 찾아다니던 소년은 북한군의 포로가 되었다가 유엔군 정전대표단의 교섭으로 풀려난다. 소년은 한국군, 미군과 함께 ‘다리 하나를 건너’ 북에서 남으로 내려온다. 1분 남짓한 짧은 영상에 전쟁으로 달라진 거주민의 일상과 남북한의 경계 역할을 하는 판문점의 모습이 모두 담겨 있다. 가건물도 아닌 야전용 천막이 들어선 판문점에서 미군의 옷을 걸치고 순진무구하게 웃고 있는 소년의 모습은 당시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알 수 없는 전쟁의 모습을 대변한다.  

1951년 12월 판문점 회담장의 풍경





 
두 번째 장면은 1951년 12월 발행된 <코리안뉴스 제479호>의 정전 협상 뉴스 속에 등장하는 판문점의 모습이다. 벌판에 덩그러니 서 있는 막사는 유엔군과 공산군, 소수의 카메라 기자들 그리고 화면에 대한 내레이션이 없다면 판문점인지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초라하다. 정전선에 대한 세부 기준을 정하는 회담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현재 판문점의 모습처럼 남북을 가로지르는 뚜렷한 경계선도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회담에 참여하는 양측의 군인들과 경비군, 취재진들은 막사를 둘러싸고 비교적 자유롭게 운신하는 것처럼 보인다. 1953년 정전 협정이 조인되던 당시 가건물이나마 그럴듯하게 회담장의 모습을 갖춘 판문점의 모습과 대비된다. 2년 동안 판문점에서 숱하게 이루어졌던 회담의 모습은 다양한 영상에서 확인 가능한데 이 뉴스의 경우 앞의 소년 포로 뉴스와 함께 초기 판문점 회담장 밖의 분위기를 살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영상이다. 

 1952년 3월 함께 낚시를 하는 판문점의 남북 병사들
 



 
세 번째 장면은 1952년 3월 발행된 <코리안뉴스 제499호>에 등장하는 남북 병사들의 모습이다. ‘한국에 대한 소식’의 첫 꼭지는 “일진일퇴하는 정전협정의 최후 체결”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해 남북 병사들의 짧은 휴식 시간을 보여준다. 30초라는 극히 짧은 영상 속, 놀랍게도 판문점을 지키는 남북병사들이 냇가에 모여 낚시를 하고 있다. 내레이션에 따르면 “협상이 9개월이나 지연되어 기분전환”을 위해 “양편의 병사들이 회의장의 단절을 풀려고 낚싯대를 든” 것이다. 낚시하는 병사들의 모습 다음에는 조이 제독과 리지웨이 장군의 담소 장면을 짧게 삽입해 이 뉴스가 판문점의 정전회담 관련 소식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이상과 같이 1951~1952년의 판문점 풍경은 이 전쟁이 어떻게 종결될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을 보여준다. 임시로 세워진 판문점 막사만큼이나 소년의 귀환과 남북병사들의 낚시는 당시로서는 그다지 놀라운 뉴스가 아니었을지 모른다. 2018년 현재 판문점의 풍경과 과거 뉴스 속  판문점 풍경을 비교해보면 65년째 휴전 상태에 처해 있는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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